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1화 불명열 2 (2)
아프다.
아프다는 말도 좀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프다.
“괜찮으세요?”
“아, 네…….”
하지만 어쩌겠나.
웹소설 작가에게 있어 웹툰화는 너무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린 것을.
이전처럼 그저 로망으로만 치부될 일도 아니었다.
누군가 한창 돌렸던 망상처럼 ‘와, 내 소설도 웹툰 되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하던 시절은 이제 끝나 버린 지 오래다.
실제로 웹툰화가 진행된 경우 웹소설로 어마어마한 독자들이 유입이 되고 그것이 결국, 매출로 이어진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그 덕에 작가 노릇 꾸준히 할 수 있게 된 친한 작가 하나가 있다 보니, 소울풍 작가는 더더욱 절실해졌다.
심지어 그 작가 놈…….
요즘 들어서는 자기가 잘 쓸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자꾸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있지 않던가.
부러웠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쓸 수 있다는 게.
“끄으읍.”
“아니, 안 될 거 같은데. 저희 그렇게 급한 건 아니에요. 일단 병원으로…….”
너네는 안 급하겠지만, 나는 급하다.
나는 급하다고!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정말이지 이런 통증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종류의 통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너무 아팠다.
군대 가서 겪었던 그 어떤 고통보다도 더하다.
“저, 작가님. 일단……. 일어나시죠.”
“으…….”
그래서였을까?
뭔가 옆에서 말을 하고, 또 부축을 하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병원이었다.
많은 출판사들과 웹툰 스튜디오들이 꾸준히 들어서고 있는 합정 근처에서 미팅을 했었기 때문에 도착한 병원 또한 그 근처 병원이었다.
아무리 봐도 심각해 보이긴 했는데 작은 병원도 아니고 큰 병원으로 왔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그 말은 곧 일반적인 친절함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얘기도 되었다.
대형 병원 응급실은 대개 정말 숨넘어가는 사람들을 보기 마련이지 않겠나?
그게 아니라면 원래 그 병원을 심각한 질환으로 다니던 사람들을 주로 보았다.
후자를 보는 이유 또한 무슨 원래 다니던 사람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니라…….
암 환자들 같은 경우에는 열이나 감기 증세 같은 것들로 시작해서 심각한 질환으로 빠르게 이어질 수 있어서 조심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도 저도 아닌 이 환자 같은 경우에는 트리아지, 즉 환자 분류에서부터 걸릴 수밖에 없었다.
“작가님 어디가 아픈 거예요?”
“으…….”
출판사 직원의 말에 작가는 자신의 증상을 확인했다.
아까는 그냥 아파서 정신이 없었더랬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도 모를 정도로 아팠다.
해서 그제야 확인하려 머리를 굴리고 있으려니, 시간이 차곡차곡 지나가고 있었다.
“어…….”
“어디가 아프신 건데요?”
담당 간호사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뒤에 환자가 수두룩 빽빽이었으니까.
뭐……. 숨넘어가는 환자들은 119 요원들이 밀고 들어가거나 또는 앞에 있던 다른 간호사들 또는 의료진들이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긴 했다.
하지만 거기에 선별되지 않았다 해서 심각한 환자가 아닌 건 아니었다.
의사가 무슨 무당도 아니고 어떻게 보자마자 딱딱 골라내겠나.
그 말은 곧 작가 뒤로도 어마어마한 환자들이 있을 수 있다, 이 말이었다.
“그게, 일단 팔이요. 팔이 너무 아픕니다. 그리고 오한도 있고……. 열, 열도.”
“흐음. 음?”
해서 급한 대로 팔부터 내밀었다.
생각해 보니까 여기가 제일 아파서 그랬다.
그렇게 내민 팔을 간호사는, 좀 귀찮아 보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밀히 살폈다.
노련한 간호사는 환자의 팔에 발생한 발진을 놓치지 않았다.
“잠깐, 이쪽으로.”
그냥 발열만 있다면야 뭐…….
늦봄까지 유행하는 독감도 열을 일으키곤 하지 않던가?
하지만 발진은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법이었다.
해서 간호사는 일단 환자를 불러서 열부터 쟀다.
체온은 37.4
애매했다.
의학적으로 37.8부터 열이 있다고 판단하니까.
