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78화 (1,178/1,303)

1178화 불명열 (2)

‘이게 뭐지.’

장종우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저 입 밖에 낸 것이 그밖에 없었을 뿐, 나머지도 모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원래 하고 있던 생각을 말로 풀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쪽으로 이목이 쏠리는 법 아니겠나.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두의 눈이 장종우를 향했다.

이현종도 잠시 그랬지만, 그는 정말 순식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뭐야, 이게?’

당황스러웠다.

말 그대로 이게 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랬다.

하지만 이현종…….

그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벌써 수십 년간 태화 의료원이라고 하는 거대 조직의 중심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아무리 예상외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들 금세 안정을 취할 수 있다 이 말이었다.

‘다행히 다들 장종우만 보고 있어. 내가 놀랐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모른다.’

안대훈, 이수혁.

그 두 괴물 같은 녀석이라면야 어떻게든 알아차리긴 했을 터였다.

그렇지만 지금 여기 있는 놈들은 아무래도 좀 딸리는 놈들.

‘그래, 그렇지.’

안심한 이현종은 미세하게 떨리던 손까지 안정시킨 후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능숙한 손길로 프로브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황한 이래 지금까지 흐른 시간은 불과 2초 남짓.

안 그래도 장종우 때문에 정신이 쏠려 있던 나머지 인물들로서는 도저히 이현종의 당황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더구나 이현종이 이제 막 입까지 열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자, 여기 보면 심장 벽 쪽으로…… 심낭 삼출액이 있어. 양이 적지가 않지.”

“아……. 네. 삼출액. 그렇구나. 네.”

놀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침착한 톤의 목소리로 이현종은 말을 이어 나갔다.

“이걸 보면서 환자의 증상을 다시 보자고. 환자는 1달 전부터 열이 있었다고 했지. 지속적으로 열이 난 것은 아니고 왔다 갔다 한 것으로 보이고. 다른 병원에 내원하여 검사도 했다고 했어. 뭐 그래 봐야 신체 검진이겠지만…… 아무튼, 대부분 전문의가 진료하는 병원이었을 거야.”

어느새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정보들을 하나의 목적을 위해 묶어 둔 후였다.

이현종이 아무리 우스워 보일 때가 있다지만…….

근본은 천재 아닌가?

그냥 천재도 아니다.

바루다가 없이도 때에 따라서는 혹시 몰래 칩 박아 넣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천재였다.

게다가 그 재능을 썩히는 일 없이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끊임없이 수련까지 해 왔다.

“그러니 어지간한 소견은 놓치지 않았을 거야. 니들도 해 봐서 알 거고. 너도 하고 있으니 알겠지만 각 과 수련이라는 게 이게 만만치가 않은 일이거든.”

“네, 맞습니다.”

“네, 정말…….”

펠로우들과 레지던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맞는 말이지 않은가.

진짜……

대학 병원 수련 과정이란 건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모를 만큼이나 혹독한 부분이 있었다.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그 위력을 종종 목도하게 되지 않은가.

이현종처럼 대학 병원에 내내 있던 사람조차 로컬에 있는 전문의를 마냥 무시할 수 없을 정도면 말 다 한 셈이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소견이 아니란 거지. 그걸 감안하고 환자의 증상을 더 들여다보자고. 기침과 호흡곤란…… 이게 점점 심해지는 양상을 보였다고 했죠?”

“네? 아, 네. 근데 막 그렇게까지는…….”

“약을 써도 사라지지 않고요.”

“아, 네. 맞아요.”

이현종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환자에게서 눈을 떼어 다시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제자들은 말 그대로 말 한마디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하여간, 열심히 하는 놈들을 지켜보는 건 언제나 보람 있는 일이었다.

“그래, 기침과 호흡곤란…… 가장 흔한 원인은 당연히 호흡기 질환인데 엑스레이도 그렇고 보면 청진에서도 별 소견이 없었어. 거기에 더해 다른 감염 질환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보는 감염 질환들은 혈액검사에서 배제되었지?”

