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7화 이게 일이야? (1)
스테판 그라펠리와 미셸 페트루치아니의 명반, 플라밍고.
자유로운 바이올린 선율에 약간은 음울한 기가 뒤섞인 피아노의 조화는 이미 연주자들이 사망한 지도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
특히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훌륭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음.’
[음.]
수혁과 바루다에게는 좀 미묘한 감이 있었다.
왜?
둘은 일단 음악이랑 너무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와서 그랬다.
음악이라니…….
공부가 일종의 업인 사람이 음악 들을 일이 어디 흔하겠나.
물론 공부하거나 어떤 작업을 할 때 음악을 틀어 두는 편이 좋을 때도 있기 마련이지만, 24시간 바루다의 감시하에 최상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수혁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이거 좋은 노래지?’
[뭐……. 듣기에 나쁘진 않습니다. 일단 시끄럽진 않잖아요.]
‘하긴 조용하긴 하네.’
[일단 가사가 없어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경우도 적어서 좋군요.]
‘그것도 그래. 문제는…….’
[우하윤도 좋아하나? 이게 궁금한 거죠?]
‘어.’
[비교 분석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여기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하윤의 기분 톤은 늘 좋아 보입니다.]
‘음. 그건 아주 좋은 일인데…….’
수혁은 귀는 재즈를 향해 열어 둔 채, 하윤을 돌아보았다.
책상 위에 올려 둔 커피잔에서 은은한 향이 올라오고 있었다.
‘좋구만…….’
하윤은 당연한 말이지만, 기분이 좋았다.
뭔 곡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간에 듣기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커피의 향과 맛은 커피에 대해 진심인 이현종, 신현태 그리고 수혁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안대훈이 구해 온 원두를 사용했으니 보증 수표였고.
거기에 더해 수혁의 방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상당히 아름다운 편이었다.
이제 슬슬 녹음이 짙어져 가고 있는 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병원과 그룹 차원에서 신경 쓰고 밀어주는 통합진료센터의 부센터장실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 일단 최윤섭 박사님도 오시기로 했거든? 근데 좀 늦으시나 봐.”
“아, 그래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단둘이서만 계속 있을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수혁도 이 분야, 즉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해서는 도움이 필요해서 그랬다.
일단 말부터가 너무 생소하지 않은가.
디지털 헬스케어라니…….
태생이 이 분야 최고 선두 주자라 할 수 있는 A.I.라는 걸 감안하면 생소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바루다도 기계나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인간도 뭐 출산 과정이니 생물학적 특성이니 뭐니 하나도 몰라도 잘만 태어나고 살지 않나.
바루다도 그랬다.
“응, 이게 나도 완전히 알진 못해. 사실 앞으로의 임상에서는 상당히 의미가 있을 거 같긴 한데……. 지금은 딱히 상관이 없어서 자주 들여다보진 않거든.”
“하긴……. 저도 그렇긴 해요. 교수님한테 듣고 나서야 알았지, 그전에는 뭐…….”
교수.
참 이 단어 한번 듣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수혁이야 전문의 따자마자 교수가 되었지만, 보통의 의사들 중엔 10년도 더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소위 비인기과로 분류되는 과들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바깥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아무래도 다들 안으로 몰리게 되기 마련이고, 그걸 교수들도 알다 보니 함부로 굴리게 되어서 그랬다.
그걸 본 전공의나 인턴들은 역시 이 과는 망했다 싶어서 더 지원을 안 하게 되고…….
소위 말하는 악순환의 고리의 전형인데, 아무튼, 수혁도 처음 이 교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 좋았더랬다.
‘교수 말고 오빠는 안 되나.’
[그렇게 말을 하세요. 그럼 할걸요.]
‘입이 안 떨어져서 그렇지.’
[그……. 음. 진짜 그러네?]
‘그래, 이게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니까.’
[거참……. 사람이 참 한결같이 모자라네.]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아니, 요새도 당연히 교수라는 말이 좋기는 한데…….
하윤에게서는 다른 말을 듣고 싶었다.
“전에 했던 거에서 더 나아가서……. 일단 사례들을 좀 모아 봤거든?”
“사례요?”
“어, 이미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있거든.”
“아……. 우리나라에서요?”
“아, 아니.”
그러나 속내와는 별개로 대화는 아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혁도 수혁이지만 하윤도 만만치 않게 바쁜 사람 아닌가.
전공의를 지나 펠로우 중이지 않나.
예전에는 전공의가 노예였는데, 이제는 법이 바뀌면서 펠로우가 펠노예가 되어 버렸다.
수혁이 시키는 일뿐만 아니라 이현종이 내리는 일도 해야 하고 거기에 더해 센터로 오는 전공의들 교육도 해야 했다.
물론 센터의 특성상 안대훈과 김성진, 김인수 등을 필두로 한 자체 보수 교육도 있었다.
또 학회 일도 해야 하고, 논문도 써야 하고…….
“우리나라는 규제가 굉장히 촘촘해서 거의 없어.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들 중에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못 하고 외국 가서 하는 경우도 있고……. 아무튼, 그래서 사례 발표에 쓸 것들은 다 외국 거야. 대부분은 북미지.”
“아하……. 역시 미국이군요.”
더럽게 바쁜 사람 둘이 만났으니 일단은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부터 처리하는 게 맞았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또 언제 이런 시간이 날지 알 수가 없었다.
더욱이 학회 발표는 기한이 정해져 있는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근데, 미국 자료에는 내가 접근성이 좀 떨어지는 편이거든. 이게 일반적인 의학 학술지에 실리는 게 아니라 IT 쪽으로 실리는 경우가 많아서. 다행히 최윤섭 박사님이랑 거들다 관련해서 연이 있어. 그분 운동하는 데 도움을 준 적도 있고.”
