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89화 (1,189/1,303)

1189화 본진 학회 (2)

내과 학회.

매년 수백 명씩 나오는 내과 의사들의 총 본산.

그런 것치고는 돈이 없긴 한데, 아무튼.

이번에는 좀 분위기가 달랐다.

로컬은 똑같이 어렵긴 했다.

내과야 뭐…….

왜인지 모르게 편한 과처럼 인식이 되어 있다 보니 정책에서도 소외되어서 그랬다.

알고 보면 진짜 대단히 빡센 과인데…….

“이야……. 좋은 데서 하네, 이번에는.”

“코엑스……. 여기 엄청 비싸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다 교수님의 흥복이옵니다.”

“흥복…… 이긴 하지.”

“맞습니다!”

아무튼, 이번에 다른 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좀 무리를 해서였다.

수혁의 위력을 여러 병원들, 특히 외국 병원들에서 체감을 하게 되지 않았나.

그중에서도 자존심 강한 미국 병원들이 훅 가 버렸다.

뉴욕의 마운트 사이나부터 해서 보스턴, 메이요 등등…….

거의 미쳤다 할 만한 수준의 병원들이 수혁을 인지한 정도가 아니라 그의 실력을 인정하게 되어 버렸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여.”

“그러니까요. 지금 이게 현실인가.”

원래도 내과학회는 국제 학회다.

말 그대로 전 세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오는 게 당연한 학회라는 얘기다.

그래서 홈페이지도 영어로 만들어져 있고 결제도 카드로 다 된다.

하지만…….

만든 사람도, 만들라고 했던 사람도 실은 알고 있었다.

말만 그렇지, 실은 국내 학회라는 걸.

아무리 대한민국 의료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다고는 해도 초청 강사가 아닌 일반 청중이 오는 경우는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미국에서만 오십 명이 넘는데요?”

“불법 체류하려고 그러나?”

“미국 시민이 대한민국에서 불법 체류를 해요? 그것도 의사가? 이렇게 비싼 돈 내고 와서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왜…… 그렇게까지 뭐라고 하냐. 네가 봐도 이상하잖아. 안 이상해?”

“이상하긴 하죠. 근데 더블 체크 해도 맞는 거 같긴 한데요? 대부분 뉴욕에서 온다고 되어 있어서 전화해 보니까 태화 의료원 뉴욕 센터랑 연관이 있는 거 같습니다.”

“태화……. 아, 그래서 싱가폴이랑 두바이에서도 이렇게 오는 건가?”

“아무래도. 와……. 요새 좀 차이가 벌어진다 벌어진다 하더니 이게 진짜였네요.”

학술이사와 회장의 대화였다.

각기 학회 내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임을 감안하면, 굉장히 없어 보이는 대화라고 할 수 있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만한 상황이니까.

갑자기 100명에 가까운 외국인이 그것도 청중으로 등록을 하지 않았나.

하필 여느 때와는 달리 좀 더 후진 곳에서 개최를 하려던 찰나였는데…….

“이거 되겠나?”

“안 되죠. 이게 뭡니까…….”

후진 곳이라고 해서 뭐 거지 같은 곳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학교다, 학교.

뭐 학회라는 게 배움의 장이니 대학교를 빌려서 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긴 했다.

허나 대한민국의 어떤 나라인가.

유교의 나라다.

체면…….

남에게 어떻게 보여지는가가 무척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어쩐지 선진국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가 진짜로 중요한 사람들이 많지 않나?

젊은 사람들이야 좀 그런 게 덜하지만 아무래도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난 기성세대들은 그런 게 굉장히 심했다.

“코엑스…… 가지.”

“코엑스요? 거긴……. 너무 비싸지 않아요? 저희 학회 형편이.”

“형편은 어렵지만 이거 봐. 지금도 5명 더 등록했어. 107명이야. 외국인이……. 미국인만 60명인데 지금 그놈들에게 이런 거 보여 주고 싶나?”

“안 되죠, 그건.”

“인천 공항에서 딱 내릴 때 이런 생각 하겠지? 와……. 한국 꽤 사네? 그리고 송도 지나면서 와, 한국 좋네? 강남 호텔 가면 놀랄 거야. 뉴욕이랑 다를 바 없네? 근데 이 학회장으로 가면 어떻게 되겠어?”

