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82화 (1,182/1,303)

1182화 불명열 2 (3)

“끄…… 끄아악.”

진통 소염제?

먹었다.

먹으라는 대로 다 먹었어.

헌데……. 다리가 너무 아팠다.

그냥 다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 관절 주변으로 해서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와서 다리를 써는 듯한 느낌마저 들 지경이었다.

“으, 으으으으.”

진통 소염제가 아무리 나온 지 좀 됐고…….

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평을 듣는 약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정해진 용법과 용량이 있지 않은가?

작가도 나름 배운 사람이고 또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아프면 상식도 좀 옅어지기 마련이었다.

작가는 이틀 전에 처방받은, 분명히 3일 동안 먹으라고 했던 진통 소염제의 마지막 알을 억지로 씹어 삼키며 호텔을 나섰다.

‘이거……. 이거 큰일 났다……. 이건 안 된다…….’

이러다 죽는다.

진짜로.

이대로 있다가는 죽어!

‘감기? 단순 감기라고? 그럴 리가 있겠냐!’

이런 생각을 하면서였다.

다행히 지내는 곳이 호텔이다 보니 직원이 부축을 해 주었고 택시도 잡아 주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다시 그때 그 병원이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인데 나름 커다란 병원이었고 또 빅 5 안에 들어가는 병원이었더랬다.

‘그럼 뭐 하냐, 시발 놈들아…….’

파라과이보다는 아무래도 나을 거다.

거긴……

빈말로도 선진국이라고 하긴 어려운 나라니까.

하지만 오진이잖아.

이건 오진이다.

감기?

감기라고?

방금도 누가 다리 썰고 지나간 듯한 통증이 있었다.

“어…….”

그만한 통증은 제삼자가 보기에도 명확히 보이는 법이었다.

살려 달라길래 왔던 출판사 직원도, 얼떨결에 호텔에서 여기까지 동행하게 된 호텔 직원도 이 사람 이거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병원 입구에서 환자 분류하는 베테랑 간호사, 즉 전에도 작가를 본 바 있던 간호사가 보기에도 그래 보였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환자 모습은 어떻게 봐도 이거…….

“드, 들어가세요!”

그렇다 보니 전과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일단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그리고 곧장 수액이 달리고 혈액검사도 나갔다.

딱 봐도 이틀 전에 왔을 때보다는 빼 가는 혈액량이 많았다.

뭔가 이런저런 검사를 더 하게 된 모양이었다.

“어떠세요?”

초진에 나선 사람도 인턴이 아니라 레지던트였다.

뭐…….

이제 와 그런 것이 중요하겠나?

지금까지 읽어 왔던 메디컬 웹소설이 한두 질이 아니었지만, 생각이 미치지 못할 만큼 너무 아팠다.

“아, 아파요! 너무 아파!”

“그……. 어디가?”

“파, 팔! 다리! 시발 너무 아파!”

평상시 작가였다면 이렇게 욕을 하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정신이 없었다.

너무 아프니까.

상당히 격렬한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응급실 근무가 하루 이틀 아닌 레지던트가 보기에도 낯설단 느낌이 들 정도로.

그사이 호텔 직원은 일단 돌아갔고, 출판사 직원은 남은 상황이었다.

상당한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내가 그날 안 갔지…….’

뭐 이런 생각이 안 들면 그게 사람인가?

무엇보다 이 작가가 지금 출판사에 벌어다 주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지 않나.

사장부터 신경 쓰고 있는 작가다, 이 말이었다.

‘하씨……. 혹시 잘못되기라도 하면…….’

이 작가가 만약 잘못된다.

여기서 어떻게 되어서 죽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상태가 된다……?

상상하기도 싫었다.

일단 아는 사람이 그렇게 된다는 것 자체가 싫은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하필 자신이 이 사람 담당자이지 않나?

공지 사항에 부고도 써야 할 터였다.

부고라니?

뻔히 잘 지내던 작가를 한국에 불러서 이 사달이 벌어진 것 같아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저, 저기 선생님.”

