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63화 (1,163/1,303)

1163화 헬프 (6)

“저, 저기 교수님.”

컴플레인.

이전에 교수 하던 선배들 아니, 선배들 레벨이 아니라 은사님 시절로 가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그때는 뭐 환자 면전에 대고 담배 피우는 사람들도 있었다지 않나.

지금?

지금 그랬다가는 내부 징계만으로 끝나기만을 기도해야 할 터였다.

물론 그때가 그립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

컴플레인을 걱정해야 하지 않나?

“네?”

“별거 아니라뇨……. 내과에 계셔서 그런가 본데 머리 문제면 일단 무서운 거 아닙니까?”

“응? 뭐, 보통은 그렇죠.”

“보통은 그렇잖아요. 근데 왜…….”

“아, 좀 들어 보세요. 환자분은 아니라니까요?”

“아니라고? 머리라면서요.”

“머린데 심각하진 않다고요.”

“아니, 이게 무슨.”

조영상은 혹시 내가 이비인후과라 이해가 안 가는 건가 해서 뒤에 선 이들을 돌아보았다.

내과의 기둥들이자 태화 의료원의 미래를 책임질 만한 동량들이라 평가받는 이들이었다.

수혁에 비하면 빛이 발하겠지만……. 그래도 뭐 어지간한 전문의 이상이라는 건데.

‘동태눈이네.’

보아하니 얘들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너무 무식한 건 또 아니라는 건데…….

차이가 있다면 얘네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느낌이 팍 느껴졌다.

이것이 믿음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당황하고 있으려니, 수혁이 어느새 다시 환자에게로 다가간 이후였다.

“어어.”

아니, 다리도 불편한 사람이 대체 왜 이렇게 빠르나 싶었다.

다시 잡으려 했지만 안대훈이 묘하게 진로를 방해하는 바람에 여의치가 않았다.

“믿으시죠.”

그래도 다시 움직이려고 했다.

마이너 서저리긴 해도 서저리 아닌가.

그중에서도 이과 파트는 위에 계신 분들 때문에라도 험한 인생을 강제로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과 쪽 이낙준 교수가 인성을 다 가져갔는지, 상당히 악랄한 분들이 포진하고 계시다 이 말이었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키워 온 힘으로 밀어내려는데 안대훈의 진중한 목소리가 툭 하고 들려왔다.

“아니.”

“믿으세요.”

그러자 마치 뱀 앞의 개구리라도 된 양 몸이 움츠러들었다.

뭔가 더 움직여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환자분, 이렇게 마른 지 얼마나 되셨어요?”

“아……. 엄마 그때 재수술하고부터는 그래요. 거의 4년, 5년?”

“오래됐네요. 식사는 거의 못 드시는 거죠?”

“그래도 유동식으로는 어지간히 드시는데…….”

“그 유동식이라는 게 어떤 걸 의미하죠?”

최근에 나오는 유동식은 대단히 좋았다.

씹어 넘기는 식감과 다채로운 맛을 포기하고 영양만 바라본다면, 딱히 꿀리는 게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말하면 참 쉬운데…….

문제는 전자에 대한 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해서 여전히 많은 수의 환자들은 제품화되어 나오는 유동식이 아니라 숭늉이라든지 주스라든지 하는 것들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숭늉이랑 주스요.”

그럴 줄 알았다.

제대로 된 유동식을 먹었다면 이렇게 마르지 않았을 테니.

물론 진짜 씹어 먹는 음식을 먹는 것에 비하면 당연히 좀 모자랄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이렇게 영양 결핍임을 한눈에 알 만한 몰골이 되진 않았을 거다, 이 말이었다.

“중간중간 병원에서 먹으라고 하는 것도 먹었어요. 근데 그거 맛이 좀……. 지겨워서…….”

아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환자가 변명하듯 부리나케 말했다.

뭐, 아예 안 먹진 않았을 터였다.

맛이 지겹다는 것도 맞는 말이고.

‘맛이 없긴 해.’

[맛이 없는 건 아니죠. 다만 종류가 몇 개 안 되는 게 문제죠.]

