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69화 (1,169/1,303)

1169화 이게 일이야? (3)

“그래?”

“확실한 건가……?”

이러한 수혁의 행보는 당연하게도 최측근인 안대훈과 김성진에게 발각되었다.

발각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늘 붙어 다니다시피 하는 아랫사람이야말로 CCTV보다 정확한 법이니.

신현태나 이현종 둘 다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보편적인 진리로써 이러한 법칙을 터득했다기보다는 그냥 안대훈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었더랬다.

하지만…….

지금 하는 말만큼은 좀 믿기가 어려웠다.

“정말 이게 된다고?”

“야, 너는 네가 제일 난리법석 피워 놓고 그런 반응을 보여?”

수혁이가 진짜로…… 연애를 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다리 하나 빼곤 어디 상한 데도 없고, 인물 멀쩡하고 인성도 이상한 면이 있지만 나쁜 쪽으로 간 건 아니고…….

무엇보다 직업적으로는 아예 독보적으로 훌륭한 놈이긴 했다.

아마 대강대강 아는 놈이었으면 그런 놈이 대체 왜 연애를 못 하냐, 뭔가 다른 심각한 하자라도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을 터였다.

하지만…….

“우리 수혁이잖아.”

“우리 수혁이긴 하지. 으음. 우리 수혁이…….”

이현종은 수혁을 떠올렸다.

정말이지…….

-짐은 의학과 결혼했노라.

딱 보고 있으면 이 말만 떠오르게 만드는 아들이었다.

이현종 본인도 어린 시절 좀 이상하긴 했는데, 그래도 수혁만큼은 아니지 않았나 싶어질 지경이었다.

“바른대로 고하지 못할까?”

소리를 지른 건 이 말도 안 되는 소식에 내내 침묵만 지키고 있던, 최근 카 티 세포 치료 센터 때문에 너무 바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소외당하고 있던 조태진이었다.

아무리 제대로 운동 못 한 지 10년도 넘었다지만 체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닌 데다가 용력 또한 거의 그대로였다.

이현종이나 신현태나 어디 가서 컴플레인할 일이 생기면 괜히 조태진을 부르는 게 아니란 얘기였다.

허나 그의 서슬 퍼런 외침에도 불구하고 안대훈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이상하기로만 따지면 안대훈이 이 중에서 최강이라서 그랬다.

“저는 본 대로 고했습니다. 교수님은 우하윤과 교제 중인 것으로 사료됩니다.”

“허어……. 어찌……. 내가 이걸 어찌 다 놓쳤단 말인가. 카 티 세포……. 이게 다 뭐라고.”

안대훈의 또박또박한 답에 조태진은 그 큰 몸을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카 티 세포 센터를 비난하면서였다.

못해도 수억, 향후 들어갈 돈까지 생각하면 수십억까지도 족히 깨질 센터였다.

‘이 새끼는 그거 승인 안 하면 우리가 아선에 질 거라고 지랄지랄 해 놓고선 저러고 있네.’

그 예산을 승인해 준 신현태로서는 피가 거꾸로 솟을 만한 일이었다.

해서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조태진은 그러한 사실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수혁의 연애 시작을 못 봤다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익히 알고 있긴 했지만, 오늘 봐도 역시 한두 바퀴 돌아 버린 게 아니었다.

“증거…… 증거는?”

이번에 입을 연 것은 이현종이었다.

그의 말에 안대훈은 손을 내밀었고, 뒤에 있던 김성진이 심각한 얼굴로 몇 장의 사진을 건네주었다.

사진엔 수혁과 하윤이 찍혀 있었다.

아마 식당이나 술집이거나 혹은 영화관이었다면 그리 놀라지 않았을 터였다.

“헉.”

거긴 신현태 연애 조작단이 다 안배해서 거의 강제로 끌고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사진의 배경은 푸르른 숲이었다.

“이건……. 내가 한 게 아닌데.”

혹시 몰라 신현태를 돌아봤더니, 곧장 고개를 저어 대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갔다는 얘기였다.

