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8화 본진 학회 (1)
윤창우에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최종 병명이 나왔다.
염증을 동반하는 췌장 양성 종양에 의한 췌장 실질 파괴에 의한 이차적인 당뇨 발생에 의한 드문 원인으로 인한 폐렴.
이름이 굉장히 긴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복잡한 증례였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윤창우를 비롯한 다른 입원 전담의들 또한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당뇨라 이거죠?”
“네. 췌장 실질에 생긴 종양 때문에요. 사실 이것도 드물긴 하죠. 악성과 양성을 구분하는 기준 중의 하나가 당뇨가 동반되는지 아닌지인데…….”
“재수가…… 없었던 걸까요? 아니면 제가 뭔가…….”
“뭐, 뭘 해서 생기는 건 아닐 겁니다. 다만 너무 자신 있게 검사를 안 받으신 건 문제긴 하죠.”
수혁은 회진을 가서 최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누가 의사 환자 아니랄까 봐 또 떠오르는 슈퍼스타의 회진 아니랄까 봐 의사가 와글와글했다.
다른 병실에 있던 환자들까지 나와서 뭐 하는 건가 하고 들여다보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번 폐렴 일으킨 균이 워낙 드문 놈이기도 하고 또 이런 놈들 특징이 독해서……. 약을 세게 맞아야 할 거 같아요. 이미 맞고 있죠?”
“아, 네. 이미페넴으로……. 제가 살다 살다 이런 걸 맞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쵸. 이건……”
이미페넴.
통칭 슈퍼 박테리아에도 쓸 수 있는 카바페넴 계열의 항생제로, 일반인들은 사실 구경할 일도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대학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들도 거의 그랬다.
일단 쓰려면 감염내과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걸 처방하던 사람이 맞게 되었으니 기분이 어떻겠나.
심지어 윤창우는 아직 마흔이다.
만으로 하면 38이고.
“하아……. 이런 게 노화일까요.”
“뭐……. 그렇죠. 사실. 어리면 종양도 잘 안 생기긴 하니까요.”
“그, 그렇군요.”
윤창우는 수혁이 ‘에이, 아닙니다. 아직 젊습니다’라고 할 줄 알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가 득달같이 이어진 팩트 폭행에 그저 멍한 얼굴이 되어 고개만 끄덕거렸다.
수혁은 그런 윤창우를 보면서, 최근 학회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내과 학회나 통합진료학회는 아니었다.
노인학회였다.
뭔 학회가 그렇게 많냐고 할 수도 있는데…….
내과 정도 사이즈 되는 학회에는 엄청나게 많은 유관 학회가 있기 마련이었다.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는 수혁조차 한 번에 그 학회들을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노화라……. 하긴 요새 관심이 폭증하고 있다고 했지?’
하여간, 그쪽 학회에서는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이런저런 파악을 해 나가고 있었다.
일반 대중 인식 개선을 위해 유튜브도 하고 있는 나름 젊은 학회다 보니 그랬다.
이름은 노인학회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노인은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주된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대한민국에서는 노인학회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실질 수명은 전 세계 탑급인 데 반해 건강 수명은 OECD 국가 중 중간도 못 가고 있어서 그랬다.
이 또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건강 관리라는 걸 호들갑 떤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고 또 너무 긴 노동 시간 또한 한몫하고 있었다.
아니, 일할 나이에만 일을 오래 하는 게 아니라 일할 나이가 지나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막상 일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집에서 놀면 뭐 해, 나와서 소일거리 하는 거지 뭐 라고 하지만 제도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죽도록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후 보장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신기한 건 대한민국에서는 젊은 사람들 또한 노화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다는 점이었다.
‘나는 잘 몰랐는데…….’
[수혁이야 마이웨이로 사니까요. 연애도 이제 시작한 사람 아닙니까?]
‘나 모쏠 아니었거든? 으읏. 영상 틀지 마. 틀지 마!’
[그럼 인정하시죠.]
‘응, 이번이 처음이야.’
[시원해서 좋네.]