그런 생각 때문에 출판사 직원은 일단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방금 간단한 문진을 마치고, 아무리 봐도 뭔가 알아낸 것 같진 않은 얼굴로 돌아서고 있는 의사를 붙잡았다.

“네?”

그의 부름에 레지던트는 상당히 귀찮다는 얼굴로 돌아봤다.

평소의 출판사 직원이었다면 이때 쫄거나 해서 그냥 네네 하고 돌아갔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까지 이 바닥에서 일하면서 요절하는 작가를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그리고 그때마다 공지 사항에 뜬 부고장은 또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참……. 어떻게 작가 관리를 했길래 작가가 죽나……. 지병도 없는 30대였다고 알고 있는데.’

쯔쯔 혀를 찼더랬다.

왜?

남의 일이니까!

하지만 이젠 온전히 자기 일이 되어 버렸다.

저 작가…… 올해 마흔이다.

그것도 한국 나이로.

만 나이로 치면 더 어릴 텐데……. 하필 애도 있다.

‘안 되지.’

그런 생각에 용기를 있는 힘껏 낸 출판사 직원은 말을 간신히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저 환자분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네? 아……. 저 환자.”

작가를 가리키면서였는데 마침 어렵게 느껴지고 있던 탓인지 뭔지 레지던트의 반응이 좀 더 호의적으로 변했다.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하고자 했던 말을 신나게 털 수 있었으니까.

“일단 환자분이 우리나라에서 안 삽니다.”

“네? 어디서 살아요?”

“파라과이요.”

“파라…… 과이? 거기가 어디죠?”

“저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남미입니다.”

“아, 남미? 왜 전에 왔을 땐 얘기 안 하셨어요?”

“그게…….”

알 리가 없었다.

데려다만 주고 도망치듯 나왔으니까.

작가가 왜 말을 안 했을까?

아파서?

너무 아파서 정신이 없었을까?

실은 그냥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서였지만 둘이 뭘 알겠나.

“아무튼, 남미라……. 흐음. 그럼 확실히 가능한 진단명이 다양해지긴 할 텐데.”

“그, 그렇습니까?”

“네.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히 검사 처방 아직 다 나간 건 아니라, 네. 빨리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네. 어휴, 참. 잘 좀 봐 주십쇼. 타지에서 와 가지고 지금 고생만 하고……”

“네. 알겠습니다.”

하여간, 남미라는 지명이 주는 영감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레지던트는 바로 어제 혀기후니 유튜브를 봤기 때문에 의욕도 넘치던 상황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피곤했던 관계로 힘은 빠져 있긴 했지만…….

‘남미, 40세 남자……. 발열……. 40도. 40도? 왜 이렇게 높아? 아무튼, 거기에 통증에 호흡수는 정상……. 발진. 흠.’

수혁이 했던 대로 여러 가지 단서를 쭉 늘어놓았다.

별 소용이 있진 않았다.

‘이수혁 교수님은 이렇게 하면 딱 뭔가 알아내던데.’

아는 게 있어야 추론도 가능하지 않겠나?

그런 게 아니다 보니 그저 각 단서를 늘어놓은 것에 불과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괜찮았다.

레지던트니까.

그리고 여긴 꽤나 큰 대학 병원이다.

비빌 언덕이 있다, 이 말이었다.

“아, 그래? 남미? 이틀 전에 응급실 왔었고……. 그때는 뭐 별거 없었네?”

“네. 독감하고 코비드 둘 다 음성이었습니다. 혹시 몰라서 일단 나가긴 했어요.”

“그래……. 거기에다가 일단 뎅기랑 말라리아, 렙토스피라, 장피푸스, 리켓치아까지 해서 나가 보자.”

“아……. 네! 뎅기열……. 뎅기열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니까. 생각보다 그거 엄청 아프고 심각한 병이야.”

그래서 펠로우에게 일단 노티를 했고 펠로우는 괜히 군대 갔다 와서까지 내과에 투신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여러 질환명을 죽죽 늘어놓았다.

