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68화 (1,168/1,303)

1168화 이게 일이야? (2)

최윤섭 박사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마냥 연구만 해 온 사람이라면 짓기 어려울 만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스타트업을 한다는 건 일종의 투사가 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까.

“근데 이게……. 사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정부만 문제는 아닙니다. 의협도 어려운 상대이기는 매한가지예요.”

“의협…….”

의협.

의사협회.

정식 명칭이 이게 맞는지조차 사실 몰랐다.

아마 자기가 속한 직업군에 협회가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 텐데, 협회가 그들 집단을 정말 대표하는지부터가 의문이지 않던가?

적어도 수혁이나 하윤은 협회가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거기에서 지금 어떠한 것들을 어젠다로 삼고 있는지도 몰랐다.

“사실 북미…… 아니, 유럽도 그렇고 일본. 심지어 중국에서도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건 원격 진료입니다. 뭐, 아무래도 북미 지역이나 중국은 땅덩이가 워낙에 넓다 보니 원격 진료의 필요성이 더 크긴 하죠.”

“그건 그렇죠. 그에 비해 대한민국은 좁기는 하죠.”

“네, 거기에 더해 대한민국은……. 의전원이 실시되기 전까지는 공보의 숫자가 상당해서 지방 보건소 인력 수급 문제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지금은 좀 다르긴 한데, 그렇다 해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썩 괜찮은 편이죠.”

“맞아요. 의료 분야에 있어서는 접근성이 0인 곳은 없죠.”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격 의료를 전면 반대해야 맞는 걸까요?”

최윤섭의 질문에는 뼈가 있었다.

주요 선진국 중 원격 진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 하나뿐이니까.

그나마 코비드 사태를 겪으면서 일부 규제가 풀리긴 했으나 여전히 ‘한시적 허용’이라는 문구가 빠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원격 진료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아니긴 하죠. 분명 필요한 경우가 있긴 하니까요. 사실…….”

“네, 교수님이 각 병원에 해 주시고 계시는 상담 또한 어떻게 보면 원격 진료죠.”

“맞긴 합니다.”

“물론 교수님은 수가를 못 받고 있으니……. 제도적인 인정은 못 받은 셈이지만. 별로 개의치 않으시죠?”

“네. 어려운 케이스 볼 수 있으면 뭐.”

최윤섭 박사는 수혁을 보면서 살짝 감탄했다.

원래도 이런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돈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유명한 사실이니까.

의사가 돈이 아니라 환자 보는 것을 가장 최우선시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봐도 존경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당연한 건 아니다.

본의 아니게 정책과 관련한 일을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정부는 절대로 개인의 도덕심에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것.

모든 것은 경제 논리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최근 나온 바다 오염에 대한 다큐도 결국 그렇지 않던가?

-망가진 어구를 버리는 것이 되찾아 오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이득인 이상, 이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거다.

간단히 결론 내 보면 이렇게 된다.

아무리 바다 오염에 어구가 문제가 되고 그걸 반드시 수거해야 한다고 떠들어도 경제적인 손실을 떠안게 되는 이상 해결될 수 없다.

의료도 마찬가지였다.

수혁과 같이 좀 이상한 사람이 아닌 이상에는 결국, 돈을 벌 수 있어야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태화가 손해를 감수하는 건……. 수혁에 대한 배려만이 아니라 더 멀리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일 거야.’

최윤섭은 간신히 속마음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근데 이에 대해서 무작정 반대를 하고 있어요. 사실 세계적인 추세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원격 진료를 허용하게 되면 그로 인해 발전할 산업과 인프라 때문에 전반적인 디지털 헬스케어도 발전할 거라 기대가 됩니다. 특히 만성 질환에 있어서요.”

“그렇죠. 근데 제가 사실 이쪽으로는 힘이 없어서.”

“알죠, 알죠. 그냥 푸념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아무튼, 이건 이렇게 넘어가고…….”

그 외에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아서 그랬다.

뭐,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는데.

최윤섭은 받은 은혜가 적지 않았다.

‘이수혁 교수님이 알려 주고 나서 무게가 늘었어…….’

