소설리스트

A.I. 닥터-1161화 (1,161/1,303)

1161화 헬프 (4)

헐레벌떡.

조영상 교수는 말 그대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만약 이 환자의 진단명이 바뀌게 되면, 그가 좀 곤란해질 수도 있다는 걱정 따위는 없었다.

왜?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이수혁 교수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넘어 자기 환자를 봐 주러 오지 않았나!

‘흐아아아아!’

연구실이 병동과 먼 곳으로 배정받았을 때, 조영상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더랬다.

어차피 연공서열 순으로 주어지는 거니까.

하지만 오늘만큼은 불만이었다.

너무 멀어서 금방 보러 갈 수가 없지 않나.

위이잉.

다행이라고 한다면 아직 환자는 검사실에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통합진료센터의 검사실 역량이 뛰어나다고 한들 문자 그대로 찍읍시다 라고 할 때 바로 찍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부리나케 뛴 보람도 있어서 조영상은 아직 영상 결과가 나오기 전에 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헉, 헉.”

“어떻게 오셨어요?”

센터 간호사가 조영상을 좀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어찌나 뛰었는지 땀 때문에 머리가 미역처럼 말라붙었다.

안 그래도 최근 의사인 척 와서 도둑질하는 놈들도 있다지 않던가.

통합진료센터는 다른 병동에 비해 고가의 장비도 좀 있는 데다가 컴퓨터도 원격 진료 등의 이유로 인해 다 좋은 거다 보니 더더욱 경계심이 차올랐다.

“방금, 이수혁, 교수님, 환자.”

“아, 저기요.”

하지만 찬찬히 뜯어 보니 너무 의사처럼 생긴 사람이 의사처럼 말하고 있지 않나.

저런 사람이 도둑이라면 인정해 줘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말이 상황에 맞기도 해서 검사실 쪽을 가리켜 주었다.

조영상은 또 달렸다.

드륵드륵.

그사이에 어느 정도 촬영이 끝나 가고 있었다.

영상이 뜨고 있다, 이 말이었다.

다들 그 영상에 집중하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비인후과 교수를 누구보다 반겨 주고 또 챙겨 주어야 하는 장규선조차 눈길 한번 안 주고 있었다.

조영상은 조금 쓸쓸한 감정을 느꼈지만…….

감히 수혁을 방해할 수는 없어서 슥 하고 뒤로 가 섰다.

“흐음…….”

마우스를 쥐고 있는 건 당연히 수혁이었다.

그가 스크롤을 굴리자 이내 영상이 주르륵 넘어갔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 딱 멈췄는데, 귀신같이 거기에…… 뭔가 있었다.

“뼈에 종양이 있군요. 비장 비대도 있고.”

스크롤이 느려지면서 동시에 수혁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흐음……. 영상만 봐서는 종류까지 특정이 어렵지만 림포마 종류 같네요. 다행히.”

“아, 다행인가요?”

“수술은 불가한 상황이니까요. 만약 고형암……. 여자분이니까, 이런 식의 전이가 그나마 가능한 암이 난소암이나 유방암일 텐데, 그런 암이었으면 지금 희망이 없어요.”

“아.”

장규선이 약간 멍청한 질문을 했지만, 타박은 없었다.

수혁이나 바루다나 마이너 서저리 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감안해 주는 게 있어서 그랬다.

막말로 마이너 서저리 과의 지식이나 경험을 다른 과가 따라가기는 어렵지 않던가.

반대도 당연한 일일 테니 이해해 줘야 할 터였다.

“아무튼, 검사는 여기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요?”

“네. 경부 임파선. 이건 이비인후과에서 바로 떼다가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네, 그렇죠. 아, 네. 저희가 전문입니다.”

그래, 이런 거.

경부 임파선 절제 생검불.

목 쪽의 해부에 통달했다고 볼 수 있는 이비인후과 의사들에게 이 수술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4년 차 정도만 되어도 금방금방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 교수님한테……. 어?”

“어어. 노티할 필요 없어. 안녕하십니까, 조영상입니다. 영광입니다.”

“아, 네. 지정의 선생님. 이수혁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 광영입니다.”

“아.”

수혁은 얼마 말을 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안대훈 과라는 것을 알아냈다.

