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199화 (1,199/1,303)

1199화 나 왜 똑똑하지 (1)

Hirschsprung 병.

선천 거대 결장증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은 실제로 결장이 거대해진다기보다는 태아 발달 과정에서 근육 수축을 유발하는 신경이 장에 분포하지 못해 쌓이는 변에 의해 늘어나는 병이라고 보면 되었다.

괜히 그런 진단명을 붙이진 않았단 생각을, 우창윤은 환자를 보자마자 했다.

“깨울까요?”

“응? 아니, 굳이.”

소아과 레지던트는 대머리 우창윤을 볼 때마다 자꾸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다른 곳만 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우창윤의 이런 반응은 상당히 도움이 되는 편이었다.

그래, 머리가 없어서 그렇지 과연 기조실장이지 않나.

“아픈 애 한번 재우기가 얼마나 힘든데. 일단은 지켜보지, 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배려심.

그냥 좋은 머리 이리저리 흔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일 텐데 이런 마음 씀씀이 덕에 더더욱 빨리 올라가고 있는 것일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감히 우창윤을 돌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랬다간 상당히 뜬금없는 타이밍에 웃을 것 같아서 그랬다.

‘망할. 왜 이런 시련을…….’

그래도 괜찮았다.

딱히 대화를 이어 나갈 상황은 아니었으니.

소아과 레지던트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동안, 우창윤은 나름의 머리를 굴리고 있기에 그랬다.

‘배가 엄청 나와 있어. 착시로 인해 그렇게 보이는 건 절대 아냐.’

영양실조에 빠진 아이들 보면 배만 불뚝 튀어나와 있지 않나?

그게 실제로 배만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물론 영양실조가 아주 심해지면 복수가 차니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되기야 하겠지만, 대개는 다른 구조물이 너무 얇아져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었다.

그에 비해 아이는 뭘 못 먹은 것 같진 않았다.

토실토실한 느낌까지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마른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배가 나온 건 순전히 뭐가 들어차서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터였다.

‘아이는 만삭, 자연분만으로 태어났고…… 체중이 3.2kg, 키가 49cm였다고 했지. 그 외에 다른 신생아 선별검사는 다 정상이었고.’

대한민국의 신생아 선별검사는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었다.

모든 병을 걸러 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흔한 질환은 다 걸러 낼 수 있었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대단히 잘하고 있는 편이라고 보면 되었다.

‘이상한 건 어릴 땐 오히려 변을 잘 봤다고 했었다는 건데……. 흐음.’

우창윤은 아까 소아과 레지던트와 함께 살펴보았던 기록을 떠올렸다.

외부 병원에서 주로 치료를 했던 모양이었다.

애초에 이 병원에서 낳질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개 신생아 진료는 연고지 또는 출산한 병원에서 쭉 이어 나가는 게 보통이니까.

그렇다 보니 기록이 꼼꼼하긴 해도 중구난방이었는데, 그럼에도 우창윤의 우수한 머리는 이미 이리저리 튀어 나가 있던 정보들을 일렬로 정리해 낸 참이었다.

‘모유 수유할 때는 전혀 배변에 문제가 없었어. 뭐…… 가능한 일이긴 해. Hirschsprung 병이라고 해서 다 정도가 심한 것은 아니니까.’

이 병이 왜 생기는지를 생각해 보면 정도가 왜 다양한지 떠올리는 게 그리 어렵진 않을 터였다.

태아 발달 과정 어느 지점에서인가 신경 발달이 저하되어서 생기는 병이지 않나.

발달 과정이 거의 다 이루어진 다음부터 신경 발달이 저하된 경우라면 모유처럼 액체로 이루어진 음식을 섭취하고 있을 땐 충분히 배변 활동을 할 수 있었을 터였다.

이 때문에 보호자와 병원에서 문제를 인지하게 된 것은 아이가 고형식 즉 이유식을 시도하고 나서부터였다.

‘그때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했지. 그마저도 그냥 보지는 못하고 좌약이나 관장이 필요했다고 했어. 흐음.’

