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83화 (1,183/1,303)

1183화 이수혁 (1)

“교수님, 오셨다고 합니다.”

안대훈이 전화를 받더니 이렇게 말했다.

다들 기다리고 있던 참이지 않던가.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기도 했더랬다.

“가 볼까.”

“네.”

이미 각 병원에서 시행했다는 검사와 소견서는 받아 본 지 오래였다.

그뿐 아니라 다들 여러 차례 돌려 봄으로써 환자의 현 상황에 대해서는 완전히 숙지하고 있었다.

“가죠.”

“그래.”

하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제 아주 자연스레 수혁의 옆에 서서 걷고 있었다.

안대훈과 김성진은 그런 하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내가 여자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그…….’

김성진은 그 정도에 그쳤지만, 안대훈은 아니었다.

부러움을 넘어 질투하고 있었다.

‘왜요. 저라면 우리 교수님 더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그럴까?’

‘저만큼 이수혁 교수님을 잘 아는 사람이 대체 어딨습니까? 하윤이? 비교도 되지 않죠.’

‘그…… 그렇긴 한데…….’

김성진은 그런 안대훈을 보면서 말 그대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대훈…….

과연 수제자이긴 했다.

확실히 수혁에 대해 잘 알고 또 노력도 뒤지게 하는 사람이지 않던가.

하지만…….

‘네가 여자라고?’

김성진은 속삭임을 멈추고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될 수 있으면 하고 싶지 않았던 상상이었다.

여자가 된 안대훈이라니.

물론 외모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배웠고, 또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일인이었다.

그렇지만…….

‘살다 보면 외모가 잘못인 경우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외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이 태화에도 하나 있었다.

김승규.

스스로는 억울할는지도 모르겠지만…….

뭐 어쩌겠나.

그렇게 생겼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안대훈의 외모 또한 유별난 편이었다.

남자로도 그런데 여자라니.

“읍.”

“왜 그래요?”

“아, 아닙니다.”

“아니긴요. 아픈 거 같은데. 얼굴이 핼쑥해졌어요.”

“아니,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으음.”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앞으로 향했다.

잘 보니 어디가 아파서라기보다는 뭔가 좋지 못한 생각을 해서 저러는 것 같아서 그랬다.

물론 수혁만의 판단은 아니었다.

무당도 아니고, 그런 걸 어찌 안단 말인가.

하지만 바루다와 함께라면 달랐다.

여러 단서를 조합해 속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김성진처럼 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사람이라면 더더욱 쉽게 감별이 가능했다.

뭐가 되었건 간에 괜찮다는 거 아닌가.

드르륵

그렇기에 일행은 별걱정 없이 쭉쭉 이동해서 곧 응급실에 당도할 수 있었다.

“어지럽구만…….”

선두에 서 있던 안대훈은 딱 여느 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응급실을 보면서 쯔쯔 혀를 찼다.

그럴 만한 광경이었다.

여기저기 아픈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것만 해도 끔찍할 텐데, 사실 그들의 비명은 적어도 응급실에서는 희망의 소견이었다.

진짜 아픈 사람들은 소리를 못 내니까.

“여기 빨리!”

“어……. 혈압……. 야! 외과 어딨어?”

“야야! 외과 찾기 전에 빨리! 그냥 시발 때려 부어!”

그들 대신 의료진들이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주의를 끌었기 때문에 수혁도 바루다도 그쪽을 주시했다.

처치실에 있는 환자였는데 보행자 TA(Traffic accident)인 모양이었다.

교통사고야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보행자 우선이 아닌 차량 우선의 교통 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한 저런 식의 사고가 아예 사라지긴 어려울 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겠지.’

[있기야 하겠지만, 그 정도는 저기 있는 사람들이 더 잘할걸요. 우리 장기는 원인 불명인 질환을 잡아내는 것이지, 저런 위급한 질환을 따라가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

지금 저 환자에게 달라붙은 의료진들은 응급실에서도 외상 전문가들이다.

