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7화 사위를 만나고 싶다 (1)
“딸 오늘 데이트했어?”
“아, 뭘 그런 걸 물어봐.”
“딸 오늘 어디 갔어?”
“아, 좀.”
우창윤 교수는 성공한 사람이다.
주요 선진국 중 하나로 우뚝 발돋움한 대한민국에서도 내놓으라 할 만한 기업인 아선 병원의 중진으로 자리 잡았다.
결혼한 지도 어느새 30년을 훌쩍 넘어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운 아내도 있다.
둘 사이에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딸……
“딸.”
“딸?”
말 그대로 금지옥엽이라 할 수 있는 딸.
우창윤은 자신의 말에 답하지 않고 방에 들어가 버린 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벌컥 문을 열어 버리고 싶었지만, 쿵쾅거리는 소리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저거 일부러 옷 벗었다.
‘망할……. 내가 응? 똥 기저귀 갈아 준 게 몇 번인데…….’
그뿐이랴?
아선 병원은…… 어? 빈말로도 편한 병원이라 할 수 없는 곳이다.
애초에 의사들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은 게 보통 아닌가?
그중에서도 대학 병원, 그중에서도 빅3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쪼개고 쪼개서 놀아 줬는데…….
“크윽.”
밀려오는 배신감에 사무친 우창윤은 일단 문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곤 나지막이 말했다.
“따아알? 아악! 왜 때려!”
“주책이야. 서른 살이야! 서른 살!”
그러다 제지당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아내에게.
아니…….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럴 때 이해를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헌데 말로 말리는 것도 아니고 때렸어?
이번에도 우창윤은 밀려오는 배신감에 사무쳐서 뒤를 노려보았다.
“거참…….”
우창윤의 아내는 그런 우창윤을, 집에서는 가발을 쓰지 않아 어쩐지 불쌍해 보이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이게 빈 둥지 증후군인가? 아닌데? 빈 둥지는 애가 떠나고…… 아, 이건 빈 머리 증후군인가.’
원래 남편은 꽤 멋진 사람이었다.
남편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객관적으로도 멋졌다.
그러던 사람이 이렇게 될 줄이야.
세월이 무서웠다.
“고만해. 알아서 하겠지.”
“아니……. 그래도 궁금하잖아. 이수혁 그놈이랑 응? 어디까지 갔는지…….”
“그게 왜 궁금해!”
“안 궁금하냐, 그럼?”
“궁금할…… 수는 있지. 근데 그걸 왜 딸한테 직접 물어봐.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가만 보면 이거…… 진짜 이상할 때가 있어?”
“음.”
우창윤은 우창윤대로 따박따박 몰아세우는 아내가 낯설었다.
대관절 수줍어할 줄 알던 새침데기 아내는 어디로 가고 이런 깡패 같은 사람만 남았단 말인가?
물론 우창윤은 상당히 목적 지향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속으론 영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긴 딸한테 물어보면 안 되는 거 같긴 해.’
동시에 우창윤은 그렇게 안 보일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내 말을 상당히 잘 듣는 편이었다.
실제로 굉장히 독단적인 인간이지만 아내가 머리 꼭대기에 있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결정한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죄다 그의 뜻이 아니라 아내 뜻대로 살아온 셈이 된달까?
하다못해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아내의 드림 하우스였다.
가구나 인테리어야 말할 것도 없었고.
아마 우창윤 뜻대로 산 걸 찾아보자면, 데스크톱 안에 든 그래픽 카드 정도나 있을 터였다.
‘이수혁 교수에게 물어보자. 사위 놈인데 그런 것 정도는 물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하여간 조언에 따라 딸보다는 수혁에게 물어보기로 작정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당연히 이러한 것이 마땅한 처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깨달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교수라는 게 참 그런 직업이지 않나.
요즘에야 좀 덜해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교수 말이면 다 옳다 옳다 하는 게 보통이었다.
심지어 우창윤은 요즘보다 훨씬 심했던 시절에도 교수였다.
애초에 고집스러운 성품을 타고나기도 했는데, 그게 단련되고 단련되다 보니 이 지경이 되어 버렸다.
