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6화 호흡기내과에서 (3)
‘이수혁 교수님 의뢰라, 이거지?’
수술방에 들어가게 된 사람은 흉부외과 임상강사였다.
전문의 딴 지도 어언 7년째…….
군대 갔다 오느라 3년 2개월은 병원을 떠나 있었지만, 그걸 제해도 4년이다, 4년.
의대 동기들 중엔 그 시간 동안 개원해서 대박 난 친구도 있고, 벌써 전임 교수 단 친구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임상강사 신세였다.
내색은 안 하지만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이받고 나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월세로 돌려야 될 거 같아. 전세금 올려 달라는데…….
‘아……. 어, 내 대출이 지금 한도 끝까지 나온 거라.’
-그래, 내가 알아서 할게. 오늘도 고생해!
‘어어, 고마워.’
학생 때 만나 결혼까지 골인한 사랑스러운 아내가 기대했던 의사 아내로서의 삶이 지금과 같을까?
역시 내색한 적도 없을뿐더러, 자세히 물을 만한 용기가 나지 않아 그저 모른 채로 두고 있었다.
이번 달 통장에 찍힌 월급은 520.
적은 돈은 아니지만, 주 100시간 이상 일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또 고등학교 시절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의대 재학 시절에도 꽤 잘하던 편이었음을 감안하면…….
‘아니, 아니지.’
임상강사는 고개를 털었다.
개원의도 개원의 나름의 어려움은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흉부외과는 나가서 개원한다고 해도 잘된단 보장이 그냥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과였다.
그렇다고 페이 닥터를 해?
-아……. 네, 흉부외과요. 수술 안 하는 조건으로, 응급실 근무만 하신다고 하면 어느 정도 페이 맞춰 드릴 수 있습니다.
흉부외과 수술은 대개 적자다.
그러니 과를 병원에서 유지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그나마 이런저런 험한 술기를 다 할 수 있는 데다가, 흉관 삽입이나 기도 확보 및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심근경색 진단 등에 능하다 보니 뽑아 주는 곳이 있긴 했다.
단 흉부외과 소속은 아니고, 응급실이나 다른 병동 소속으로.
대형 병원들도 적잔데 굳이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흉부외과가 없으면 상급 병원 허가가 나지 않고, 그럼 전체적인 수가가 낮아져서였다.
바꿔 말하면 상급 병원 허가가 애초에 안 날 병원에서는 흉부외과를 굳이 유지할 필요가 아예 없다는 소리다.
‘여기까지 왔는데 교수 해야지…….’
다른 길이 없는 건 아니었다.
선배 중엔 심장에 꽂혀서 무려 전문의 따고 10년 이상 대학 병원에 있다가, 결국엔 모발 이식 병원으로 가지 않았나?
갈 때는 솔직히 말해 패잔병과도 같은 몰골이었다.
바라던 바를 이루지 못하고 필드에서 사라지는 느낌이었으니 뭐…….
헌데 최근에 본 선배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일단 제때 집에 들어가고, 응급도 없고, 돈은 더 받고. 휴가도 많진 않아도 멀리 갈 수 있으니까 좋아. 애들이랑 아내가 정말 좋아한다. 아, 나 약도 끊었어. 속도 좋아지더라. 확실히 심장 수술이…… 무섭긴 하잖아?
말만 이렇게 하는 게 낯빛도 좋아졌다.
엄청 흔들렸지만…….
‘그래도 우린 애도 아직 어리고…… 좀 더 버텨 봐야겠지.’
임상강사는 수술실 탈의실 중간에 널브러져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대기실로 향했다.
이미 한창 수술방 러쉬하는 시간은 지난 지 오래다 보니 널럴했다.
그중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내과 레지던트로 보이는 이가 옆을 지키고 있는 환자였다.
‘저 사람이구만.’
임상강사는 환자에게로 향하면서 수혁을 떠올렸다.
전문의를 땀과 동시에 교수를 단…….
처음엔 진짜 미워했더랬다.
순서 다 제끼고 된 거니까.
