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7화 이수혁 (5)
대학 병원은 언제나 그렇듯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냥 바쁘기만 한 게 아니라 정신도 없었다.
톱니바퀴 돌아가듯 돌아가다 보니 어어 하다 보면 며칠 정도는 훅 지나가 있을 지경이었다.
제아무리 수혁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요즘처럼 학회도 겹쳐 있는 데다가, 틈틈이 데이트 아닌 데이트까지 하고 있을 땐 더더욱 그랬다.
“이수혁 교수님, 병리과입니다. 일전에…….”
“일전에? 제가 뭐 보냈었죠?”
“어…….”
병리과 교수는 수혁의 반응에 당황했다.
그렇지 않나.
언제나.
말 그대로 언제나…… 이 인간은 전화만 해도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물어 오기 바빴더랬다.
대체 어떻게 모든 케이스를 잊지도 않고 다 기억하고 있는 건지 신기할 정도였다.
[윤창우 같은데요.]
‘아.’
[연애도 좋지만 이러면 안 되죠. 세계 최고의 내과 의사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아아. 알지. 내가 뭐 일 허투루 하냐?’
[정신이 딴 데 가 있으니까 하는 소리죠.]
‘그래서 일이 줄었냐?’
[그건 아니긴 하죠. 오히려 더 하고 있긴 해.]
바루다가 아니었으면, 영영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지 않나.
심지어 바루다는 딱히 삐지거나 한 상황도 아니었다.
왜?
수혁이 워낙에 열심히 하고 있어서 그랬다.
엔돌핀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잠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일이 줄기는커녕 늘고만 있었다.
해서 바루다도 더 뭐라고 하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수혁은 병리과 교수와 멀쩡한 척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아아. 윤창우 환자.”
“네! 맞습니다. 결과 떠서요.”
“아직 배양 검사 뜰 정도는 아니지 않아요?”
“아, 급하게 보고 있죠. 요새는 그거 훨씬 빨라지긴 했습니다.”
“하긴……. 그렇긴 하겠네요.”
뭐든지 빨라지는 시대이지 않나.
키우는 것도 동일했다.
사람도 인큐베이터에서 키울 수 있게 되었는데 하잘것없는 균 따위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수혁은 자신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부분에서도 발전하고 있는 현대 의학의 위용을 느끼며 차분히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병리과 교수는 큼큼 소리와 함께 목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Capnocytophaga Sputigena라는 균이 나왔습니다.”
“Capnocytophaga Sputigena? 구강 상재균이잖아요? 그게 나왔어요?”
“네. 혹시 오염일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어서 리뷰를 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만약 오염이 있었다면, 다른 여러 종류의 균들도 나왔을 겁니다.”
“그랬겠네요. 근데……. 음. 이게 나왔다. 역시 환자의 면역이 정상일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데…….”
“일단 이거 토대로 항생제 감수성 검사 들어가는데, 아무래도 바난으로는 안 될 거 같습니다.”
“네, 그렇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딱히 임상적으로 별 효과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아……. 환자는 어디 있어요?”
“집에요. 의사이시기도 하고 하니까요.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도움 받은 게 벌써 얼만데요.”
수혁은 병리과 교수와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센터로 향했다.
센터에는 여느 때처럼 여러 의사들이 대기 중이었다.
단 제자들은 없었다.
협진 때문에 여기저기 흩어진 까닭이었다.
보다 적극적으로 교육을 하기 위해 일부러 초진을 제자들에게 시키게 되었다.
해서 여긴 이현종만 앉아 있었다.
“어, 아들. 가는 거 같더니?”
“아, 입원 전담의 환자 있잖아요.”
“어어, 알지. 이름이 뭐더라? 밥 먹으면서 들었더니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이현종은 방금 환자를 살리고 온 참이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심장혈관 뚫고 왔으니 뭐, 실제로 살렸다고 할 수 있었다.
“윤창우요.”
