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76화 (1,176/1,303)

1176화 이현종과 김인수 (3)

“투석 돌리고, 수액 줘. 급성 중독이니까 금방 좋아질 거야.”

“어……. 네. 근데 이게…….”

“뭐, 드문 일이지. 하지만 생길 수 있는 일이야.”

이현종의 명에 의해 환자 치료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사실 이현종은 이제 통합진료센터 의사이지 않나.

심장내과 소속은 아니라는 얘기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일인데, 아무튼, 심장내과 측에서도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그렇구나…….’

‘와……. 존나 신기하네.’

‘근데 교수님은 이걸 어떻게 잡은 거지?’

‘몰라……. 공부를 쉬질 않으시잖아. 진짜 대단하시다니까.’

감히 이현종을 돕겠답시고 우르르 오긴 왔는데…….

도움이 되겠나?

이게 대체 뭔가 하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벌써 질병 특정해서 처방까지 싹 다 내린 후였다.

듣고 나서도 사실 이게 정말인가 싶을 정도로 급작스러운 추론이었다.

물론 각 검사에서 독소 양성 반응이 나왔기 떄문에, 또 다른 질환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타당한 추론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무엇보다 상대가 이현종이다 보니 뭐 별다른 생각이 더 들거나 하지도 않았다.

“보호자분은 좀 어떠세요?”

“우울하지, 뭐.”

“하긴…… 자책하고 계시겠네.”

“이대로 영영 잘못되면 그렇겠지만 그럴 병은 아냐. 이건 돌아와.”

이현종은 밖에서 뒤늦게 온 남편과 함께 부둥켜안고 있는 보호자를 떠올렸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덩달아 울 뻔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새는 갱년기라 그런가 눈물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그랬다.

아무튼, 이현종은 심장의 스페셜리스트인 만큼 심장에 대해서는 기승전결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은 강한 장기야. 가장 강한 장기지.’

심장내과 출신이라 뽕이 너무 찬 거 아니냔 말이 나올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것을 뭐 어쩌겠나.

심장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쿵쿵 뛰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뛰는 장기다.

단 한 번도 쉬지 못하고 계속 뛰는데, 그렇기에 탄성력도 좋았다.

뭐……. 너무 심하게 망가지고 나면 안 돌아오기도 하지만 환자는 아주 젊지 않은가.

의학에 있어서만큼은 정말로 나이가 깡패라는 걸 의사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술 때문에 심부전증 왔던 환자들도 젊은 경우엔 멀쩡히 돌아온다는 걸, 이현종은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당장 어떻게 될 위험은 없어. 뭐…… 늦지 않게 처리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응급실에서 죽었겠지만.”

“네, 그건 정말 맞습니다. 교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그런 이현종의 말에 김인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부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뭐라고 해야 하지, 이런 걸.’

수혁도 천재다.

이현종도 천재고.

허나 굳이 따지자면 좀 다른 종류의 천재다.

수혁은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종류의 무언가라면 이현종은 그래도 언젠가는……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해야 할까?

뭐 이런 얘기를 이현종이 듣는다면 어이가 없어서 웃어 버리겠지만, 아무튼.

‘경험? 그래, 경험까지 재능처럼 사용한 사람이야. 이런 사람처럼 되고 싶다, 나도 언젠가는.’

김인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사이 이현종은 재차 환자를 돌아보았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크모는 아마 내일? 늦어도 모레 정도면 뗄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젊은 몸이라는 건 생각보다도 더 강력하기 떄문이었다.

스스로 나을 수 있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리고 그 시간은 이현종이 에크모라는 기적의 물건을 이용해 벌어다 주었으니, 뭐 알아서 나을 거라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몇 시지?”

“11시입니다.”

“1시간 반밖에 안 지났네?”

“네. 워낙 급하게 움지이긴 했는데…… 막상 시간이 많이 지나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앉아 있다 보니 어쩐지 체력이 남아도는 기분이었다.

해서 왜 그런고 하고 물어보니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수혁이랑 점심 약속이 있는데 하필 늦은 점심이라 1시다.

