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6화 두경부외과 (4)
“매독이래.”
“아니…… 젊은 놈이 어디서…….”
“뭐 하다가 걸렸대?”
“뭐 하긴, 이상한 데 간 거 아녀?”
그 말에 모여 있던 환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햇다.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병원이 심심한 것은 의료진들만의 일은 아니지 않겠나?
그나마 의료진들은 일이라도 하고 그 대가로 돈이라도 벌지, 환자들은 치료받는 거 외에는 일이 없었다.
‘하아…….’
그렇게 자신을 향한 술렁거림이 가득한 곳을 환자는, 가네다 마즈히로는 천천히 헤쳐 나갔다.
‘망할…….’
가뜩이나 사람이 많아서 걷기 힘든 곳이 바로 외래였다.
좁기도 좁은데 환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당연했다.
지금은 거기에 더해 의사들까지 우글우글하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저 사람이구만.”
“생긴 건 멀끔하네.”
“그러니까 말야.”
그만큼 수군거림에 희생당할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가네다 님!”
아무튼, 어어어어어! 하느라 시간이 좀 길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혁의 진료는 무척이나 효율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진료실에서는 이제 막 환자를 부르고 있었다.
“이름이 가네다?”
“일본 사람인가 봐.”
“어휴…… 문란한 놈들…….”
당연하게도 술렁거림은 더더욱 불어만 가고 있었다.
하필 매독이 일본에서 늘어나고 있는 것도 맞는 말이어서 함부로 억울해하기도 어려웠다.
“으음?”
아무튼, 가네다만 진료실 안에 들어간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의료진들도 덩달아 따라 들어갔다.
짬에서 밀리는 애들은, 그러니까 김성진 이하로는 모두 밖에 남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정환 교수는 우글우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지……?”
이현종만큼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간에 두경부학회의 초석을 만든 사람이자 지금도 수많은 후배들이 수술할 때 도움을 받고 있는 두경부외과의 거인 백정환은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인 환자 옆으로 교수가 무려 넷이나 붙어 있어서 그랬다.
혹시 해서 차트를 열어 봤지만 VIP임을 뜻하는 표시는 없었다.
이거야 뭐 병원마다 다르고 심지어 과마다 다르다 보니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데…….
하여간, 뭔가 다르다는 표기는 없다는 얘기였다.
“아, 교수님. 통합진료센터 이수혁입니다.”
“알아요. 알지.”
그렇게 눈만 껌뻑이고 있으려니 이수혁이 다가와 인사했다.
‘모르면 간첩이지. 게다가 이낙준 교수가 여러 번 도움을 받았다지?’
분과는 다르긴 하다.
이낙준은 코 하다가 귀로 넘어간 녀석이니까.
병원의 필요에 따라 그렇게 조치한 것이었는데도 별 불만 없이 귀도 하는 거 보면 확실히 착한 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칭찬이 헤프냐고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었다.
태화의 교수이니만큼 실력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 교수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뭐…….’
이미 숙지하고 있는 정보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백정환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당황스러움을 차츰 이겨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병원 내 수술하는 과 중에서 가장 험한 수술을 하는 과라고 해도 좋을 만한 곳이 두경부외과이고 그 수장인 만큼 애초에 침착한 편이기도 했다.
“근데 이 환자는 무슨……?”
“아. 원래는 설암으로 의심되어서 온 환자입니다. 여기 의뢰서.”
“아……. 아아. 얘가 보낸 환자였구나. 음. 이 친구가 그래도 레지던트 때 꽤 잘하던 놈인데?”
“네, 확실히 설암을 의심할 만한 병변입니다. 히스토리도 그렇고요. 얘기를 들어 보니까 자가 치료를 했는데 그게 일반적인 궤양을 감별하기에 아주 적절한 방법이었습니다.”
“알보칠도 하고…… 스테로이드 연고도 바르고. 흐음. 그렇네. 근데도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해진 것으로 보이고 경부 임파선 전이도 있다면 설암을 의심하는 게 맞을 거 같긴 한데. 사진으로 보기엔 병변도 그렇게 보이고.”
“맞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성기에 무통성 궤양이 있습니다.”
“응?”
수혁은 말을 하다 말고 아까 찍어 두었던 사진을 보여 주었다.
