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93화 (1,193/1,303)

1193화 두경부외과 (1)

슈우욱.

수혁이 던진 끝이 미끈한 다트는 그대로 날아 다트판에 팍 하고 꽂혔다.

그와 함께 어지럽게 빛나던 네온사인이 멈추었다.

동시에 기기와 연결된 아래 모니터에 두경부외과 외래 진료실이란 문구가 떴다.

수십 개로 갈린 표적 판에서 외래를 딱 맞힌 셈.

“후후.”

[과연…… 힘 안 쓰는 운동은 잘 하는군요.]

‘이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나는 운동선수지.’

암만 바루다의 도움이 있었다 해도, 제대로 날린 건 순전히 수혁의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뭐 그래 봐야 이걸 가지고 잘난 척하는 건 무리긴 했다.

미리 뭘 맞히겠다고 말해 놨으면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지 않나.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잘난 척은 외래 진료실 가서 하면 되니까.

“그럼 갈까요?”

하윤이 앞으로 나섰다.

그 뒤로는 안대훈, 김성진 등이 섰고 이현종과 신현태, 조태진은 수혁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다들 밝디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경부외과 진료실은 또 처음이지 않나.

어지간한 의사들이었다면 학회 끝난 날 뭔 진료냐고 하겠지만, 여기 모인 이들은 어지간한 의사들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또라이라는 한 단어로 퉁친다 해도 아무도 억울해할 수 없는 이들뿐이었다.

“뭐야……?”

“무슨 일 났나?”

열 명도 넘는 의사들이 한 번에 떼 이동을 하는 모습은 제아무리 태화 의료원이라 해도 보기 드문 장관이었다.

우르르 몰려가는데 다들 하나같이 눈이 빛나고 있지 않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많이 아픈 환자가 아닌 경우엔 가슴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그중 몇몇은, 그러니까 이미 진료가 끝나 수납할 일만 남았거나 혹은 수납까지 해 버린 이들은 저도 모르게 뒤를 졸졸 따르고 있었다.

“적색경보, 적색경보.”

“네?”

그 모습을 마주하게 된 이들은 마냥 호기심만 표출할 수 없었다.

이미 저들…….

메뚜기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환자 보고 다니는 통합진료센터는 태화 의료원 내에 유명 인사들이지 않나.

잘하는 놈들이긴 했다.

그래, 환자 만족도도 대부분 좋았다.

하지만 외래는, 그중에서도 대학 병원 외래는 말 그대로 톱니바퀴 굴러가듯 굴러가도 시간이 모자랄 수 있는…….

말 그대로 현세에 강림한 생지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지 않나.

“너 모르냐? 저놈들…… 와서 환자 본다고.”

“의사들이니까…… 근데 우리 과 아니잖아요?”

“그걸 신경을 안 쓴다니까?”

“무슨…… 그런……?”

외래에서 잔뼈가 굵은 시니어 간호사의 말에 이번 달에 신규로 들어온 외래 사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식적이지 않은 말이지 않나.

뭔 의사들이 자기 과 환자도 아닌데 함부로 와서 막 본단 말인가.

“아…… 간다. 어디냐. 어디로 가냐.”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시니어급이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뭐……. 외래 사원과 간호사는 그 직급 체계가 다르니 명백한 상하 관계는 아니라 하지만, 어찌 되었건 자신은 계약직 사원이고 이쪽은 정규직이지 않나.

무엇보다 경험치가 아예 달랐다.

“아, 두경부외과 쪽이네.”

“아……. 거기 되게 무서운 곳 아니에요?”

“맞지. 거긴…… 진짜. 음. 전화해 줘야겠다. 환자분들 엄청 예민할 텐데.”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꽤 좋은 사람이기도 했다.

지금도 봐라.

경고도 해 주고 있지 않나.

이런 일에 경고까지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차치한다면 그랬다.

“어어. 그 새끼들 간다, 거기로.”

“응? 아……. 그러네. 아씨…… 오늘 백정환 교수님 외래도 있어서 환자들 진짜 많은데.”

