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7화 불명열 (1)
“아…….”
뒤따르던 감염내과 측 레지던트가 탄식했다.
신현태는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원장이지 않나.
원장은 바쁜 몸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환자를 줄이기 마련이었다.
신현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태화 의료원쯤 되는 병원에서 감염내과 인원이 비게 해 둘 수는 없다 보니 신임 교수까지 뽑아서 굴러가고 있었다.
‘왜 하필 신현태 교수님…….’
지인이라고 했지.
그래서 받았다.
지금 60명가량 되는 환자 중에 신현태 환자라고는 딱 둘인데 그중 하나가 지금 이현종이 다가가고 있는 환자다.
‘우리 신 교수님…….’
원장이라서 아부 떠는 게 아니라 진짜 신현태만큼 훌륭한 교수가 또 있겠나.
인격적으로도 그렇고 실력도 뭐……
NEJM에 못 낸 것은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뭐……
어?
꼭 높은 데 논문을 내야 실력이 좋은 건가?
아니다.
아니야.
신 교수님은 진짜…….
“안녕하십니까. 통합진료센터 센터장 이현종입니다.”
“어…… 네. 네?”
“아, 하하. 어려운 환자들은 저희가 다 보거든요. 아직 진단이 안 되셨죠?”
“아, 아뇨. 저 불명열이라고…….”
레지던트가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일단 이현종은 뚜벅뚜벅 걸어 환자에게 가 이미 말을 걸고 있었다.
환자는 52세 남자인데 그 나이대 아저씨 같지 않게 꽤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다.
신현태 지인이라고 해서 알아봤더니 평생 험한 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는 했다.
직업 탓이 아니라 그저 집안 덕이었다.
상속이라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었다.
“불명열은 진단명이…… 뭐 진단명이긴 한데. 이름 자체가 원인 불명의 열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러니 원인은 모른다는 뜻이죠.”
“아……. 그렇군요. 어쩐지 앞으로 검사를 계속 받아야 된다고 해서 의아해하던 참입니다.”
“뭐…… 그 검사를 좀 줄여 볼 수도 있죠.”
이현종의 말에 따라 뒤에 있던 이태원이 병실 한편에 놓여 있던 의자를 들고 왔다.
여러 용도로 쓰이는 의자였다.
대개는 보호자 식사 시에 식탁으로 쓰이는데, 실은 이렇게 회진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을 때 쓰라고 둔 것이었다.
하여간 이현종은 아주 자연스레 앉고는 물었다.
“열이 나셔서 오신 거죠?”
“아, 네. 열이 자꾸 나서요.”
“언제부터요?”
“그게, 한 한 달?”
“한 달 전부터? 그럼 그사이에 다른 병원은 가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문답이 이어지는 동안 김인수는 원내용 패드에 환자 기록을 띄워서 이현종에게 건네주었다.
내과는 원래 환자 기록을 아주 꼼꼼히 기록하는 과 아닌가.
거기에 더해 신현태도 꼼꼼한 사람이다 보니 상당히 기록이 촘촘했다.
‘한 달 내내 열이 난 것은 아니로군…… 드문드문 났어. 그렇다고 해서 주기성을 띠지는 않아.’
원래 증상은 그 정도와 시기 그리고 빈도가 아주 중요한 법이었다.
열은 그중에서도 더 그랬다.
딱 이것만 봐도 진단명이 나올 때가 있어서 그랬다.
문제가 있다면 신현태가…….
사실 이현종 앞에서나 우습게 보이지, 실상은 굉장히 뛰어난 의사라는 점이었다.
이현종이 딱 보고 떠올릴 수 있을 만한 건 이미 신현태가 감별해 놨다.
‘하긴 말라리아면 좀 그렇지?’
이현종은 이거 몰라서 진단 안 붙여 놨으면 때려죽이려 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진짜로 말라리아 하나 몰랐다면 누굴 혼낼 생각이 들기 전에 병원 걱정부터 들 것 같았다.
세상에 이만한 규모의 병원에서 말라리아 하나 진단을 못 해서 불명열로 해?
지정의를 보니까 신현태인데, 만약 그랬다면 치매 검사부터 시켜야 했다.