“네, 그렇습니다.”

“심지어 HRCT에서도 폐에는 이상이 없었어. 그렇다면 어디를 봐야 하지. 아니, 무엇을 의심해야 하지?”

“그…… 심장 초음파를 가져오라고 하실 때, 실은 심내막염을 의심했습니다.”

“그래. 심장의 질환을 의심해야지. 그중에서는 아무래도 심내막염이 흔할 거야. 열 병력을 고려해도 그렇지.”

그게 아니어서 얼마나 놀랐나.

수십 년간 단련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기 신공이 아니었다면 소리라도 내지를 뻔했더랬다.

아무튼, 이놈들은 모르지 않나.

그렇다면 벌써 다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도 될 터였다.

‘후후. 이게 수혁이 취미지…….’

잘난 척할 때마다 수혁이가 왜 그렇게까지 애를 쓰는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이 분위기는 좋지 않은가.

모두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고 또 그에 따라 감정이 춤을 추듯 변한다.

“하지만 열을 제외하면, 결국, 호흡곤란과 기침을 일으킬 수 있는 심장 질환은…… 심부전증이야. 심부전이 뭐지?”

“심장 기능에 장애가 발생한 것을 뜻합니다.”

“그래, 심내막염은 그중 흔한 원인일 뿐이지. 그 외에 아주 많은 원인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이렇게 종양도 있다고.”

이현종은 아까보다 더 명확하게 보이는 곳에 프로브를 가져다 대고 있었다.

지금 화면에서는 그저 심낭 안에 삼출물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초음파라는 검사 특성상 안이 속 시원히 들여다보이진 않았다.

애초에 심낭에 물까지 차 있다 보니 사실상 심장 내부 구조는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상상 또는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심장에 있어 그게 가능한 사람은 지금 여기서 이현종뿐이었다.

“종양…… 이요?”

“그래. 여기 보여?”

이현종은 심장이 뛸 때마다 변하는 화면 중 일부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을, 당연하게도 여기 보인 이들 전부가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게 없었다.

아니, 보이는 게 있었다.

있긴 한데 뭐가 뭔지 알아볼 수 없으니 사실상 안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실 나도 잘 보여.’

이현종은 굳이 이 말을 하는 대신 전혀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여기 보이는 거, 이거 정상 심장에서는 안 보이는 거야.”

정말 안 보이나.

모른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저건 종양이어야만 했다.

“아…….”

불쌍한 제자들은 그저 이현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대단하다고 여기면서였다.

그 감동이 어찌나 강한지 이현종뿐 아니라 간호사나 레지던트도 다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뭐…… 딱히 반감은 없었다.

‘어떻게 안 거지?’

‘뭐야…… 여기서 갑자기 심장 종양이 왜 나와. 애초에 심장에 종양이 생기기도 해?’

그 둘도 그저 놀라기에 바쁠 따름이었다.

놀랄 일이 너무 많은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뜬금없이 심장 초음파 들고 오라고 한 것도 어이가 없는데 거기서 떡하니 이상한 게 보인 건 더 이상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 이상한 일이라는 게 심장 종양이라는 건…….

“일단 CT 찍지. 조영제 넣고. HRCT가 아니라 흉부, 복부 골반까지 다 긁어 버려.”

그렇게 얼떨떨하게 있으려니 명령이 떨어졌다.

거부할 의사?

그런 건 없었다.

그저 문자 하나만 남기고 뭐에 홀린 듯 처방을 내릴 뿐이었다.

-CT 찍습니다. 심장 안에 종양이 있습니다.

-?

신현태에게 즉각 답장이 왔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여기저기 전화 돌리느라 바빠서 그랬다.

한시라도 빨리 저놈의 덩이가 뭔지 알아내야 하지 않겠나?

“종양일 수도 있고, 아니면 혈전일 수도 있어. 뭐가 되었건 심장 안에 있는 놈이라는 게 중요해. 이거 딴 데로 날아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아…….”

