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4화 이현종과 김인수 (1)
-누가 제일 멋있고 존경스럽습니까.
통합진료센터의 누군가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십중팔구는 이수혁이란 말을 듣게 될 터였다.
희대의 천재.
최연소 교수.
최연소 부센터장.
장애의 몸을 딛고 우뚝 선, 말 그대로 희망의 아이콘.
어찌 보면 수혁을 꼽지 않는 인간이 이상해 보일 지경 아닌가?
입 꼭 다물고 수혁의 이름을 논하지 않는 자, 질투의 화신이라고 해도 억울하진 않을 터였다.
‘헷갈린다……. 헷갈려.’
여기, 딱히 질투하는 것도 아닌데 다른 이름을 품게 된 이가 하나 있었다.
김인수.
아마 직계 선배 중에서는 제일 먼저 수혁을 인정하게 된 사람일 터였다.
그의 대단함 때문에, 임용 순서가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만은커녕 오히려 그거 때문에 뭐라 하는 이들에게 가서 해명을 늘어놓을 지경이었다.
헌데 요즘 와서는…….
‘이현종 교수님이 존나 멋있단 말이지.’
수혁에게 급격하게 밀리고 있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종의 멋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사실 수혁이 워낙 빠르게 뭔가 하고 있어서 그렇지, 아직 이현종의 업적에는 발치에도 못 미치지 않은가.
이현종은 그 이름을 전 세계 톱클래스에 올려놓은 인간이었다.
심지어 그때의 대한민국은 지금처럼 알려져 있던 나라도 아니었다.
그저 변방의 소국, 가난한 나라의 한 의학자였던 그가 이만한 업적을 남겼다는 건 어찌 보면 기적이었다.
“아……. 어려운 환자 어디 없나.”
무엇보다 멋진 건 그렇게 대단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지 않나.
석좌 교수라 그렇지, 아니었으면 정년이다.
뭐…….
요새 65세가 예전 같은 느낌이 아니다 보니 대다수의 교수들이 퇴임하고 나서 집에서 쉬는 대신 다른 병원 가서 일하곤 하긴 한다지만…….
잘 들여다보면 골 아픈 업무는 아래 던져 놓고 환자 유인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 절대다수였다.
“아……. 환자 보고 싶다!”
절대 사춘기 고딩처럼 저렇게 안달 나서 외치고 다니진 않는단 얘기였다.
뭐 얼굴이 아주 젊어 보이면 또 모르겠는데, 이현종은 그냥 그 나이 그대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타고난 조건이 우수한 것도 아닌 데다가 관리는커녕 엉망으로 살았다.
그야말로 의학 하나만 보고 살아왔으니까.
그나마 회의나 다른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임의대로 처박아 둘 수 있는 사람이라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사실 지금쯤 늙어 죽었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머리나 몸을 함부로 굴려 왔다.
“안 되겠다.”
이현종은 자신을 보며 속으로 감탄해 마지 않고 있는 김인수를 마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게 사인이라는 걸 이제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았다.
장종우가 부리나케 달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이태원은 전화를 걸었다.
“어, 네. 거기 응급실에 뭐 처치 곤란한 환자 없습니까?”
김인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병원이 어마어마하게 거대하다 보니 응급실도 구역이 여러 개이지 않나.
“없어요? 아, 있어요? 심장? 오, 심장.”
그렇다 보니 스테이션도 두 개였다.
아마 전국 응급실 중에 응급실 인력이 제일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 태화일 터였다.
아무튼, 잭팟은 김인수한테서 터졌다.
심장인데 어려운 환자라니.
암만 이현종이 수혁 때문에 이 환자, 저 환자 다 보고 다니게 되었다곤 해도 근본은 심장이지 않겠나.
내색은 안 해도 심장 쪽 환자를 제일 좋아했다.
자신도 있어 했고.
“잘됐네. 출동하자.”
“네!”
그렇게 이현종은 제자들과 로테이션 근무로 와 있던 레지던트들까지 다 이끌고 응급실로 향했다.
전공의들 중에는 그냥 쉬게 해 주면 안 되나 싶은 녀석들도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일단 끌려갔다.