“별로네? 하겠죠.”

“안 되지. 코엑스로 간다. 거기라면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지.”

“하긴……. 그렇죠. 근데 어떻게……?”

“일단 제약 회사 번호 다 줘봐 . 내가 홀수, 자네가 짝수. 사정 설명해서 싹 다 돌려 보자고!”

“네!”

그 둘은 어떤 시대적 사명감을 느꼈더랬다.

외국인들……

그중에서도 콧대 높은 의사들.

그중에서도 최고의 병원 소속인 놈들에게 뭔가 보여 줘야 한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단 말이었다.

“네? 그건 너무 과한……. 네? 미국인들이?”

“그럼 저희가 또 가만히 있기 어렵죠.”

“하긴 이럴 때도 됐죠.”

“저희 돈 많습니다. 이번에 한번 쓰죠.”

진심이 전해져서일까?

전화를 받은 제약 회사 사장들 또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아마 비슷한 세대라서 더 그럴 거 같긴 한데, 아무튼, 뭔가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한데 모여서 이번 내과학회는 무려 코엑스에서 열리게 되었다.

그 주인공이지만 이유는 자세히 모르는 수혁은 그저 어리둥절한 얼굴로 코엑스 안으로 들어선 참이었다.

병원도 강남에 있다 보니 지척이라 해도 좋을 만한데…….

원래 대학 병원 의사들의 삶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코앞이라고 해도 병원에서 못 나가면 그걸로 끝이었다.

“여기 되게 좋다. 어떻게 지하에 도서관이 이렇게 크게 있을 수 있는 걸까.”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사람들이 어쩌면 이렇게 많죠?”

“다 일 끝나고 나온 건가?”

“그럴 리가요. 백수 아니겠습니까?”

“허어. 나라의 미래가 어둡도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그렇습니다. 허어…….”

수혁뿐만 아니라 안대훈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들 머릿속에서 사람들의 삶이란 대충 7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에 끝나면 편한 날이었다.

그래야 하기 때문에…….

오후부터 나와 있는 사람들은 다 백수로만 보였다.

그렇게 일행은 뜬금없이 백수 취급받게 된 수많은 멀쩡한 인파를 헤치고 걸었다.

사실 학회장은 지하가 아니라 위에 있긴 했다.

여기 들른 것은 안대훈이 수혁에게 세상 사는 구경을 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우리 교수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그보다는 데이트를 위한 장소 견학을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은가?

수혁이 대체 언제 밖으로 나와 볼 일이 있나.

문제는 하윤 또한 비슷하단 점이었다.

병원에 올인한 인생 둘이 만나면 데이트도 병원에서 돌림판이나 굴리게 된다는 걸 이 둘이 보여 주고 있었다.

“아, 저기.”

“그래, 올라갈까? 사람이 엄청 많네. 여긴 한번 놀러 와도 좋겠다.”

“하하, 그렇죠. 하윤이랑 한번 오시죠.”

“어……. 그, 그럴까.”

“이제 다 알고 있으니 숨길 필요도 없으십니다, 하하.”

“그, 그래.”

안대훈은 그중에서도 특히 맛집으로 뽑히는 가게를 가리켰다.

코엑스라는 데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사실 지하에는 맛집이 별로 없기 때문에 조금만 맛있으면 저렇게 되기 마련이었다.

다만 안대훈도 그런 것까지 알기엔 무리가 있는 사람이다 보니 세상에 둘도 없는 맛집으로 소개하게 되었다.

별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아직 수혁이나 하윤이나 서로를 본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 뭘 먹는 건 완전 부차적인 일로 치부될 만한 관계였기에 그랬다.

“오……. 닥터 리.”

“오……. 저분인가?”

“그 닥터 스튜어드 박살 낸 사람?”

“어어. 그 사람. 지금 뭐 한다고 하더라……?”

“낚시한다더라. 은퇴했어. 완전 망가져 가지고…….”

“그래도 나름 스타였는데. 흐음……. 그럼 마운트 사이나 뉴욕 병원이 자리가 좀 비겠는데?”

“비긴 하지. 아마…… 오늘 왔을걸?”

“오늘? 여기? 아……. 저분 때문이겠군…….”

딱 1층 리셉션 데스크에 오자마자 외국인들이 꽤 많이 보였다.