“아……. 기억나네. 내과지? 그래. 그렇게 잘하던 애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뭐…….”
이현종 기준으로 보면 잘하는 애가 몇 명이나 있겠나.
일 년에 한 명 있으면 많은 거라 할 수 있었다.
사실 김인수도 잘해서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라 착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아무튼, Capnocytophaga Sputigena이 나왔어요.”
“응? 그거……. 상재균 아냐? 그게 폐렴도 일으키나?”
“아주……. 드물게요. 보통은 백혈병과 같은 병이 있을 때 동반되죠.”
“면역 결핍자에서 생긴다, 이 말이지?”
“네.”
“이거 큰일이네.”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고 해서 아예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현종은 근본이 착한 사람 아닌가.
무엇보다 제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썩 괜찮은 편이었다.
“정상 면역에서는 아예 없나?”
“아뇨, 케이스 리포트 상에서는……. 있네요. 보니까. 아, 근데 이 사람은 수술받고 나서 발생한 거네.”
“수술……. 그럼 일시적으로 면역력이 확 떨어졌을 거 아냐.”
“그렇죠.”
“이런 망할. 걔 지금 어딨어?”
“집이요.”
“집? 증상이 괜찮은가?”
“그때 봤을 땐 꽤 심했는데, 입원을 죽어도 안 하려고 하더라고요. 불편하다고.”
“하여간, 의사 새끼들…….”
의사치고 병원에 있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있던가?
사실 입원하는 걸 선호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였다.
그런데 그 병원이 직장이기까지 한다면?
싫은 감정이 곱하기가 되긴 할 터였다.
해서 외래 진료나 약 먹는 데 인색하게 굴지 않는 것도 있긴 할 터였다.
큰 병 되기 전에 빨리 치우려고.
허나 조심한다고 해서, 관리한다고 해서 큰 병이 안 생기나.
병은 불행이다, 그냥.
“오라고 해, 지금.”
“네. 전화하고 있어요.”
“그래.”
나이가 젊건 많건 간에 그냥 찾아온다.
특히 큰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기 마련이었다.
오늘 하루도 운이 좋았구나, 뭐 이런 생각 말이다.
“아……. 네. 가겠 쿨럭. 쿨럭. 습니다.”
전화를 받은 윤창우는 곧장 병원으로 왔다.
연신 기침을 하면서였는데, 그래서 그런가 운전도 제대로 못 해서 엄청 느리게 왔다.
들어 보니 평소 같으면 10분이면 올 만한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30분 이상 걸려 왔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것도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쿨럭. 왔습, 쿨럭.”
“아니, 이 꼴이 되도록 집에 있었다고?”
“어, 워, 원장님.”
“아휴. 미련한 새끼. 일단 자리 좀 내줘 봐. 접수는 이따 하고.”
이현종은 그 꼴을 보자마자 우선 치료실에 눕혔다.
접수하는 사이에라도 검사와 처방은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끌려 들어간 윤창우는 일단 피부터 뽑았다.
그리고 연결된 라인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약을 맞기 시작했다.
Capnocytophaga Sputigena에 맞는 항생제였다.
“타조박탐으로 들어갈 거예요. 이상한 균이 나왔어요.”
“이상한 균…… 쿨럭. 이라면? 혹시 결핵?”
“아뇨. 결핵도 아니고…….”
수혁은 윤창우에게 그에게서 나온 균을 알려 주었다.
윤창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름 내과 의사로 살아온 지 10년도 넘은 참인데 처음 보는 균이라서 그랬다.
로컬이 아니라 입원 전담의로 태화 의료원 환자들을 보아 온 사람인데 보지 못한 균이니만큼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저번에 검사했던 거……. 사실 혈당이 좀 떴죠?”
“아……. 네. 근데 그때 제가 완전 금식은 아니어서요. 수액도 맞았고.”
“그래요. 지금은요?”
“지금은……. 제가 아직 아침 안 먹었으니까……. 거의 12시간 이상 금식입니다.”