원장 아들이라서이지 않겠나?
언론에 제보할 생각도 했지만, 그 후에 벌어질 일이 두려워서 참았다.
“안녕하세요, 흉부외과 정희원입니다.”
“아, 네.”
“얘기 들으셨겠지만 조직 검사를 시행할 거고요. 수술방에서 결과 보고 좀 커질 수 있습니다. 물론 쐐기 절제술 및 갈비뼈 부분 절제술보다 더 커질 거 같으면 중단할 예정입니다. 보호자분도 계시죠?”
“그…… 네, 방금 왔습니다.”
허나, 수혁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아들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 사람은 천재다.
그리고…….
‘난 그런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어, 이 병원에 있는 한은 그렇지.’
절대 따라갈 수는 없다.
하지만 같이 갈 수는 있을 거다.
이 안에 있으면 어찌 되었건 일도 같이 하게 되니까.
당장 논문도 같이 쓴 게 여러 개 아닌가?
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수혁이 준 아이디어와 계획서를 따라간 느낌이긴 하지만.
논문 하청 수준이랄까?
허나 결과물을 보면 절대 그딴 식으로 폄훼할 수 없다.
-이 정도면 네가 아마 전국 흉부외과 임상 강사 중에서는 논문 점수 제일 높을 거야. 좀만 기다려 봐, 자리 만들어 볼 테니까.
교수들이란, 늘 밑에 사람 더 부려 먹기 위해 입 발린 소리 해 대는 존재라지만…….
적어도 논문 점수는 빈말이 아니다.
수혁이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
“네, 너무 걱정 마세요. 중간에 혹 변수 생겨도 저 혼자 결정하진 않을 겁니다. 이수혁 교수님하고 또 다른 흉부외과 교수님들하고 상의하겠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이건 그냥 느낌만일 수도 있는데, 수혁은 자기보다 나이 많은데 아직 교수 못 단 이들에게 보다 잘해 주는 것 같았다.
어설픈 놈들은 오히려 그렇게 역전된 경우에 개무시를 하곤 하는데…….
수혁은 아니었다.
일단 밑에 김성진 선생이나 김인수도 엄청 만족하고 지내지 않나.
‘덕분에 나는 진짜 논문은 걱정 없지.’
그런 사람의 의뢰다, 이건.
최선을 다해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자, 그럼 마취합니다.”
“네.”
원래 임상강사도 연차 쌓이고 하면 마취 다 되고, 밑에 레지던트 또는 인턴이 드랩까지 다 하고 들어오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수혁의 의뢰인데 감히 그럴 수가 있나?
임상강사는 공손히 기다리다가 손수 드랩부터 쳤다.
이런다고 수술이 더 잘되거나 환자 예후가 더 좋아지라는 법은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다르지 않나?
혹시 또 모를 일이었다.
-수혁이는 신이야.
조태진 교수님 말씀처럼 진짜 신이면 어쩌나.
자칭 신이라 떠드는 놈들과 달리 이수혁 교수는 신빙성이 있지 않나?
그가 지금 보여 주고 있는 실력은 정말이지…….
신 그 자체였다.
“자, 환자 우측 폐 상엽 쐐기 절제술을 통한 조직검사 시행합니다.”
“네, 맞습니다.”
“네, 흉강경 주시고.”
“네.”
경건한 마음으로 시작된 수술은 참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이전에는 무조건 칼 대고 열었어야 했는데, 이젠 아니었다.
폐암 수술의 3, 40%는 흉강경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우측 폐 상엽을 제거하는 순간, 임상 강사는 알 수 있었다.
이거…… 이수혁 교수의 말대로 단순 결핵으로 인한 섬유화 따위가 아니라는걸.
“판코스트 증후군이었구나…….”
폐 상엽에 발생하는 암 덩이 때문에 발생하는 증후군이다.
여러 신경을 잡아당기면서 발생하는 증후군인데…….
수술장에서 보니 미세하게나마 그렇게 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딱히 조직검사를 하지 않아도 암이라는 건 특정되는 상황이었다.