해서 안대훈을 돌아보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포교는 꾸준히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말이다…….’

[좋지 않습니까? 오늘도 보십쇼. 딱딱.]

‘그렇긴 해. 딱딱이긴 하지.’

예전 같았으면 나무랐을 수도 있겠지만…….

포교가 진행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비교해 보면 편의성이 다르다는 걸 벌써 여러 번 체험했다 보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뭐…….

누구 제물 바치고 하는 사이비는 아니지 않던가.

누구한테 해를 끼친다기보다는 지금까지의 일만 봐서는 득이 되는 일만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방해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그럼 일단 수술을 해 보시죠. 이거 따로 판독 의뢰도 보내시고. 조태진 교수님한테는 제가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야, 규선아. 네가 좀 어레인지 해라.”

“네, 교수님.”

경부 임파선 절제 생검은 교수보다 레지던트가 잘한다고 보면 되었다.

원래 사람은 지금 당장 하는 걸 제일 잘하는 법이지 않겠나.

같은 예로 기관 절개술도 보통은 그랬다.

그러니 장규선 선생이 수술방 잡아서 하러 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란 얘기였다.

뭐, 국소마취로 하면 되는 수술이다 보니 마취과 연락도 필요 없고 빈방 받아서 하면 되는 일이다 보니 장규선은 별걱정 하는 투도 없이 환자와 함께 사라졌다.

그럼 사실 조영상도 가야 했다.

근데 그러지 않고 있었다.

“음.”

“으음.”

“으으음.”

“흐으으음?”

수혁, 대훈, 김성진, 하윤 모두 그런 조영상을 바라보았다.

좀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왜 안 가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물론 눈만으로도 충분히 무례할 수 있는 법이었다.

다만 이현종의 제자들이다 보니……. 그걸 생각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 저기 그.”

문제라고 할 건 아닌데, 조영상은 딱히 무례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냥 수혁과 눈을 마주치고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서 다른 생각 따위는 할 게 없었다.

무엇보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도저히 모르겠는 환자가 하나 있어서 그랬다.

사람들이 이비인후과라고 하면 거기 뭐 귀랑 코나 하는 건데 뭐 어려운 게 있냐고 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내시경으로 고막 찌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러야만 했다.

이비인후과…….

특히 그중에서도 귀는 어? 진짜 어렵다.

“네. 듣고 있어요.”

수혁은 신도의 간절함을 대번에 알아봤다.

이 우물쭈물하는 얼굴…….

저 안에 뭘 품고 있을까.

여기가 병원이 아니고 또 상대가 의사가 아니라면 사실 다른 욕망도 있기야 하겠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뻔하지 않겠나.

‘이번 것도 괜찮았지.’

[그렇죠. 어마어마하게 드문 케이스였습니다.]

‘응. 영상만 봐서는 무조건 2형 섬유종증……. 양보해도 신경초종이었어.’

[네, 임상적인 힌트가 없었다면……. 만약 느리게 자라는 림포마였다면 그냥 수술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을 거야. 아무리 너랑 나라도 놓쳤을 법한 케이스였어.’

[그렇죠.]

기대도 됐다.

[이 세상에 해결 못 할 케이스는 없어, 끝까지 포기 않고 풀면 되잖아.]

방금 되게 어려운 케이스였거든.

빈말이 아니라 림포마도 워낙에 양상이 다양하다 보니, 이거 좀만 달랐어도 놓칠 뻔했다.

영상은 어떻게 봐도 너무 양성 같았거든…….

아무튼, 덕분에 좀 신났다.

바루다가 안대훈이 늘상 부르던 노래를 부를 만큼이나.

대체 어디서 나온 노래인지 모르겠는데…….

중독성이 있었다.

“어지럼증 환자인데요.”

“네, 어지럼증. 좋죠. 요새 워낙 많죠?”

더 꺼내라.

수혁은 은근히 부드럽게 꼬셨다.

[케이스! 나온다!]

‘쏟아진다!’

마이너 서저리지 않나.

이 사람들이 진짜 꼼꼼한 편이다 보니 기록도 자세하고 해서 보는 맛이 있었다.

외과나 정형외과나 신경외과 쪽 기록이랑 비교하는 건 숫제 미안할 지경이었다.