그래 봐야 병원 안에 있는 산책로였지만…….

수혁임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말 그대로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 수혁이가 이렇게 웃을 줄도 아는 놈인가?”

“정말 좋아 보이긴 하네. 진짜 이루어진 것인가…….”

“허어. 나는 뭐 한다고 이런 소중한 장면도 못 보고.”

조태진은 마치 아이 첫걸음마 놓친 아버지라도 빙의한 듯 연신 한탄을 해 대고 있었다.

물론 전반적인 회의 분위기는 밝디밝았다.

좀 갑작스럽긴 하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노리던 바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나.

“이거 말고 더 없나?”

“학회 준비하러 들어가서 음악도 틀으셨습니다.”

“음악을? 우리 수혁이가?”

“네.”

“허……. 사랑 들렸네. 사랑 들렸어!”

이현종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음악이라니.

집중하는 데 하등 도움도 되지 않는 존재 아닌가.

혹자는 쉬거나 공부할 때 들으면 좋다고들 하던데…….

공부에 있어서만큼은 가히 프로를 넘어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현종이 볼 때는 다 개소리였다.

애초에 공부에 집중하게 되면 틀어 놓은 음악 소리도 안 들리는 법이었다.

수혁이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못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악을 틀었다면 그 목적은 하나뿐이었다.

“커피도 직접 내려서 손수 나누어 주셨다고 하고요. 무엇보다…….”

“무엇보다?”

“그날 하루 종일 연구실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합니다.”

“환자를 불러서 본 것도 아닌데?”

“네.”

“안에서 원격으로 환자 본 건 아니고?”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아닙니다.”

“정말 사랑이군.”

수혁과 같은 놈이 단지 다른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웃을 수 있는 놈이던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이었다.

“먹을 거. 먹을 거는?”

그렇게 흐뭇하게 웃고 있으려니 신현태가 끼어들었다.

사실 수혁이 웃을 만한 상황이 하나 더 있어서 그랬다.

하루 종일 먹는 놈은 아니니 딱 맞아떨어지진 않겠지만…….

나름 과학자임을 자처하는 이인만큼 단 하나의 변수도 남겨 두고 싶지 않았다.

“먹을 거……. 놀랍게도 커피뿐입니다.”

“허어. 찐이네.”

“네, 이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현재 이수혁 교수님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놀랍게도 짝사랑도 아닙니다.”

불경하게 놀랍게도 짝사랑이 아니라니.

자타공인 수혁의 수제자라 할 수 있는 안대훈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왜?

정말 놀랍긴 하거든.

저 수혁이 쌍방 간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랑을 하고 있다니.

“으음…….”

다들 웃고 떠드는 가운데, 돌연 이현종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제일 먼저 이를 눈치챈 것은 역시나 신현태였다.

아내 말고는 제일 가까이 지내는 사람 아닌가.

나름 사려 깊은 사람이기도 하고.

“왜? 좋은 거 아냐?”

“좋지. 개인으로만 보면 행복하겠지. 나도 응원해. 하지만…….”

“하지만 뭐?”

“사랑하면서 수혁이가 약해지면 어쩌지? 이전처럼 환자를 열심히 안 보게 되면 어쩌냐고.”

“아……. 음. 그건 또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사실 이전이 좀 비정상 아니었어? 걔도 적당히 지낼 때 됐지.”

“뭔 소리야, 인마. 직함이 교수고 부센터장이라 그렇지. 걔 이제 겨우 32살이야. 남들 같으면 군의관 갔을 나이라고. 마흔까지는 죽어라 달려도 모자라. 어쩌면 우리가 우리 욕심에 인류에 큰 죄를 지었을지도 모르겠는데.”

한 사람의 연애가 인류에 큰 죄라니.

예수님이라도 된다는 건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방 안에 있는 이들에게 수혁은 의학에 있어서는 예수님과 동기 동창급이었다.

방금 전까지 웃고 있던 모두가 이현종처럼 심각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쩌지?”

“그럼 안 되는데.”

“너는 새꺄. 이런 일을 계획할 때 다 예상을 하고 움직였어야지.”

