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98화 (1,198/1,303)

1198화 사위를 만나고 싶다 (2)

“어?”

“어. 환자 명단 좀 들고 와 봐라.”

우창윤은 그 길로 집에는 병원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말만 남긴 채 바로 차를 몰았다.

아선 병원과 집이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금세 도착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우창윤을 본 레지던트는 정말이지 크게 놀랐다.

‘누구야. 이 대머리는.’

우창윤이 정신없이 오느라 가발을 안 쓰고 와서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대할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아무튼, 방금 저기 보안 시스템 뚫고 들어왔잖아.

게다가 무척이나 능숙한 태도로 들어왔다.

심지어 얼굴도 봐라.

어떻게 봐도 시니어…… 곧 은퇴할 사람이다.

“여, 여기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어디서 봤다.

이 얼굴…….

이 목소리…….

“그래. 흐음…….”

우창윤은 그렇게 받아 든 환자 일보를 심각한 얼굴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사실 별 의미 없는 짓이었다.

기조실장이 되면 원래는 그 일 때문에 바빠지기 때문에 진료를 줄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우창윤은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그랬다.

괜히 이 나이에 기조실장까지 올랐겠나.

능력이 어마어마한 인간이다, 이 말이었다.

때문에 오히려 내분비내과엔 이렇다 할 환자가 남아 있질 않았다.

“여긴 뭐가 없네.”

“우…… 교수님?”

“응? 왜?”

해서 투덜거리고 있으려니 레지던트 놈이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이렇게 물어 왔다.

우창윤으로서는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맨날 오는 곳에 와서 맨날 하던 짓 하는 건데 왜 이렇게 놀랐나?

맨날 쓰던 것을 안 쓴 탓에 평소보다 훨씬 시원한 상황이었지만 그거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저 간만에 어려운 케이스 볼 생각을 한 덕에 기분이 좋은 것이라고만 여겨졌다.

아닌 게 아니라 내과 의사로 수십 년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특히 우창윤처럼 끊임없이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환자 보는 것 자체를 좋아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아닙니다.”

레지던트는 이것이 웃참이구나 하고 있었다.

‘시발……. 왜 이러고 오셨습니까! 그나저나 가발을 어디서 맞추신 거지? 진짜 감쪽같네.’

사실 소문은 무성했더랬다.

우창윤 교수님의 머리카락이 드문드문해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풍성해졌더라, 뭐 이런 소문 말이다.

충성파들은 다 억측이라며 무시했다.

약 먹으면 원래 다 그렇게 된다며, 본인도 믿지 않을 말을 지껄이곤 했더랬다.

허나 일부 불충한 사람들은 가발 아니냐는 말을 했다.

‘그게 진짜일 줄이야…….’

레지던트는 굳이 따지자면 별생각 없던 부류였다.

병원 이거 뭐…….

얼마나 있을 수 있다고 애정을 갖겠나.

레지던트는, 그중에서도 내과는 3년 계약직이다.

뭐…….

높은 확률로 펠로우 끌려오긴 하겠지만.

그것도 계약직이다.

‘갑자기 병원에 관심이 너무 쏠리네.’

교수라도 될 게 아니면 금세 나가야 된다 이 말이다.

그 때문에 딱히 병원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너무 심심하다 보니 그 와중에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애들도 있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갔는데 지금 납득했다.

이런 일을 한 번이라도 겪게 된다면, 병원에 관심 아니라 사랑하는 감정을 품게 된다 해도 인정이다.

“여긴 안 되겠다.”

아무튼, 그렇게 우창윤을 너무 신기하다는 얼굴로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우창윤이 돌연 몸을 일으켰다.

“아, 가시게요?”

레지던트는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그래도 눈앞의 이 대머리 사내를 존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될 수 있으면 이런 꼴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집에 갔으면 했다.

“아, 그래.”

“네네. 댁으로 가시는 거죠?”

해서 굳이 캐물었다.

그랬더니만 돌아오는 답이 가관이었다.

“아니, 소아과 가 보려고.”

“왜, 왜요?”

대체 왜…….

기조실장 업무를 볼 거면 내일 하면 되지 않나?

