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6화 이수혁 (4)
HRCT.
이게 나오고 나서부터 CT에 대한 접근성이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좋아졌다.
조영제 없이, 보다 적은 양의 방사선 노출로 폐를 들여다볼 수 있다니…….
일부 건강 신경 쓰는 의사들이나 흡연하는 의사들은 매년 찍어 볼 지경이었다.
폐렴 때문은 아니고, 폐암 때문에.
아직까지도 진단이 좀만 늦으면 살리기 어려운 질환이지 않은가.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로 입원 전담의 윤창우 선생도 HRCT 찍어 보자는 말에 딱히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그럼……. 쿨룩.”
“기침 좀만 참아 봐요. 영상 흔들리면 안 되니까.”
“쿨룩. 네, 쿨룩.”
“아이고…….”
수혁은 검사실 기기 안으로 들어가는 윤창우를 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저 발작성 기침…….
심상치가 않았다.
‘이상하지?’
[네, 정상 면역 성인에서 뭔 놈의 기침이 저렇게…….]
‘뭐……. 불가능한 건 아냐, 사실. 가성 천식도 있고.’
[아……. 기관지 과민성이 올라간다, 이 말이죠? 근데 계절이 맞질 않아요.]
‘그렇지. 게다가 의사들은 대개 마스크를 끼고 있는 시간이 길어서 사실 유병률 자체도 떨어지는데…….’
[뭐……. 정상 면역 성인이라고 해서 폐렴이 아예 안 걸리는 건 아니니까요.]
‘그거야 그렇지. CT를 볼까.’
[네.]
CT실 문이 닫히고, 수혁은 나머지 인원들과 함께 방사선사실로 들어왔다.
나머지라고 해 봐야 그 수가 아주 많진 않았다.
안대훈, 김성진 그리고 하윤과 같은 제자들은 동행하지 않았다.
그들 각기 나름 봐야 하는 환자들이 있는 데다가 학회 준비도 해야 해서 그랬다.
수혁이 거의 다 정리를 해 주긴 했지만 그래도 한 끗은 본인이 갈고 닦아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실력도 느는 법이었다.
“자, 그럼 찍겠습니다. 기침하시면 아티팩트 생기니까 주의해 주시고.”
“네, 쿨럭.”
“입 열면 기침하시니까 그냥 대답하지 마세요.”
윤창우 선생은 이제 고개만 끄덕인 채 최선을 다해 기침을 참았다.
사실 참는다고 참아지는 게 아니긴 한데…….
몇 가지 팁이 있긴 했다.
일단 물로 말라 버린 점막을 적셔서 최대한 자극을 줄이는 것.
같은 원리로 마스크를 끼고 있으면 내쉬는 숨결에 뒤섞인 습기와 온도 때문에 다시 숨을 들이쉴 때의 자극이 준다.
기침 환자들에게 밤에도 마스크 끼고 있으라는 게 반드시 남들한테 옮길까 봐는 아니라는 얘기다.
거기에 더해 윤창우는 숫제 숨도 참았다.
위이잉.
MRI면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이건 수십 분은 족히 걸리니까.
그 시간 동안 숨을 참을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죽은 것이지 않겠나.
생각보다 인간은 숨을 쉬지 않은 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니.
위이이이이이잉.
그에 비해 CT는 그냥 통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게 다였다.
심지어 조영제도 없이 그냥 찍는 CT는 시간이 더 짧았다.
애초에 저선량 CT이기도 했고.
“넘어온다.”
“음.”
제자들이 없는 연고로 지금 수혁과 같이 CT실까지 온 사람들은 죄다 입원 전담의들이었다.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통 안에 들어갔다 나오고 있는 윤창우란 사람이 나름 인망이 있어서 그랬다.
보통 의사 노릇 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뾰족해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저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그만큼 뭐……. 모든 일을 다 잘 챙기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동료들의 애정을 받고 있다는 건 정말이지 큰일이었다.
“어, 어떻습니까?”
걱정을 해서 그럴까, 뻔히 보이는 병변을 놓쳤다.
하나도 아니라 같이 온 둘 다.
‘어휴.’
[어휴.’]
수혁과 바루다는 애써 비난의 말을 집어삼킨 후, 간신히 좋게 입을 열었다.
“여기 보면…….”
아까 엑스레이에서 확인했던 병변을 가리키면서였다.