운동이랑은 담쌓은 것처럼 생겼는데 운동을 가르칠 수는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딱 보자마자 문제점을 지적해 주고 뭔가 말해 줬는데 그러고 나서 삼 대 470에서 500이 됐다.

삼 대 500…….

언더아머를 입게 해 준 은인에게 뭔들 못 하겠나.

해서 최윤섭은 PTSD 치료, 어지럼증 치료, 메니에르 관리, 고혈압, 당뇨 관리, 경도 우울증 및 번아웃 증후군에 대한 관리 등등에 쓰이고 있거나 혹은 쓰일 가능성이 있는 앱들을 싹 다 소개해 주었다.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앱을 이용해서 썼거나 또는 비슷한 콘셉트의 앱을 이용해서 쓴 논문까지 소개하고 또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설명까지 해 주었다.

“저,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오늘 또 무슨 강의가 있어서요.”

“아하, 네.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하하.”

그러곤 왔을 때처럼 부리나케 사라져 버렸다.

연구실에는 다시 둘만 남았다.

하윤과 수혁.

“음.”

“으음.”

아직 해야 할 일이 좀 남긴 했다.

방금 들었던 걸 싹 정리해서 자료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이러한 것들이 결국, 임상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여긴 이렇게?”

“네. 여기도요.”

“그래, 그래. 좋아.”

“오…….”

다행한 것은 둘 다 논문이나 학회 발표 쪽으로는 도가 트다 못해 프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소스가 없는 상황이라면 그 자료부터 찾아야 해서 시간이 걸렸을 테지만 최윤섭 박사가 이미 한바탕 알려 주고 가지 않았나.

그걸 정리해다가 만드는 것이다 보니 말 그대로 순식간에 이루어져 버렸다.

시간이 남게 되었다, 이 말이었다.

“으음.”

“으음.”

둘 다 이런 시간이 어색했다.

일 중독자가 따로 없을 정도로 바쁜 생활을 해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회진…….’

[돌았죠?]

‘응급실…….’

[확인했죠?]

‘논문…….’

[더 쓰면 미친놈이죠?]

대학 병원에는 이런 말이 있다.

내가 쉬고 있다면 해야 할 일을 빵꾸 내고 있는 것일 확률이 100%다.

미친 소리 아닌가 싶겠지만, 대학 병원은 그만큼 바쁜 곳이었다.

말 그대로 톱니바퀴 돌듯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더 할 게…….’

[없어. 없습니다.]

‘언제까지?’

[오후 회진 돌려면 적어도 오전에 낸 검사 결과들이 다 나와야 할 테니 2시간가량 빕니다.]

허나 수혁처럼 일을 너무 빨리 잘하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시간이 나 버리는 수도 있었다.

‘음……. 할 게 없나?’

하윤도 그랬다.

수혁처럼 괴물이라서는 아니었다.

그냥 통합진료센터라는 곳이 때때로 이렇게 되기에 그랬다.

위에 있는 교수 둘이 다 미친놈들이다 보니 일 남는 꼴을 못 보고 처리해 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그렇다고 해서 펠노예가 펠로우가 되는 법은 없겠지만…….

다른 펠노예보다는 훨씬 나았다.

“음. 산책할까 하는데, 시간 어때?”

영화를 볼까.

밥을 먹을까.

다 기각이었다.

병원에서 나갔다 들어오는 것만으로 시간이 싹 날아가니까.

다행인 것은 태화 의료원은 나름대로 산을 끼고 만들어진 병원인 데다가 환자나 보호자를 위한 산책로를 상당히 잘 만들어 둔 곳이라는 점이었다.

적어도 산책은 가능했다.

물론 수혁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바루다의 조언이 있었다.

“좋죠.”

해서 둘은 산책을 나가게 되었다.

사실 둘이 산책 나가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안대훈이나 김성진이나 이현종이나 누가 되었건 간에 같이 낑겨서 나간 적은 많았다.

그렇게라도 움직여 주지 않으면 몸이 망가지기 마련이고, 몸이 망가지면 결국, 머리도 안 돌아가게 되어서 그랬다.