“비난이 나를 향하는 거야?”

“그럼 안 돼?”

“아니, 뭐……. 나도 몰랐지……. 생각이 짧았네.”

급기야는 이 모든 작전을 계획하고 진행했던 신현태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억울했다.

다들 좋아하지 않았나?

이현종이 믿지도 않는 신들을 향해 기도했던 것을, 신현태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소용이 있을까?

실제로 연애 시작하면서 수혁이 흔들린다면…….

‘다시 찢을까?’

조급한 마음에 사이코패스 같은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그때 안대훈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다들 할 말은 있어도 참고 있던 참이었다 보니 순식간에 이목이 그에게로 쏠렸다.

“뭐야.”

“왜.”

신현태와 이현종의 말에 안대훈이 미소 지었다.

신현태의 조급한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보다 더한 자애로움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나마 회의실의 분위기가 조금 따스해졌다.

“어찌 인간의 잣대로 이수혁 교수님을 판단하려 하십니까.”

“아니, 인마 수혁이도 인간이야.”

“허허. 아직도 그런 말씀을……. 뭐, 두고 보면 아시겠죠.”

“뭘 알아.”

안대훈의 입장에서 보면 이현종은 유물론자다.

거의 공산주의자 뺨치는 정도로 무종교인이다 이 말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이 초조함, 걱정…….

‘무릇 인간의 감정이지.’

그에 반해 수혁은 어떠한가.

안대훈이 이런 자료를 대체 왜 모아야 했나.

일상에서는 변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여전히 진료 보는 데 진심이었다.

오히려 하윤이 변했으면 변했지, 수혁이 변할 일은 없어 보였다.

‘수제자를 놓고 경쟁할 만한 사람이 하나 생긴 셈이지.’

안타깝지만 연인 관계를 총애로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훈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심장 부근을 내려다보았다.

지금도 두근거린다.

환자를 향한 열정.

그리고 수혁을 향한 열망.

닮고 싶다는 이…… 순수한 욕망.

이것만큼은 하윤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너 눈이 좀 이상한데.”

“애가 요새 좀 무섭다니까.”

남들은 뭐라 해도 상관없었다.

대훈은 후후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십쇼. 이수혁 교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렇게 희망회로만 돌릴 일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래, 인마. 나도 이 나이에 연애하는 데 좋아 죽겠는데 수혁이는 나보다 호르몬도 더 나올 거 아냐. 아, 이럴 게 아니라 우창윤한테 호르몬을 좀 물어볼까?”

“뭐……. 안티라도 쓰게?”

“필요하다면?”

“히틀러야? 인체 실험해?”

“실험이 아니라, 인마. 이게 다 인류를 위해서.”

“하는 말도 비슷하네. 위버멘쉬냐고…….”

“초인인 것은 맞잖아, 수혁이가.”

신현태는 느꼈다.

이야기가 더 이어졌다가는 국가사회주의로 흘러 들어갈 수도 있겠다고.

하일 이수혁 하는 모습이 불현듯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그런 꼴은…….

적어도 생전에는 보고 싶지 않았다.

억제기들이 다 죽고 난 다음엔 안대훈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지금은 안 될 일이었다.

“아무튼, 대훈이 말에 일리가 있어. 일단 기다려 보자고. 아직 수혁이 연애에 대해서 우리도 몰랐고……. 그 말은 변화가 없었다는 거잖아.”

“음. 그것도 그렇긴 하네. 여전히 환자만 보고 있다, 이건가? 데이트 안 하나……?”

이현종도 사실 새롭게 시작하는 연인이라고 하기엔 데이트가 잦은 건 아니었다.

그도 이기자도 바쁜 몸이니.

하지만 그래도 최소 주에 1번은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설령 단순한 식사뿐일지라도.

“제 생각에 이수혁 교수님의 데이트는…….”

그때 대훈이 말했다.

늘 메고 다니는 돌림판을 내려놓으면서였다.

“이거 아니겠습니까?”

진짜 이상한 말인데, 설득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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