대한민국은 지금 인생 타임 테이블이 바로 이전 세대에 비해 뒤로 10년 이상 밀려 버렸다.
애초에 언제 취직하고, 언제 결혼해서 언제 애를 낳고, 언제쯤 애 대학 보내서 결혼시킨다는 ‘타임 테이블’이라는 게 있다는 게 이상한 일이긴 한데…….
유교 문화권에서는 상당히 일반적인 것이니 거기까지 수혁이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수혁과 같은 의학자는 다만 그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을 들여다볼 뿐이었다.
하여간, 그 타임 테이블이 존재하고 또 10년 이상 밀렸기 때문에 지금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10년 이상 어려야만 한다는 무의식 속의 강박이 있을 거라는 것이 노인학회의 생각이었다.
유튜브에 늙지 않는 법만 올리면 그렇게 터진다고 했다.
‘유튜브라…….’
[우리도 좀 그런 거 제대로 해야 할 수도 있겠죠?]
‘그렇긴 해. 뭔가 사람들에게 알리려면 하긴 해야 되는데……. 뭘 해야 어그로를 끌 수 있을까?’
[환자 보는 거 라이브.]
‘아니……. 그건 직업 윤리에 위배되잖아…….’
[그런가? 그럼 뭘 해요?]
‘몰라 나도. 고민 좀 해 봐.’
[인풋이 부족합니다. 관련 데이터가 너무 없어요.]
‘그럼 이쪽으로 제일 유명한 유튜브를 좀 볼까?’
[어떠한 것이 있습니까?]
수혁이라고 해서 뭐 잘 알겠나.
다만 이런 확신은 있었다.
자기가 아는 채널이라면 무조건 메이저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어지간한 건 모른다.
그 말을 역으로 보면 수혁이 알면 대박이라는 거다.
‘닥터 프렌즈?’
[이름이 뭐 그래요?]
‘몰라 나도. 근데 100만 넘었다던데?’
[오……. 100만……! 그럼 제일 큰 건가?]
‘나도 몰라. 근데 뭐……. 100만이면 크지. 우리 학회가 100만이면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호오……. 근데 그게 세계 최고의 의사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 겁니까?]
‘그건……. 모르겠다. 아빠랑 삼촌이랑 상의를 좀 해 봐야 할 듯?’
수혁은 그렇게 유튜브에 관해 얘기를 나누면서도 환자와의 대화 또한 놓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윤창우 환자가 노화라는 얘기를 듣고 벙찌게 된 탓도 있었다.
뭔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혁은 그런 윤창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일단 노화 방지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노화 자체를 인정하는 겁니다. 마흔이면 이제 뭐……. 노화 시작된 지도 한참이지 않습니까?”
“그…… 그렇…… 군요.”
놀랍게도 이게 위로였다.
수혁식 위로긴 한데…….
실제로 수혁을 따라온 사람들, 그러니까 통합진료센터 쪽 사람들은 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윤창우는 수혁에게 익숙하진 못하지 않나.
‘놀리나?’
심지어 노화를 논함에 있어 수혁은 아직 너무 어렸다.
“그렇게 인정을 하시고……. 전보다 적게 드시고. 더 좋은 건 운동해서 근육량을 키우시는 게 좋긴 하죠. 소화 능력과도 연관이 있으니까요. 티가 좀 덜 나더라도……. 에이그, 다리가 이게 뭡니까?”
“저……. 운동하는데…….”
“무슨 운동이요?”
“구기 종목……?”
“구기 종목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좋은 운동이긴 하지만 부상 위험이 올라가는 건 알고 계시죠? 일단 하던 건 하시되 근육 운동도 따로 하는 게 좋을 거 같군요.”
이것 보라.
끝까지 들어 보면 결국엔 제대로 된 조언과 응원이지 않나.
“아, 그리고 외과에서는 장준혁 교수님이 수술해 주시기로 했어요. 요새 제일 잘하는 분이니까……. 문제는 아마 당뇨 자체는 해결이 안 될 거라는 거죠. 인슐린을 보충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아……. 네…….”