열대 지방에서 호발하는 질환들이 많았기 때문에 레지던트는 이 중에서 뭐 하나는 걸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외에 다른 환자들도 워낙에 많았기 때문에 곧 남미에서 온 발열 환자는 잊혀지고야 말았다.

뭐, 그렇다고 해서 저번과 똑같은 양상을 보이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초진부터 내과에서 보게 된 만큼 적절한 진통제가 들어왔다.

“으.”

“좀 어떠세요?”

“아, 아까보단 나은데……. 그래도 너무 아파요. 다리. 다리가 누가 써는 거 같아…….”

“아이구, 이럼 안 되는데.”

출판사 직원도 홀랑 떠나는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부채감도 있고 또 이 사람 죽으면 부고장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기 때문에, 출판사 직원은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환자를 살피고 있었다.

“저기요. 환자가 너무 아파합니다!”

“아, 노티 드릴게요. 근데 방금 약이…….”

“32분 전에 들어가긴 했는데 그런데도 아프대요. 빨리 어떻게 좀.”

“음……. 알겠습니다.”

그의 간절함 때문도 있겠지만 오늘따라 약간 응급실이 한가한 느낌이었다.

이런 소리를 입 밖에 내는 순간부터 환자들이 밀려온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다들 쉬쉬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조용히 평소보단 널럴한 하루를 다들 즐기고 있었다.

“응? 음…… 그럼 페티딘을 주죠.”

“페티딘이요?”

“점수 아까 10점이긴 했잖아요. 지금도 보니까 10점 같은데.”

“그렇게 보이긴 하는데…….”

“검사 결과 나오려면 진짜 한참 남아서요. 일단은 약을 주죠.”

“네.”

레지던트 또한 그 덕에 좀 차분히 생각을 해 보다가 처방을 내릴 수 있었다.

페티딘.

마약성 진통제.

이것만으로 중독이 되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게다가 통증을 이유로 쓸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래서 그거 주니까 지금 조용해진 거야?”

“네.”

“음.”

검사 결과가 다 떠서 내려온 펠로우가 보기엔 좀 이상했다.

일단…….

“이게 다 꽝이네?”

“네.”

“그리고 아까 뭐라고 했다고?”

“다리를 누가 써는 거 같다고…….”

“으음. 진통 소염제는 아예 안 듣고?”

“네.”

“흐음.”

회심의 검사들, 그러니까 뎅기열과 말라리아를 포함한 열대 지역 세트 검사가 죄 꽝이 나와 버렸다.

그리고 환자는 마약성 진통제를 맞고 나서야 조용해졌다고 하고.

이게 우연일까.

“약쟁이 아냐?”

“약쟁이요……?”

“응. 관상 봐라, 저거.”

“아…….”

“게다가 약 맞고 잔다며.”

“그건 그렇습니다.”

관상.

과학적인 용어는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아마 이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 쓴 사람도 엄청 많지 않겠나.

하지만…….

의사도 사람인 이상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었다.

펠로우도 펠로우지만 레지던트가 보기에도 저기 누워 있는 남미에서 왔다는 작가의 인상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수염이 덥수룩한데 눈이 무섭게 생겼다.

거기에 더해 흉터도…….

“일단 더 두고 보다가. 보내자. 찝찝해.”

“네.”

“일단 좋아졌잖아. 또 오면 대충 핑계 대서 보내고.”

“네. 근데 열은 진짜로……”

“지금도 나?”

“지금은 내렸습니다.”

“금단 증상일 수 있어.”

“아, 네.”

그 때문에 작가는 마약 중독자로 몰리게 되었다.

또다시, 퇴원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당연하지만 제대로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니다 보니 또 통증이 생겼고, 이번에는 아선으로 갔으나 거기서도 비슷한 경과를 밟고야 말았다.

‘이제 마지막……. 시발 놈들아, 좀 살려 줘!’

그리고 이제 태화다.

작가는 응급실 입구에 침대에 실린 채 들어서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누가 되어도 좋으니까 제발 살려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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