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5화 이수혁 (3)
수혁은 천천히 마스크를 끼고 있는 의사에게로 다가갔다.
N95 마스크를 끼고 있었는데, 이유는 명확했다.
설마하니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그것도 내과 의사가 기침 좀 한다고 대뜸 진료 요청을 해 왔겠는가.
뭐…….
최근엔 이수혁이라는 최고의 정답지가 있는데 뭐 하러 돌아서 가냐는 말과 함께 곧장 수혁에게로 직진하는 젊은 직원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셀프 또는 동료들과의 상의는 하고 오는 편이었다.
‘결핵을 의심하나?’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기침 오래 하면 일단 결핵을 제일 조심하는 게 좋겠죠.]
‘하긴……. 이놈의 결핵은 이거 대체 언제 사라지려나?’
[모르겠습니다. 우선 약을 오래 먹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그걸 싫어하지 않습니까?]
바루다의 말에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약 먹는 걸 싫어한다…….
뭐,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했다.
사실 결핵약이라는 게 당뇨나 고혈압약처럼 안전하면서 동시에 별다른 부작용이 없는 약은 아니니까.
결핵균이 어지간해서는 잘 죽지도 않는 놈들이다 보니 약도 독해서 그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먹다가 마음대로 끊는 게 말이 되는 건가?
‘그래서 자꾸 내성균 생기잖아. 우리나라 결핵은 진짜 까다로워.’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그럼 저기 호흡기 말대로 한번 TV 나가서 홍보를 해 주세요. 아니면 유튜브라도 나가든지.]
‘난 환자 봐야지…….’
[방금 그 발언은 유튜브에 나가는 의사들은 환자를 안 본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아, 다 그런 건 아니지. 근데 그런 사람도 있더라. 아예 진료 중단한 사람도 있다던데?’
[아……. 그 사람이요? 뭐 진료에 재능이 별로 없던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환자 보겠죠, 뭐.]
잠깐 생각이 딴 데로 샜는데, 아무튼, 수혁은 눈앞의 환자를 보면서 우선 결핵을 떠올렸다.
하지만 100% 확신은 하지 않았다.
왜?
얘들도 내과니까.
결핵이 확실히 의심되는 상황이었다면 안 왔을 거 아닌가.
“안녕하세요.”
“아, 안녕 쿨록. 하십니까. 교수님. 입원 전담의 윤창우입니다, 쿨룩.”
“네, 알죠. 우리 병원 입원 전담의 중에 제일 오래 하신 분이잖아요.”
“아……. 쿨룩. 저를 아시는……. 쿨룩. 영광입니다.”
하여간, 대화를 해 보니 기침이 굉장히 발작적이었다.
눈 밑이 거뭇거뭇한 것이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당연했다.
원래 기침은 밤에 더 심해지는 법이니까.
이런 기침을 하는데 잠을 대체 어찌 자겠나.
“기침하신 지는 얼마나 되신 거에요?”
“가벼운 감기 기운이 있었던 쿨럭, 건 한 2주 되었습니다.”
“감기 기운이라면……?”
“그냥……. 기침 조금 나고, 콧물 정도? 쿨럭. 쿨럭. 쿨룩! 혹시 몰라서 코비드 검사는 했었습니다. 음성이었어요. 하아…….”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심해지는 모양이었다.
‘기관지 자극이 있으면 기침을 한다라……?’
[이미 기관지염은 있다는 얘기입니다. 뭐……. 기침 소리만 들어도 심상치 않긴 합니다.]
수혁은 바루다와 토론을 이어 나가면서, 환자와의 대화 또한 자연스레 이어 나갔다.
환자가 기침하느라 대화가 끊기고 있었기 때문에 수혁으로서는 오히려 바루다와 대화할 시간을 충분히 벌 수 있었다.
물론 안대훈과 김성진, 심지어 우하윤까지 해서 세 제자는 그런 윤창우 선생이 마뜩잖은 모양이었다.
‘기침 계속 저렇게 할 거면 영상 통화를 하든지…….’
‘그러니까 말입니다. 뭐 하는 거야. 저러다 이수혁 교수님도 걸리면 어쩌려고.’
‘우리 이수혁 교수님이 어떤 분인데. 저런 사람하고 비교도 안 될 만큼 귀한 사람이에요.’