“으음…….”
나머지 소견 또한 아주 심각하진 않았다.
바이털 사인이 모나게 튀고 있진 않다는 얘기였다.
혈압도 정상, 호흡수도 정상. 맥박도…….
“안정 시에 95회면 빠르긴 한데, 그래도 정상 범위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열도 아주 높지는 않고요.”
“근데 엄청 아파하시거든요?”
“뭐…….”
독감도 아프긴 하지.
발진이 있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응급실에 올 정도일까?
바이털이 흔들리는 상황이 아닌 한…….
간호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응급실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점심시간을 지날 무렵이라 그런가, 환자가 아주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게 평소에 비해서 많지 않다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적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었다.
아마 이 정도 증상으로 제대로 된 진단을 받으려면 수 시간은 걸릴 터였다.
“많이 기다려야 할 거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뻔히 보인다, 미래가.
그래서 설명했다.
‘으으……. 기다려?’
작가는 잠시 고민했다.
호텔에…… 갈까?
가면 뭘 할 수 있을까?
원래 오늘 하려고 했던 일이 없던 건 아니다.
비단 회의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모임이 있었다.
간만에 한국에 오는 길이다 보니 당연하게도 작가 모임이 있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못 가……. 이대로는 못 간다.’
업무 미팅도 못 할 정도로 아픈데 뭔 놈의 작가 모임이란 말인가.
무릇 작가란 하고 싶은 말을 죄다 글로 털어놓는 놈들이 태반인 만큼 막상 만나면 말이 없는 놈들이 태반인 법이었다.
몸 상태가 좋으면 뭐 다들 적당히 취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겠지만…….
지금?
안 된다 이건.
“괘, 괜찮습니다. 근데 제가 너무 아픈데……. 약이라도 좀…….”
“아, 그건 담당 선생님이 보시고 판단하실 겁니다. 근데 제대로 된 진단이나 검사가 시작되는 시점보다는 아무래도 빠를 거예요.”
“아……. 그럼 부탁……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어요. 접수해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 감사합니다.”
작가는 일단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연신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그런 작가를 보면서 영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감사가…… 얼마나 가려나?’
들어갈 때는 대개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경고했던 대로 진료와 진단, 치료가 다 밀리기 시작하면 다들 화를 내기 시작한다.
뭐, 경한 질환이라고 해도 아픈 건 아픈 것이다 보니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그래도…….
외래 진료가 뻔히 열려 있고 또 작은 병원에 가면 전문의 진료도 바로 볼 수 있는데 여기 와서 그러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했다.
딱 봐도 저 환자 또한 그렇게까지 심각한 병은 아닌 거 같아 걱정이 좀 되었다.
물론 아주 잠시뿐이었다.
“네, 어디 아파서 오신 거죠?”
환자가 말 그대로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어서 그랬다.
대저 응급실 환자란 그러한 법이었다.
“으…….”
“아니, 침대도 안 주네.”
출판사 직원은 아픈 곳이 없는 사람 아닌가.
정작 환자인 작가는 뭐라 할 기운도 없어 의자에 쭈그려 앉아 있는 데 반해 직원은 불만이 쌓인 만큼 털어 낼 기운이 있었다.
“저기요. 사람이 지금.”
“네네. 순서대로 봐요.”
“아니, 자리도 없는데.”
“보고 심각하면 바로 배정됩니다.”
“그……. 저기요?”
“지금 환자 보러 가잖아요. 배정되시면 그때 봐요.”
“아니.”
뭐…….
그래도 별 소용은 없었다.
원래 진상도 아무나 부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출판사 직원이 뭐……. 험한 인생을 살아 봤겠나?
칼같이 잘라 말하는 의사를 상대로는 더 말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그……. 가 보셔도 됩니다.”
그런 출판사 직원을 보면서 작가는 미안함을 느꼈다.
사실 오늘 미팅은 아예 꽝 나지 않았나.
온전히 자기 때문이다.
아파서라고는 해도 어찌 되었건 비즈니스하는데 이게 뭐란 말인가.
“네? 아뇨. 그래도…….”
“아뇨. 가 보셔요.”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직원을 보고 있다 보니 깨닫는 바가 하나 있었다.
