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4화 호흡기내과에서 (1)
“모르겠다.”
“네?”
노영태.
수혁이 아직 전공의였던 시절 내분비내과를 돌 때 인턴이었던…….
이제는 수혁에게 반해 내과 전공의가 되어 버린, 말 그대로 내과에 뼈를 묻겠노라 선언하고 온 사내는 지금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호흡기내과 교수님이 대놓고 모르겠다고 하고 있지 않나.
이래도 되나……?
내가 괜한 것을 물은 걸까?
뭐 이런 생각도 들었다.
허나 상대는 딱히 화가 난 기색을 보이고 있진 않았다.
“확실히 환자는 만성기침에 체중감소가 있지……. 흐으음……. 결핵일 가능성이 높아. 높은데…….”
“환자가 어깨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게 좀 이상해서요.”
“상완신경총의 종양성 장애를 나타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게 네 생각이지?”
“네, 그렇습니다.”
상완신경총의 종양성 장애.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텐데, 이건 흔한 게 아니었다.
레지던트 레벨에서 잡아낼 수 있을 만한 것이겠나?
절대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
근데 화가 나?
그럴 리가 있나.
‘이수혁 교수 때문인가……. 요새 애들이 진짜 공부를 열심히 하네.’
레지던트가 죽어라고 공부해서 물어보는데 화가 나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일전에 쫓겨난 서효석 같은 놈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걸 물어보면 좀 화가 나기 마련이거든.
하지만 내과 교수들은 기본적으로 학구열이 있었다.
아니, 의사들은 대개 그런 편인데……. 그중에서도 좀 심한 사람들이 내과 교수가 된다고 보면 되었다.
그렇다 보니 방금 노영태가 내지른 질문에 호흡기 교수가 확 꽂힌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자, 다시 볼까?”
“네네.”
해서 교수는 일단 방금 그의 외래에 들어왔다가 잠시 밖으로 나간 환자의 이전 기록을 살폈다.
환자가 처음 온 것은 3개월 전.
당시에도 만성기침과 약간의 체중감소 등을 주소로 내원했더랬다.
외래에서 시행한 신체검사에서 혈압이나 심박 수, 체온은 정상이었으나 호흡수는 분당 26회로 약간 증가해 있었다.
환자 본인은 자각하지 못할 정도의 경미한 호흡곤란을 시사하는 소견이었다.
“그때 찍은 엑스레이를 보면……. 폐 우측 상엽에 섬유증이 있지.”
“네, 결핵에 합당한 소견입니다. 실제로 영상의학과에서도 그렇게 줬고요.”
“그래, 그랬지.”
영상의학과 교수의 코사인이 딱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것만 보고 괜찮다고 할 수 있나?
현재까지 나온 숱한 진단 기기 중 영상이 제일 정확한 것은 맞았다.
실제로 흉부 엑스레이가 보급됨에 따라 청진기는 거의 사장되지 않았나.
당장 호흡기내과 의사인 그를 제외한 다른 분과 교수들은 내과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청진기를 잘 쓰지 않을 지경이니 말 다 한 셈이었다.
‘그래 봤자, 그림자야…….’
그렇다고 영상 검사가 완벽한가?
엑스레이는 정말 초보적인 검사에 불과했다.
물론 이것만으로 정말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건 맞지만 이것만 믿고 있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호흡기내과 시니어 교수 중에 일본 학회 가다가 갑자기 심해진 호흡곤란을 주소로 응급실로 돌아와 찍은 CT에서 폐암 말기가 진단된 사례도 있지 않나.
매년 건강 검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놓쳤단 얘기였다.
‘그때 이전 사진 리뷰해 봤더니 이게 암이었나 싶은 소견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암을 의심하고 봤으니까 암인갑다 하는 것이지, 그냥 보면 여전히 정상 소견을 줄 만한 사진이었다.
하필 그가 주로 보는 장기인 폐는 엑스레이와 같은 영상 진단 장비의 신뢰도가 좀 떨어지는 장기였다.