우측 폐의 후엽에 작은 병변이 하나 있었다.
“어……?”
“종양? 아니, 종양 같아 보이진 않는데.”
“네, 종양은 아니에요. 폐암 같은 건 아니라는 뜻이죠. 다만……. 이런 식으로 뭉쳐 보이는 병변이라면…….”
엑스레이에서는 암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아주 조금은 했더랬다.
하지만 이렇게 CT에서 보니 그건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란 게 문제였다.
‘뭔가 뭉쳐 있어.’
[균……? 보통은 결핵이죠.]
‘그게 아니라도 문제야. 이렇게까지 농이 뭉쳤다면……. 이 사람 지금 정상 면역일 가능성이 대단히 떨어지는데.’
[으음……. 근데 체형이나 움직임에서 딱히 만성 질환의 증거가 보이진 않습니다.]
‘모르지, 그건. 아직 40이니까. 잘 먹고 있다면 살이 딱히 안 빠지고 있거나 혹은 경미하게만 빠질 수도 있긴 해.’
[그것도…… 그렇긴 하군요.]
수혁은 그렇게 머릿속을 정리한 후, 즉시 호흡기내과에 전화를 걸었다.
뭔가 의견을 묻기 위함은 아니었다.
“지금 혹시 기관지 내시경 해 볼 수 있을까요?”
“네? 어떤…….”
“아, 여기 입원 전담의 선생님인데요. CT에서 뭐가 나와 가지고요.”
“네? 누구요?”
“윤창우 선생님이라고……. 타학교 출신이라 모를 수도 있습니다.”
“아, 알죠. 인턴부터 여기서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근데 왜……. 뭐지?”
“검사 되나요?”
“아아아아. 네네. 잠깐 짬 내서라도 제가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보내도 될까요?”
“네, 보내 주시죠.”
검사시키려고 전화했다.
일단 이수혁의 전화다 보니 짬 때릴 수도 없었다.
거기에 내부 의사지 않나?
빨리 뭔가 해 주긴 해야 할 터였다.
동료에 대한 예우 차원이기도 하지만…….
‘입원 전담의가 혹시 결핵이라도 나와 봐라…….’
결핵.
공기 감염을 일으키는, 진짜 개같은 전염병이지 않나.
코비드랑은 차원을 달리하는 유서 깊은 병이었다.
이미 인류에 적응할 대로 적응해서 고인물이 되어 버린 병.
다행히 건강한 성인에게는 잘 감염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태화 의료원에 다니는 환자들 중 과연 얼마가 건강한 성인 범주에 들어갈까.
심지어 입원 전담의가 보는 환자들은 내과 병동 환자들이다 보니, 하나 결핵 나오면 말 그대로 끝장이라고 해도 좋았다.
드르륵.
수혁이라고 해서 생각이 달랐던 건 아니었다.
“저……. 근데 결핵은 음성 나왔습니다.”
“음성 나온다고 진짜 음성입니까?”
“아, 아뇨. 그렇지는……. 하지만 얘 진짜 건강…….”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물론 입원 전담의 측도 다 생각은 있었다.
이미 검사했다.
사실 기침이 일주일 넘어가는 순간 덜컥 걱정부터 들어서 그랬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다 내과 의사들인데 어찌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나.
허나 엑스레이도 딱히 결핵 소견은 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가래 등을 이용한 검사에서도 다 음성이었다.
뭐 결핵이라는 놈이 진단에도 시간이 좀 걸리는, 까다롭기 그지없는 놈이긴 하지만…….
증상도 좀 달랐다.
-병의 경과가……. 내가 볼 때 기침, 가래 있다가 목소리가 쉬었어. 그러다 오한과 발열이 이어지고……. 상기도 감염에서 이어져 내려온 거 같지? 그리고 쉰 목소리……. 이거 결핵에서 엄청 드물지 않아?
윤창우가 이렇게 말했다.
나름 에이스지 않았나?
해서 결핵만큼은 절대 아닐 거라 생각하고 있었더랬다.
허나 CT를 찍고 보니 이게 또…….
헷갈렸다.
“아뇨……. CT가 왜 저럴까요?”
“왜 저러긴요……. 이상한 거죠. 그 외에 검사도 몇 개 더 나가야겠는데.”
“어떤 검사 말씀일까요?”