그 전까지는 할 게 없다, 이 말이었다.

뭘 한다.

이현종은 양 손가락을 툭툭 부딪치면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김인수가 장종우에게 신호를 보냈다.

장종우는 부리나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이게 뭐야?”

그가 꺼낸 것은 돌림판이었다.

젊은 수혁의 것과는 생김새가 많이 달랐다.

고풍스러운 원목 느낌의 돌림판이었다.

심지어 돌아가는 바늘은 골프채 모양이었고, 각 테두리의 장식품은 골프공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여러모로 이현종의 취향을 저격한 물건이다, 이 말이었다.

“허어. 이거…… 너희들…….”

이현종은 감개무량한 마음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는 여태 좋은 제자였던 적은 별로 없었어도 좋은 선배, 좋은 스승으로 살아온 사람이지 않은가.

김영란법이 사라지기 전에는 정말 귀한 선물들도 많이 받았다.

뭐 그중에서 좀 선 넘는다 싶은 것들, 그러니까 다른 병원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차 선물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쳐 냈지만 골프채 같은 건 숱하게 받았다.

그것도 심지어 커스텀 채들로.

원래도 좋은 채인데 그걸 이현종 샷에 맞춰서 커스터마이징해 둔 채……

그걸 받았을 때 얼마나 신났던지 주말에 72홀 돌고 갈비뼈 부러져서 반 입원 상태로 지내야만 했었다.

“이게 내가 받았던 것 중에 제일 마음에 든다!”

그 제자에겐 미안하지만……

돌림판이 최고였다.

세상에…….

나이 드니까 골프도 힘들어서 이전만큼 정력적으로는 못 치고 있지 않은가.

그나마 이기자 교수가 골프를 뒤늦게 배워서 망정이지, 그거 아니었으면 아마 채도 다 팔아 치웠을 거다.

허나 이 돌림판은……

내과 의사를 못 할 정도가 되지 않는 이상에는 영영 쓸 수 있을 거 같았다.

“돌려 볼까요?”

“그래. 그래! 빨리! 이거 어떻게…… 아니, 설마?”

“네, 충전해서 이렇게 돌릴 수 있습니다.”

“허어……. 미쳤구만. 충전이라니.”

김인수는 고작해야 이 정도 돌림판에 기뻐하는 스승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센터에 설치 중인 거 보시면 깜짝 놀라시겠네.’

돌림판.

실로 안대훈의 역작이라 할 수 있었다.

통합진료센터의 진료에 미친 교수들을 저격하는 작품.

다른 돌림판들이 아무리 나와도 그건 결국 아류작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래선 안 돼. 안대훈 선생이 훌륭한 제자라는 걸 부정하는 건 아냐. 하지만…… 우리도 좋은 제자다. 존경하고 닮고 싶은 마음 하나는 지지 않아! 세월 하나만 밀릴 뿐이야!

김성진이 그러한 사실을 꼬집으면서 울부짖었다.

너무 맞는 말이라 김인수 또한 그만 울고 말았다.

세월.

그놈의 세월이 뭐라고 이렇게 밀린단 말인가.

김인수도 몇 년만 더 늦게 의대에 들어왔다면, 그랬더라면 자연히 안대훈보다 더 열성적인 팬이 되었을 거라고 자신했다.

-이걸 만회하기 위해서 내가 생각해 놓은 게 있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약간 눈알이 이리저리 돌아간 상태의 김성진이 설계도를 보여 주었다.

상당히 거대했다.

절대……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물건이라는 걸 딱 그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다트였다.

-운동도 하시고, 진료도 하시고. 얼마나 좋냐.

다트…….

이게 만만해 보여도 한 30분 이상 하면 나름 땀이 난다.

스승의 건강까지 생각하는 제자들이라니.

이거야 원.

“옳지. 어디냐, 어디냐!”

제자들이 이렇게 속 깊은 생각을 하는 동안 예순을 훌쩍 넘긴 이현종은 마치 강원랜드에서 룰렛이라도 돌리는 사람처럼 눈이 벌게져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기계를 하도 잘 만들어서 그런가, 바늘이 멈출 듯 말 듯 하면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띡띡띡 소리를 내다가 비로소 멈춘 곳은 감염내과였다.