“최악의 경우엔 오늘 바로 가슴 열어야 될 수도 있어. 흉부외과 놈들이 바로 이럴 때 필요해서 병원에 있는 거야.”

“아…….”

사실 아까 CT 얘기만 들었을 때는 이따 밤에 찍으면 되나 싶었더랬다.

하지만 스테이션에 돌아온 이후 이런 얘기를 들어 버렸다.

어찌 가만히 있겠나.

심장 안에 있는 덩어리가 얌전히 있지 않고 날아간다면……

딱히 심장내과 전문의가 아니라도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는 뻔했다.

뇌를 막으면 뇌경색, 심장을 막으면 심근경색이다.

이게 최악이고 다른 여러 장기들 또한 얼마든지 막을 수 있을 터였다.

“네? 아, 네! 지금 바로 보내겠습니다! 교수님, 지금 된답니다!”

“어딘데?”

“암 센터입니다!”

“머네. 그래도 가야지, 뭐 어쩌겠어. 바로 가지.”

“어…… 네!”

그래도 여기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들 움직이고 있었다.

레지던트들만 덜렁덜렁 가도 가만히 있기가 좀 그럴 텐데 펠로우에 석좌 교수까지 왈랑왈랑 다 가는데 싸가지 없게 어찌 여기 있겠나.

속절없이 환자와 함께 CT 검사실로 향하게 되었다.

거의 무슨 행차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뭐야……? 높은 사람인가?”

“아니, 별로 안 좋은 일일걸……. 어디서 들었는데 대학 병원에서는 의사 얼굴 안 보면 안 볼수록 좋은 일이래.”

“하긴…… 뭐 좋은 일이라고 다 오겠어…….”

“아이구, 안됐네. 젊은 사람이.”

열명도 넘는 의료진이 환자 하나 대동하고 가도 있으니 당연했다.

-종양이 무슨 소리니?

그런 상황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는데 문자 따위를 볼 수 있겠나?

-심장에ㅐ 종양이라니?

애가 타는 건 신현태였다.

지인이다, 지인.

오타가 막 나올 정도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에 종양이라니.

이게 뭐 얼치기 놈이 와서 한 소리면 또 모르겠는데, 하필 이현종이다.

그 인간이 심장을 틀릴까?

‘아이 시발…… 회의 왜 이렇게 안 끝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회의야말로 원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고 따라서 최대한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신현태는 속으로 욕설을 주워 넘기게 되었다.

그렇게 신현태가 내면 갈등 속에 빠져들게 된 사이, 환자는 이내 검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 시작합니다.”

뭐 딱히 운신에 문제가 있거나 바이털이 흔들리는 환자는 아니었다 보니 검사는 빠르게 시행되었다.

윙윙 소리와 함께 일단 조영 증강되지 않은 이미지들부터 날아들었다.

아예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이미 종양이 의심되는 상황 아닌가.

힐끔 보기는 해도 많이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한마음 한뜻으로 조영제가 들어간 이후의 영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 들어갑니다. 좀 뜨거워요. 이상하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움직이면 떨어지니까 손만 들면 됩니다.”

슈우욱 소리와 함께 조영제가 들어갔다.

CT 조영제는 MRI와는 다르게 살짝 독한 약이다 보니 환자의 얼굴이 찌푸려지는 게 보였다.

뭐…….

거기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부작용 생기는 거 아니면 상관없지 않겠나.

“온다.”

“아…… 종양이다. 이거 종양이야.”

“종양…….”

“대량 3cm가량의 종양…… 니들 잘 봐. 일단 우심방으로 침윤되어 있는 거 같은데…… 주변 노드 잘 보라고. 전이 있는지!”

“아, 네!”

이현종은 한눈에 혈전 따위가 아니라 진짜 종양임을 확인했다.

심지어 침윤까지 있다는 것마저도.

악성이다.

‘뭐야?’

이번에도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황하는 대신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검사실 내의 그를 향항 존경심과 충성심은 그저 우상향 그래프만 찍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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