거기에 더해 외과 레지던트들도 와 있었다.

아마 수술방으로 직행해야 할 터였다.

내출혈이 의심되니까.

저런 식의 응급 의료도 아마 파고들려고 하면 끝도 없지 않을까?

언젠가 들었던 말에 의하면 사실상 외상 외과야말로 그 범위의 한계가 없다고 했더랬다.

왜?

다치는 양상은 천차만별이니까.

“으, 으으으!”

애써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 더 걸음을 옮기고 나자 상대적으로 양호한 환자들이 있는 섹터에 도달할 수 있었다.

거기에도 뭐…….

병원이 병원이다 보니 엄청 아파 보이는 환자들이 하나 가득이었다.

그중엔 수혁이 봐야 할 환자도 하나 있었다.

알아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 저기 저분인가.”

“네. 아선에서도…… 마약 중독자 의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알겠다.”

처음 봤던 병원에서도 그랬고, 아선에서도 그러지 않았나.

페티딘에 이상하게 좋은 반응을 보이는 환자…….

아무래도 국내에 비하면 마약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좋은 남미에 거주하고 있으며, 외모…….

얼굴이 진짜 그냥 마약 중독자다.

“네, 맞는 거 같은데요?”

그렇지 않아도 오는 내내 외모와 책임에 대해 묵상하고 있던 김성진은 그대로 홀랑 넘어가 버렸다.

다른 추론을 해 보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너무 거대한 확신이 들었다 보니 그랬다.

‘나 좀 도와줘. 마약밖에 생각이 안 나.’

[오케이. 잠시만. 나도 약간 그래서.]

김성진을 탓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어떤 외모는 편견과 너무나도 강하게 직결되어서 다른 사고를 방해하기 마련이니까.

바루다마저 시간이 조금이나마 필요할 지경이었다.

하필이면 수혁이 평소 그나마 즐겨 보는 드라마 시리즈가 마약에 관한 것이다 보니 더 그랬다.

심지어 거기 나오는 배우랑 지금 여기 누워 있는 환자랑 외모 매칭이 거의 99%였다.

그쪽은 라틴계이고 여긴 한국계라는 걸 감안하면 오히려 이쪽이 훨씬 더 험악한 인상이라 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환자분.”

“아, 네. 으……. 으으…….”

다행히, 수혁은 환자 앞에서 입을 열기 전에 바루다가 개입한 덕에 자율신경계가 확 안정된 상황이었다.

그렇게 입을 연 수혁은 아무 편견 없이 환자만 생각하는 진짜 의사 모드였다.

당연하게도 진심은 전해지기 마련이었다.

환자는 확 안심이 되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통증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관절 쪽의 통증이 정말이지 너무 심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아프셨죠?”

“그……. 그……. 그러니까 한 5일?”

“5일이라……. 한국에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죠?”

“7일. 7일입니다. 일주일……. 으…….”

답하는 꼴을 보아하니 왜 이전 병원에서 마약을 의심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하필 한국에 오자마자 증상이 발생하지 않았나.

마약에 대한 접근이 떨어지자마자…….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도 뭐 무리는 아니었다.

‘역시…….’

‘100%…….’

‘저 흉악한 놈 같으니. 교수님! 뒤로 물러나시죠. 이놈은 제가…….’

이전 병원들만이 아니라 여기서도 그랬다.

안대훈은 마치 예수님 잡혀가던 날 베드로라도 된 양 나서고 있었다.

아마 칼이라도 있었다면 대번에 환자 귀를 잘랐을 기세였다.

허나 수혁은 이미 편견에서 벗어난 상황이었다.

차분히 추론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발병된 지 5일이라. 그 정도 날짜 만에 이렇게 증상이 심하다니.’

[일단 아파하는 부위를 좀 더 면밀히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기본적인 문진은 따로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키.’

해서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따라 환자의 옷을 조금씩 벗기면서 질문을 이어 나갔다.

“환자분, 혹시 원래 앓고 있던 병은 없으세요?”

