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92화 (1,192/1,303)

1192화 본진 학회 (5)

“이번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애들 봤어?”

“봤지. 못 봤겠어?”

“재작년에 뽑고 작년에는 안 뽑아서 막상 해 보니까 별로였나 했더니만…….”

“장난 아니던데. 애들 퀄리티가…… 일단 태화 의료원 분원들로 뿌릴 거라고 했지?”

“그랬지. 근데 그렇게 되면 지방 분원 싹 망할 거 같은데.”

“지방?”

내과 학회.

수천에 달하는 인원이 모이는 학회.

정작 전문의급에서는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학회는 또 아니긴 했다.

이비인후과처럼 작은 과라면 당연히 본진 학회가 제일 중요할 텐데, 내과처럼 큰 과에서는 오히려 분과 학회가 훨씬 중요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춘계 학회의 중요도가 부각되는 측면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각 병원의 후학들 평가였다.

이번 통합진료센터의 동량들이 보여 준 모습은 가히 위력적이라 할 수 있었다.

비단 김성진, 안대훈과 같이 애초에 좀 이름이 알려졌던 애들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해서 모인 내과 과장급 교수들이 죄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대화를 선도하던 칠성 병원 과장이 한쪽 입술 끝을 비틀어 올렸다.

“왜?”

딱 표정만 봐도 아, 이 새끼 뭔가 심상찮은 얘기를 하겠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해서 아선 병원 과장이 아까보다 좀 더 긴장한 얼굴이 되어 되물었다.

‘우창윤 교수가…… 호들갑 떠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았어. 근데 뭐 더 있나?’

이미 아선은 태화 의료원 내과의 위력을 실감한 지 오래지 않나.

주요 병원 중에서는 아마 통합진료센터로 제일 환자 많이 보내고 있을 터였다.

처음엔 우창윤이 약점이라도 잡혔나 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확실히……

‘벽이 느껴지지.’

예전에는 누가 이딴 소리 하면 너 노력은 충분히 해 봤냐는 말이나 튀어나왔더랬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이수혁, 이현종 콤비를 마주하게 되면, 그러니까 노력까지 뒤지게 하는 천재를 마주하게 되면 평범한 수재는 절망하게 될 뿐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다행이야, 어찌 보면.’

의사끼리 경쟁이라 다행이다.

어릴 때부터 인생의 낙으로 남아 있는 무협지였다고 생각해 봐라.

태화도 문파고 아선도 문판데 저기에만 이현종, 이수혁과 같은 천재 고수가 있다?

망했다, 벌써.

멸문지화 당했어.

‘칠성이 제일 다행이지.’

아니, 아선은 미리 숙였으니까 그만한 화는 피했을 거다.

하지만 칠성은 개겼으니까 다 죽었겠지.

“이번에 우리가 입수한 자룐데……. 태화 생명에서 땅을 샀더라고?”

칠성 병원 과장은 설마하니 아선 병원 과장이 자기 머리와 몸뚱이가 분리되는 상상을 하고 있다는 건 생각도 못 한 채 말을 이었다.

사실 현대인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않나.

심지어 지금은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아선 병원 과장의 포커페이스도 대학 병원 짬밥만큼이나 수준급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조차 땅 샀다는 말에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대관절 그룹에서 땅 살 일이 병원 짓는 거 말고 또 뭐가 있단 말인가.

“어, 어디?”

물론 아직 경악까지는 하지 않았다.

장소를 모르잖아.

어디 뭐 지방이라면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방 병원은 경쟁 상대가 아니니까.

과장 조금 보태서 메이요가 와도 괜찮을 거 같았다.

접근성의 한계로 인해 메이요 아니라 메이요 할아버지가 와도 안 될 거다.

“과천.”

“과천…… 거기 그럴 만한 데가 있었나?”

하지만 과천이라면……

이건 좀 위험하다.

강남에서 도로 하나 타고 가면 바로 도착이잖아.

그 말은 곧 강남권까지 싹 털어 먹힐 수 있다, 이 말이었다.

애초에 태화 의료원이 지금 강남권 환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실정인데…….

이 망할 놈들이 과천까지?

“있더라고……. 부지도 굉장히 커.”