“이수혁 교수님 전화 좀.”
“아, 네. 바로 연결하겠습니다.”
“네.”
임상강사는 들뜬 마음에 제일 먼저 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뭔가 바쁘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방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성가셔하진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추론이 맞았을 때 유독 기뻐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랬다.
“아, 역시 판코스트 증후군을 동반한 암이었군요.”
“네네, 역시 교수님이십니다!”
“아마 비선형 선암종일 겁니다. 수술 후 항암 방사선 치료에 대한 계획을 잡아야겠군요. 영상에서 보인 거 말고 다른 이상은 없었나요?”
“아…….”
그리고 수혁은 그 추론에 더해 이미 다른 추론까지 해낸 상황이었다.
만약 영상에서 그렇게 보이는데 판코스트 증후군을 일으켰다면, 가능한 조직 유형은 비선형 선암종일 뿐일 거라는 걸 처음 영상 찍었을 때부터 고려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역시……. 신이군. 미쳤다.’
이러니 임상강사 입장에서 좀 먼저 교수 되었다고 해서 불만이 생길 수가 있나?
있던 불만도 휘리릭 해소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진짜 너무 대단하니까.
지금 이렇게 전화를 직접 할 수 있다는 게 감동이라고 해야 할까.
“네, 병리과에 의견 전달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의뢰 드렸는데 바로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아뇨. 하하. 당연히 해 드려야죠! 교수님이 주신 논문이 몇 갠데요.”
“조만간 하나 더 드리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물론입니다!”
논문…….
이거 원래 던진다고 표현하는 게 보통이었다.
모든 교수가 그렇지는 않지만, 대개의 경우엔 정말 아이디어 하나만 주고 논문 써내라고 하기에 그랬다.
심지어 미리 선행 논문이 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던지는 경우도 많아서 고생만 하고 결과물은 형편없거나 아예 아무것도 안 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수혁이 주는 건 어떤가?
무조건이다.
SCI까지 직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머리 싸매고 고민 좀 하다가 찾아가면 해답도 제깍 나온다.
“그래요. 그럼 또 알려 주세요. 제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게 있어서.”
“아, 네. 실례 많았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네.”
이러니까 충성을 안 하고 배길 수가 있나?
솔직히 말하면, 흉부외과 교수들보다 수혁에 대한 존경심이 훨씬 더 컸다.
여긴 부려 먹지도 않으면서 도움은 주니까.
물론 급한 의뢰를 해 오긴 하는데…….
‘그 의뢰도 봐라.’
지금 이 환자.
만약 검사 안 하고 결핵 치료 들어갔으면 1, 2년 내에 반드시 죽었을 거다.
폐암은 그런 병이니까.
‘하지만 오늘 이수혁 교수님이 발견하신 덕에…….’
살 수 있을 가능성이 팍 떴다.
무조건 살 거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폐암은……
조기 폐암에서조차 장담하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6개월 이상 당겨진 이상 5년 생존율이 적어도 두 배는 되었을 거다.
환자 나이가 이제 고작해야 54세이니…….
생명의 은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아……. 이수혁 교수님이 비선형 선암종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하셨어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맞을 거 같은데. 확실히 그렇게 보입니다.
“네네. 아무튼, 악성이고, 마진은 깨끗한 거죠?”
-네, 깨끗합니다. 더 절제하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뼈 침윤이 있었으니…….
“네, 치료 계획에 항암 방사선을 들어가야 될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병리과에서도 수혁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니까 연신 고개를 조아리기 바빴다.
애초에 방금 전화 받은 사람이 몰타 십자가를 찍었던 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아마 오늘의 이 예언도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 집회 나가서 간증할 게 분명했다.
그렇게 수혁의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동안, 수혁은 하윤과 있었다.
“어디 볼까?”
“네.”
병원이다 보니 다른 걸 하려고 만난 건 아니고, 학회 자료 확인하고 있었다.
물론 분위기는 대훈이나 기타 다른 놈들과 있을 때랑은 많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