지금 그런 꼴로 갈 만한 이유가 있나?

소아과…….

‘어렵긴 하지.’

사실 레지던트는 의료계 이슈를 다 알지 못했다.

과가 다르면 거의 다른 직업군으로 묶어도 될 정도로 사정이 달라지는 것이 의사들이다 보니 당연했다.

게다가 내과는 제 앞가림하기에도 바쁜 과이기도 했다.

짧은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저출산 여파와 수가 문제가 있을 거 같은데…….

하여간, 눈앞에 보이는 현상은 자명했다.

미달 날 것 같다.

다른 병원도 아니고 아선에서.

“왜긴. 환자 있나 없나 보러 가는 거지. 선천성 내분비 질환들이 어렵잖아.”

“아니…… 내일 가시죠.”

“왜. 너랑 같이 갈 것도 아닌데. 넌 여기서 대강 정리하고 가서 자. 새벽에 또 불려 나갈 게 뻔한데.”

“그런 게 아니라…….”

우창윤은 눈앞의 레지던트가 자꾸 자신을 살피는 것이 조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눈깔이 이리저리 휙휙 도는데 그 궤적에 머리도 있다는 것이 특히 좀 그랬다.

하지만 머리에 손을 가져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가발 쓰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 터였다.

혹 손댔다가 비뚤어지면 어쩐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본인이 가발 쓴다는 걸 모두가 다 알게 될 터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비뚤어진 모습부터가 일단 우습기 마련이었다.

“아무튼, 난 간다.”

“어어, 가, 같이 가요. 교수님.”

“같이? 왜? 너 혹시 통합진료센터에 관심 있어?”

아뇨, 없습니다.

저는 그냥 선배 병원 취직했다가 돈 모아서 작은 쩜빵(동네 병원)이라도 개원하는 게 꿈입니다.

레지던트는 속내를 솔직하게 풀어내지 못했다.

막말로 이런 마인드를 좋아할 대학교수는 없어서 그랬다.

절대다수의 의사들이 개원 또는 페이 닥터로 로컬에 나가는 것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대학 병원 교수들은 이상하게 이 안에 있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그러다 또 개원 크게 성공한 제자 나오면 괜히 불러서 밥도 얻어먹고 하는데…….

“네.”

내로남불이 기본으로 탑재된 사람들이다 이 말이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사소한 거짓말 하나 하지 못할까.

레지던트는 별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그래, 뭐.”

아선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러한 반응을 싫어해야 정상이겠지만, 우창윤은 정통파는 또 아니지 않나.

어쩌다 보니 이수혁과 깊숙이 엮여 버렸다.

‘사위가 훌륭하긴 하지…….’

너무 훌륭해서 탈이다.

천재가 아니라 괴물 수준이지 않나.

젊은 시절 우창윤도 제법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수혁에게는 감히 댈 것도 못 되었다.

이현종조차 한 수 접을 정도니 뭐…… 말 다 한 셈이었다.

‘아무도 없어라…….’

우창윤이 수혁을 떠올리며 걷는 사이, 레지던트는 그저 우창윤의 머리통 생각만 하고 있었다.

‘셋. 셋을 마주치면 말씀드리자.’

원래는 바로 말하려고 했다.

근데 대체 어떤 식으로 전달해야 예의 바른 전달이 될는지 모르겠다.

학창 시절부터 나쁜 소식 전하기를 배웠지만, 다 허사였다.

‘의대 교육 이거…… 잘못됐네.’

망할 놈들.

막상 말을 하려니까 입이 안 떨어지잖아.

-교수님 뭔가 깜빡하신 거 같습니다. 아주 중요한 걸…….

-교수님 눈이 부십니다!

-교수님 대머리셨어요?

-교수님 머리 어디 가셨어요?

안 돼…….

안 된다, 이건.

“어엇.”

“아, 일하니?”

“네, 네네네네네네.”

“그래, 열심이네.”

“네네네네네.”

그사이에 한 명 마주쳤다.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네네네네만 하면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시발놈.

대신 말해 주지.

‘아니, 교수님은 왜 이렇게 눈치가 없지?’