결국, 환자를 더 잘 보기 위해 움직인다 이 말이었는데.

오늘만은 예외였다.

일단 단둘이 나가는 것도 그랬다.

“음.”

“으음.”

아마 예전 같았으면 둘이서만 나갔어도 말만 잘했을 터였다.

서로가 서로를 이성으로 인지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뭐라고 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워낙 입원 환자가 많은 병원인 만큼 실로 애매한 오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산책로에 사람들이 꽤 있었다.

좀 더 멀리 돌아가는 산책로로 가면 확 줄어들긴 하겠지만 지금은 초입이다 보니 그랬다.

아무튼, 그 많은 사람들이 혼자 나온 게 아닌 이상 죄다 떠들어 대고 있었다.

말 그대로 쉬지 않고.

‘아니, 대체 무슨 말들을 하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아니, 인마! 네가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어떡해?’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보니 그 어떠한 방식의 추론도 불가합니다. 다만 수혁을 위한 충성심을 기반으로 어색한 사이에서 유용한 주제 몇 가지를 유추해 보았습니다.]

‘뭐야, 빨리 말해.’

[날씨, 음식, 취미 등이 있습니다.]

‘와……. 그건 처음 보는 사이에 하는 말 아냐?’

[지금 침묵이 5분 이상 지속되고 있습니다. 사실상 처음 보는 사이보다 못한 친밀도라고 판단됩니다.]

‘그건……. 그렇네.’

이제 막 새로 난 잎도 있고 색이 짙어져 가는 잎도 있고, 그 중간중간 꽃들도 그득했다.

태화 의료원 클라스가 어디 가겠나.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는 게 없었다.

분위기는 최상.

허나 수혁과 하윤은 바루다의 말대로 완전히 겉돌고 있었다.

귀까지 벌게진 채 어색하기 짝이 없는 걸음을 걷고 있다, 이 말이었다.

해서 수혁이 일단 입을 열었다.

“날, 날씨가 참 좋지? 하하.”

[하…….]

바루다조차 한숨을 쉴 만큼 어색한 억양이었다.

“아, 네. 정말 좋네요. 이제 진짜 봄인가 봐요.”

허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실로 불가사의한 법이었다.

상대 꼬시는 법에 대해 인터넷에 물어본 사람들은 다 알 터였다.

저게 된다고?

저것만으로 된다고?

말도 안 되는 새끼들이 너무 많아 보였을 텐데, 실제로 감정이 싹틀 때는 솔직히 말해서 뭘 해도 되는 법이었다.

[뭐야, 이거?]

깡통인 바루다는 이해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꽃, 꽃이 이쁘네. 무슨 꽃 좋아해?”

“음……. 딱히 좋아하는 꽃은 없는데, 그냥 꽃이 있으면 좋긴 해요. 이건 진달래죠?”

“어, 아마?”

[철쭉입니다…….]

서로 무식한 소리 하면서 왜 좋아하지?

세상에 이 나이 먹도록 진달래와 철쭉도 분간 못 하는 게 교수랍시고 거들먹거리고 있었다니.

바루다는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수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달래가 아니라 이거 실은 철쭉이라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이쁘네요. 되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요.”

“나도. 병원 앞에 잔뜩 피어 있는데 왜 그렇지?”

[밖에 안 나가니까.]

“교수님하고 나오니까 좋네요. 뭔가 세상이 달라 보여요.”

“너도? 나도 그래. 원래 세상이 이렇게 이뻤나.”

[인지 기능 장애를 뜻하는 겁니까? MRI 찍어 봐야 하나? 이상하네. 둘이 동시에 그런 장애가 올 리가 없는데?]

대신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뭐…….

완전 자연스럽다고 하기엔, 이 감정에 지배받고 있지 않은 이가 듣기엔 어색하다 못해 거북한 대화였다.

바루다는 얼른 이 자리를 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수혁에게 메여 있으니.

“꽃보다 이쁜 사람이 옆에 있어서 그런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가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봐요.”

[시발.]

바루다는 그게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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