환자가 ‘이 새끼가 대체 어느 틈에 찍었나’ 하고 있는 사이, 백정환 교수도 그 사진을 보았다.
“이건 매독 같아 보이긴 하는데.”
나이가 있는 교수가 보니 오히려 젊은 의사들에 비해 훨씬 쉽게 매독을 알아보았다.
매독이라는 게 성병이다 보니 아무리 페니실린과 같은 약에 의해 쉽게 치료가 된다고 해도 전후 한국에서는 거의 창궐하다시피 했어서 그랬다.
콘돔도 필요하지만, 그전에 성병에 대한 인지 개선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게 될 수가 없는 시절이었지 않나?
아무래도 당시 의사들에게 매독은 지금 의사들에 비해 훨씬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혀의 궤양…… 아, 설마. 구강성교?”
“네, 저는 그로 인한 감염을 의심합니다. 환자의 나이와 생활 습관 등을 고려할 때 설암보다는 매독이 훨씬 의심이 됩니다.”
“나이는 젊고…… 생활 습관은 무슨?”
“여기.”
수혁이 건넨 것은 환자의 폰이었다.
“어?”
환자의 입에서는 당연히 어? 가 튀어나왔다.
이놈의 병원은 인권이라는 게 없나 싶었다.
아무튼, 인스타가 틀어졌다.
탐색 버튼이 잘못 눌렸는데 숭한 사진들이 수두룩했다.
“이게 평소 보던 것을 기반으로 보여 주거든요? 나이를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진 않을 겁니다. 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렇네. 특히 일본에서는 어우, 장난이 아니었구만?”
“네네.”
“그럼 확실히 가능성이 있겠어.”
수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백정환 교수를 보며 좀 놀랐다.
‘난 놀라거나 이거일 리가 없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이런 케이스를 본 적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내가 지금까지 본 케이스 리포트에서는 없었는데?’
[이 분야까지 다 보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렇게 잠시 벙쪄 있으려니 백정환 교수가 하하 웃었다.
“아아. 얼마 전에 일본 쪽 교수랑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쪽에 이 비슷한 케이스가 늘고 있다고 해서. 그래도 이렇게 듣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 같은데. 신 원장 말이 맞네. 확실히 천재야.”
“그렇지요? 우리 수혁이 천재죠?”
“그렇네. 흐음……. 그래도 검사는 해 봐야지. 아니면 너무 피해가 커, 이건.”
백정환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환자를 불렀다.
그러곤 설암에 대해 설명부터 했다.
만약 지금 보이는 이 병변이 암이라면 혀를 얼마나 잘라야 하는지 알려 주었고, 재건은 아무래도 팔뚝 살을 써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지금까지 인권을 떠올리고 있던 환자는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부끄러워도 역시 매독이 낫겠다는 생각만 드는 순간, 백정환 교수가 드디어 매독 얘기를 꺼냈다.
“그렇게 해도 재발할 수 있어요. 두경부암은 예후가 좋은 암은 아니거든요. 그에 비해 매독은 뭐…… 좀 성가셔서 그렇지 약만 먹어도 완치가 되죠. 다행히 여기 이수혁 교수가 환자분 질환이 암이 아니라 매독일 가능성에 대해 알려 주셨습니다.”
“오…… 그럼?”
“일단 그게 맞는지 확인을 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좀 아플 건데, 마취는 따로 안 할 거예요.”
“네? 혀를 자르는 거 아니에요?”
“펀치 바이옵시라고 한번 툭 떼는 검사가 있어요.”
“그…….”
뚝 떼는 것도 결국, 혀 얘기하는 거 아닌가?
가네다 마즈히로는 두 번 더 물었지만 마취하는 게 더 아플 거라는 얘기를 들으며 의자에 앉았다.
철커덕
그러자 옆에서 기다리던 사원이 뭔가를 채웠다.
그냥 보기엔 안전벨트 같아 보였다.
“이건……?”
“아, 가끔 기절하세요.”
“네?”
“괜찮아요. 이게 있으면 바닥에 안 떨어져요.”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잖습니까 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 위아래 이 사이로 뭔가 들어왔다.
끼리릭
그러곤 순식간에 입이 벌어졌다.
