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화 본진 학회 (3)
작전과 별개로 수혁은 학회를 둘러보고 있었다.
누가 코비드 끝나고 하는 학회 아니랄까 봐 관련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감염내과 말고는 상관없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포스트 코비드 시대는 비단 내과뿐 아니라 모든 과에 해당하는 것이라 봐야 했다.
실제 정신과에서도 이번 코비드 사태로 인해 발생한 여러 정신 질환 유병률의 변화 등이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지 않던가.
“포스트 코비드 신드롬이……. 역시 대세로구만.”
“그러게요.”
하윤은 학회장 옆에 위치한 커피 부스에서 받아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의 말마따나 아예 하나의 컨퍼런스룸을 따로 떼서 쭉 포스트 코비드 신드롬만 다루고 있을 정도였다.
기존에 없던 병이다 보니 병의 후유증 또한 남다른 모양인데…….
이쪽 강의는 좀 들어 볼 생각이 있었다.
모르면 놓칠 테니까.
“이쪽은 노화.”
“노화도……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관심이 많으니까요.”
“아, 저기 정인구 교수님 게시네.”
“아, 안녕하세요!”
뭐 대세는 있지만 그게 하나는 아니었다.
이비인후과처럼 작은 과도 분과에 따라 갈래가 팍팍 나뉘는데 내과처럼 거대한 과가 어찌 딱 하나의 대세로 묶일 수 있겠나.
최근 가장 핫한 분야라 할 수 있는 항노화 관련한 컨퍼런스 또한 잔뜩이었다.
그다음이 바로 수혁과 하윤이 준비한 개인 맞춤형 의료였다.
뭐 어떻게 보면 딱히 다른 분야와 갈리는 부분도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항노화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원칙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
개개인에 맞춰서 진단하고 처방해야 한다는 것은, 기술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피할 수 없는 대전제라 할 수 있었다.
“좋아. 펠로우로는 발표 데뷔네.”
“뭐……. 교수님 덕에 준비는 완벽하죠.”
“그래, 이보다 더할 수는 없지.”
수혁은 밝게 웃는 하윤을 보면서 지난 몇 주간을 떠올렸다.
매일같이 보고 싶었지만 또 그럴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었다.
아, 얼굴은 본다.
보는데…….
따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교수만 해도 바빠 죽겠는 게 대학 병원인데 수혁은 그 정도가 좀 지나치지 않던가.
심지어 하윤도 바빴다.
서로 호감이 있어 시작한 연애긴 하지만 아직 둘 다 서로만 바라보기엔 자신들의 꿈도 놓지 못해서 그랬다.
오히려 이쪽이 더 반짝반짝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기에 사랑을 지속하기엔 유리하긴 할 터였다.
반대급부로 아쉬움이 좀 남긴 하겠지만.
[수혁 본인 발표보다 더 신경 써서 대본 짰습니다.]
‘고마워.’
[내가 진짜……. 인간들 반응 하나하나 염두에 두고 짰다…….]
‘고맙다니까?’
[맛있는 거나 먹읍시다. 제발 하윤이 좋아하는 엽떡은 그만 먹고.]
‘엽떡 맛있던데?’
[솔직해집시다. 로제 떡볶이……. 그래, 맛있지. 처음 한두 번은 저도 좋아했어요. 하지만 이제 나는 고기를 원합니다. 애초에 수혁은 단백질 소화 능력이 떨어져서 먹는 거라도 많이 먹어야 된다고. 이러다 좀만 더 나이 먹으면 근감소증 생겨요.]
‘알았어…….’
둘의 연애로 인해 가장 커다란 피해를 보고 있는 건 바루다라 할 수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속삭이는 맥락 없는 로맨스는 이제 참아 줄 수 있었다.
아니, 참아 줄 수 있다기보다는 바루다 또한 수혁이 딴 주머니 찬 것처럼 다른 연산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바루다는 이제 습관적으로 수혁과 하윤 둘만 남아 이상한 기류가 흐르게 되면 자신의 연산 과정에 여전히 존재하는, 또 수혁 때문에라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존재할 비합리성을 제거하기 위해 혼자만의 세상으로 침잠할 수 있었다.