“운동…… 이요?”
“어, 실제로 보면 디지털 헬스케어가 아니라 그냥 헬스 전문가 같아.”
“아.”
하윤은 어리둥절해하다가,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곧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관장님인가 싶었다.
“아, 최 박사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아, 네. 이수혁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떡 벌어진 어깨에 와이셔츠가 터질 것같이 부풀어 오른 가슴, 뒤까지 꽉 채운 광배까지…….
‘아, 이래서 디지털 헬스케어가 아니라 헬스 전문가 느낌이구나.’
하윤은 잠시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런 사람이 과연 디지털이라는 걸 잘 알려나 하는 걱정도 일었다.
편견이겠지만, 뭔가 디지털이라고 하면 부드러운 느낌이지 않나?
눈앞의 사내는 쇠질에 훨씬 능해 보였다.
아니, 아마 능할 터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몸을 만들 수 없었을 테니.
“마침 미국 사례를 좀 보려고 하고 있었어요.”
“아하. 네, 그게 제 전문이죠. 뭐……. 실제로는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발굴하고 투자하는 게 본업이긴 합니다만.”
“알죠. 제 돈도 들어가 있잖아요.”
“그렇죠. 알차게 불리고 있습니다.”
그사이 수혁과 최윤섭 박사는 짧은 대화를 나누곤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사실 바쁘기로만 따지면 최윤섭 박사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 그랬다.
각종 스타트업에 투자도 하고 있지만, 그에 더해 각 정부 기관을 만나 규제를 완화하거나 혹은 관련 법규를 신설하기 위한 설득, 강연 등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 까다로운 바루다조차 이 인간은 자기의 영역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고 했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일단 지금 미국에서 제일 대세가 되고 있는 건 아무래도 만성 질환 관리입니다. 실제로 만성 질환……. 그중에서도 비만이 문제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나오는 얘기긴 하지만 지금 어린 세대가 산업화 이후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덜 건강하고 수명도 짧아지는 세대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론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으음…….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네. 비만에 대한 문제는 뭐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이게 아무래도 식단과 연관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그래서 디지털 헬스케어에서도 식단 관련한 앱이 가장 각광 받는 편입니다. 제일 혁신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기도 하고요.”
“어떤……?”
그렇게 바쁘게 사는 사람인만큼 짤막한 대화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게 많았다.
일단 대화에서 핵심만 배우는 스킬을 익히고 있는 게 분명했다.
거기에 더해 그 핵심만 말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엑기스 중의 엑기스만 모은 문장들이 지속적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전에는 내가 뭘 먹었는지 일일이 기록을 해야만 했죠? 사실상 식단 일기였습니다.”
“그렇죠.”
“지금은 그냥 먹는 거 사진만 찍으면 앱이 알아서 뭘 먹었는지 분류하고 대강의 칼로리까지 계산해 줍니다.”
“아하.”
“뿐만 아니라, 가끔 친구들하고 놀다 보면 사진도 까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아무래도.”
친구들하고 논다, 라.
수혁은 그 말에 상당한 어색함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언제 그렇게 놀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으니.
[잘 넘어가네? 안 울고?]
바루다도 비아냥거리기보다는 대견해할 정도로 먼 추억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최윤섭 박사는 수혁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로 넘어갔다.
“GPS 연동이 되면 식당에서 머문 시간을 계산해서 15분 이상이 되면 일단 거기서 식사한 것으로 체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나 기록이 없을 시엔 알람이 뜹니다.”
“오호…….”
“그럼 그때 적어 넣거나 또는 그 식당의 메뉴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넣으면 됩니다. 몇 명이서 먹었는지만 넣으면 이 경우에도 자동으로 칼로리를 계산해 줍니다.”
“와……. 그럼 이거 진짜 대단하네요?”
“그렇죠. 생각보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 알게 되는 것만으로 개선의 노력을 하게 되기 마련이거든요. 이게 그냥 생각이 아니라 통계로 입증이 되었습니다. 해당 앱은 현재 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미국의 질병관리본부)의 승인을 받아 정식으로 보험 혜택 대상이 되었어요. 이거 사용한 그룹하고 아닌 그룹하고 당뇨나 고혈압 유병률에서 차이가 나거든요.”
“엄청나군. 우리나라는요?”
“우리나라는……”
최윤섭은 대답을 하다 말고 나지막이 한숨부터 쉬었다.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을 떠올리니 가슴이 답답해지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뿐만은 아니었는지 묘한 얼굴이 되어 수혁과 하윤을 바라보았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게 비단 정부 때문만은 아니거든요.”
“아, 네. 저야 뭐. 환자 못 보게 하는 것만 아니면 다 괜찮습니다.”
“그걸 알아서 드릴 수 있는 말씀이긴 하죠.”
최윤섭은 광활한 자신의 대흉근을 습관적으로 매만지고는 미소를 지었다.
수혁에 대한 미소인지 아니면 대흉근에 대한 만족인지 지금 당장 알기는 어려웠다.
“정부 규제야 뭐……. 한중일 모두 엄청 촘촘한 편이죠. 그중에서도 의료 분야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이 제일 그렇죠. 뭐 스타트업 하려고 하면 우리나라는 일단 법부터 공부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변호사가 창업을 해도 나중에 전혀 모르고 있던 법 때문에 낭패 보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다고 들었어요.”
거들다.
이것도 나중에 들어 보니 태화 법무팀에서 고생깨나 했다고 했다.
필요성과는 별개로 현실적인 어려움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