해서 같이 온 입원 전담의들에게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거의 뭐 같은 사람으로 안 보겠다 이 수준이었는데, 이상하게 화는 나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도 윤창우와 이수혁 둘 중 누가 더 인류에 보탬이 될까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이수혁 쪽으로 저울이 훅 기울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아니, 애초에 비교도 안 된다.
윤창우가 못나서라기보다는 이수혁이 너무 잘나서 그랬다.
‘죄송합니다……. 근데 결핵은 아니에요.’
‘그럼 더 큰 일이지. 다른 이상한 건데 옮으면 어쩌려고?’
‘그……. 그럼 지금이라도?’
‘아니, 안 되지. 이미 진료 중이신데……. 에휴……. 이 지각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김성진이 대표로 나서서 다른 입원 전담의들을 혼내는 동안에도, 수혁은 진료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약은 어떻게 먹었어요?”
“그, 콜록. 그냥 셀프로……. 진통 소염제랑 거담제 정도……. 아, 항히스타민도.”
“진통 소염제를 먹었다는 건, 통증도 있었나요? 아니면……?”
“미열이 조금.”
“미열이라면?”
“아, 재 보진 않았습니다. 그……. 쿨럭. 열감이 있어서.”
“으음.”
그때 윤창우는 느꼈다.
수혁의 싸늘해진 눈초리를.
‘내가 생각해도 좀 한심하네.’
그럴 만했다.
지금 하는 말이…… 이게 의사가 하는 말 같지가 않지 않나.
무슨 보호자도 아니고…….
아파서 약 먹은 건데 정확히 진단도 하지 않았다.
사실 감기라면 이래도 되었다.
아니, 이게 맞았다.
애초에 치료제가 아니라 증상 조절이 목적이 되니까.
하지만 감기라면 그렇게 해서 나았어야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게 아주 커다란 문제였다.
“그…… 근데 쿨럭. 5, 5일이 지나도 낫기는커녕, 쿨럭. 더 쿨럭. 쿨럭.”
“더 심해졌다, 이거죠?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당황해서 그런 걸까.
민망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단순히 말을 계속해서 그런 걸까.
아무튼, 환자는 기침을 하느라 한동안 말도 못 했다.
괜찮았다.
뭔 소리 할지 알았으니까.
심해졌겠지.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그다음이었다.
“코푸시럽을.”
“코푸시럽? 검사 안 해 보고요?”
이번엔 좀 화가 났다.
코푸시럽이라니…….
‘좋은 약이긴 하지.’
[기침이 별거 아닌 이유로 있을 때는 그렇죠. 하지만 원인을 모를 때 코푸시럽을 쓰는 건…….]
‘그러다 오히려 병을 키울 수 있지. 뭐지? 이 사람? 내과 의사가 아닌가?’
[뭐…….]
바루다는 수혁의 눈에 비치는 환자의 모습을 보며 나름의 변명 아닌 변명을 해 주었다.
[건강체로 보이지 않습니까? 자신 있었겠죠.]
‘건강에 자신 갖는 거 만큼 미련한 일은 없지. 게다가, 이 사람 마흔 아냐?’
[만으로 38이죠.]
‘그렇다 해도 나이가 적은 건 아니지.’
[네, 어엿한 중년입니다. 근데 요새 사람들 보면 이상하게 아직도 젊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어 보입니다. 조심조심 살아도 모자랄 나이인데 말이죠.]
당연하겠지만, 딱히 잘하고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시작은 변명이었지만 나중에는 비난으로 끝을 맺었다.
환자는 이 대화는 들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보다 훨씬 더 위축되었다.
수혁이 딱히 자신의 속내를 숨길 마음이 없어서 그랬다.
그냥 환자라면, 그래 뭐 어쩔 수 없다고 여길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 사람은 의사잖아?
그것도 내과 의사.
“어휴.”
한숨도 쉬었다.
그러자 환자는, 그러니까 의사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 열흘째.”
“아니……. 의사란 사람이 몸이 이상하면 재깍재깍 검사를 받아야죠. 혹시 모를 일 아닙니까?”
“그, 쿨럭.”
“말해 봐요.”