Hirschsprung 병의 전형적인 양상이라 할 수 있었다.

고형식이 딱 들어가는 순간 장이 해야 할 운동량이 확 늘어나는데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부터 아이는 배를 아파하는 빈도가 확 늘어난다.

사실 소아에서 변비는 굉장히 흔한 질환이긴 해서 헷갈릴 수 있긴 했다.

일단 배변을 위해 많은 힘을 줘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낯선 일이기도 하고, 어디에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모르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의 세상은 온갖 신기함으로 가득 차 있지 않나.

마려울 때 다른 것에 확 관심이 쏠려 있으면 배변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하윤이도 그랬었는데……. 하지만 얘는 아냐.’

감별을 해야 하는데, 사실 힌트는 여기저기 산재한 편이었다.

그런 종류의 변비 즉 병적이지 않은 변비인 경우 아이는 정상 성장을 보인다.

허나 이 아이는…….

‘태어날 때 3.2kg였으면 완전 정상 체중이지. 지금은…….’

1년 6개월가량이나 되었다면 10kg은 일단 족히 넘어야만 했다.

잘 먹는 아이들이 늘어난 요즘 같아서는 15kg도 넘는 애들이 있을 것 같은데…….

이 아이는 8kg이다.

키도 그렇게까지 못 컸다.

‘병적인 변비. 즉 Hirschsprung 병을 의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상황이야.’

만약 선별검사에서 다른 이상 소견이 있었다면 당연히 호르몬의 영향을 생각할 수 있을 테지만 그게 아니라잖아?

더군다나 한국에서는 이 질환의 유병률이 꽤 높은 편이었다.

원래도 그랬는데 최근 들어서 꾸준히 높아지는 바람에 이제는 새로 태어나는 아이 만 명당 대량 3명 정도다.

이 비슷한 소견을 보일 수 있는 질환은 또 있을 수 있겠지만 역시 제일 흔한 건 이것뿐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려 하고 있었다.

‘근데…… 말이지.’

우창윤 교수는 어느새 아이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고 해 봐야 12시를 넘기진 않은 시각이었다 보니 아이의 보호자는 선잠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이것도 아픈 아이 보살피고 마음고생하느라 잠이 든 것이지, 현대인에게 12시라는 시간은 결코 너무 늦은 시간은 아니지 않나.

“어…….”

“아, 교수님이십니다.”

“아, 네.”

해서 눈을 떠 보니 우창윤이 보였다.

뭔가 했더니 얼굴 익숙한 소아과 레지던트가 와서 교수라고 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보니 과연 교수였다.

그것도 나이가 아주 지긋한.

머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원로급이라는 걸.

덕분에 보호자는 뭐라 하는 대신 그저 지켜보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

우창윤은 자신의 외모에 도움을 받았단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잠이 든 아이를 차분히 들여다보았다.

‘머리카락이 적어. 이건 거의 신생아 수준이야.’

영양실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었다.

뭐 아무리 먹이려 해도 변을 못 보는데 어찌 제대로 먹일 수 있었겠나.

그렇게 영양소가 부족해지면, 당연히 탈모도 생길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익숙히 본 모양새야.’

결코 자신의 머리를 떠올리면서 한 말은 아니었다.

우창윤은 전형적인 남성형 탈모, 즉 M자 형 탈모가 진행되다가 앞머리가 일종의 섬이 되었다가 훅 빠진 후 소갈머리만 남는 형태의 탈모를 겪은 사람이다.

그에 비해 아이의 탈모는 전반적으로 듬성듬성해진 상황이었다.

이건…….

“어머님, 잠시 괜찮을까요?”

“아, 네네.”

순식간에 심각해진 우창윤의 모습에서 우스꽝스러운 느낌은 더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오죽하면 따라와 있던 레지던트들조차 우창윤의 머리 따위는 잊어버린 참이었다.