‘그렇지……. 주식으로 그것만 먹기엔.’

[그렇게 되면 나 머리에서 떼 주세요. 다른 사람에게 가겠습니다.]

‘의리 없는 새끼…….’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반대 입장이면 어떻게 할 건데요.]

‘나가야지 뭐.’

의사들이라고 하면 흔히들 먹지도 않으면서 먹으라고 하고, 운동하지도 않으면서 하라고 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후자는 몰라도 전자는 좀 억울했다.

먹어는 보기에 그랬다.

실제로 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무튼, 이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미진하긴 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먹어야 했다.

안 그러면 이렇게 되니까.

“한번 걸어 보세요. 그거 보면서 말씀드릴게요.”

“아, 네. 근데 제가 걸음이.”

“보호자 계시니까요. 대훈아, 뭐 하니.”

“네, 교수님!”

하여간, 수혁은 환자의 걸음걸이를 지켜보았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걸음이었다.

“이거 소뇌…….”

조영상이 이렇게 말할 만도 했다.

하지만 실제 수혁의 소견은 좀 달랐다.

“아뇨. 근력 감퇴에 의한 소견입니다.”

“네?”

“이비인후과니까 어지럼증에 대해 아주 잘 알지 않으십니까? 우리 몸의 균형을 잡는 데 필요한 요소 중에 근육도 있죠?”

“아……. 그렇긴 하죠. 아니, 그럼 이게 근육 때문이라고요? 이 증상이?”

“아니, 그건 아니죠.”

“네. 죄송합니다. 그래도 그런 눈으로…….”

조영상은 금세 의기소침해졌다.

괜찮았다.

아, 수혁이 괜찮다는 뜻이다.

“자, 보기에만 마른 게 아냐, 환자분은.”

그는 이제 제자들과 소란에 의해 모여든 이비인후과 사람들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평소보다는 아무래도 사람이 적었지만 괜찮았다.

원래 보던 사람들이 아니니까.

모든 게 그렇지만 잘난 척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할 때 더 신나는 법이었다.

“근력이 걸음걸이에 지장을 줄 만큼 빠져 있어. 영양결핍이 아주 극심하다는 것이지. 자, 그럼 여기서 질문. 영양결핍으로 발생하는 여러 질환이 있는데, 그중에서 이런 회전성 어지럼증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은 무엇이 있을까?”

“으음…….”

“음.”

“음.”

하윤, 대훈 그리고 김성진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영양…….

이거 진짜 중요한 거긴 했다.

하지만 영양결핍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뭐 얼마나 중요하겠나.

현대인들은 못 먹어서 생기는 문제보다는 아무래도 많이 먹어서 생기는 문제가 훨씬 심각한 법이었다.

‘역시 모르는군…….’

[알겠습니까? 어렵죠, 이건.]

‘그래도 알아야지.’

[그렇긴 하죠. 조질까요?]

‘그래, 이건 조지자.’

[콜.]

수혁은 이따 다 끝나면 조져야지 하면서 말을 이었다.

“티아민. 수용성 비타민이지. 현대인에게 부족하기 힘든 영양소야. 아주 심한 경우에는 뇌병증과 운동실조까지 진행할 수 있지만, 환자분은 아직 안구 운동 장애만 보이고 있어. 이로 인한 증상 중 하나가……. 청력 저하가 있는데, 혹시 소리 들리는 건 어때요?”

“저는 잘.”

“아, 엄마가 요새 잘 못 들어요.”

“내가?”

“TV 엄청 크게 들어요.”

“아.”

서서히 나빠진 모양이었다.

감각기가 다 그렇긴 한데, 청력은 더더욱 서서히 나빠지는 경우엔 스스로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알아차리기에는 시력보다 훨씬 수월했다.

당장 불편해지거든.

“그렇군요. 역시…….”

수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고서였는데, 사실은 실눈을 뜨고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어떻게……?”

“이걸 알지?”

“티아민? 그거 알코올 중독이랑 연관 있는 거 아냐?”

이비인후과가 한때 성적이 진짜 좋은 애들만 들어갈 수 있던 적도 있지 않나.

