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80화 (1,180/1,303)

1180화 불명열 2 (1)

이현종이 웃던 그 시각 수혁도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금 뭔가 한 건 해내서는 아니었다.

그저 전화가 와서 그랬다.

심상치 않은 전화였다.

-도저히 모르겠어서요.

발신인은 감염내과 장덕수.

대강 들어 보니, 이게 그냥 태화에서 처음으로 본 것도 아니고 다른 병원을 전전하다가 온 모양이었다.

다른 병원들이라고 대강 말하길래 작은 병원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물어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소위 빅 5에 해당하는 병원들이었다.

수혁이 교수가 되고 불과 3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빅 5에서 원탑 그리고 나머지 4개로 서서히 새로운 분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과 의사들이 바보는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전문의를 땄다는 것, 그리고 그에 그치지 않고 교수가 되었다는 건 세계 일류급의 실력을 가졌다는 반증이었다.

“왜요?”

그런 그들의 입에서 도저히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질환이라는 뜻이지 않겠나?

해서 웃었다.

하윤은 그런 수혁을 보며 물었고, 수혁은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일단 밥 먹고 가자. 감염내과 학회 차원에서 줌 회의했는데, 모르겠는 환자가 있대. 곧 올 거라고 해도 시간이 꽤 걸릴 거 같거든?”

“오……. 감염 내과면..”

“불명열이지.”

“제일 어렵고 재밌는 분야 중 하나죠?”

“맞아, 그렇지.”

수혁은 후후 웃다가 이내 자신의 애제자인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그러곤 이렇게 물었다.

“대략 두 시간 안에 먹고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이렇게 넷만. 레지던트 애들은 여기서 쉬라고 하고.”

시간과 인원 제한이 명확한 요청.

대훈이라고 해서 시간이 남아도는 것은 아니다 보니 쉬운 요청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하윤은 자기도 모르게 수혁을 만류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제 어디 가서 내 남친이 수혁이라고 해도 좋을 사이 아닌가.

사귀자고 했으니 그게 맞았다.

아직 호칭은 교수긴 한데…….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중 어느 것이 당기시는지요?”

허나 만류하려는 순간 들려온 안대훈의 목소리가 너무 평온했다.

이미 다 리스트업을 해 둔 모양이었다.

‘하긴…… 당연하지.’

수혁도 불가해의 존재긴 하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많은 것을 알고 또 환자를 잘 보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 않나.

놀랍게도, 그에 준할 만큼이나 신기한 사람이 하나 잇었다.

그게 안대훈이다.

일단 업무만 보면 수혁보다 훨씬 다양했다.

진료만 보는 게 아니라 수혁 수발 다 들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수혁이 미처 요청하지 않은 것까지 다 해결하면서 동시에 거대하다는 말로밖엔 표현이 안 되는 집단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아무 잡음 없이.

‘어쩌면 교수님의 가장 큰 힘은 안대훈일 수도 있어.’

그가 미치는 영향은 이제 원내를 넘어 전국 아니, 해외로까지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식당 어레인지?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오늘은…… 한식?”

“한정식? 아니면…… 고기? 어떤 것을 원하실는지요.”

“고기 하니까 갑자기 불고기가 땡기네.”

“불고기라…… 냉면과의 조합이 아주 좋은 음식이죠.”

“아, 그렇게 말하니까 먹고 싶어진다. 맞아, 불고기랑 냉면은…….”

“그중에서도 평냉이겠죠?”

“좋지. 평냉.”

“그럼 가시죠. 제가 뫼시겠습니다.”

“아, 아니, 내가 운전할게, 너 차 작잖아. 넷이 타려면.”

“아, 주차장으로 뫼신다는 얘기였습니다.”

“아, 그래. 그렇지. 가자.”

그렇지만 운전은 여전히 수혁 몫이었다.

뭐…… 태화의 문화가 약간 그렇지 않던가.

신현태는 원장임에도 불구하고, 기사 딸린 운행이 가능한 시간대가 아니면 여전히 그가 다 하고 있었다.

심지어 레지던트가 아니라 펠로우나 아래 교수랑 움직일 때도 그럴 때가 많았다.

