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94화 (1,194/1,303)

1194화 두경부외과 (2)

‘이, 이수혁 사마……!’

환자들 중엔 일본인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할아버지가 한국인, 할머니가 일본인인 혼혈 가문 출신의 일본인.

그래 봐야 정체성은 일본인 그 자체였고, 실제로 할아버지가 당대에 이미 일본에서 나름 자리를 잡은 집안 출신이다 보니 나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갑자기라고 하기는 뭐하고, 이전부터 슬금슬금 끓어 오르던 한류 열풍이 일본 열도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k-pop을 필두로 해서 쳐들어왔던 한류는 이제 드라마, 영화로도 아예 일본을 집어삼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나온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 골든아워’의 열기는 대단했다.

‘실존 인물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던데…….’

백강혁.

한국의 의사들은 다 그럽니까?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 그대로 멋을 온몸에 둘둘 두른 캐릭터였다.

그렇게 감명을 깊게 받고 있으려는데 다니던 회사에서 서울 지사 지원자를 받기 시작했더랬다.

이전 같았으면 강제 발령을 해도 인원 모으기 어려웠다는데……

-2명 가는 건데 지원자가 500명이 넘어? 이 새끼들 한국 가려고 회사 다니나.

전해 오는 소문에 따르면 사장이 이렇게 일갈했다고 한다.

그럴 만했다.

일 년에 뽑는 신입 사원 수가 기껏해야 200명 남짓한데 500명이라니.

입사 연차 3년 이내 사원으로 제한한다고 했는데 이 지경이면 거의 뭐 다 썼다고 보면 되었다.

그 경쟁률을 가네다 마사히로가 뚫었다.

할아버지가 한국 사람이고, 그 덕에 한국말을 꽤 잘했던 덕이었다.

그렇게 서울로 날아왔을 때만 해도 진짜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더랬다.

헌데…….

-이런 지 얼마나 되셨다고요?

처음엔 그냥 혓바늘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서울에 놀러 온 건 아니지 않던가.

일하러 왔다.

뭐……. 일이야 일본에서 하던 것과 큰 차이는 없었다.

오히려 한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필요했을 뿐, 딱히 사람이 더 필요했던 건 아니었다 보니 일본에서보다 더 편했다.

-야! 요새 서촌이 뜬다더라!

-에이, 요새는 다시 압구정, 청담이에요.

노는 게 문제였다.

이놈의 서울은 말 그대로 불야성,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도쿄도 크게 다를 거 없지 않냐고 하겠지만 거긴 진짜 일부 지역 빼면, 10시 넘어가면 불이 다 꺼지거나 사람이 확 줄어 버리는데……

‘한국인들이 진짜…… 개빡세더라고…….’

여긴 일도, 법정 근무 시간 자체가 일본보다 더 많으면서 노는 데 목숨을 걸었나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나 지났을까?

심적으로 괴롭진 않았더랬다.

노는 건데 뭐, 힘들어 봐야지.

게다가 아직 20대다, 20대.

헌데 갑자기 혀가 아파서 보니까 잔뜩 헐어 있길래,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알보칠인지 나발인지 하는 악마의 치료까지 받았다.

-이거면 무조건 낫는다!

한국인 과장의 엄지 척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지만, 낫지 않았다.

낫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지만 했다.

아프기도 아픈데 궤양이 점점 커지는 게 뭔가 심상찮았다.

해서 동료들에게 상의를 했더니, 특히 자신감을 보였던 과장에게는 좀 비난하는 투로 상의를 했더니 이런 말이나 들었다.

-아니, 넌 이렇게 심해졌으면 병원을 가야지. 왜 우리한테 오냐.

억울했다.

병원이 그게…… 어?

얼마나 비싸고 또 예약은 얼마나 어려운데.

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진 것은 불과 한 시간 후의 일이었다.

동네 이비인후과는 가자마자 20분 정도 기다리자마자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진료를 맡은 담당 의사는 무려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라는 태화 의료원을 나온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거…….

의사가 인상을 잔뜩 썼다.

아파서 갔는데 앞에서 마냥 웃고만 있는 것도 기분이 썩 좋을 만한 일은 아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의사가 인상 팍 쓰고 아…… 하아…… 쓰읍 등의 한숨을 내쉬는 것만큼은 아닐 터였다.