최종적으로 거의 300명에 가까운 외국인들이 청중으로 등록하게 되어서 그랬다.

국내 회원들이 대충 레지던트들까지 해서 1500, 1600명 정도 오는데 외국이 300명이나 더 오게 되니 드문드문 눈에 띄는 정도가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눈에 띄었다.

그냥 고개만 돌려도 보일 정도였다.

물론 제일 눈에 띄는 건 당연히 이수혁이었다.

일단 본인부터가 유명인인 데다가 지팡이를 짚고 있다 보니 수혁을 아는 사람은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옆에 있는 이들 또한 범상치가 않았다.

안대훈은 늘 그렇듯 머리에 광까지 내고 와서 태양권을 시전하고 있었다.

그 옆의 하윤은 완전 대비되는 느낌을 주기 위함인지 아름다웠고.

“뭐야……. 너도 왔어?”

“당연히 왔지. 저 사람 저거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한국에 있을 사이즈가 아냐.”

“뒷조사까지 했나?”

“기본 아닌가……? 불법도 아니고.”

“그거야 그렇긴 한데…….”

“으음.”

다른 일반 청중들도 알아봤지만, 그보다 빠르게 수혁을 알아본 이들도 있었다.

바로 헤드헌터들.

지금까지 죽 언급되었던 보스턴 의과 대학 병원, 메이요 클리닉, 마운트 사이나 외에도 엠디 앤더슨, 존스 홉킨스 등등 유수의 병원에서 와 있었다.

그들 나름대로 수혁에 대해 조사를 해 둔 참이었다.

다들 자신은 있었다.

왜?

한국 의사들 연봉이 어떤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중에서도 로컬이 아니라 대학 병원에 있는 이들은 더 적었다.

실력에 따라 차등 지급이 되는 것도 아니다 보니…….

‘불만이 있겠지.’

‘저대로 좀만 더 크면 세계 최곤데…….’

‘우리가 보기엔……. 이미 드문 케이스 해결하는 데는 세계 최고야.’

‘명망만 더 쌓이면 명실상부……. 근데 받는 돈이 연봉 1억 좀 넘는다고 했지?’

연봉 1억.

미국 달러로 하면 약 8만 달러.

큰돈이지만 글쎄.

감히 세계 최고를 운운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는 연봉이라고 하면 고작이라는 말도 서슴없이 쓸 수 있을 터였다.

여기 있는 전원이 그 열 배 아니라 스무 배 이상도 넉넉히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병원과 따로 연락하지 않고도 200만 달러까지는 자기 재량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언제 간다…….”

“먼저 가 보지 그래.”

“아니, 너부터.”

“흐음.”

그들은 일단 눈치 게임 중이었다.

이제 와서 상대의 실력을 보겠네, 어쩌네 하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이미 상대의 실력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먼저 패를 까면 여기 있는 놈들이 전략을 바꿀 것이 뻔해서 그랬다.

뭐…….

쉬운 사람이라면 바로 승낙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미 한국에서도 한바탕 스카우트 제안이 있었더랬다.

심지어 한국으로서는 이례적이게도 10억을 부르려고 했던 병원도 있었고.

‘생각보다 아주 까다로운 사람……. 돈보다는 뭔가 다른 걸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되지.’

문제는 그 다른 게 뭔질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사생활을 나름 들여다봤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런 제기랄.’

맨날 병원에만 있는데 뭘 알겠나.

그러한 연고로 인해 그들이 넘어야 하는 또 다른 산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알고 있겠지.”

“알지.”

“이런 개새끼들. 감히 우리 수혁이를.”

“돈으로는 밀려. 이건 어쩔 수 없어.”

“그건 맞지……. 그래도 뭐 어떻게 안 된대?”

“보너스로 한번 거하게 쏘신대, 김다현 회장님이. 그래도 억 단위밖에 안 돼. 쟤들은 수십억일 거야.”

“그럼 어떻게……?”

“일단 수혁이 의중이 중요해.”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이 모였다.

신현태는 방금 입을 연 이현종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의중이 중요한데 우리는 왜 이렇고 모였지?”

“나는 이렇게 해서라도 수혁이를 지키고 싶으니까.”

“아.”

“넌 아냐?”

“아니, 맞지.”

“그러니까 우리는 저 스카우터들을 막는다. 불만 있는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렇게 작전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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