“허가는? 허가를 받아야 할 건데? 그게 막 되는 게 아닐 거 아닙니까?”

“세상에 대학 병원이 자기 지역구에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아.”

과천…….

아선 병원 과장의 머릿속에 점점 과천이 어디에 있는지 구체화되고 있었다.

서울 남쪽.

경기도 남부에서의 접근성이 상당히 좋다는 얘기였다.

아니, 과천만 해도 분당을 제외하면 가장 커다란 베드타운이기도 하지 않나?

그쪽에서 쭉쭉 밀려온다면…….

“게다가 태화야, 태화. 너도 아선에 있어 보니 알잖아. 윗선에서 말뿐이 아니라 뭔가 돈을 쓸 때는 이미 얘기 다 끝난 거야.”

“하긴…….”

태화, 칠성, 아선.

대한민국을 이끄는 3대 기업이지 않나.

병원에서야 태화가 압도하고 있지만, 그룹 전체로 보면 나머지 둘도 그리 꿀리는 건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셋 중 하나라도 망하게 되면 대한민국도 망한단 소리가 나올 만큼이나 거대하다.

그렇다 보니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라간 사람들은 그룹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경유착이라고까지 할 건 아닌데……

하여간, 어딘가 개발하고 할 때 대기업이 끼어들면 아무래도 팍팍 되는 느낌이랄까?

“우리 윗선에서도 간 다 보고 방해하다가 안 되니까 물러선 걸걸. 물론 입찰은 할 거 같긴 한데…… 그래 봐야 뭐…… 땅 산 거 보면 다 끝났지.”

“하긴 병원 부지를 산 거면…….”

“엿 먹이려고 애를 쓰긴 할 거야. 우리 그룹 대단들 하시니까. 하지만 우리가 생각할 건 그런 게 아니지.”

“X 된 거 같은데. 과천에도 태화가……? 거기 내과 애들 누가 가려나? 설마 이수혁은 아닐 거고.”

“이수혁 교수가 바로 가진 않을 거 같은데…… 이번에 봤잖아. 제자들 위력을…….”

“그나마 안대훈이는 군대 갈 건데……. 김성진 걔가 칠성에 있을 때도 그렇게 잘했어?”

아선 과장의 말에 칠성 과장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시발놈이…….’

안국태 생각이 나서 그랬다.

이런 인재가 있는 줄 알았으면 키웠을 거다.

‘발표하는 거 보니까 애가 그냥 영민하던데…….’

두 눈 뜨고 뺏긴 마당 아닌가.

약간 멕이는 건가 싶어서 아선 과장 놈의 얼굴을 보니 그게 맞았다.

‘하긴 우린 같은 편이 아니지?’

태화라는 압도적인 상대가 있어서 이렇게 만나서 얘기하는 거지, 실상은 적이라 해도 무방했다.

특히 칠성의 아이덴티티를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랬다.

이놈의 그룹은 홍보조차 상대를 깎아 먹는 식으로 하지 않던가.

병원 운영도 똑같이 한다.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전에 마취 가스 감염 사태 때도 칠성이 뭔가 하지 않았나.

역으로 당해서 병원 전체가 진짜로 맛탱이 갈 뻔했지만.

“몰라…….”

“모르면 안 되지. 과장씩이나 돼서. 아무튼, 그런 애들 가면…… 직통으로 이수혁, 이현종이랑 연락하는 거 홍보되면 위험한데…….”

“그러니까 말이지. 외국이나 신경 쓰는 줄 알았더니만.”

“국제 센터들도 잘되나?”

“잘되지. 이번에 온 청중들 그거 거의 다 이수혁 때문에 온 거라더만.”

“아. 맞다. 근데 어쩌면 태화 망할 수도 있는데.”

아선 과장의 말에 칠성 과장은 물론이거니와 애초에 조용히 있던 다른 병원 원장들 또한 더더욱 조용해졌다.

태화가 망한다.

대한민국 의료계 전체를 생각해 보면, 그리 좋은 일은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여기 있는 이들 또한 태화의 도움을 받아 본 경험이 많았으니까.

그런 데가 망하면 이게 어떻게 되겠나.

몇 년은 퇴보할 수도 있었다.

