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화 와 이건 모르겠다 (1)
우창윤 교수가 처치실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환자와 레지던트는 꽤 서둘러서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드륵 소리를 내면서였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미 12시가 넘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그리 지체되진 않았다.
기껏해야 15분? 20분?
병원이 워낙에 크고 넓어서 이런 것인데…….
당연하겠지만 잘난 척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버린 우창윤에게는 거의 영겁에 가까운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고통스럽다……. 빨리 떠들고 싶어…….’
우창윤은 처치실에 홀로 앉은 채로 벽을 긁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심심할 때면 뒤통수라도 벅벅 긁어 볼 텐데 언젠가 그런 습관들이 탈모를 유발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는 바로 고쳐 버렸다.
사실 이제 와 탈모를 ‘예방’한다는 말이 의미가 있나 싶긴 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허나 원래 인간은 인공지능과는 달리 비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존재이지 않나.
‘대체 이수혁 교수……. 우리 사위는 이런 무료함을 뭘로 달래는 거야?’
원래도 수혁에 대해서라면 남 부럽지 않게 잘 알고 있었다.
가장 거대한 라이벌 병원의 라이징 스타이니 당연했다.
그러다 몇 번 날개 꺾이는 일을 겪고 나서는 맞서기보다는 협력자 지위를 획득하고자 노력해 오지 않았나.
수혁에 대해 점점 더 잘 알게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제는…….
한집안 사람이 되기 직전인 상황이지 않나.
‘설마 그래서……?’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잘난 척에 있어서 우창윤보다 훨씬 더한 수혁은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에 아픈 다리를 이끌고 촬영 장소까지 가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나도 따라갈 걸 하고 있으려니 마침내 환자와 레지던트가 처치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아까 우창윤이 어지간하면 다 와서 들으란 말을 해 놓은 탓에 병동 간호사들까지 우르르 안으로 들어섰다.
‘교수님……?’
그중에는 아까 우창윤의 얼굴을 보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레지던트로서는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더랬다.
아무래도…….
맨날 얼굴 보고 지내는 사이인데 교수님의 이런 몰골을 보면 또 어떻게 본단 말인가.
해서 최대한 핑계를 대면서, 심지어 야밤에 배달 음식까지 시켜서 안에 짱 박아 두려 했는데 일을 이렇게 그르쳐?
“음음.”
아니나 다를까.
우창윤을 목도한 간호사들 중 나이가 어린 친구들은 당혹스러움을 도무지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시니어 간호사들이 필사적으로 신규 또는 신규에 한없이 가까운 두 간호사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야간 병동이라 그랬다.
아무래도 낮 시간대보단 경력이 좀 짧은 이들이 주로 포진해 있었다.
“환자분.”
“아, 네.”
그러거나 말거나 우창윤은 일단 환자만 보고 있었다.
환자야 우창윤의 원래 모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곧장 우창윤의 옆으로 다가갔다.
얼굴이나 목만 보면 진짜 육중한 외양일 것 같았지만 걷는 걸 보면 또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다.
적어도 하반신 부분은 그저 통통한 체격 수준에 그쳤다.
목둘레를 보면 거의 기네스북에 나올 것 같다는 걸 감안해 보면 퍽 놀라운 일이었다.
허나 거기서 뭔가 의학적인 추론을 더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단 하나, 우창윤을 제외하면.
“이게 환자분 CT입니다. CT란……. 쉽게 말해 환자분의 몸을 이렇게 다다다다 잘라서 단면을 보여 주는 영상 장치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 네…….”
“자, 영상을 보면.”
우창윤은 스크롤을 드르륵 굴렸다.
애초에 경부, 흉부에 국한된 CT였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한참 굴릴 필요도 없었다.
“이게 환자분의 턱이에요.”
“아, 네. 턱이…….”
“엄청 두껍죠. 그 밑으로 목인데……. 이쪽으로도 엄청 두껍습니다.”
“네, 에. 후우.”