“움직이면 엉뚱한 데 펀치 하니까 가만히 있어요. 어어. 혀 가만히.”
뭐 생각할 새도 안 주고 혀를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데, 그러자 당황해서 그런가. 과연 혀를 가만히 두는 건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의식하지 않은 새에 자꾸 혀가 움직이고 있었다.
“자꾸 이러면 혀 꿰서 고정합니다?”
그러자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들려왔다.
꿰?
사실 이해도 잘 안 갔다.
한국어 실력이 짧아서 그런가?
해서 눈을 두리번거리자, 사원이 아까 안전벨트 채워 줄 때처럼 해맑게 웃으면서 낚싯바늘처럼 생긴 걸 보여 주었다.
‘아하.’
깨달음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에서는 꽤 여러 차례 낚시를 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랬다.
저런 걸로 팍 꿰어 두면 꼼짝도 못 한다.
‘나를……?’
안 된다.
그런 건…….
혀를 꿴다니…….
사람인데…….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냐. 너무 무섭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신기하게 혀 놀림이 멈추었다.
덕분에 백정환 교수는 혀의 병변을 펀치하고는 지혈 솜을 대 줄 수 있었다.
“으.”
아팠다.
피도 나오고.
그 부위가 혀다 보니 답도 할 수 없었다.
“자, 그럼 밖에 나가서 기다리세요. 10분 정도 있다가 지혈되는지 보고…….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병리검사 결과도 대강만 보죠. 물론 이게 동결절편검사라고 해서 간이로 보는 거라 암이라고 하면 암인데 아니라고 해도 100% 아닌 건 아닙니다.”
“으읍.”
“그래도 뭐, 우리 병원 병리과 수준에서 아니라고 하면 95% 이상은 아니니까 일단 기다려 보죠.”
“으읍.”
으읍 거리면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음 환자……
아무리 봐도 심각해 보이는 환자가 들어갔다.
“이거 병리과에 가져다줄 사람?”
그 10분 사이 움직이는 건 통합진료센터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달리기가 빠른 장종우가 손을 들었다.
충성심이야 뒤지지 않는다 여기는 이가 태반이었지만 달리기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다들 인정했다.
이걸 어찌 알았는고 하면…….
-자자. 이수혁 교수님을 보다 제대로 모시기 위한 테스트를 하겠습니다.
의학 실력?
이건 당연한 거다.
그에 대한 열심?
그거 안 낼 거면 여기 왜 오나?
여기서 원하는 것은 그러한 것들을 넘어서는 무엇이었다.
-50미터 달리기!
-원반 던지기!
-균형 잡기!
-눈 감고 걷기!
대체 왜 이러한 것들을 하는지 물어봤더니 놀라운 답이 돌아왔다.
-국정원에서 하는 거래.
진짤까?
알 수가 없었다.
일반인 레벨에서 국정원 훈련을 어찌 아나.
알면 그게 더 이상하지.
게다가 그런 걸 묻기엔 여기 모인 이들의 열정이 너무 과했다.
아무튼, 그렇게 선별된 장종우가 나는 듯이 달렸다.
“온다.”
병리과에는 당연히 미리 전화도 해 놨다.
통합까지만 듣고는 그냥 끊기는 했다.
볼게요 라고 하고.
“들여보내.”
“다른 데서 알면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
“아니, 통합진료센터가 상대라고 하면 다 납득할걸. 얘네는 논리적으로 설득이 안 돼.”
“아…….”
입구에서도 그랬다.
원래 같으면 갑자기 검사 의뢰하는 거에 엄청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통합은 안 된다는 걸 알아서 그랬다.
해서 그냥 별생각 없이 받아서 슬라이드 깎고 교수에게 전달했다.
교수는 어떻게 나오냐고?
이 사람은 숫제 신도 수준이다 보니 그저 열과 성을 다해 보기만 했다.
“없어, 암세포.”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본 후, 결과물을 전했고 이내 환자는 다른 검사를 먼저 하는 대신 매독에 대한 약을 처방받아 귀가했다.
곧 결과가 달리 나오면 바로 오라는 말만 듣고서였다.
당연하지만 병원에 오기 전보다 얼굴이 훨씬, 비교도 못 하게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