시간이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닌 데다가 이현종의 직급이 직급이라 그랬다.
태화의 단둘뿐인 석좌 교수…….
거기에 더해 원장 출신.
여기서 대들어?
딱히 부당한 일도 아니고, 환자 보러 가는 건데?
물론 환자가 이쪽 환자가 아니긴 하지만, 목숨이 여러 개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르르.
의사 가운 걸친 이들이 열 명 가까이 응급실로 들이닥쳤다.
제아무리 의사가 돌멩이만큼 많은 병원이라지만, 이만한 양의 의사가 한 번에 오는 건 드문 일이었다.
더군다나 선두에 선 이는 이현종.
불세출의 기인이자…… 가끔 깡패 짓도 하는 사람.
“환자 어딨어.”
“네?”
지금도 봐라.
대뜸 레지던트 붙잡고 물어보는 꼴이 영락없는 깡패 아닌가.
“어려운 환자 있다며.”
“아, 아아.”
다행인 것은 이현종이 이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보니 다들 익숙해졌다는 점이었다.
아까 전화 오자마자 급하게 상황을 공유한 덕에 레지던트는 지나치게 놀라는 대신 이현종을 안쪽으로 보낼 수 있었다.
“좋아.”
가 보니 웬 젊은 환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흐……. 으…….”
대학 병원 기준으로 보면 새파랗게 어린 친구였다.
헌데 떡하니 침대를 받았다.
밑에 붙여진 것을 보니 20살.
‘확실히 심장이군.’
역시 응급실에서 VIP 대우받으려면 심장 부여잡고 오라는 말이 여기서도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먼저 온 순서도 아니고, 나이 순서도 아니다.
곧 죽을 거 같은 순서가 제일 중요했다.
진료 보는 입장에서는 부러울 수도 있을 텐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 응급실에서만큼은 찬밥 신세가 좋다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거다.
“어, 환자분. 안녕하세요.”
아무튼, 이현종은 환자 앞에 가 섰다.
이현종도 만만찮게 유명한 사람이긴 했다.
아마 학계에서의 위명은 국내고 국제고 간에 수혁보다 훨씬 우위일 터였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방송에 적합한 얼굴도 아닌 데다가 언행도 오히려 방송 타면 환자가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보니 홍보는 안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환자와 보호자의 얼굴은 확 밝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현종 나이를 미루어 보건대 명의 같아 보이니까.
“아, 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죠?”
더욱이 응급실이라는 걸 감안해 보면 더더욱 특별한 일이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이현종급이 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
대부분 레지던트 선에서 진료가 완료되기 마련이었다.
좀 높다 싶으면 펠로우.
정말 높으면 주니어 스텝이다.
“아, 얘가.”
한층 밝아진 얼굴로 말을 받은 것은 어머니 쪽이었다.
“갑자기 숨이 찬다고 하고 막 심장도 뛴다고 해서요. 동네 내과 갔더니 빨리 큰 병원 가 보라고 해서…….”
“흐음. 거기서 뭐 했는데요?”
“심전도? 여기 막 뭐 붙이고 찍었어요.”
“아하. 여기서는?”
“지금 막 와서요. 거기 내과 원장님이 여기 출신이라고 전화해 줘서 빨리 들어왔어요.”
“아, 그렇군요.”
원래 태화 응급실이라는 곳은 지인 전화가 온다고 해서 뚫리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심장은 얘기가 좀 다르긴 했다.
특히 심장내과 전문의가 심장 문제라고 했으면 더더욱 그러했다.
드르륵.
그러한 점을 입증이라도 하겠다는 듯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인턴이랑 같이 심전도 기기를 끌고 달려왔다.
아마 환자가 오자마자 달려갔었을 터였다.
“어, 그래. 잘 왔네. 찍어 봐. 거기선 뭐라고 했어?”
“심근경색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경색……?”
“네.”
“흐음.”
경색이라.
경색…….
말 그대로 심장으로 들어가는 혈액이 멎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 어떻게 되나?
당연히 죽는다.
심장이 멈출 테니까.
‘그 전에 엄청 아프지.’