-큰 병원 가 보시죠. 다행히 제 은사님이 큰 병원에 계시니까……. 전화 따로 드릴게요.

-그…….

-아유……. 젊은데……. 아유…….

그 의사는 어떻게 봐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환자의 일이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된 것처럼 안타까워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의심되는 진단명에 일본 사람 배려한답시고 한자로 써 놓은 건…….

‘설암(舌癌)…….’

바로 알아보겠잖아.

암.

암…….

“저기. 환자분.”

그렇게 이수혁 사마를 보고 있다가 자연스레 떠오른 암이란 진단명에 고개를 푹 떨구고 있으려니 누군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키엑.”

“네?”

“이, 이수혁 사마.”

이수혁 사마가 앞에 서 있었다.

수혁은 살짝 어리둥절했다.

사마?

연예인이야?

[생각해 보면…… 학회에서 마주쳤던 일본 사람들, 대부분 이수혁 사마라고 했었습니다.]

‘하긴…… 뭐 다큐라도 나왔나?’

[모르겠습니다만…… 뭐 좋은 일이죠. 라포가 바로 잡혔으니.]

‘그거야 그렇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쁠 건 없지 않겠나.

그런 생각과 함께 수혁은 환자를 좀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았다.

[아무튼, 확실히 손가락에 작은 궤양이 있군요.]

‘그래. 이런 게 그냥 막 생길 리는 없어.’

[게다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이 커다란 힌트입니다.]

‘그렇지.’

환자는, 그러니까 가네다 마사히로는 수혁이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수혁에 대해 들었던 말만 떠올리고 있었다.

-이수혁 사마 같은 의사가 있으면 일본은 다시 도약할 수 있다.

-국제 진료소…… 우리도 뜰 수 있을 텐데.

작은아버지가 의사라 전해 들을 수 있는 말이 많았다.

잘 들어 보면 딱히 수혁 때문에 밀리는 건 아닌 거 같긴 했다.

‘영어를 너무 못해서 불리한 거 아닌가……?’

국제 진료소를 열려면 영어가 잘 통해야 할 텐데, 그게 안 되지 않나.

뭐 아무튼, 아무래도 좋았다.

수혁에 대해선 지겨울 만치 들었으니.

그 외에 수혁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도 제작 중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모르긴 해도 백강혁만큼이나 훌륭한 사람이니까 나오는 것일 터였다.

“환자분, 외래 진료 얼마나 남았죠?”

“아……. 저 4번째요. 한 20분이면 들어갈 거 같습니다.”

“그럼 딴 데 가기는 애매하고. 여기 빈 데가…… 아, 저깄네. 일단 이리로.”

“아……. 네. 이수혁 사마.”

수혁은 그사이 환자의 손가락에 난 궤양을 보다 면밀히 관찰한 후 빈 외래 진료실로 향했다.

두경부 외과가 암만 험한 과라고 해도 커다란 과는 절대 아닌데, 그럼에도 외래 진료실이 상당히 거대하게 조성이 되어 있었다.

태화 의료원 두경부외과에 백정환이라는 걸출한 사람이 하나 있어서 그랬다.

사실상 대한민국 두경부외과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태화는 그런 인물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이현종, 김승규급은 아직 아니다 보니 석좌 교수는 못 받았다.

“여기 앉으시죠.”

“어, 네. 근데…….”

“다 제 동료입니다. 안심하셔도 좋아요.”

“그…… 네.”

빈 진료실에 들어서자 이엔티 체어부터 눈에 들어왔다.

수혁이 체어 맞은편의 진료 의자에 앉는 사이, 안대훈과 하윤은 환자를 이엔티 체어에 앉혔다.

그 빠릿빠릿한 모습에 위기감을 느낀 김성진이 뭐라도 해야겠다 하다가 내시경을 세팅했다.

수혁은 그렇게 세팅된 후에 환자를 향해 물었다.

“혹시 진료 의뢰서 있어요?”

“아, 네. 여기.”

“줘 보세요.”

“네. 이수혁 사마.”