환자는 CT 영상을 보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CT에서처럼 실제로도 목을 둘러싼 지방이 시도 때도 없이 그의 기도를 누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 원래 고도 비만을 넘어선 비만에서는 저지방 조직의 압박에 의해서만도 여러 문제가 발생하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보통은 bmi가 35를 넘어서는 영역에 들어서야 했다.
그에 비해 눈앞의 이 환자는 고작해야 30이다.
심지어 잘 보면…….
장딴지나 허벅지 같은 곳에 나름 근육이 들어차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이전엔 운동을 꽤 열심히 했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게 아니라면 단순 유전 요인에 의한 것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근육량이 좀 있다 보니 bmi 중 일부는 지방보다는 근육일 터였다.
‘역시 못 알아보는구나.’
우창윤의 머릿속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다 모여서 의심으로 쭉쭉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럴 수 있던 건 역시나 우창윤의 배경 지식과 우수한 사고 회로 덕이었다.
혹시나 레지던트도 뭔가 이상함을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왜 하늘은 수혁과 같은 천재를 한 세대에 하나만 주시는 건가.’
사위?
좋지.
수혁이 한 가족이 된다면…….
아마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가득일 터였다.
이번에 미국 놈들이 돈다발 뿌리는데도 의리 지켰다지 않나.
애가 좀 이상해서 그렇지, 그 많은 돈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괜찮은 놈이란 얘기였다.
사위로서도 의리를 지키리라.
뭐 이렇게 좋기는 하지만……. 원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지 않던가?
‘에휴.’
그렇게 잠시 헛된 꿈을 꾸었던 우창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입을 열었다.
“CT를 보면 턱과 목 그리고 가슴 일부에 비정상적인 지방 축적이 관찰돼요. 다른 곳의 지방 분포도를 보면 더 확실해지는데……. 환자분, 다리 좀 보실까요?”
“어……. 네.”
“예전에 뭐 운동하셨어요?”
“아……. 그냥 군대 있을 때만……. 헬스요. 공병 나왔습니다.”
“아, 공병.”
우창윤은 뭔가 안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뭘 진짜 아는 건 결코 아니었다.
군의관 갔다 왔는데 알긴 뭘 아나.
심지어 우창윤이 군 생활했던 시절은 90년대다 보니 장교는 지금보다도 훨씬 편했더랬다.
하지만 병원에 있다 보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기 스킬이 늘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환자는 역시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라 다르긴 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보면 다른 부위에 비해 이렇게 경부와 가슴에만 지방이 과하게 축적돼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사실 이건 첫눈에 알아봐야 하는데……. 혹시 이 환자 본 사람 중에 이 점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사람 있나?”
우창윤은 이제 환자 대신 나머지 의료진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쯤 되면 시늉이라도 고개를 끄덕거릴 만할 텐데 다들 가만히 있었다.
수혁이 반이라도 따라가는 놈이 있었다면 바로 답 해 줬을 텐데…….
‘에이.’
우창윤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 사람마다 지방이 쌓이는 비율이나 부위의 차이가 있긴 해.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목과 가슴에만 쌓이는 경우는 어떤 병리적인 원인 또는 인위적인 원인이 없는 한 존재할 수 없어. 운동을 이쪽으로 하면 또 혹시 모르는 거 아닙니까 하는 말이 있을 수 있는데……. 일단 근육은 이런 식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물론 약물 사용자이거나, 신톨(근육통, 구내염 치료제) 같은 걸 주입하면 얘기가 달라지기는 한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드물지.”
일부러 있어 보이려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다 낑겨 넣는 건 아니었다.
그냥 원래 아는 게 많은 사람이었다.
나이가 어린데 너무 빨리 떠서 정치 교수네 뭐네 하는 말들이 잇따르긴 하지만…….
실제로 내분비내과 내에서 입지가 대단할 수 있었던 건 그냥 실력 때문이었다.
비단 자기 전문 분야 말고도 내분비대과 딱지가 붙어 있으면 대가라 해도 좋을 만한 실력을 쌓아 두었다, 이 말이었다.
어찌 보면 안대훈처럼 너무 고생해서 머리가 흩날렸을 수도 있었다.
