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5화 호흡기내과에서 (2)
환자는 남자 50대.
반평생 동안 사무직에 종사해 온 사람이었다.
앉은 자세가 근골격계에 미치는 악영향이야 굳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딱딱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지 않나?
허리부터 등, 목 그리고 어깨까지 하나하나 다 조질 수 있는 자세가 바로 앉은 자세였다.
‘오십견도 있을 법하지.’
[그럴 겁니다. 뭐……. 그래도 유의미한 추론입니다.]
‘그렇긴 해. 특히 폐에 병변이 있다면……. 일단 오십견에 해당하는 소견이 있는지부터 볼까.’
[그러시죠.]
수혁은 환자가 다가오는 동안 대강 뭐부터 할지 정했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라 시진도 어느 정도 진행했다.
걸음걸이와 팔다리의 움직임 그리고 전체적인 인상과 체격 등만 봐도 알 수 있는 게 상당히 많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 일인데, 환자는 하지의 근력이 충분한 사람이 보여 줄 수 있는 걸음걸이를 보여 주고 있었다.
적어도 하지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상지, 즉 병변이 있는 쪽……. 우측 팔의 움직임은 약간 어색했다.
‘그것 말고는 살도 적당히 올라 있고……. 만성질환의 징후가 도드라지진 않네.’
[네, 뭐……. 아주 성장이 빠른 암이 아니고서야 몇 개월 정도 된 병으로는 외형이 변하진 않죠.]
‘그렇지.’
[네, 뭐. 이제 앞에 왔습니다.]
수혁은 바루다의 말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반대로 이제사 앉게 된 환자에게 이런저런 검진을 시행했다.
주로 회전근의 범위를 파악하는 것이었는데, 이게 좀 이상했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건 잘 안되는데…….’
[수동적으로 돌릴 땐 되네요. 통증이 수반되긴 하지만…….]
‘관절이나 근육의 저항이 있어서 아파하는 느낌은 아냐.’
[네, 기계적인 제한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통증의 양상도……. 딱히 관절의 움직임보다는…… 그냥 당겨질 때 발생하는 거 같지?’
[표정의 변화로 미루어 보건대 지속 시간은 짧고, 강도는 상당히 날카롭습니다.]
바루다의 묘사를 보다 자세히 풀어 보면 칼로 푹 찌르는 느낌과 유사하다고 이해하면 쉬웠다.
대개 이런 종류의 통증은 신경통이었다.
‘안 좋은데.’
[좋지 않죠.]
디스크나 대상포진과 같은 이유가 아닌 신경통은 대개 종양과 연관이 있다.
그리고 이 환자는 하필 같은 쪽 폐 상엽에 섬유화된 병변이 있지 않나?
뭐…….
사진만 봐서는 종양보다는 정말 염증에 의해 섬유화된 것으로만 보이긴 하지만…….
“어, 어떻습니까?”
검사 동안 인상을 쓰고 있던 환자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외래와는 달리 통합진료센터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무거웠으니.
제아무리 수혁과 이현종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이 재깍재깍 진단을 내리고 있으면 뭐 하겠나.
애초에 고칠 수 없는 병도 많은데.
그나마 평생 관리하면 여생을 누릴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병도 많았다.
그런 경우를 많이 접하다 보면 사람도 공간도 조금은 인상이 바뀌게 마련이었다.
“아직, 일단 좀 더 보죠.”
“네, 네.”
거기에 더해 수혁의 검진은 느낌이 좀 달랐다.
뭐라고 해야 할까.
보다 깊숙한 곳을 샅샅이 훑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어찌 생각해 보면 착각일는지도 몰랐다.
수혁의 이름값이라는 것도 이제 와서는 어마어마해졌으니까.
‘Horner`s 증후군은 보이지 않아?’
[조금만 더 주시하십시오. 눈에 도드라질 정도는 아니라…….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
[음.]
‘왜.’
[약간의 동공 크기 차이가 관찰됩니다. 현저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양측 생김새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미세한 안검 하수증 또한 동측에서 관찰됩니다.]
‘그렇군. 그럼 역시…….’
미세한 차이야 뭐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좌우대칭으로 생긴 사람이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드물지 않던가.