수혁과 이현종 콤비의 위력은 자각하고 있건, 그렇지 않건 간에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지 오래였으니까.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 이번 학회 때 미국 대형 병원 스카우터들이 왔다더라고?”

“스카우터? 헤드헌터들?”

“어어, 그렇지. 목표는 이수혁.”

“아…… 아! 그래,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사실 국내 레벨은 아니긴 해.”

칠성 과장이라고 해서 자존심이 없을까.

오히려 자존심 빼면 시체라 해도 좋았다.

이렇게 커다란 병원에서 과장까지 할 정도인데 자부심이 없으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니겠나?

그만큼 이수혁의 위력이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면 될 터였다.

포기하면 편하단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래, 벽 그 자체다.

“결과는 못 들었는데……. 뭐, 이게 대강 들어 보니까 미화로 150만 달러 이상더라고, 연봉이.”

“와. 나는 안 불러 주나?”

“불러 주겠어?”

“그렇게까지 말하나.”

“이수혁 교수쯤 되니까 바로 그렇게 제안을 받는 거지. 아마 거기서 실력 증명하면 연봉 더 늘걸?”

“근데 이수혁 교수……. 돈에 관심 없는 걸로 유명하던데.”

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딨나 싶을 텐데.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른 것은 맞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돈으로 뭘 치환하고 싶은지가 다 달랐다.

그중에서 수혁은 특이하게 돈으로 치환할 수 없는 걸 원하는 인간이었다.

케이스.

아니, 케이스 해결로 인한 도파민.

“그렇긴 하지. 아니, 차랑 집도 그냥 받은 거 쓴다며? 내가 그렇게 벌면 스포츠카도 몰 텐데.”

“그러니까…… 그래도 150만 달러면…… 미국에서도 집이랑 차 나오나?”

“그렇다고 들었지.”

“누구한테 들은 거야. 우창윤?”

“응. 기조실장님이 말씀해 주셨지. 거의 뭐 태화 프락치잖아.”

“아선도 망조다, 망조야. 기조실장이 프락치라니.”

“아무튼, 그래서 확실한 건데…… 결과를 못 들었네.”

아선 과장의 얼굴을 보면서 칠성 과장은 왜인지 미국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저런 제안이 들어온다면……

뉴욕에 가서 펜트하우스 살면서 매일 뮤지컬 보고 미슐랭 맛집 가고 명품 사고.

와!

“그냥 들어가긴 아쉬운데…… 환자 보러 가야겠다.”

정작 그 제안을 받은 장본인은 지금 세차는 비 올 때만 하는 제네시스 타고 병원 응급실로 향하고 있었다.

하윤과 함께였다.

“저녁은 예약해 뒀어. 거기서 먹자.”

“네, 좋아요.”

기분?

당연히 좋았다.

일단 둘이 간다는 것도 좋은 일인데, 하윤은 심지어 발표로 인해 여러 곳에서 연락까지 받을 정도로 잘했으니까.

‘엄청 바빠지겠네…….’

외부 업체들과의 협업이 예상 아니, 예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병원…….

정확히 말하면 통합진료센터엔 다트 기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회의실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누구도, 원장조차 뭐라 하지 못했다.

보통 맥주 먹으면서 내기하는 게 다트지만 이곳 센터에 있는 다트는 좀 남다른 면이 있어서 그랬다.

“여기.”

신현태 차를 얻어 탄 덕에 먼저 도착한 안대훈이 광까지 낸 다트를 수혁에게 건넸다.

“이건 우리가……! 이현종 교수님께……!”

“아들이잖아. 쓰라고 해.”

“하지만…….”

“나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하지만 우리 수혁이가 저런 걸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거 같니?”

“아뇨.”

“그래.”

이현종과 김인수 등의 반발이 있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이현종은 아들 바보고, 수혁은 환자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거절할 리가 없는 놈인데.

심지어 오늘은 연봉 20억도 때려치우고 온 마당이었다.

그러한 사람이 다트 좀 던져 보겠다는데 뭐 어쩌겠나.

-통합진료센터 전용 다트 기기 실행합니다.

패드에 불이 들어오고, 다트에 불빛이 어지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외래가 어쩐지 느낌이 좋군요.]

‘오케이.’

수혁은 심호흡을 하고는 바루다의 인도에 따라 다트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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