“그럼 지금 제대로 검사를 해 보는 게 좋겠어요.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다행히 자가면역질환은 딱히 없는 거 같긴 한데……. 원래는 당뇨 없었어요?”
“네? 저 그런 거 없습니다. 몸을 보세요.”
“몸이랑……. 뭐……. 이 정도면 관계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윤창우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이나 군살이 없었다.
왕자까지는 아니지만 하여간 근육도 적당히 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겠나.
병이 있는데.
억울해도 할 수 없다.
아프면 그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
‘이러면 더 안 좋은데.’
[그러니까요. 으음…….]
그렇다고 해서 말을 굳이 해 주진 않았다.
미리 말하면 뭐 하나.
기분만 나쁘지.
해서 당뇨 진단을 위해 경구 당 부하 검사 및 당화 혈색소 검사를 나갔다.
검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환자, 그러니까 윤창우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일단 공복 혈당이 110.
100이 넘어갔으니 내당능 장애인데…….
뭐 사람이 아프면 여러 가지 스트레스 호르몬 때문에 올라갈 수 있다고 억지로 납득해 볼 수는 있었다.
허나 포도당 용액을 먹고 2시간 뒤 체크한 혈당이 201이었다.
“어…….”
“당뇨 진단 기준에 부합하네요.”
“아……. 이게 혹시 제가 아파서……”
“뭐 아프면 좀 올라갈 수도 있긴 한데. 이 정도는 이상하죠. 게다가 선생님 지금 열이 39도에 호흡수도 빠르고, 심박 수도 빨라요. 패혈증이에요. 혈당이 어쩌면 오히려 기저에 비해 더 떨어졌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러게 그때 그냥 당화 혈색소도 나가자니까 왜 고집을 부려요?”
“그…….”
질문이야 했지만, 수혁은 알 거 같았다.
아마 부정 단계였을 터였다.
꼭 부정 분노 타협의 단계가 암과 같은 커다란 병에 걸려야 오는 건 아니지 않나.
노화나 하여간 부정적인 어떤 것을 겪게 될 때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저 단계는 밟게 되기 마련이었다.
“에휴. 이 자식 이거. 젊은 놈이. 결혼은 했어?”
“네? 아, 네. 얼마 전에.”
“근데 왜 안 불렀어.”
“네?”
“농담이고. 이거……. 이렇게 갑자기 생긴 경우엔.”
이현종이 끼어들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건강 검진을 꾸준히 받게 되기 마련이었다.
일단 힘들기도 하거니와 전염병에라도 걸리면 큰일 아닌가.
하여간, 그때 보니 당뇨는 없었다.
헌데 지금은 명백한 당뇨이지 않나?
‘설마…….’
이현종은 수혁과 눈을 마주쳤다.
‘너도 그거 의심하는구나.’
그리고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환자는 바로 CT실로 향하게 되었다.
“왜 갑자기 CT를?”
사실 환자도, 즉 윤창우도 모르진 않았다.
알지만…… 굳이 궁금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보죠.”
“쿨럭.”
곧 위잉 소리를 내며 CT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수혁과 이현종은 아직 젊다고밖에 할 수 없는 환자의 영상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아, 온다.”
“음…….”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넘어온 영상에서 췌장부터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탄식을 터뜨렸다.
“이런.”
“이거…….”
췌장의 중간쯤에 뭔가 있었다.
종양이다.
암일까?
이내 조영제가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현종, 수혁 부자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환자 쪽을 바라보았다.
저쪽에서는 이쪽을 볼 수 없는 유리였기 때문에 딱히 알아볼 걱정은 하지 않았다.
물론 그보단 그냥 췌장암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에 다른 걱정이 치고 들어올 여지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아.”
“휴.”
조영제가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영상이 넘어오기 시작했고, 둘의 입에서는 역시나 동시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암은 아니었다.
그냥 좀 고약한 형태의 양성 종양일 뿐.
“죽진 않겠네.”
“네. 다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