아, 이 사람이 지금 컴플레인하는 게 딱 나만 걱정해서 그러는 건 아니구나…….
자기가 빨리 진료를 보건 뭘 하건 해야 업무에 복귀할 수 있으니 이러는구나…….
그래서 가라고 했더니 입꼬리 올라가는 걸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톡으로야 얘기를 꽤 많이 했다지만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 사이 아닌가.
게다가 톡으로 했다는 얘기도 그냥 작가님 원고 다 되셨나요? 작가님 혹시 지금 게임하시나요? 작가님 배틀넷은 왜 로그인이 되어 있죠? 작가님 왜 인스타그램이 업데이트되었고? 뭐 이런 대화가 태반이었다.
정이 쌓일래야 쌓일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 그럴까요?”
“네. 뭐……. 죽을병도 아닌 거 같으니……. 설마 그런 병이면 벌써 와서 뭔가 했겠죠.”
“하긴 그렇겠네요. 그럼 연락 꼭 주세요.”
“네네. 조심히 가셔요. 여기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네.”
그렇게 작가는 홀로 남게 되었다.
아니, 통증과 함께 남았다.
더럽게 아프다.
“으…….”
그렇게 신음만 흘리고 있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시간관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어려 보이는 의사 하나가 다가왔다.
딱 봐도…….
인턴 같다.
어떻게 아냐고?
그동안 봐 왔던 의학 소설만 봐도 뭐 느낌이 딱 온다.
“어디 아파서 오셨어요?”
“팔, 팔이요. 열도 나고.”
“네, 열감이 있으시다는 거죠?”
“그……. 그렇다고 칩시다.”
“네. 일단 피 검사랑 엑스레이 좀 찍어 볼게요.”
“진통제는……. 제가 너무 아파서 그런데.”
“그건 결과 보고 드릴게요. 경우에 따라서는 검진할 때 통증이 없어지면 진단이 안 되기도 하거든요.”
“아.”
맞는 말인 거 같다.
아니, 맞는 말일 거다.
인턴이 그냥 자기 생각대로 말할 리가 없지 않나.
게다가 듣다 보니 느낌이 왔다.
지어내는 건 아닌 거 같다는 그런 느낌이.
“아야.”
그렇게 작가는 별다른 조치 없이 일단 피부터 뽑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혈액검사를 위해 주삿바늘을 찌르는 김에 수액도 달긴 달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수액이 무슨 드라마틱한 효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냥 식염수인데 뭔 효과가 있겠나.
약이라도 섞는다면 모를까…….
“이쪽으로 오세요. 엑스레이 찍겠습니다.”
“어……. 네.”
“다리 불편하세요?”
“네? 아……. 네. 다리가……. 아, 다리도 아프네, 이제.”
“네네. 아무튼, 이쪽으로 오세요.”
그렇게 피 뽑고 하릴없이 앉아 있으려니 이내 이송 요원이 와서 엑스레이 실로 데려갔다.
찰카닥 사진이 찍히고 나서는 또다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약?
안 준다.
그냥 악으로 깡으로…….
“안녕하세요.”
그때 아까 왔던 의사보단 훨씬 높아 보이는 사람이 하나 찾아왔다.
그래 봐야 뭐, 레지던트겠지만.
아무튼, 작가는 반가움에 급히 말했다.
“네네.”
“검사 결과랑 보니까 일단 엑스레이는 정상이세요. 아까 코 쑤신 거 있죠?”
“아. 네.”
그러고 보니 코도 쑤셨다.
어차피 다른 데도 다 아팠던지라 별로 힘든지도 몰랐다.
“독감이랑 코비드는 둘 다 음성이에요. 안심하시고……. 혈액검사에서도 염증 수치가 좀 오르긴 했는데 다른 거 특별한 건 없습니다. 진통 소염제 드릴 테니까, 그거 드시고 계속 아프시면 외래로 오세요.”
“아……. 네. 근데 주사로는…….”
“주사? 뭐……. 그러죠. 근육 주사 한 대 맞고 가시죠.”
한참 후, 환자는 단순 감기라는 진단명과 함께 진통 소염제를 몇 개 받고 귀가했다.
통증?
약 먹을 때 말고는 점차 심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러다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든 건, 이틀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