게다가 꼼꼼하기로만 따지면 안과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과다 보니 뭐 하나 입력되면 좀처럼 잊는 법이 없었다.

해서 티아민과 연관된 족보 알코올 중독을 언급하는 이도 있었다.

“히익.”

“천재…….”

“괴물…….”

그 외에 분위기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티아민…… 이건 진짜 생각도 못 했는데…….”

조영상도 비슷했다.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하니까, 관련 혈액 검사하고. MRI 찍어 봅시다. 아 보충은 미리 하죠. 어차피 수용성이라 과하게 들어가도 괜찮아요.”

“아…….”

“조영상 교수님. 교수님께 말하는 겁니다.”

“아, 아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무튼, 환자분. 이런 병입니다. 이번에 대대적으로 보충하고, 앞으로 잘만 드시면 다시는 어지러울 일 없을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그렇게 충격에 빠져 있던 조영상이 수혁의 채근에 처방 내러 달려간 동안 환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호자는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사실 산부인과에서도 그렇고, 이비인후과에서도 그렇고 아무래도 혈액종양내과에서 한번 봐야 할 거란 말을 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비록 CT에서는 전이 소견이 없었지만…….

그럼 MRI에서도 없겠지만 어딘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

이유 없이 이렇게까지 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없는 법이니.

심지어 암은 피 안에 섞여 날아가다가 혈관을 틀어막아 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괜히 개같은 병이라 칭함받는 게 아니었다.

“그, 통합진료센터 말고는 새벽에나 된다는데 센터로 보낼까요?”

“네. 대기 좀 할 텐데 그래도 딴 데보다는 빠를 거예요. 제가 가 있으면 아주 급한 거 아니면 밀고 찍을 수 있을 거고요.”

“네, 아유. 감사합니다.”

조영상은 처방과 전화를 이리저리하다가 수혁에게 와서 고했고, 그렇게 일행은 센터로 다시 향하게 되었다.

하윤은 약간 다리가 아픈 느낌이 들어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벌써 5천 걸음…….’

병원이 오죽 넓은가.

심지어 이비인후과 이과 파트 병동은 별관에 있다 보니 진짜 멀었다.

“아, 다리 아프다. 오늘은 이제 오라고 하자.”

하윤도 아픈데 수혁은 어떻겠나.

MRI실 앞에 숫제 주저앉다시피 했다.

안대훈은 충성을 외치며 온 센터에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둥둥둥.

그사이 환자는 MRI실 안에 들어가 찍기 시작했다.

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숨을 못 쉬는 것도 아니다 보니 그냥 바로 찍을 수 있었다.

넘어오는 영상을 따라온 모두가 살폈다.

‘음.’

조영상도 그랬다.

자기 환자니 당연했다.

심지어 의뢰까지 할 정도로 신경 쓰는 환자니 더더욱 그랬다.

‘하나도 모르겠네, 시발…….’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아니, 낫인지 나발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하나도 모르겠다.

뇌구나, 이 정도의 인사이트만 있었다.

“산강조영상(diffusion weighted image)에서 상부 내측 시상(medial thalamus), 중뇌덮개(tectum), 뇌수도관주위 회백질(periaqueductal gray)의 조영 증강이 있네.”

“네?”

들으면 좀 나을까 싶었는데, 외계어나 이거나 별반 다를 게 없을 거 같았다.

수혁은 그런 조영상 교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는 말을 보탰다.

“쉽게 말하면 티아민이 부족한 상황……. 즉 웨르니케 뇌병증의 아주 전형적인 소견이라는 뜻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치료하시고, 퇴원하기 전에 한번 보내 주세요.”

“아……. 근데 이거 알코올 중독에서…….”

“보통은 그렇죠. 근데 알코올 중독에서 이게 왜 생깁니까? 식사 안 하고 술만 먹어서 그렇죠? 이 환자분의 경우는 술은 먹지 않았지만, 영양학적으로만 보면 거의 그에 준하는 수준이에요. 굳이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죠.”

“아, 그렇구나. 아……. 그럼 진짜 별거 아니었네요?”

“네. 금방 좋아질 겁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