따르릉
해서 우창윤은 산책한다는 핑계로 집에서 나와 전화를 걸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쩐지 집에서 전화하면 아내와 딸의 협공을 받을 것 같다는 강력한 확신이 들어서 그랬다.
‘근데 뭐라고 묻지.’
그렇게 나와서 전화를 걸었는데, 막상 신호음이 들려오기 시작하자 뭘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는 머릿속이 좀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이수혁…….’
사위다.
아직 아니지만, 그간의 행적을 들어 보니 아마 그렇게 될 것 같다.
일단 신현태, 이현종도 이번이 수혁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초 칠 일은 절대로 없다 이 말인데…….
문제는 사위라고 해서 쉬운 사람은 아니란 점이었다.
‘어…… 뭐라고 하지?’
이수혁 뒤에 붙은 직함이 대체 몇 갠가.
호칭? 아니, 칭호라고 해야 함 직한 것은 또 몇 개고.
나이 차이가 한두 개 나는 것도 아닌데, 이미 사위는 의료계 내의 우창윤의 위치를 넘보고도 남았다.
추월하는 거야 시간문제고.
“아, 우창윤 교수님? 무슨 일이세요?”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 수혁이 전화를 받았다.
배경음으로 미루어 보건대 병원이다.
하윤이가 오늘 당직도 뭣도 아니라 했는데 9시 넘어 들어왔으니 아무래도 저녁을 같이 먹었을 것 같은데 병원이라니.
병원에서 먹었나?
아니면 밖에서 먹고 다시 들어갔나?
“어, 어어. 그…….”
속으로는 이런저런 질문이 쏟아져 나오는데 왜인지 입 밖에 내기는 어려웠다.
“용건…… 뭐예요?”
그 와중에 사위란 새끼는 장인어른한테 말뽄새가 이 모양이었다.
용건?
요옹건?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문안 인사 겸해서 매일매일 전화를 해도 성에 찰까 말까인데…….
“아아, 이수혁 교수. 그러니까…….”
“어려운 환자 의뢰예요?”
“그…….”
허나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안에 든 생각과는 별개로 자꾸 굽신거리는 말뿐이었다.
왜 그런고 하니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했다.
우창윤 교수가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많이 당한 인간이 수혁과 이현종이었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수밖에 없다 이 말이었다.
게다가 수혁이 이놈은 목소리가 좀 많이 낮은 편이었다.
얼굴은 순둥순둥하게 생긴 주제에…….
“그, 저 바쁘거든요? 지금 흥미로운…… 아니지. 어려운 환자분이 하나 있어서.”
“아아. 그. 그래, 나도 환자 의뢴데.”
직접 만나서 얘기하면 훨씬 나을 터였다.
그렇게만 되면 둘이 주로 어디서 만나는지, 만나면 뭘 하는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는지,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 것이며 신혼집은 어디로 생각하고 있는지, 아이는 어떻게 낳을 것이고 또 어떻게 키울 것인지 물어볼 수 있으리라.
‘좋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를 넘어 대취타 공연까지 해낸 우창윤은 즉석에서 말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환자 의뢰요?”
“어어. 어려운 환자야.”
“어떤 환자예요? 대강이라도 말씀 주시죠.”
수혁은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거짓말 정도는 판별이 가능했을 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창윤이지 않나.
이 인간 당황할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이미 다 데이터화해 둔 참이었다.
한두 번이라야 까먹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닌가.
하지만 환자 있다는 말에 수혁도 바루다도 홀랑 넘어가 버린 지 오래였다.
“어어…….”
환자는 없었다.
아니, 있긴 있을 터였다.
상대가 수혁만 아니었다면 대강이라도 지어낼 수 있을 테지만…… 수혁이지 않나.
대강 지어내?
바로 걸린다.
아니면 묘수 풀이 당하거나.
“직접 와서 봐야 할 거 같은데.”
“어……. 그 정도예요?”
“응. 그 정도야.”
“오……. 언제 갈까요?”
기세를 보아하니 지금 당장 올 것 같았다.
안 될 일이었다.
없으니까.