허나 먹는 건 어쩐단 말인가.
사실상 수혁과 공유하는 감각 중 가장 예민한 눈을 제외하면 미각이야말로 바루다의 핵심이라 할 수 있었다.
환자 볼 때 발생하는 즐거움, 곧 창조주가 알고리즘상 만들어 둔 것 외에는 유일한 즐거움이기도 한데 그걸 자꾸 바꿔 먹고 있으니 어찌 괴롭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은 고기다. 양념 소갈비에…… 신라면 자작하게 끓여서 우유 부어.]
‘아, 그건 확실히 남들하고는 못 먹지.’
[하지만 수혁도 몸은 솔직하군요. 군침 돌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맛있긴 해.’
수혁은 유당 불내증이 있다.
우유를 먹으면 설사를 한다 이 말인데…….
그래서일까?
우유 부어 먹는 신라면은 배덕감이 더해지는 건지 뭔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무슨 생각 하세요?”
문제는 이걸 먹기 위해서는 조리 기구가 갖추어진 곳에 가야 한다는 것인데…….
수혁은 집에 일주일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놈인 데다가, 최근엔 좀 더 자주 간다고 해도 저녁을 하윤과 먹고 있다 보니 벌써 몇 달째 못 먹었다.
미각에 예민한 것과는 별개로 기억은 시각처럼 딱 기록해 두지 못하는 뇌의 특성상 바루다의 도움을 최대한 받아도 완벽한 재현은 불과했다.
그렇게 아련한 눈을 하고 있으려니 하윤이 물어 왔다.
바로 옆에 앉아서 갑자기 말없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 아아.”
예전 같으면 여기서 라면 먹고 싶다고 했을 터였다.
별 뜻 없이 하는 말이라 해도 사회 통념상 라면 먹고 갈래 라는 이상한 밈이 있는 한 그 말을 한 당사자도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상황.
허나 이제 수혁도 닳고 닳았다.
뭐 제대로 연애하려면 아직 한참 더 닳아야 하긴 하겠지만…….
“소갈비 생각했어.”
[병신이야?]
“아……. 저 발표할 건데.”
“응. 잘 하면 갈비 사 주려고.”
[이 새끼 봐라? 라면은?]
‘야식.’
[콜.]
그래도 임기응변이 상당히 늘지 않았나?
뭐 더 대화가 이어졌다면 더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있었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타이밍에 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자자, 이제 곧 이번 세션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좌장 맡기엔 상당히 젊은 교수였다.
오 원장이 조지고 안국태가 관뚜껑에 못 박은 칠성 내과에서 배출한 걸출한 교수였다.
아무래도 위에서 내려오는 유산이 많이 끊긴 참이다 보니, 아예 새로운 방향으로 틀었는데 그게 이쪽 디지털 헬스케어였다.
요즘 생긴 개념이기도 하고 사실 제일 중요한 게 외부 업체와의 협력이다 보니 아무래도 머리 굳은 노교수보다는 젊은 교수들이 하기에 유리한 면도 있었다.
꽤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칠성이 망했다, 망해 간다 하지만 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고 산다는 말이 있지 않나.
저력을 보여 준 셈이라 할 수 있었다.
“디지털 헬스케어를 활용한 개인 맞춤 진료에 대한 강의가 주를 이룰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강의가 강의다 보니 특별한 패널들을 모셨습니다. 최윤섭 박사님, 박사님……. 최윤섭 박사님은 디지털 헬스케어의 미래라는 책을 저술하시고 현재는 디지털 헬스케어 벤처 캐피탈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나문호 박사님은 네이버 헬스케어 연구소 소장으로 국내 제일의 전문가 중 한 분이십니다.”
거기에 더해 패널들의 면면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아무리 태화에서 전자를 위시해 이쪽을 밀어주고 있다고 해도 본업은 제조업이지 않나?
그에 비해 저쪽은 태생이 IT 계열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뛰어들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태화 의료원 소속이라 해도 저쪽과 일을 할 가능성이 더 컸다.