“딱히……. 아.”

“아?”

“제가 전에 총에 맞은 적이 있습니다.”

“총이요? 어쩌다가요?”

“사격장에서 친구랑 장난치다가. 으…….”

음.

진짜 마약인가?

뭔 놈의 총을 장난치다가 맞는단 말인가?

아무튼, 어디를 맞았나 궁금해하려는 찰나 환자는 수염을 젖혀 턱을 보여 주었다.

그쪽으로 해서 총에 맞은 흉터가 있었다.

“엄청 크게 다치셨는데……?”

“네. 다행히 뼈는 피했는데…….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며칠이나 있었고 수술도 여러 번 했어요.”

“그런 거 같군요.”

수염을 왜 이렇게 무섭게 길렀나 했더니 총상 때문인 듯했다.

“이게 언제죠?”

“한…… 5년?”

“이후로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

“아무래도……. 감기 같은 게 더 잘 걸리는 거 같긴 합니다. 으, 근데……. 근데 이런 건 처음…….”

사람들은 흔히 다쳤다가 나으면 그냥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뭐……. 어릴 때 다치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 발생하는 부상은 어떤 식으로든 남아 환자를 괴롭힌다.

생각해 보라.

이렇게까지 심한 상처가 남았고 또 살아났는데 어찌 멀쩡하겠나.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영향을 미치고 있긴 할 터였다.

‘하지만……. 내가 봐도 단순 감염은 아닌 거 같네.’

[네. 발진의 양상이 이상합니다. 게다가 관절도 다 부었어요. 마약 같은 건 절대 아닙니다.]

‘내가 봐도 약간 부은 것처럼 보이는데……. 왜 마약이라고만 생각한 거지?’

[진술과 정황상 그렇게 생각할 만하긴 합니다.]

‘아.’

수혁은 바루다가 보여 준 새로운 증거, 즉 관절의 부기와 반점을 확인한 후였기 때문에 마약은 이제 완전히 배제해 버린 상황이었다.

해서 의문을 표하자 바루다가 소견을 모아 마약으로 추론을 이어 나가는 상황을 연출해 주었다.

상당히 그럴싸했다.

확실히 한번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이 환자의 모든 것이 마약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환자분, 혹시 지금 일어날 수 있으세요?”

“어……. 네.”

“여기 좀 부축 좀.”

“네!”

수혁의 말에 따라 환자가 몸을 일으켰고 다른 의료진들 또한 그를 부축했다.

그렇게 간신히 일어난 환자는 수혁의 손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걸음걸이가 온전치 못했다.

단순한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그러지 않을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확실해졌다.

환자는 관절이 굳어 가고 있었다.

“강직이 있군.”

“마약일까요?”

“아니. 뭐 펜타닐 같은 경우라면 근육의 수축은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이런 양상은 아냐. 부었잖아, 실제로.”

“아…….”

“게다가 만져 보면 열감도 있고. 여기 가렵진 않아요?”

이제 환자는 팔과 다리를 완전히 걷은 상황이었다.

애초에 저번 병원에서도 사복이 아니라 환자복을 입고 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옷을 걷어 올리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덕분에 수혁은 환자의 발진 주변으로 번져 있는 손톱자국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긁은 상처가 왜 생길까?

소양증 때문일 터였다.

“가, 가렵습니다.”

하필이면 마약 금단 증세에도 가려움증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훨씬 더 심하다.

이건…….

양상이 아예 달랐다.

“뭐……. 남미, 어디라고 하셨죠?”

“파라과이입니다.”

“네, 일단 검사는 나가 볼 텐데……. 그 전에 하나만 물어볼게요. 혹시 이렇게 생긴 모기한테 물린 적이 있나요?”

그걸 보자마자, 정확히는 그 단서를 끼워 넣고 추론을 하자마자 정답을 알 것 같았다.

해서 수혁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어떤 모기 사진을 네이버로 검색해 보여 주었다.

환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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