수혁은 환자에게 의뢰서를 받았다.

가네다 마사히로란 이름부터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밑에 적힌 설암이라는 진단명도.

[통증을 동반하는 궤양으로 왔군요.]

‘경부 림프절도 만져졌다고 쓰여 있네. 따로 조직검사까지는 하지 않았어.’

[로컬 의원이라 그랬을까요?]

‘모르지. 어쩌면…… 진단에 오히려 방해가 될 거라 여겼을 수도 있어. 궤양을 동반하거나 궤양 형태를 띠는 설암의 경우엔 조직 검사했을 때 제대로 안 나올 수도 있으니까.’

[하긴…… 로컬은 실력과 무관하게 시스템이 일단 따라가질 못하죠.]

‘그렇지.’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환자를 바라보았다.

“아 해 보실까요.”

“네.”

내시경을 들고 환자에게 다가갔다.

[냄새가…….]

‘궤양에 의한 냄새야. 염증이…… 꽤 오래됐나 본데.’

입에 궤양이나 기타 염증이 있는 경우엔 구취가 날 수밖에 없다.

통증 때문에라도 일단 양치가 어려우니까.

게다가 염증은 어떤 식으로든 냄새가 나기 마련이고.

‘크네.’

[22mm x 13mm 정도 됩니다. 이거 진짜 설암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이는데요?]

‘그렇긴 하네…… 손가락의 병변은 아예 따로일 가능성이 있겠어.’

[그럼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뭐…… 아직 다른 얘기 안 했잖아.’

[말은 안 해도 환자 얼굴 보면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지금.]

바루다의 말에 따라 수혁은 입 안이 아니라 환자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바루다에 비해 상대의 표정을 알아보는 게 어렵기도 하거니와 입도 잔뜩 벌리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게 진짜 사람인가.]

수혁은 바루다의 비난을 뒤로하고 궤양을 좀 더 면밀히 살폈다.

확실히 조직검사를 하지 않은 덕에 주변으로 흉터가 지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궤양 자체를 평가하는 데 유리했다.

‘주변 경계가…… 불규칙해.’

[양성 궤양이 아닐 가능성이 점점 올라갑니다.]

‘이런 망할. 흠……. 목도 좀 볼까.’

[네. 일단 목을 보죠.]

수혁은 내시경을 빼내고, 환자가 몸을 가다듬을 때까지 좀 기다렸다가, 이내 의자를 휙 돌렸다.

“어…….”

“경부 림프절은 뒤에서 만지는 게 정확해서요. 아마 거기서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아……. 네. 그랬던 거 같습니다.”

“그래요. 좀 만져 볼게요.”

수혁은 그렇게 환자의 뒤에서 경프 림파선을 만졌다.

설암이 있던 부위가 좌측인데, 좌측 경부……

그중에서도 특히 턱밑으로 부종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2cm 가까이 될 만큼 커진 임파선과 그보다 좀 작은 사이즈의 임파선이 주르륵 있었다.

“아파요?”

“조금?”

“이렇게 누르면요?”

“그냥…….”

압통이 동반되진 않았다.

나름 잘 움직이기는 한데, 너무 고무처럼 단단했다.

‘임파선 전이가…….’

[지금까지만 봐서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이비인후과 가기 전에 치료를 안 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렇지.’

알보칠에 스테로이드 연고에…….

하필 팀장 친구 중에 의사가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제대로 된 진료도 아니고 그냥 톡으로 얘기한 것만으로 지켜보자고 했으니……

‘하지만……. 손가락에 궤양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궤양인가 할 겁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명확하죠.]

‘그래, 전신 감염이 있어. 흐음. 이거 어떻게 조작하는 거지?’

[되게 직관적이잖아요. 자동차 의자랑 똑같네.]

수혁은 바루다와의 대화에, 그리고 진료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럴 만한 케이스였다.

20대 후반에 경부 임파선 전이가 있는 설암 환자일 수도, 아니면 그냥 감염 환자일 수도 있었으니까.

“어.”

그래서일까?

평소보다 여유가 없었다.

환자는 영문도 모르고 뒤로 누웠다.

수혁은 그런 환자의 바지춤을 잡았다.

“여기도 보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하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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