그러니 원래 우창윤이 어찌 생겼는지 알지도 못하는 보호자야 무슨 생각을 하겠나.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허락을 구한 우창윤은 아이의 입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깨지 않게 주의하면서였는데, 생각보다도 더 섬세하게 움직인 덕에 아이는 깨지 않았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정상적인…… 반응이 아냐, 이건.’

허나 우창윤은 깨기는커녕 별 반응도 보이지 않는 아이를 보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Hirschsprung 병이 아닐 수도 있겠는데.’

그저 기운이 없는 건가?

아니다.

이건 처져 있는 거다.

못 먹어서, 아파서 이러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아이의 피부, 그러니까 피부 탄력 또한 떨어져 있었다.

‘혀는 커. 어쩐지 애가 바로 눕질 못하더니만……. 옆으로 누웠는데도 숨쉬기 힘들어하고.’

사실 숨 쉬는 것만 보고도 뭔가 이상하다 싶긴 했다.

어딘지 모르게 막힌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확인한 건데 역시나 이상 소견이 있었다.

생김새가 각기 다 다르듯 혀도 다른데, 이건 그러한 다양성을 완전히 벗어난 수준이었다.

‘희박해진 머리숱에 눈썹도 그러네, 지금 보니까. 거기에 거대설…… 그리고 이 피부…….’

종합해서 봤을 때, 호르몬 박사라 할 수 있는 우창윤이 딱 떠올릴 수 있는 진단명은 하나뿐이었다.

‘선천성 갑상샘 기능 저하증인데…… Hirschsprung 병하고 이게 연관이 있나? 아닌데. 거의 없어, 이건. 있을 수도 있지만…… 케이스 리포트를 해도 좋을 수준이야. 그보다는 오히려…….’

우창윤의 고민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레지던트들이야 원래 환자 보면서 고민하는 게 일인 사람들이다 보니 그런갑다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소아과 레지던트는 워낙에 어려운 케이스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

‘뭔가 촉이 이상하잖아.’

그냥 Hirschsprung 병이라고 하기엔 뭔가 다른 질환이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느낌뿐이고, 교수님도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그저 있긴 했지만…….

‘뭐지?’

그런 의사들과는 달리 보호자는 덜컥 불안해졌다.

원래 환자에게 있어 의사란 존재가 그런 것이지 않나.

앞에서 호들갑을 떨어도 무섭고, 이렇게 숨죽인 채 가만히 있어도 무섭다.

“어머님.”

그나마 우창윤이 똑똑한 게 다행이었다.

어느새 수혁을 보겠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은 그는 여전히 진중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네.”

보호자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울음소리가 혹시 어떻죠? 녹화한 게 있을까요?”

“어…… 아, 그게. 울음소리가…… 아! 있어요! 돌사진 찍을 때.”

“좀 볼 수 있을까요?”

“네네, 잠시만요. 잠시만…… 아, 죄송해요. 제가 이게.”

“괜찮습니다.”

우창윤은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서 한편으로는 아이의 배를 만졌다.

공기가 가득 차 있어서 대변 덩어리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여기.”

“음.”

영상 속 아이는 힘겹게 울고 있었다.

목이 잔뜩 쉰 채였다.

“이날만 목소리가 이런가요?”

“아, 아뇨. 거의 늘…… 자주 울거든요.”

자주 우는 아이의 목도 쉰다.

하지만 갑상샘 호르몬이 부족한 아이의 목도 쉰다.

‘이렇게 보니까 되게 헷갈리긴 하는구나.’

우창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아과 레지던트를 불렀다.

어느새 레지던트를 비롯한 일행의 머릿속에선 우창윤의 머리 따위는 까맣게 지워진 지 오래였기 때문에 그저 빠릿하게 달려올 뿐이었다.

“검사 뭐 했지?”

“일단 항문 압력 검사를…… Hirschsprung 병에 합당한 소견이었습니다.”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호르몬 검사는 안 했나?”

“네? 어제 오긴 했는데…… 아직 계획은 없습니다.”

“바로 검사해 보도록 하지. 내 생각에 이 아이는 호르몬 질환이야. 다른 게 아니라.”

“아…… 그,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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