사위에게 권위 있는 장인어른이 되고 싶은데, 이래서야 구라쟁이 장인이 될 것만 같지 않나.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미 권위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우창윤은 자기 객관화가 잘 안 되는 나이에 접어든 지 오래였다.
직급 때문에도 더더욱 그랬다.
“그…… 지금은 내가 병원에서 나와서.”
“물어볼 거면서…… 나오셨어요?”
“어어. 집에 급한 일이.”
“하윤이 일은 아니죠?”
“어…… 아냐. 아내가 좀 아파서.”
“휴, 다행이다.”
이 새끼는 따지고 보면 장모가 아프다는 얘긴데 휴 다행이다라는 말이 잘도 나오는구나 싶었다.
넌 애미애비도 없냐는 말을 하려다 또 생각해 보니까 그렇긴 하지 않나.
저도 모르게 탈룰라를 할 뻔했다.
‘그래……. 하윤이 걱정하는 게 어디냐…….’
우창윤은 애써 좋게좋게 생각하고는 대강 전화를 끊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민이 끝났냐고 하면 당연히 아니었다.
환자에 대한, 어려운 환자에 대한 수혁의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 너무도 잘 알아서 그랬다.
이 미친놈은 환자 있다고 하면 아마 지옥 불도 마다하지 않고 갈 게 뻔한 놈이었다.
어쩌다 이런 놈하고 딸내미가 엮였나 싶기도 하지만…….
이미 엮였는데 어쩐단 말인가.
‘환자를 찾자…….’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진짜 직접 봐야 할 정도로 어려운 환자를 찾고, 그걸 빌미로 수혁을 부른다.
그리고 아까 물어보려고 했던 예비 장인의 사소한 질문을 쏟아 낸다.
‘완벽하군.’
우창윤은 후후 웃으며 최근에 입수했던 정보를 떠올렸다.
-니네 케이스 못 찾으면 다 죽는 거야!
정확한 대사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이것보다 험악했으면 험악했지, 결코 더 부드럽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여간 지금 외과는 수혁에게 줄 케이스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김승규의 지엄한 명에 의해서.
“어, 나 기조실장 우창윤이야.”
“네네. 어쩐 일이신지.”
암만 김승규가 무서워도 다른 병원 사람 아닌가.
아선 병원 외과에서는 아선 병원 기조실장이 갑일 터였다.
더군다나 우창윤은 외과 계열하고도 두루두루 잘 지내고 있는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지금 전화 건 외과 교수는 차기 기조실장…….
그러니까 우창윤이 원장이 되면 기조실장으로 쓸 생각도 있는 놈이었다.
“너네 케이스 찾고 있는 거 있지? 이수혁 교수 주려고.”
“어어……. 그걸 어찌?”
“전에 네가 말했어.”
“아아. 아주 무서웠죠. 네, 찾고 있습니다. 의국원들 주요 잡일 중의 하나가 그거예요.”
우창윤은 대화 뒤로 줄기차게 이어지는 한숨을 들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선의 두 기둥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닌 외과가 남의 병원 교수가 던진 잡일 하느라 바쁘다는 소식이야 슬픈 소식이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만한 사이즈의 과가 혈안이 되어 찾은 케이스라면 믿을 수 있지 않겠나!
“그거 제일 어려운 걸로 하나만 나 주라.”
“어…….”
근데 달라니까 망설인다.
“뭐야. 나 우창윤이야. 네 선배, 인마.”
“그렇긴 한데…… 이게 김승규 교수님에게서 내려온 명령이라서요.”
“난 기조실장이야!”
“김승규 교수님 어떤 분이신지는 아세요?”
“대강 들었지. 무섭다며. 근데 그런 사람은 학회마다 한둘은 있어.”
“아닙니다!”
응?
잘못 들었나 했다.
화를 내잖아.
감히.
“그런 사람이 한둘씩 있을 수가 없어요! 역사상 한 명입니다.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될!”
하지만 덩달아 화가 나지는 않았다.
얘가 괜히 그럴 놈은 아니거든.
“그, 그래서…… 못 줘?”
“네!”
“하아.”
당당히 안 주겠다고 하는 후배 앞에서 우창윤은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직접 찾으면 되지.’
그러곤 병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