“근데 이때 사실……. 가래에서 결핵균이 나오진 않았어. 그래서 일단 두고 보기로 했지.”
“네. 근데 결핵은 원래 그럴 수가 있으니까요.”
“뭐……. 그렇지. 하지만 자네 말이 맞다면…….”
“아니, 저는 그냥 질문을 드린 것뿐입니다, 교수님. 저 그냥 평범한 레지던트인 거 아시잖아요.”
“으음.”
방금 전까지는……. 그래, 평범한 레지던트였던 거 맞다.
하지만 상완신경총의 종양성 장애를 언급한 순간 그렇지 않게 되었다.
평범한 놈은 저런 거 생각할 수 없거든.
게다가 근거도 있었다.
이 환자……. 단순히 어깨만 아파하는 게 아니다.
일단 결핵이 검출된 적이 없다.
이번에도 그랬다.
“아무튼, 2주 전에 내원해서 시행한 객담 검사에서도 결핵균은 없었어. 하지만……. CT에서 우측 상엽에 있던 섬유증이 더 경화된 것이 보였지. 그에 더해 기관지의 원통형 분지 팽창을 동반하게 되었고……. 여기 보면 폐기종도 살짝 있지.”
“진행한 결핵 소견에 합당합니다. 영상에서도 그렇게 판단했고요.”
“그래. 그래서 원래는 오늘 결핵약을 투약하려고 했거든? 근데 네가 딱 그 소리를 한 거야.”
“그……. 제가 괜한 질문을 드린 걸까요?”
“글쎄. 모르겠네.”
노영태는 또다시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눈앞의 교수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니……. 어쩌라고…….’
교수잖아.
교수면 다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사실 그건 좀 오버였다.
현대 의학의 한계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이렇게 말하는 건 억지지.
하지만…….
‘만약 내 의견이 맞다면 이 환자……. 암이야.’
살짝 초조했다.
정말 암이라면…….
벌써 3개월이 지체되지 않았나.
여기서 결핵 치료한답시고 약을 쓰면 적어도 6개월은 지연될 것이 뻔했다.
결핵약이라는 게 엄청 독하기 때문이었다.
결과를 보는 데도 한참 걸리고.
“방법이……. 조직 검사뿐인데, 환자가 동의가 될까? 나조차도 아리까리한데……. 전형적인 암 모양은 절대 아니잖아, 이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교수가 2주 전에 낸 처방을 통해 시행한 CT 사진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중얼거렸다.
딱히 노영태에게 하는 말은 아닌 듯했다.
그렇다고 완전한 혼잣말도 아니었다.
‘불안하구나, 교수님도. 근데 댁이 그러니까 더 불안해지지 않습니까…….’
환자 앞에서 이러고 있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괜히 의사들이 포커페이스의 달인이 되는 게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사실과는 무관하게, 의사는 적어도 환자 앞에서는 전지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믿고 따라올 수 있었다.
특히 만성 질환 같은 경우엔 환자가 의사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양지차였다.
“안 되겠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던 교수는, 외래 사원이 시계를 두드리는 걸 목도하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 의료가 참 좋기는 한데…….
아무래도 싼 가격에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려다 보니 좀 도떼기시장이 되는 면이 있지 않던가.
저수가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처지지 않는 수입을 가져가게 하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사회 전체가 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어마어마한 노동 시간을 감내하고 있다 보니 의사들도 원래 그런갑다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렇다 이건데, 지금처럼 고민되는 케이스가 오면 속절없이 외래가 밀리기 마련이었다.
“이수혁 교수한테 쏘자.”
하지만 태화는 예외였다.
여긴 이수혁이라는 치트키가 있으니까.
“아. 될까요? 그냥 센터로요?”
“어, 될 거야. 이수혁 교수는 환자 보는 거 엄청 좋아하잖아.”
“그건 그런데……. 환자분이 여기서 센터로 가라고 하면……. 지정의가 잠시 바뀌는데.”