“잘 관리만 하시면 뭐…….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마흔이라는 나이가 노화가 시작된 나이긴 해도 어디 크게 아플 나이는 아직 아니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이 환자에 더해 수혁은 치쿤구니야에 걸린 웹소설 작가를 찾아갔다.
필명이 소울풍인데…… 이름은 임풍훈이었다.
둘 다 필명 같은데, 임풍훈이 실명이라니까 뭐.
아무튼, 이젠 고비를 넘긴 참이었다.
그래서만은 아닌데 환자는 무드가 참 좋았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하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올려다보고 해서 손목이 좀 아프다는 거?
“괜찮으세요?”
“아, 아. 네네.”
“작가님 아주 좋아지셨습니다. 다행입니다.”
옆에 있던 보호자, 그러니까 출판사 직원이 몸을 일으켰다.
보통 한 명만 와 있어서 이 출판사 상당히 사람 관리 잘한다는 얘기를 들을 텐데, 여기는 셋이나 와 있었다.
심지어 하나는 대표라 했다.
아마 이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을 터였다.
“그……. 외람되지만…….”
그 대표라는 사람이 간단한 회진 후에 찾아왔다.
사실 이 환자는 이미 진료도 됐고, 정해진 치료만 하고 있다 보니 회진할 것도 없어서 1분 내외로 끝난 참이었다.
물론 뭐 개인적으로 궁금해하는 게 있다면 얼마든지 답해 주겠지만 작가 본인이 별 관심이 없었다.
왜인지는 대표가 알려 주었다.
“지금 작가님 신작이 진짜 초대박이거든요. 미쳤어요.”
“네네.”
제목이 <하루살이 기사>라고 했었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니라지만 이름이 좀…….
“그래서 말인데 작가님 언제부터 집필이 가능하겠습니까?”
“네? 일을 시킨다고요?”
“아아. 너무 목소리가 크지 않습니까.”
“본인도 이게 안 좋은 일이라는 건 알고 계시네요.”
“아, 안 좋다뇨. 반응 좋을 때 쭉 써 줘야 이게 독자님들한테 인이 박인단 말입니다. 작가님을 위한 말이에요.”
“네에……. 으음. 뭐……. 일은 하셔야 되니까.”
치쿤구니야.
사실 수혁도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전에는 그냥 이런 병이 있구나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건데…….
알면 알게 될수록 진짜 개같은 병이었다.
“사실 통증은 몇 개월 갈 겁니다.”
“허이구…….”
“특히 관절통이요. 무릎이나 손목 같은 곳.”
“안 되는데…….”
“약 먹으면 그래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거 같진 않아요. 하지만 무리하면 더 오래갈 겁니다. 보고된 바에 따르면 후유증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아니, 그럼…….”
“근데 생업이 글이라면 뭐……. 어쩔 수 없죠. 써야죠. 만약 형편이 괜찮으시거나, 혹은 대표님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이런 것도 방법입니다.”
“어떤……? 오……. 이런 게 있습니까?”
파라핀 치료제라고 해서 뜨끈한 촛농에 손을 담그는 치료였다.
이게 온열 효과가 있어서 생각보다 관절염에 좋았다.
집에서 쓰기엔 물품이 비싸고 관리하기가 빡세서 그렇긴 한데…….
그래도 뭐……. 에이스 작가라면 쓸 만할 터였다.
“제가 사 드려야겠네요.”
“대표님이 사람이 좋으시네요.”
“네? 하하하. 저희 업은 작가가 생명이거든요. 뭐, 어떻게 교수님도 좀 쓰시겠습니까? 내과의사물이 없거든요. 케이스 대강 섞어서 쓰면 대박 날 거 같은데요.”
“에이……. 설마요. 외과도 아니고.”
“아니아니, 그냥 교수님 주인공으로 쓰면 될 거 같아요. 제가 검색해 보니까 진짜 웹소 주인공 그 자체시던데요?”
“하하하. 농담도. 아무튼, 오늘 오후는 학회 때문에 제가 없을 겁니다. 급한 일 있으면 보게 될 수도 있는데 없는 게 좋겠죠?”
“아, 네네. 알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