그 지경이면 놀리지도 못한다.
이제 슬슬 우창윤 교수도 머리로 못 놀리게 되어 가고 있지 않나?
머리가 하나도 없는데 대머리라고 놀리는 것만큼 인간성 결여를 증명하는 일도 없었다.
“아, 갔죠. 갔는데 동네 병원에서는 일단 진통소염제 주면서 3일 지켜보자 뭐 이런 소리만 해서요.”
“약을 드시긴 했어요?”
“네? 아, 네. 근데…… 그래도 열이 아예 안 나지는 않았어요. 병원에서는 약 먹었으면 열이 나진 않았을 거고 열감만 있었을 거라는데…… 제가 뭐 바봅니까. 느낌만으로 말하게. 재 봤죠, 집에서. 38도 이상 나온 날도 있었어요.”
“그렇군요.”
약을 먹었는데 단순 열감이 아니라 열이 났다?
그 말은 곧 열의 원인이 꽤 강력한 놈이란 것을 의미한다는 뜻이었다.
뭘까?
“그러다 여기 오신 거군요. 열 말고 다른 증상은 없었습니까?”
이현종은 신현태가 이미 적어 놓은 기침 말고 또 뭐 다른 게 있나 해서 물었다.
괜한 짓은 아니었다.
원래 의학적인 질문은 완전히 똑같은 것이라 해도 여러 번 묻다 보면 다른 답이 나오게 마련이라 그랬다.
“기침이랑…… 그때 좀 숨이 찼어요.”
“지금은요?”
“지금도…… 딱히 달라진 건 없습니다.”
약이 뭐가 들어가고 있지.
하고 보니 너무 세게 쓰고 있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뭐 약하게 쓰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상은 비슷하다는 말이었다.
별로 좋은 일은 아니었다.
‘결핵……? 아냐. 결핵도 못 잡을 리가 없어.’
미국 놈들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긴 했다.
주요 선진국에서 결핵 환자를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대한민국도 잠시 그랬던 적이 있지만, 중국에서 몰려오는 이민자, 노동자들과 탈북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다시 결핵 환자가 늘기 시작했다.
뭐 줄어들던 때라고 해서 거의 없는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의사들은 다른 선진국 의사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결핵을 많이 보고 또 잘 보는 편이라 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엑스레이는 깨끗했다.
혈액검사 결과도 그랬다.
‘많이도 긁었네. 필사적이야, 아주?’
말라리아, 뎅기, 렙토스피라, 결핵 다 긁었고, 다 꽝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HIV(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 B형 간염, C형 간염, 항핵 항체 등도 다 음성이었다.
‘엑스레이도 깨끗했고…….’
흠.
하나도 걸리는 게 없다, 이 말이었다.
약간 당황스러웠다.
뭐 신현태가 불명열이라 해 놨으니 쉬울 리는 없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아예 모르겠잖아, 이거.
“그렇군요. 기침과 숨 찬 증세라, 흠.”
물론 겉으로 보기엔 전혀 뭘 모르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이현종은 여전히 차분해 보였다.
아니, 흠 할 때는 위엄마저 느껴졌다.
때문에 김인수조차도 역시 교수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지경이었다.
다만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뭐야?’
혹시 몰라 CT를 실행해 봤다.
뭐 설마 CT에서는 뭐가 보여야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신현태도 해 봤을 터였다.
결핵 같은 건 엑스레이에서 잘 안 보일 때도 있으니 당연한 소리였다.
뭐 그렇다고 냅다 조영제 푹 넣고 찍지는 않았다.
다만 고해상도 흉부 CT(HRCT)를 찍었을 따름이었다.
뭐가 보이진 않았다.
‘하긴 그랬으면 뭐라도 적어 놨겠지.’
정리하자면 환자는 한 달 전부터 열이 났다 안 났다를 반복했다.
3일마다 또는 4일마다 열이 났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라리아로 갔을 텐데……
그건 아니지 않나?
대신 기침과 호흡곤란은 그럴싸한 증상이었다.
다만 다른 검사에서 다 꽝이 나와 버렸다.