허나 하필 하나의 증후군에 속하는 특징이 겹치는 건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미 그 증후군의 원인이 되는 질환을 의심할 만한 소견들이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사진 이거 2주 전에 찍으신 거죠?”
“아……. 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보다 면밀한 확인일 터였다.
조직검사를 염두에 두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물론 폐는 다른 장기에 비해 찔러 들어가기에 그리 만만한 장기는 아니긴 했다.
숨 쉬는 장기를 폭 찔렀다간 구멍 난 풍선처럼 쪼그라들기 마련 아니겠나?
여러 고려가 필요한 법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검사만을 위해 쐐기 절제술을 하기도 했다.
그런 걸 단지 의심만 되는 상황에서 강권할 수 있나?
‘못 할 건 없긴 하지.’
[그렇긴 합니다.]
의심되는 질환이 다른 것도 아니고 폐암이다, 폐암.
고형암이 원래도 참 무서운 건데…….
폐암은 그중에서도 최악이라 할 수 있었다.
여전히 때를 놓치면 도저히 살릴 수 없다는 말이 올 정도로.
‘그래도……. 보다 확실한 뭐가 있어야겠지.’
[네, 수혁이니까. 또 제가 있는데 남들하고 똑같으면 좀 그렇잖아요?]
‘그렇지.’
거기에 더해 수혁이 권한다면 환자도 환자지만 검사를 하게 되는 영상의학과 의사 또는 흉부외과 의사도 그냥 그런갑다 해 줄 터였다.
한두 번 꽝이 나오더라도 ‘이 새끼’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라, ‘오, 이번에는 틀렸네? 사람이긴 한가 보다’ 할 거란 얘기다.
하지만…….
시행착오는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시행착오다.
만약 틀리면?
환자는 쓸데없이 몸에 구멍 내는 셈이 되고, 그걸로 끝이 아니라 결핵 치료도 그만큼 밀리게 된다.
‘맞으면……. 결핵 치료 때문에 암 치료가 확 밀리겠지.’
[그렇죠. 그렇게 되면 환자 죽습니다.]
‘폐암이니까.’
[네.]
그럼 좀 기다리면 안 되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래, 뭐 백번 양보해서 갑상샘암 같은 질환이면 1년 정도 기다려 볼 수 있었다.
물론 재수 없으면 갑상샘암도 변이가 일어나서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 확률은 정말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으니 논외로 친다고 하고…….
폐암은 그럴 수가 없다.
한 달 아니, 1주일도 예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좀 그렇긴 한데, 오늘 한 번 더 찍어 볼까요?”
“네? 2주 전에 찍었는데요?”
“네. 변화를 보려고요. 아주 중요한 검사가 될 거 같습니다. 방사선 노출이 좀 염려가 되실 수도 있는데……. 제 의학적인 판단에 의하면 그로 인한 손해보다는 검사로 인한 유익이 훨씬 큽니다.”
“그…….”
환자는 고민에 빠졌다.
CT를 또 찍어?
귀찮았다.
하지만…….
MRI도 아니고 CT지 않나.
조영제 맞는 거야 아프고 성가신 일이지만, 시간만 따지고 보면 얼마 걸리지 않는 검사이기도 했다.
‘이수혁 교수님쯤 되는 사람이 괜한 소리 할 리가 없지.’
TV에서나 엘리베이터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젊어 보이긴 했다.
아니, 숫제 어려 보인다고 해도 좋을 지경.
허나 그 뒤에 늘어선 이들과 센터의 전경과 함께 어우러진 수혁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의사로만 보였다.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영상을 찍게 되었다.
CT는 MRI와는 달리 중간중간 찍을 수 있는 검사였다.
위이잉.
거의 얘기 꺼내자마자 찍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순식간에 검사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넘어오는 영상을 수혁은 이전에 찍은 영상과 비교하면서 스크롤을 넘기기 시작했다.
같이 따라온 노영태는 물론이거니와 수혁의 제자들도 다 수혁 뒤에 선 채 바라보고 있었다.
‘똑같은데……. 상식적으로 꼴랑 2주 만에 영상 소견이 바뀔 수가 있나……?’
괜히 가이드라인에서 1달, 3달, 6달을 정해서 보는 게 아니지 않나.