“힘으로 막을 수 있겠어?”

“되겠어? 원장님에 이현종 교수님까지 오네. 아…….”

“그렇네. 여기서 보니까 그래. 아니, 내과 오늘까지 학회 아냐?”

“저 사람들이 그런 거 신경 쓰냐. 명절에도 막 나와서 환자 보고 하던데. 눈 마주쳤다. 암튼, 알려 줘서 고마워.”

두경부외과 외래 간호사는 해맑게 웃고 있는 하윤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이거 하나 왔다면야 뭐 대충 뭉개서 보낼 수 있을 터였다.

외래 담당 간호사는 수간호사 급이니까.

애초에 서로 실례를 범하지 않아야 하는 사이다 이거다.

하지만…….

“안녕하세요. 통합진료센터 우하윤입니다.”

상대는 병원 내에 보이지 않게 그어진 선 따위는 그대로 무시한 채 안으로 들어왔다.

욕하기도 좀 그럴 만큼이나 밝게 웃으면서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만큼이나 밝은 미소는 최근 들어 처음이었다.

“으읏.”

맨날 병원에서 아픈 사람만 보고 또 그런 사람들만 보느라 지친 인간 군상들만 봐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체 너희들은 어떻게 이렇게 밝을 수 있는 거냐…….’

하윤만 그런 게 아니라 그 뒤로 우르르 들어서고 있는 놈들 다 하나같이 밝은 얼굴이었다.

심지어 나이 많은 이현종이나 신현태까지 그랬다.

보통 저 나이쯤 되면…….

굳이 의사가 아니라도 지쳐 가지 않던가?

일부 연예인들을 제외하면, 가뜩이나 빡센 대한민국에서 수십 년 버티느라 얼굴 근육이 망가지기 마련인데…….

“잠시 환자 좀 보겠습니다.”

“아니. 여기 다 암…….”

“그러니까요.”

그렇게 압도당한 채 당황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다들 자신을 지나쳐 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는 대머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 보니 숱하게 모여 있는 환자들이 보였다.

보통은 암 환자라 해도 딱 봐서 티가 나진 않는 법이었다.

배 수술을 했건 가슴 수술을 했건 옷을 입으면 안 보이지 않나.

물론 항암 치료를 독하게 하면 여전히 머리가 빠지고 또 진행한 암 때문에라도 살이 많이 빠지고 하긴 하지만 적어도 겉모습만 보고 뭔가 다르단 느낌을 주긴 쉽지 않은 법이었다.

하지만 여긴 아니다.

‘플랩 수술한 환자들이 오늘따라 많아……. 해야 할 사람들도 있고.’

두경부외과.

말 그대로 머리, 얼굴, 목을 다루는 외과인데, 이비인후과의 분과다.

양성 질환은 나머지 분과가 다루고 이 두경부외과는 해당 부위에 생기는 암을 본다.

암은 잘라야 하는 게 원칙인데 얼굴 부위이다 보니 자르고 나면 결손 부위가 문제가 되지 않겠나?

그럼 그걸 허벅지나 팔뚝 살로 메워 줘야만 했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메운 곳은 여러 가지로…… 모양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저, 저기!”

얼굴은 생각보다 사람의 정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애초에 사람이 사람을 인지하는 방법이 바로 얼굴을 알아보는 것이지 않나?

그만큼 얼굴에 변형이 생길 경우, 정신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 두경부외과에서 수술 후 자살 사고가 빈번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라는 얘기다.

외래 간호사는 근무한 지 오래된 만큼 그런 일 또한 겪어 온 마당이었기 때문에 절박한 얼굴이 되어 수혁을 붙잡을 수 있었다.

“네?”

“부디 조심해 주세요. 여기 환자분들 많이 예민합니다.”

그리곤 속사포처럼 걱정이 담긴 당부의 말을 쏟아 냈다.

[하긴……. 두경부는 그럴 수 있죠.]

‘논문에서 봤지. 현장 의료진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역시 조심하는 게 좋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애초에 여기까지 와서 행패 아닌 행패를 부린다는 것부터가 아무리 봐도 다행이라는 말은 쓸 수 없을 거 같지만…….