특히 기침이나 호흡곤란이 있는데 폐가 너무 깨끗하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아니, 단순 기침만 있는 것도 아니고 호흡곤란까지 있는데 폐가 깨끗해?
이건 좀.
‘아, 아?’
그러던 이현종에게 무언가 작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기침이 있다고 무조건 폐의 질환이던가?
호흡곤란이 있다고 무조건 폐의 질환이던가?
아니다.
특히 호흡곤란은 폐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었다.
이현종의 전공 과목인 심장 때문에 숨찬 증세가 발생할 때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얘들아.”
출구가 보인다.
밖에 진짜 답이 있을지 아니면 그냥 그럴싸했을 뿐인 가짜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하여간, 뭐라도 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심지어 심장이다.
그 순간 이현종은 마치 요람에 누운 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네.”
그리고 스승의 편안함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뿐만 아니라 뒤따라왔을 뿐인 간호사나 레지던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미친 노교수가 또 한 건 올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실제로 이현종은 이들의 기대에 부응할 생각뿐이었다.
“심장 초음파 해 보자. 연락해 봐.”
“아, 네!”
심장?
여기서 갑자기?
물론 이 얘기가 나오자마자 살짝 기대감이 줄긴 했다.
정도에 차이가 있긴 했는데, 레지던트는 아예 팍 식었을 지경이었다.
결국, 심장무새였나 싶기도 했다.
자기가 전공이라고 어?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한 달간 열나고, 체중도 좀 줄었고, 기침에 호흡곤란까지 있던 사람한테 심장 초음파는 갑자기 왜 한단 말인가.
‘입 닥치고 있자, 일단은…….’
뭐 그래도 레지던트는 사회생활 하는 사람이다 보니 조용히 있었다.
TV에 나오는 MZ 세대처럼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게 어디 말이나 될 법한 소리란 말인가.
따지고 보면 자신이야말로 MZ 세대인데, 대체 어느 MZ 세대가 윗사람들한테 따박따박 개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교수님, 지금 이현종 교수님이 환자분 보고 계십니다. 심장 초음파까지 하시겠다고 합니다.
이것 봐라.
지금도 어?
다른 보는 눈이 엄청나게 많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프락치 짓을 하고 있지 않나.
아니, 따지고 보면 프락치는 이놈들이었다.
남의 병동까지 쳐들어와서 말이야……
그것도 원장님 환자를 노티도 없이 막 본다.
뭐 원장님이야…….
-어, 보라고 해. 근데 더 비싼 거 하려고 하면 전화는 달라고 하고. 나 회의 끝나면 갈게.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사람이 착한 것도 정도가 있지,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걸까.
레지던트는 휴 하고 한숨을 쉬었고, 그사이 심장 초음파가 드륵 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병원이 워낙에 좋은 병원인 데다가 이현종이 뭔가 사 달라고 할 때는 평소보다도 더 지랄발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보니 심장 초음파가 각 건물마다 있었다.
실제로 그 후로 생존율이 올라갔다는 보고가 있다는 걸로 막대한 비용을 대강 퉁치고 있었다.
그 돈이면 다른 뭔가 더 소중한 것을 살 수도 있었을 거란 다른 과의 의견에는 애써 귀를 막고 있었다.
“이거 뭐 그냥 대기만 하는 겁니다. 아픈 건 없을 거예요.”
“네. 알아요. 복부는 해 봤어요.”
“아, 검진에서요?”
“네.”
‘그럼 뭐 편안하겠네. 자아……. 보겠습니다.”
이현종은 심장 초음파를 집어 들고는 환자의 가슴팍에 대었다.
아주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레지던트 또한 딱히 불만을 표하지 못했을 지경이었다.
‘심내막염? 그거냐?’
아무튼, 이현종은 머릿속에 질환 하나를 품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또 당황하겠지만…….
그럴 것 같진 않았다.
딱 초음파 프로브를 갖다 대기 전까지만 해도 거의 확신하고 있었더랬다.
하지만 화면에 뜬 환자의 심장은 이현종의 기대와도,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뒤에 있던 장종우의 입에서 이런 멍청한 소리가 흘러나올 정도로 의외의 모습이었다.
“이, 이게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