신현태의 고향이면서 동시에 장덕수가 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과.

제일 친한 놈이 속한 과다 보니 이런저런 루트로 주워들은 것도 많거니와 도움도 주고받은 게 아주 많다 보니 뭐 아는 게 많을 수밖에 없었다.

“좋아.”

동시에 통합진료센터에서도 주로 보는 질환이 감염병이기도 하지 않은가.

이현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겸사겸사 신현태가 놓친 질환이라도 잡게 되면?

‘흐흐.’

수혁이 주로 잘난 척하는 데 있어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현종은 다른 사람 놀릴 때 가장 큰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었다.

그중에서도 신현태나 우창윤이 타격감이 좋다 보니 주 타겟이 되는 편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김인수 또한 이 양반이 왜 웃는지 알아차렸다.

불쌍한 원장 같으니.

그러니까 왜 여태 스스로의 힘으로 NEJM을 쓰지 못했단 말인가.

그거라도 하나 어거지로 했으면 지금쯤 어?

더 당당할 수 있었을 텐데.

“가자!”

“네!”

아무튼, 일행은 곧 감염내과로 향했다.

분위기는 늘 그렇듯 그리 좋지만은 못했다.

그나마 통합진료센터가 생겨서 훨씬 덜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감염내과로 몰리는 괴질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열이 나?

이유를 모르겠어?

근데 우리 과 이유는 아닌 거 같아?

그럼 감염내과다.

보통 이러한 시퀀스를 통한 협진 의뢰가 많았고, 감염내과에서도 이건 아닌데요? 라고 확답할 수 있는 케이스가 많은 건 아니다 보니 대충 다 받기 마련이었다.

“흐음. 열 냄새…….”

이현종은 스테이션 가운데 서서 숨을 들이쉬었다.

고름 냄새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썩어들어 가는 냄새라고 해야 할진 모르겠는데 참으로 좋지 못한 냄새가 폐로 들어왔다.

보통 이렇게 되면 인상을 써야 하겠지만, 이현종은 오히려 웃었다.

후후.

이 중에 불명열 하나 없겠나?

반드시 있을 거다.

감염병이야말로 인류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유서 깊은 병이고, 그렇기에 오히려 가장 어려운 병이니까.

“이쪽이 느낌이 좋군.”

“그럼 뫼시겠습니다.”

감염내과 스테이션에 있던 간호사들은 제멋대로 몰려와서 역시나 제멋대로 발길을 옮기고 있는 통합진료센터 새끼들을 보면서도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기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신현태도 포기해 버린 놈들 아닌가.

장덕수?

그는……

안됐지만 힘이 너무 없었다.

사람 착하지, 나이도 직급도 아래지, 심지어 실제로 도움받은 적도 많다 보니 뭐 무주공산이었다.

그저 자연스레 레지던트 하나랑 간호사 하나가 따라붙을 뿐이었다.

그냥 두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않겠나.

사고까지 치게 만들면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상대가 석좌 교수인데 사고를 떠올린다는 게 어찌 보면 좀 불경스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태화에서는 석좌 교수들이 제일 사고 치기 적합한 존재들이니까.

‘김승규보다는 낫지…….’

간호사는 김승규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몸서리를 쳤다.

그런 사람이 함부로 남의 과 와서 들쑤시고 다닌단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사표가 내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그래, 그에 비하면 이현종은 양반이다.

“으음…….”

이현종은 병실 문 틈새로 환자 침대마다 붙어 있는 진단명을 매의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김승규였으면 문 부수고 들어가서 여기서 제일 아픈 사람 누구냐고 하지 않았을까?

휴.

훨씬 낫다, 그것보다는.

“어? 불명열이다.”

아무튼, 이현종의 예상대로 아직 진단이 안 된, 그러니까 원인 불명의 발열 환자가 당연하게도 있었다.

문이 열리고 그에게로 이현종 일행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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