거긴 너무 바쁘기도 하거니와 과 분위기도 털털해서 그런가…….

“네, 많죠. 요새 정말 많아서……. 관심이 많이 늘었는데, 이번 케이스는 좀 이상해서요. 협진 환자입니다.”

“아하, 협진이군요.”

“네. 외래에서 온 환자이신데……. 히스토리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실례지만 제가 한번 띄워 보겠습니다.”

“네네, 얼마든지요.”

안대훈부터 자리를 딱 비켜 주었다.

덕분에 조영상 교수는 안에 들어가 기록을 띄울 수 있었다.

히스토리가 복잡하다고 하더니 진짜로 그랬다.

옆에 입·퇴원 날짜가 뜨는데 너무 많아서 빽빽하다고 느껴질 지경이었다.

놀랄 만한 일은 아니긴 했다.

내과는 이런 환자가 너무 많았으니.

“환자는 여자 54세입니다. 일단 12년 전에 좌측 난소의 과립막 세포종, 난소암이죠. 이게 있어서 복강경하 난소 절제술 및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꽤 조기에 발견되었나 보네요?”

“네,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런 거 같다.

뭐 어쩔 수 없지.

마이너 서저리지 않나.

일부러 저러는 건 아닐 거다.

‘몰라서…….’

[굳이 그렇게 화를 참을 필요가 있나요?]

‘화냈다가 케이스 안 주면 어째.’

[아, 잘하네. 참아라.]

‘응.’

[그래.]

그렇게 속으로 되뇌는 동안 조영상은 환자에 대한 노티를 이어 나갔다.

정리하면 첫 치료는 간단했지만 4년 전에 재발하는 바람에 복강 내 재수술을 했고, 항암 치료까지 진행했다.

그 후에 유착으로 인한 장 폐색이 발생에 그에 대한 수술을 다시 한번 1년 전에 시행했고, 그 후로는 식사가 가능하긴 하지만 대다수의 영양을 유동식으로 섭취하고 있는 상태였다.

암의 재발은 이제 걱정할 단계는 거의 지났지만…….

난소암이라는 놈이 원래 재발과 전이가 워낙에 흔한 놈이다 보니 그 위험성을 무시하는 건 안 될 일이었다.

암을 제외하더라도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영양 결핍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번에 이제 검진 때문에 입원하셨다고 합니다. 암 검진이야 사실 이제 의미가 없다고 하던데……. 그래도 뭐. 히스토리가 좀.”

“네, 이해할 수 있죠. 이 정도면 입원해서 보실 수 있죠.”

“네, 근데 입원 전에도 좀 어지럼증이 있다고 하셨다고 하는데……. 퇴원 수속하려는데 어지럼증이 너무 심하다고 해서요. 구토도 동반되었기 때문에 꾀병이거나 신체화 증상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되어서……. 제가 아까 출근하면서 잠깐 가서 봤습니다.”

“아하. 그랬군요? 직접 보셨어요?”

“네. 이비인후과는 환자를 직접 안 보면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서요.”

“내과도 그렇습니다, 하하.”

“그렇죠. 그중에서도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시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수혁은 사실 이미 어느 정도 정보를 쌓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듣기는 해야 했다.

이비인후과 교수가 하는 어지럼증 검사는 수혁조차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디테일이 있을 게 분명하기에 그랬다.

이석증 같은 것도 말이 쉬워 귀의 돌이지, 그건 전자 현미경으로 봐야 보일 정도로 작은 미세 구조 아닌가.

“아무튼, 시행한 검사상 환자는 안진이 있었습니다. 증상은 명백히 회전성 어지럼증인데……. 좀 이상한 게 있다면 자세 변화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관찰이 된다는 겁니다.”

“보다 정확히 말씀해 주시면요?”

“보다 정확히?”

“자발 안진은 있었습니까?”

“아.”

조영상의 얼굴에 감탄 아니 감동이 번졌다.

역시 이수혁, 이 사람은……. 모든 영역에 통달한 사람이다.

말하는 것만 봐도 이비인후과 전문의랑 대화가 딱딱 통할 것 같지 않나.

협진 의뢰를 하는데 굳이 쉽게 풀어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조영상은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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