아무튼, 수혁은 꽉 막힌 꼰대는 아니었다.

“네, 물론이죠.”

무엇보다 그가 읽은 논문에서도 이에 대한 내용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간호사의 말을 무시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진짜예요.”

거기에 더해 간호사의 절박해 보이는 표정 또한 한몫했다.

수혁뿐 아니라 다른 의사들 또한 여기선 평소보다 좀 더 조심하긴 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론만 놓고 말하자면, 사실 그렇게까지 걱정할 일은 없을 터였다.

수혁은 일단 환자를 지켜보고 난 후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의사가 열 명도 넘게 들이닥쳤다는 것 자체가 소란이긴 했지만.

“뭐야?”

“VIP라도 왔나?”

“아는 사람은…… 아니, 아니야.”

환자들 중 이렇게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사람들이었다.

후두를 비롯해 갑상선이 아닌 목 쪽의 암으로 수술받은 환자들 중 태반은 기관절개술을 시행 받았거나 혹은 후두 전 절제술을 시행 받았기 때문에 말하기가 어려웠다.

숫제 후두가 제거된 경우엔 성대도 없는 것이기에 식도 발성이나 기계 발성 등을 이용해야 했는데, 일상생활은 몰라도 이렇게 수다를 떨 정도는 못되었다.

그뿐 아니라 설암, 즉 혀의 암에 대해 수술받은 상태면 재건을 했다 해도 그 범위에 따라 말하기가 어려울 수 있었다.

해서 많은 수의 환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청중이 되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통합진료센터 사람들이잖아.”

연신 고개를 저어 대던, 경부 임파선 절제술을 크게 받은 탓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고개를 젓는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환자가 말을 이었다.

“통합……?”

“그게 뭔데요?”

서울의 환자들은, 또 젊은 환자들은 이제 미디어에 많이 노출이 된 통합진료센터를 알아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방의 노인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집단이었다.

두경부암이라는 게 사실 유병률이 워낙에 낮기 때문에 일부 잘하는 병원으로 모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기 외래는 더더욱 지방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다들 경부 절제술 받은 이에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워낙에 험한 수술을 받고 또 험난한 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동료 의식이 강해서이기도 할 터였다.

“엄청 유명한 분들인데……. 진료 선수들이래. 진단을 막 한다는데?”

“수술이 아니고?”

“응, 진단. 내과래.”

“에이…… 김샜네.”

그렇게 모여들었던 환자들은 내과란 말에 탁 맥이 풀린 듯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막말로 외과 중에서도 제일 험악한 외과인데 내과가 와서 사실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이미 수술을 받았거나, 확진이 되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이들에게는 관심 대상이 되는 게 더더욱 이상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여전히 관심을 끊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다른 병원에서 또는 로컬에서 암이 의심되니 큰 병원에 가 보라는 얘기를 들은 이들.

‘혹시…… 난 암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암을 진단받았을 때 부정 단계라는 말이 괜히 있겠나?

인간의 뇌는 자연히 그렇게 행동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수혁과 바루다의 눈에 쑥 들어왔다.

[저들이 아직 확진 받지 않은 환자들입니다.]

‘확진 받은 사람들 중에 진단이 바뀔 확률도 있을까?’

[거의 없죠. 여기 태화의료원입니다. 게다가 두경부암 확진은 대개 조직검사를 미리 해 보고 내리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긴 하지.’

확진 받은 사람에게 가서 실은 암이 아니라 하면 얼마나 기쁘겠나.

의사도 신나겠지만 환자 입장의 기쁨은 어마어마할 터였다.

아니, 뭐라 말하는 것도 사실 무리였다.

어찌 상상하겠나.

말 그대로 죽음의 문턱에 갔다 온 셈일 텐데.

그 말은 반대로 해 보면, 아닌 거 같다고 했다가 암이라면 절망도 어마어마할 거란 얘기가 된다.

‘주의해서 골라 보자고.’

[네. 그렇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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