아무튼, 일행은 곧 수혁의 차에 올라 안대훈의 강추 음식점인 한우리로 향했다.

“으, 으으으으. 너무, 너무 아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제 곧 전원 갑니다.”

“아니, 아프다고!”

“약은…… 약은 들어가고 있어요.”

“흐아…… 누가 내 다리를 톱으로 썰고 있는 거 같아!”

그 시각, 장덕수가 연락을 취했던 환자는 아선 감염내과에서 전원 준비에 한창이었다.

환자가 너무 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레지던트들 중 일부가 뛰어들어서 그를 보필하고 있었다.

사실 별로 효과가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미 약은 들어가고 있으니까.

내과 의사가 약 쓰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겠나.

칼을 휘두를 수도 없는 일이고……

힐러처럼 마법을 부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좀 이상하죠?”

“응. 아무리 봐도 마약 금단 증상 같긴 한데…….”

“다 꽝 나왔다며? 마약은.”

“급하게 검사 나가서 그렇지 뭐. 머리카락 그거 제대로 분석 나오려면 시간 더 걸려. 실제로 마약성 진통제 쓰면 좋아지잖아.”

“그건…… 그렇긴 해요. 근데 감염 지표도 오르는 걸로 봐서는 그냥 마약성 진통제를 써야 들을 정도로 아픈 어떤 병이 아닐까요?”

“그런 병이 뭐가 있는데?”

“모르죠.”

그렇게 레지던트들이 몸빵으로 나선 동안 교수 둘은 환자를 보며 수군거렸다.

한쪽은 마약을 거의 확정 짓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긴가민가한 상황이었다.

마약 쪽이 더 위였기 때문에 사실 이대로 깔아 둘 예정이었는데, 기조실장이 나서는 바람에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그거…… 괜히 깔아 두다가 환자만 억울하게 고생시키는 거 아냐? 생긴 건…… 그래, 나도 마약 사범 같아 보이긴 해. 근데 나 저 사람이 쓴 소설 읽어 본 적 있거든? 제대로 된 작가야. 진짜 이상한 사람 아니니까, 어디 의뢰라도 해 봐.

작가..

작가라고 주장하고 있긴 했다.

웹소설이라는 처음 들어 보는 이상한 걸 쓴다고 하는데 제목을 물어보니 「말단 병사부터 군주까지」가 대표작이고 지금은 「오늘만 사는 기사」를 쓰고 있다고 했다.

“이상한 사람 맞잖아?”

“그러니까요. 근데 뭐 어쩝니까. 기조실장이 까라는데…….”

“아씨. 그놈의 기조실장.”

“그래도 우리 좀 키워 주고 있긴 하잖아요.”

“그렇긴 해? 그리고 뭐…… 우리도 골 아픈 환자 보내는 거면 좋지. 하필 태화라는 게 문젠데. 그거 알지? 요새 원탑과 나머지로 우리 병원 분류하는 거. 이렇게 자꾸 보내면 사람들이 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냐?”

“그럼 이수혁 교수를 좀 이겨 주세요.”

아래 직급 교수는 이렇게 말해 놓고 지가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눈치를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딱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위 교수도 뭐 할 말이 없었으니까.

“음.”

“음.”

이수혁.

차라리 칠성처럼 아예 적대 노선을 타게 되었다면 또 모를까, 아선은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동맹 노선으로 묶여 있었다.

뭐 위에서 그런다고 아래도 그러리란 법은 없지만, 아무튼, 위에서 그러니까 자주 엮이게 되지 않았겠나?

그렇다 보니 수혁의 위력을 태화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실히 체험했더랬다.

그렇게 둘이 침묵하게 된 동안에도 환자는 아파하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을 떠올리면서였다.

‘시발, 오지 말걸.’

소울풍.

본명 강풍.

필명도 이름도 장르 소설 작가에 맞춘 사내는 본디 남미에 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국인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에.

-작가님. 오랜만에 한국 오시죠. 드라마 관련 계약도 하실 겸, 겸사겸사요.