“열흘째 쿨럭. 열도 안 내리고……. 기침 쿨럭. 도 심해지니까,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그제야?”
“그, 이게. 제가 사실 쿨럭. 운동도 매일 쿨럭 하고. 농구도 쿨럭. 열심히 하거든요.”
“농구를…… 요?”
“키, 키 작아도 쿨럭. 할 수 있는 포지 쿨럭 션이 있습니다.”
뭐…….
그럴 수는 있을 거다.
아무튼, 운동 열심히 하니 건강할 거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건데…….
사실 의학적으로 규칙적인 운동이 몸에 좋은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지표가 있지 않나?
바로 나이.
게다가 입원 전담의는 말 그대로 입원 환자를 전담해서 보는 과다.
‘교대 근무를 하지.’
[네. 밤낮이 바뀌는 게 건강에 굉장히 해롭죠.]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운동 안 하고 대신 교대 근무도 안 하는 게 더 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필요해서 하는 근무다 보니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이 사람들이 자기 건강 희생해 가면서 일하는 덕분에 밤에 환자들이 별일 없이 버틸 수 있는 것이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났거니 뭐라 할 마음보다는 비로소 환자를 대함에 있어 기본으로 가져야 하는 마음, 측은지심을 품게 되었다.
“그래요. 그럴 수 있지.”
“그…….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열흘째 한 검사가……. 등록번호 뭐예요.”
“여기. 쿨럭.”
“흠. 어디 보자……. 아이구. 양측 폐가 그냥……. 어?”
“왜, 왜요?”
“아닙니다.”
“아니…….”
해서 열흘째 했다는 검사부터 일단 까 보기로 했다.
엑스레이가 있길래 일단 그거부터 봤다.
양측 폐 아래쪽으로 해서 지저분해져 있었다.
아마 이건 다른 의사들도 딱 보자마자 알아차렸을 터였다.
하지만…….
‘우측 폐 상엽의 후면으로 보이는데……. 이거.’
[그냥 혈관 다발이나 연조직으로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아냐, 이거.’
[하지만 이걸 지금 말하는 건 어렵습니다. 이거만큼은 정말 제가 없으면 아예 확인이 불가능한 소견이에요.]
‘그렇지. 뭐 상관은 없어.’
[네. CT 찍으면 되지. 다만……. 이게 뭘까요?]
‘모르지.’
수혁은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환자를 바라보았다.
“많이 힘드셨겠네.”
딱히 환자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섭기만 했다.
갑자기 잘해 주니까…….
“그…… 그걸 왜.”
“의사가 환자에게 이런 말 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 그렇긴 한데…….”
“아무튼, 혈액검사를 볼까요.”
“네, 네.”
혈액검사라고 해 봐야 뭐 별거 없었다.
진짜 딱 감염인지 아닌지 보려고 낸 것이어서 그랬다.
응급실이었다면 세트로 긁었을 텐데, 이 환자에 대해 나간 검사는 그저 CBC와 CRP를 비롯한 기본 검사들뿐이었다.
“CRP가 8……. 굉장히 높네요.”
“네, 쿨럭. 그래서……. 사진도…… 이래서. 안티 시작했습니다.”
“어떤 안티요?”
“아모클란입니다.”
“아, 지역 획득 페렴에서 쓸 수 있는 걸 썼군요. 근데 지금 온 이유는?”
“쿨럭, 쿨럭.”
항생제를 먹은 지 4일째다.
기록을 보니 아모클란을 먹다가 안 들어서 바난으로 바꿨다.
바난은 3세대 세파 계열 항생제로 먹는 항생제 중에서는 거의 최고 등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뭐…….
센 걸로 치면 그것보다 더 센 것들도 많긴 했지만.
“증상…… 하나도……. 쿨럭.”
“48시간씩 항생제를 먹었는데도 그랬다, 이거죠?”
“네. 사진, 사진도요.”
“네, 그렇네요. 방금 찍은 걸 보니…….”
모두의 시선은 엑스레이에서 양측 폐 하엽에 그득한 지저분한 병변에 쏠려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보다 조금 더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4일 전보다 살짝 커져 있는 어떤 덩이였다.
‘암은 아니겠군.’
[결핵일까요?]
‘모르지. CT 찍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