우창윤도 우창윤이다.

앞에서 저러는데 왜 모른단 말인가.

‘너무 오랜 세월을 눈치 보지 않고 살아와서 그런가?’

하긴 교수가…….

언제 눈치를 보겠나.

심지어 우창윤은 너무 어린 시절부터 성공해 버린 까닭에 더더욱 눈치 볼 만한 세월이 짧았을 거다.

띵.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엘리베이터엔 아무도 없었다.

사실 시간이 꽤 늦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긴 했다.

환자도 보호자도 모두 활동을 멈출 만한 시간이지 않나.

뭐 의료진들이야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겠지만…….

병동 당직은 병동에, 응급실 당직은 응급실에 있을 거다.

“옳지.”

그렇게 도착했다.

소아과 병동에.

‘미달 위기라며.’

사람이 아주 그냥 바글바글했다.

간호사에 레지던트까지 다 해서 거의 열 명은 되었다.

“누구…….”

우창윤은 뚜벅뚜벅 걸어서 보안 문을 해지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수간호사라도 있을 시간이라면 하하하! 교수님! 하면서 어디론가 끌고 가서 좋게 타일렀을 텐데.

여기 있는 건 시니어 간호사랑 레지던트들뿐이었다.

‘우창윤……?’

‘기조실장……?’

‘머리 언제 뽑았어?’

‘말이 되냐? 가발인 거지.’

‘근데 왜 여기에 저러고……?’

‘충성심 테스트인가?’

흔히들 말한다.

레지던트야말로 사회생활의 끝판왕이라고.

하지만 그거 의사들끼리나 하는 말이다.

진짜 사회는 밖에 있다.

그 사람들끼리 하는 말 있지 않나.

의사처럼 등쳐 먹기 좋은 직업도 없다고.

‘왜 다 조용히 있냐!’

내과 레지던트는 절규했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던 야식이나 깨작거리고 있어서 그랬다.

아예 무시하면 차라리 나을 텐데 그것도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창윤이 깨닫게 된다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은 벌어질 것 같지 않았다.

뭐 머리에 손이라도 대면 저주받을 거란 얘기라도 들었나, 독하게 가만히 있었다.

“여기 뭐 어려운 환자는 없나?”

하여간 우창윤은 기조실장답게 품위 있는 몸짓으로, 본인이 생각할 때 가장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풉.’

가발이 있었다면 그렇게 보였을 텐데.

인프라가 달라져서 그런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다행인 것은 머리가 있건 없건 우창윤이 기조실장이라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우창윤은 꽤 실력 있는 사람이었다.

특히 내분비 쪽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었다.

태화의 괴물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있습니다.”

“있군, 역시. 한번 볼까? 하하.”

해서 레지던트 중 제일 높은 사람이 책임감 있게 나섰다.

병원 생활 하면서 단련하고 또 단련해 온 포커페이스를 탑재하고서였다.

‘내가 맞힐 수 없어야 한다…….’

우창윤이 이렇게까지 눈치채지 못하는 이유가 있긴 있었다.

그도 긴장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케이스로는 수혁이 만족하지 않을 테니까.

아니, 그냥 떠들어 대는 것만으로 바로 정답을 맞히고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우창윤이 품었던 사소한 질문을 던질 수가 없지 않나?

“이 환자가 좀 이상한데요.”

“흐음……. 외과랑 협진 보고 있네?”

“네.”

하여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아과 레지던트의 말에 따라 환자를 보니 이제 15개월 된 환아였다.

주된 증상은 변비였다.

변비라고 하면 뭐 아무것도 아니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악성 변비는 꽤 무서운 병이다.

반드시 원인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당연히 나이에 따라 그 원인이 될 수 있는 질환은 천차만별이었다.

“지금 의심하고 있는 병은 Hirschsprung disease(히르쉬스푸룽병, 선천성 거대 결장증)인데…… 이게 좀 이상해서요.”

“왜?”

“나이가 너무 많아요.”

“아. 그렇네. 흐음……. 다른 원인일 수 있다……. 어디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을까?”

“네, 물론입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