벌 만큼 버는 사람이 거기 왜 사냐는 말은 정말이지 수도 없이 들었다.

혹시 한국에서 큰 범죄라도 저질러서 거기 살아야만 하는 거냐는 말도 들었고.

사실 따지고 보면 치안도 별로고, 애 교육도 아무래도 한국에 비하면 별로이긴 하다.

장점이 있다면 한국보다 물가와 집값이 미친 듯이 싸다는 정도?

아, 그리고 총기 소지가 자유롭다는 거?

예컨대 답답하지 않다, 이 말이다.

당장 지금 살고 있는 집만 해도 마당까지 하면 수백 평인데, 서울에 수백 평 되는 집이 있나?

있긴 있겠지만 그런 데 사는 건 무리다.

-네, 알겠습니다. 전역한 이후로 거의 처음 가는 거겠네요.

아주 만족하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향수병이라는 말이 왜 있겠나.

나이가 들다 들다 마흔이 넘게 되니 이제 슬슬 고국이 그리워지고 있었다.

-네, 인터폴 수배자라는 누명도 이참에 벗으시죠.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한산이가라고 요새 저희 출판사 대표 작가 있어요. 친하시다면서요. 얼굴은 한 번도 못 봤다고 하지만.

-아, 단톡방 친구. 그 새끼…… 죽일까?

-죽이시진 말고요. 돈 벌어다 주는 소중한 작가입니다.

게다가 오해도 풀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홀린 듯이 비행기 표를 끊어 버렸다.

마냥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파라과이에서 한국까지 직항이 있겠나?

비행기를 무려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무려 30시간이 조금 넘는, 여행길이라기보다는 고생길이었다.

해서 가족은 두고 혼자 왔다.

딱 인천 공항에 떨어지자마자 발전한 고국의 모습에 놀라운 감정이 들기보다는 그냥 너무 힘들었다.

“어, 오셨어요?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

아마 마중 나온 사람이 없었다면 공항에서 몇 시간 쉬었다가 나왔을 거다.

아닌 게 아니라 인천 공항에는 그만한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었으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 써 왔던 글들이 나름 대히트를 쳐 왔던 까닭에 출판사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마중 나왔고, 출판사가 위치한 합정 근처의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원래 오늘 밥이나 한 끼 먹으려고 했는데…….”

“아, 좋죠. 밥 먹읍시다.”

“그 전에 좀 쉬셔야 할 거 같은데?”

“맛있는 한식 먹으면 나을 거 같아요. 안 그래도 아까 여기 오면서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네.”

“하긴…… 거긴 한식당 없죠?”

“있긴 있는데…….”

“있어요?”

“거기도 교민 사회가 있긴 있으니까. 근데 아무래도 한국이랑 비교할 수는 없죠.”

진짜……

죽도록 힘들었다.

뭐, 30시간 넘는 이동은 젊을 때도 고역이었으니 나이가 훌쩍 더 든 지금에야 훨씬 더 힘든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아픈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눈앞에 돼지고기 김치찜을 두고 나니 확실히 몸이 막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더랬다.

“그래, 이거지.”

“엄청 잘 드시네. 아픈 건 아닌가 봐요. 걱정했는데.”

“아휴, 이거 먹으니까 싹 낫는 거 같은데요?”

“다행입니다. 사실 내일 사인회도 있고, 드라마 제작사 미팅에 웹툰 제작사도 가셔야 하고. 한 며칠 되게 바쁘실 거예요. 게다가 단톡방 작가 친구들도 만나셔야 하잖아요?”

“그렇죠. 쉴 시간이 없네.”

그렇게 한식으로 고통을 치유하고 잠이 들었다.

비행기에서 이리저리 치이다 제대로 된 침대에 누워서 그럴까, 오랜만에 아주 잘 잤다.

그렇게 여독은 풀렸다고 생각했더랬다.

허나…….

“어디…… 불편하세요?”

다다음 날 오전.

웹툰 제작사와의 미팅 자리에서부터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단 생각이 들었다.

팔꿈치 안쪽으로 엄청 땡긴다 싶더니만 손가락, 어깨까지 통증이 뻗치고 있었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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