애초에 칠성도 칠성 전자 제끼고 일하고 있는 모양새였고.
“하윤아, 씹어 먹자.”
“네.”
발표 내용 자체가 뭐 어마어마하긴 어려울 터였다.
현업에 있는 게 아니라 임상 의사지 않나.
인사이트가 아무리 좋아도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건 어려웠다.
다만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옳은가? 그리고 과연 임상에는 어떤 식으로 적용하는 것이 맞는가? 정도에 대한 얘기는 가능했다.
“발표를 맡은 우하윤입니다.”
그렇게 하윤이 단상 위에 올랐다.
인사를 하고 있으려니, 뒤에 들어와 있던 스카우터들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세트…… 라고 했지?’
‘뭐 아직 결혼은 안 했으니 부부는 아닌데……. 파악한 결과 닥터 리는 저 사람 말고는 만나 본 여자가 없어요.’
경쟁자끼리의 대화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큰 건이다 보니 스카우터들도 혼자 온 게 아니라 쌍으로 또는 무려 셋 이상이 움직이는 팀도 있었다.
그중 이쪽을 제일 신경 쓰고 있는 건 의외로 수혁과 전혀 접점이 없던 앰디 앤더슨병원이었다.
다른 데서 팍팍 치고 올라가는 데 반해 앰디 앤더슨이 요새 좀 주춤해서 그랬다.
연구 쪽이야 뭐 돈 쏟아붓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니 비슷하게 간다 해도 임상은 아니지 않나.
‘좋아……. 뭐, 발표도 도와줬겠지?’
‘네. 병원 내부 보안이 빡세서 못 들어가 보긴 했는데…….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펠로우면 국내 펠로우보단 아무래도 좀 직급이 낮습니다.’
‘그래, 그렇지……. 흐음. 이수혁……. 과연 교육 실력은 어떨지 볼까.’
‘네네.’
앰디 앤더슨 측 외에 다른 측 스카우터들 또한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고 있었다.
뭐 이제 와 실력을 평한다,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다만 교육 실력에 대한 물음표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게 사실이었다.
워낙 나이가 어리지 않나.
안대훈이나 김인수도 이제 갓 펠로우 2년 차 레벨이고 김성진 또한 말이 임상강사지, 여기 온 지는 2년에 국제 학회 데뷔도 겨우 치른 마당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다른 청중들도 집중한 상황에서 하윤은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교수님……. 오빠가 알려 준 대로만 가자.’
속으로 이 생각만 하고 있었다.
과장 조금만 더 보태면 수십 번은 족히 상의하고 외운 내용이다 보니, 잠시 딴생각을 한 것 정도로는 전혀 흔들림 없는 발표가 가능했다.
“지금 시도 중인 여러 앱의 한계는 다름 아닌 스마트 폰 외에 별도의 디바이스를 요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개발자들이 스마트폰이 무엇인지 간과하고 있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스마트폰이 무엇입니까?”
적절한 때에 질문 던지고.
“음악 듣기 위해 MP3 들고 다니고, 영상 보기 위해 PMP 들고 다니고, 인터넷은 제대로 된 거 하려면 사실상 PC를 써야 하고, 전화는 휴대폰을 이용해야 했던 것을 다 하나로 묶은 겁니다. 근데 고작해야 건강 정보 하나 더 얻자고 다른 디바이스를 이용해야 한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반감이 있겠습니까?”
또 적절하게 질문 회수하고.
“그렇기에 지금 각광받는 헬스케어 앱을 잘 들여다보면 이미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가능한 기능들을 헬스케어, 즉 건강 정보 수집에 잘 쓰고 있는 앱들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중에는 디바이스도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러한 앱들 중 임상적으로 활용할 만한 것들을 추려 보고, 아쉬운 점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해 보고자 합니다.”
의사들도 관심을 보이긴 했다.
하지만 이 세션에서만큼은 의사들보단 오히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그들에겐 이러한 임상의사의 시각이 무척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틈엔가 컨퍼런스룸은 숨소리만 남기고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