“자,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방의 프로포션이 변화할 수 있는 질환을 떠올리는 거야. 사실 많지는 않아도 몇 개 있을 수 있지. 대개는 선천성 질환일 텐데……. 환자는 선천성 질환은 아닐 거야.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 갑자기 발병하는 선천성 질환은 없잖아. 그럼 뭘 떠올릴 수 있지?”
우창윤은 이번에도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와 차이가 있다면 별 기대가 없어졌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보니 딱히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말을 이었다.
레지던트가 그래서 섭섭했냐고?
아니, 그럴 수는 없었다.
모르니까.
오히려 좋았다.
“그래. 알코올 의존증이지. 술은 정말 많은 대사질환을 일으킬 수 있어. 아까 말했던 질환 모두 포함해서……. 마델룽 병이라는 질환을 일으킬 수 있지. 이거 들어 본 사람?”
질문은 거의 습관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침묵은 거의 관습적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마치 입을 열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다들 닥치고 있었다.
우창윤은 그걸 보면서 실망하는 대신 그냥 쓴웃음만 지었다.
뭐 어쩌겠나.
‘내가 너무 똑똑해서 탈이지…….’
사실 이런 질환을 얼굴 보자마자 떠올릴 수 있는 의사가 있을까?
‘있네?’
그래, 이수혁 빼고!
혹시 모르니까 이현종도 빼고.
아무튼, 몇몇 빼면 없을 거다.
내분비내과 쪽으로 가도 그렇다.
왜?
진짜 어려운 질환이니까.
“이 이름 외에도 양성 대칭 지방종증, 다발성 대칭 지방종증, 라우노이스 베사데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이름은 더 모르겠지? 그래, 모를 수 있어. 아무튼, 1846년에 처음 기술된 질환이야. 정리가 된 것은 1888년이고, 지금 우리가 진단하는 데 쓰이는 기준이 만들어진 건 1991년이고. 꽤 역사가 깊은 질환이지? 술 많이 먹으면 생길 수 있는 질환이니까 당연한데……. 아직까지도 정확한 기전은 몰라.”
이런 병이 한두 개는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는데, 왜 벌어졌는지는 모르겠는 병들.
이럴 때마다 의사들은 겸손해진다.
아마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도 그럴 거다.
밖에서는 양자역학이면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다 설명할 수 있을 거라 떠들겠지만, 집에 가서는 술이나 마시면서 하늘을 향해 기도드리고 있을지 어떻게 아나.
아직까지 세상은 미지의 영역으로 가득 차 있다.
“다만 추론하기론 지나친 알코올 섭취가 아드레날린성 지방분해를 어떤 식으로든 손상시키고, 그로 인해 통제되지 않는 지방 축적이 여러 부위에 생기지 않나 하는 거야. 아무튼, 치료는 간단하지? 이미 쌓인 지방은 물리적인 제거가 필요해. 예전 같았으면 엄청 어려웠을 텐데 이젠 지방 흡입만 하면 되니까.”
불과 3, 40년 전까지만 해도 지방 절제술이었다.
지방 흡입술이 아니라.
왜?
진짜 칼로 째서 제거해야만 했었으니까.
당연히 더럽게 어렵고 위험한 수술이었다.
“그렇게 하고……. 환자분. 이제 술은 좀 끊어 주셔야 겠습니다.”
“아, 네.”
“대답은 잘하시네. 정신건강의학과 도움을 받을 겁니다.”
“아……. 네?”
“혼자서는 절대 못 끊어요, 술. 중독성이 엄청난 물건이거든요, 술이라는 게.”
“아……. 그…….”
“그렇게 아시고, 외래 잡아서 퇴원시켜 드리자구. 포지션에 따라 호흡곤란 정도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거 티칭하고.”
우창윤은 조금은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호하게 설명을 마치고, 레지던트를 불렀다.
“딴 데 어려운 환자 없을까?”
“아…….”
발동 걸렸다.
오늘은 집에 갈 생각이 없었다.
이것이 우창윤이라는 사내가 중년의 위기를 타개하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