“결핵이 되었건 다른 폐렴이 되었건 일단 나이 마흔에 전격적으로 폐렴이 온 거 자체가 이상해요. 지금 보면 산소 포화도도 90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이게 흔한 일이에요?”
“아니, 아닙니다.”
수혁은 제자들에게 병동을 맡긴 김에, 그리고 이 케이스의 결말도 너무 궁금해진 참에 기관지내시경실로 가고 있었다.
동시에 입원 전담의들을 갈구기 시작했다.
입원 전담의 입장에서는 자연히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그럼 보세요. 뭘 의심해야 합니까.”
“면역…….”
“그래, 그렇죠.”
“근데 진짜 건강…….”
“선생님.”
“네.”
“모든 환자들은 다 한때 건강했습니다.”
“아.”
수혁의 속내를 알았다면 식은땀만 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무릎 꿇고 빌었을 터였다.
살려 달라고.
왜?
‘김문재 과장님……. 전화 한번 해야겠다.’
[뒤집어엎게요?]
‘아니, 그럴 정돈 아냐. 확실히 입원 전담의 제도 생기고 환자들 만족도 올라가긴 했다며.’
[그렇긴 하죠. 아무래도 전공의랑 전문의랑 같습니까? 같은 걸 봐도 인사이트가 다르겠죠. 다만…….]
‘각 과의 전문의가 아닌 내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는데 막상 일하는 곳은 태화 의료원이라는 게 문제야. 보수 교육을 해 줘야겠어.’
[좋죠. 이 사람들은 힘들어지겠지만?]
‘힘들어야 좋은 의사가 되는 거야. 편하면 안 돼, 의사는.’
[음.]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생각이지 않은가?
힘들어야 좋은 의사라니?
하지만 통합진료센터만 한정해서 생각해 보면 또 아주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여긴 다 미친놈들뿐이니까.
[그러다 입원 전담의 다 도망가면요?]
‘도망을 왜 가. 공짜로 가르쳐 주는 건데.’
[그…… 그런가?]
‘그렇지.’
그러나 다른 데도 다 미친놈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바루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뭐, 확실히 가르치는 일은 재밌는 일 아닌가.
곤란해져도 수혁이 곤란해지는 것이고, 또 지금 수혁의 입지를 생각해 보면 병원에서 뭐라 할 수 있을 거 같지도 않았다.
우선 김문재 과장도 신현태 원장도 수혁의 개라고 해도 좋은 사람들인데 뭘 어쩌겠나.
“자, 이쪽으로.”
그리 좋지 못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이, 일행은 이내 기관지내시경실에 도착했다.
이미 연락이 되어 있는 데다가, 윤창우는 다들 알고 지내고 있는 사이이기도 해서 바로 검사에 돌입하게 되었다.
“수면으로 하겠습니다. 뭐 부작용 없었죠?”
“네? 아, 네. 근데 이건 처음이긴 한데.”
“내시경이 다 똑같지 뭐. 금식은?”
“했죠. 혹시 몰라서.”
“그래요, 좋아. 자……. 그럼.”
기관지내시경실 의사가 손짓하자 간호사가 다가왔다.
수액 라인 세트를 들고서였다.
그때 수혁이 끼어들었다.
“이런 검사도 같이 나가죠.”
“아……. 네.”
당뇨를 포함해 자가면역질환까지 아우르는 검사를 나가기 위함이었다.
지금 당장 폐렴으로 나타난 질환의 진단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이놈의 폐렴이 왜 생겼을까이니까.
오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긴 했다.
하지만 수혁이 내는데 뭐 어쩌겠나.
“들어갑니다.”
“네.”
호흡기내과 의사가 기관지 내시경을 이제 환자의 기관지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혀 뒤의 성대를 지나 일자로 쭉 뻗은 기도를 지나 우측 폐로 향하는 기관지로 들어가니 이내 뒤쪽으로 허연 덩이 같은 것이 보였다.
아니, 덩이라기보다는 아주 진한 치즈 덩이 같이 보이는 것이 있었다.
“이거……. 일단 제거를 하는 게 임상적으로도 좋겠는데. 그쵸?”
“네. 그렇다고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시고요.”
“네네.”
다행히 태화 의료원 의사들의 솜씨는 대단해서, 상처 없이 제거할 수 있었다.
검체는 곧 조각나 배양 검사실과 병리과로 향했다.
결과가 나오려면 며칠은 족히 걸릴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