물론 방사선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 안에는 실제 변화가 있더라도 사람 눈으로 판독하기가 어려워서 정해진 것도 있을 터였다.
‘내 눈에는 안 보이네…….’
‘제 눈에도요.’
‘저도 그렇습니다…….’
노영태뿐 아니라 제자들도 차이를 찾지 못했다.
물론 수혁에 대한 신뢰도 차이 때문에 반응은 다르긴 했지만…….
하여간, 모두 훈련받은 대로 필사적으로 양측 영상을 살폈지만 속으로는 모르겠단 생각만 하고 있었다.
부디 수혁만은 다르길 바라면서였다.
‘역시 2주는 짧군.’
[그래도 차이가 있긴 합니다.]
수혁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었다.
바루다 덕이긴 했다.
사람 눈으로 보기 어려운 것들도 다 수치화해서 보여 줄 수 있는 녀석을 머리통에 달고 있다 보니, 거의 픽셀 단위의 분석이 가능했다.
‘우측 갈비뼈 3번. 이거 약간……?’
[네, 맞습니다. 침식이 시작됐습니다. 이건 결핵 따위에서 보일 수 있는 소견이 아닙니다. 아마……. 흉통이 좀 있을걸요? 눌러 보면.]
‘이따 나오면 눌러 봐야지.’
[아니, 이건 검진이 아니라 그냥 확인이잖아요.]
‘그래도, 사람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고.’
[아직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남아 있군요.]
‘사람이니까. 연애도 하는데?’
[아, 사귀는 건가? 사귀자고 해야죠. 그래야 1일 아닙니까?]
‘아……. 그런가……?’
그 분석 끝에 진단이 되어 버렸다.
딱 이 소견만 있는 것도 아니긴 했다.
고작 2주 사이에 섬유화 병변은 좀 더 커졌으며, 동시에 주변 조직을 붙잡기 시작했는데…….
하필이면 상완신경총이 지나는 자리에 자라난 상황이었다.
말하자면 어깨의 통증과 아주 경미한 수준의 호너 증후군, 그리고 갈비뼈의 미란.
모든 것이 폐암을 가리키고 있었다.
덕분에 살짝 마음이 느슨해졌지만…….
‘아무튼, 폐암이야.’
[그렇죠.]
‘에휴……. 그나마 초기라 다행이지. 미란 수준이면……. 수술해서 제거하고 항암 하면 아마……. 죽지는 않을 거야. 다른 곳에 전이는 아예 없으니까.’
[다행이라…….]
폐암이라는 진단명에 다시금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바루다조차 함부로 말하기가 좀 그랬다.
사람이 죽는 병이니까.
“환자분.”
아직 환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사실 조직검사를 통해 확진이 된 것도 아니니, 수혁도 확답을 해 주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너무 섣부른 일이지 않겠나.
해서 수혁은 단순히 이렇게만 말했다.
“검사상에……. 약간 섬유화된 곳이 커져서요. 안전하게 가는 게 좋겠습니다. 조직검사를 해 보죠.”
“아…….”
“그래야 확진이 될 거 같아요.”
“알겠……. 알겠습니다.”
환자는 그 말에도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러곤 노영태가 환자를 끌고 센터 중앙으로 갔고, 그사이 수혁은 흉부외과에 전화를 걸었다.
이현종의 아들이지만 이전부터 쌓인 일 덕에 상당히 끈끈한 사이가 된 편이었다.
“어, 이수혁 교수님?”
“네. 환자 한 분 의뢰하려고요.”
“심장? 아니지, 심장이면 나 말고 딴 사람한테 했을 텐데?”
“네, 폐예요. 암이 의심됩니다.”
“아. 그렇군.”
“쐐기 절제술로 가면 좋을 거 같은데……. 3번 갈비뼈가 살짝 미란이 되었습니다.”
“아……. 으음. 그럼 쐐기 절제술 말고 좀 다르게 가야 할 수도 있는데, 조직검사로 확진이 된 건가?”
“아뇨. 그거부터.”
“아……. 근데 이수혁 교수가 볼 때는 암이라 이거지?”
“네, 99%.”
“그럼 암이네. 알았어. 나는 오늘 수술이 좀 있어서 안 될 거 같고……. 옆 방에 주니어 스탭 보내고 중간중간 들여다볼게.”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