“그것도 될 거야. 너……. 넌 모르겠지. 마지막으로 TV 본 게 언제니.”
“어…….”
고민에 빠진 노영태를 보면서 교수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짓다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수혁 교수 엄청 유명인이야. 우리 병원 다니는 사람이면 대강은 알 거야. 짬 때리는 느낌은 절대 없을걸.”
“그, 그렇군요.”
“그럼 교수님. 지금 들어오시라고 할까요?”
“어어, 그래 줘요.”
“네.”
사원은 오늘도 지연인가.
점심 못 먹나 하다가 빠른 결단에 밝은 얼굴이 되어 밖에서 대기 중이던 환자를 불렀다.
환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증상이 좀 힘들긴 했다.
숨이 차고, 또 기침도 자꾸 나오고……. 살도 빠졌고.
하지만 이게 아주 심각한 질환일 거란 걱정은 없었다.
태화로 온 것도 어머니가 여기 다니는 김에 그냥 와 본 것일 뿐이었다.
헌데 중간에 전공의가 어깨 얘기를 하자마자 교수 얼굴이 살짝 질렸더랬다.
‘시발, 뭐지?’
설마 암인가?
폐암…….
그거 죽는 병이라던데.
“그, 환자분.”
“아, 네.”
무슨 얘기가 나올까.
교수의 입이 열릴 때마다 무슨 선고라도 나올까 봐 무척 긴장이 되었다.
허나 정작 튀어나온 말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내용이었다.
“통합진료센터 이수혁 교수님께 한번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핵이 가장 의심이 되긴 하는데……. 아닐 가능성이 있어서요. 돌다리도 두드려 보자는 차원에서 드리는 말씀이니 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 이수혁 교수님이요.”
이수혁, 이수혁…….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었다.
‘아, 그래. 예능 나와서 환자 고쳤던 사람이지.’
떠올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24시간 TV 돌리다 보면 어느 한 채널에서는 반드시 재방송 중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프로에도 나오지 않았나.
그뿐만이 아니라 이 병원 엘리베이터에도 얼굴이 붙어 있었다.
아주 뛰어난 의사라는 소린데…….
사실 환자 입장에서는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말이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쓸 일이 있겠나?
환자는 어쩐지 자신의 질환이 닭이 아니라 소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환자분?”
“아, 네.”
“한번 가 보시죠.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노 선생. 자네가 가.”
“네, 교수님.”
“어……. 네.”
그러거나 말거나 가긴 가야 했다.
뭐 어쩌겠나.
뭐가 되었건 간에 자기는 모르겠다, 이 말 아닌가.
태화 의료원이라는, 명색이 한국 최고라는 병원 교수라는 사람이 저렇게 나온다면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 계시네.”
둘만 남아 걷는 시간은 그야말로 침묵의 시간이었다.
노영태는 아무래도 환자가 암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답답했고, 환자는 본인이 암일 수도 있겠단 생각에 숨이 막힐 거 같았다.
그 지옥 같은 고요함이 깨진 것은 눈앞에 수혁이 보이게 된 이후의 일이었다.
“응? 노 선생?”
“아,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호흡기내과 외래에서…….”
“아……. 연락받았어. 그럼 이분이?”
“네네. 그렇습니다.”
“그,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환자분.”
환자는 수혁에게로 다가갔다.
그사이 수혁은 환자를 스캔했다.
‘객담에서 결핵이 나오진 않았다지만……. 사진과 증상만 보면 사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결핵을 진단하는 데 있어 부족함이 없지.’
[대한민국에서 결핵은 풍토병이라고 봐도 되니까요.]
‘하지만 뭔가 애매한 거지, 지금?’
[네. 일단 어깨 통증이…… 있다고 하니까요.]
‘어깨는 근데 저 나이면 많이들 아프긴 하던데.’
[그건 그렇습니다. 그래도 의뢰가 왔으니 한번 보죠.]
‘좋아. 오늘 오전에 바빴으니까 쉬엄쉬엄 봐 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