지식뿐만 아니라 경험적으로도 이현종은 심장에 대해 아는 것이 아주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환자가 어찌 되는지도 보면 알았다.
헌데 지금 이 환자는 일반적인 경색하고는 좀 차이가 있었다.
우선 너무 젊고, 체형도 좋은 데다가 통증보다는 오히려 다른 증상이 있어 보였다.
‘뭐, 그렇다고 해서 경색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
아무튼, 경색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당연하게도 김인수는 일단 심혈관 중재실 번호를 띄워 놓고 있었다.
이상하면 바로 연락해서 뚫어야겠단 생각에서였다.
뽁.
뽁.
그렇게 수많은 내과 의사들이 지켜보게 된 가운데, 응급실 인턴과 레지던트는 서둘러 심전도 기기를 환자의 몸에 부착했다.
‘아까 이수혁 교수님은 와서 꽝이네 어쩌네 하고 돌림판 꺼내 돌리더니 소화기내과로 달려가셨지? 아니, 응급실이 무슨 놀이터냐.’
레지던트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주 잠시뿐이었다.
‘어…… 잇……. 시발, 진짜 경색이야?’
심전도 기기는 출력 버튼을 누르면 종이로 출력이 되면서 동시에 기기가 아주 기초적인 판독까지 해 주는 기기였다.
대개 거기까지 보고 정하는 경우가 많았고.
하지만 아주 확연하게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에는 그냥 붙여 놓고 화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D1, aVL, V1-3 다…… ST 상승이야. STEMI 가능성이 높아! 빨리 연락해!”
응급실 레지던트도 그러할진대 사실상 평생 심장만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현종에게는 어떻겠나.
“네!”
바로 보였다.
미심쩍은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말 경색일까?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닌 거 같은데? 하고 버티기엔 심장은 너무 치명적인 장기였다.
한순간의 망설임이 사망으로 바로 연결이 될 수 있었다.
“일단 전화하면서 달려!”
“네!”
김인수는 전화를 걸고, 이현종은 나머지 제자 그리고 전공의들과 함께 환자 침대를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우두두두 소리를 내면서였다.
“어어!”
환자 보호자인 어머니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뭐라 설명해야 할지 어려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보통 병원에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설명부터 해 준다고 하지 않던가?
진짜 그랬다.
보통은.
하지만 설명하다가 환자가 죽는 상황에서는 예외였다.
“서, 선생님. 저, 저 어떻게……?”
“일단 가만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어…….”
“가만히 있어!”
환자에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너무 젊지 않나.
뭐 죽음이라는 게 다 안타깝긴 하지만…….
젊은 사람의 죽음은 유독 더 안타까운 법이었다.
늦어지는 것도 안 되고, 또 흥분해서 심장이 더 빨리 뛰느라 죽어 나가는 것도 안 될 일이었다.
“어, 교수님!”
“어어. 어디야.”
“3번입니다!”
“준비는?”
“제가 들어갑니다!”
“오케이, 좋아.”
빈 곳으로 바로 들어갔다.
이현종은 바로 수술 가운을 걸치고 납복을 걸친 후, 시술에 들어갔다.
그거 걸치고 하면서 대강의 설명을 진행했다.
요약하면 심혈관이 막혀서 심근이 죽어 가는 것이 의심이 된다, 뭐 이런 얘기였다.
당연하지만 이제 막 20살 된 환자의 얼굴이 창백해질 만한 설명이었다.
“아…….”
“조용. 살려 줄 테니까.”
“으…….”
그에 비해 이현종은 아주 믿음직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환자도 밖에 서 있던 어머니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폭.
이현종은 얼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 실력도 너무 좋았기 때문에 순식간에 허벅동맥을 뚫고 환자 심장으로 접근했다.
그러곤 조영술을 진행했다.
“어?”
나머지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이현종만 쯧 하고 혀를 찼다.
‘역시 혈관은 멀쩡하군…….’
물론 침착하게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 어!”
“심정지! 시발! CPR! CPR 팀 불러!”
심장이 멈췄다.
이현종은 단말마의 비명처럼 명령을 내린 후 환자 위에 올라타 흉부 압박부터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