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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204화 (1,204/1,303)

1204화 와 이건 모르겠다 (3)

레지던트의 소리 없는 절규와는 별개로 우창윤은 담당 간호사인지 아니면 단순히 짬에서 밀려서 돌게 된 것인지 모를 간호사를 따라 병실로 향했다.

제아무리 대학 병원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곳이라 해도 새벽 1시의 병동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우선 복도를 제외한 곳에는 불이 다 꺼져 있었다.

심지어 복도의 조도도 이전보다 많이 낮았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사람은 잠을 자야 회복하는 동물이지 않나?

환자야말로 회복이 절실한 사람들이다 보니 열악한 환경일지라도 최대한 잠은 자도록 배려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어휴…….’

그러한 병실 문을 지금 드륵 소리와 함께 열고 들어가고 있었다.

레지던트는 자기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한숨 소리에 깜짝 놀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창윤은 지금 뭔가에 취해 있었다.

그렇다 보니 레지던트의 반응 따위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저분인가?”

“네.”

“으음…….”

우창윤은 교수답게 곧장 환자에게 함부로 다가가 깨우는 대신 우선 발치 쪽에 서서 환자를 관찰했다.

‘50세……. 여자. 나잇살이 꽤 있고……. 딱히 운동한 흔적이 있어 보이진 않아.’

관찰이라고 해 봐야 수혁처럼 세밀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지금은 환자가 자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불이나 환자복에 가려져 있었다.

허나 드문드문 보이는 종아리나 발, 손 그리고 팔뚝, 손목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파악이 가능했다.

아마 운동이랑은 담을 쌓았을 거다.

본인 생각은 좀 다를 수도 있다.

실제로 걷거나 나무에 등 치는 것 또는 가사 일을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하지만 대개 그런 식의 움직임은 말 그대로 움직임이지, 운동은 아니다.

‘그 외에는 잘 모르겠네.’

우창윤은 수혁 흉내를 좀 더 내 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이 재능의 차이일까 하면서 그는 환자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간호사도 그를 도와 발 쪽을 톡톡 두드렸다.

“최윤주 님. 최윤주 님.”

이름을 불러 가면서였다.

“어…….”

환자는 졸림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두리번거리는 것이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최윤주 님. 담당 간호사예요.”

“어……. 네네.”

아마 집이었다면 정신을 차리는 데 시간이 꽤 걸렸을 터였다.

상당히 높은 확률로 눈도 뜨지 않았을 것이고.

허나 여기는 병원이지 않나?

어지간히 익숙해진 사람을 제외하면 깊은 잠을 자는 게 불가했다.

좀 슬픈 일인데, 병원 생활이 익숙해질 정도로 아픈 사람은 그 병 때문에 깊은 잠을 자는 게 불가했다.

그 말은 입원 환자 중에 잘 자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얘기였다.

“어…….”

“안녕하세요, 내분비내과 우창윤 교수입니다. 환자분을 좀 보려고 왔습니다.”

“아, 네네.”

간호사뿐만 아니라 나이가 지긋하다는 말도 실례가 될 정도로 늙은 교수가 같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환자는 자세를 바로 했다.

50이면 이제 적잖은 나이지만 눈앞의 교수는 적어도 60은 훌쩍 넘어 보였다.

“우측 다리가 아프셔서 내원하신 거죠?”

“아……. 네. 어제 진료 봤어요. 응급실로 가라고 해서 검사도 좀 했고…….”

“그러셨더라고요. 우측 다리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아, 네. 여기…….”

우창윤이 환자의 신체 활동을 괜히 나쁘게 평가했던 것이 아니었다.

팔뚝이나 이런 데는 살이 꽤 있는 데 반해 종아리는 또 가는 편이었다.

그냥 살이 찌고 있다는 뜻인데…….

그래서 그런가, 환자복이 아무리 헐렁하다고 해도 허벅지까지 올려서 보여 주는 건 쉬운 일은 아닌데, 환자는 별 어려움 없이 바지를 쭉 위까지 걷어 올렸다.

피차 나이도 있는 데다가 의사 환자 관계임이 명확한 상태였기 때문에 서로 부끄러움은 없었다.

애초에 우창윤은 한참 전부터 완연한 의사 모드였기 때문에 상대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여기가 아파요. 굉장히 아픕니다…….”

“흐음.”

우창윤은 환자의 우측 허벅지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좌측 허벅지도 관찰했다.

종창이 있었다.

엄청 부었다는 얘기였다.

“이건…….”

뒤에 있던 레지던트, 그러니까 빨리 자고 싶어 하던 녀석도 이 확연한 차이에는 관심을 보였다.

“음.”

우창윤은 그 차이에 유념하면서 다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뜨끈했다.

손등만 대도 국소적인 열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열이 있고…… 이렇게 누르면 아파요?”

“아야…….”

“압통도 있어.”

우창윤은 그렇게 검진을 한 후, 재차 레지던트를 돌아보았다.

눈빛만 봐도 뭐 같냐고 묻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해서 답했다.

“확실히 구획 증후군인 거 같은데요?”

“그래, 뭐……. 굳이 그거까진 아니더라도.……. 검사 소견만 볼 때랑은 좀 달라. 확실히…… 감염은 있어 보이는데. 흐음. 약 뭐 들어가고 있지?”

레지던트의 말에 우창윤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간호사 쪽을 바라보았다.

간호사는 부리나케 답했다.

짬이 밀리기도 했지만 실제로 담당 간호사이기도 해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제 입원하기 전…… 응급실에서부터 항생제 들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2세대 세파랑 메트로니다졸입니다.”

“애초에 혐기성을 염두에 두고 있네. 구획 증후군을 의심하고 있다는 건데……. 허투루 보진 않는구만, 그래.”

우창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환자를 돌아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환자의 다리를 봤다.

‘근데…… 다친 흔적이 전혀 보이질 않아.’

꼭 다쳐야 감염이 되냐는 말을 할 수도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다.

왜?

우리 몸은 피부라는 보호막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

이걸 균이 뚫고 들어오려면 아무래도 피부가 다쳐야 하지 않겠나?

뭐 패혈증처럼 피를 타고 균이 왔다면 또 모르겠는데, 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환자는 지금 여기 있는 게 아니라 중환자실에 있어야 했을 거다.

‘이상한데……. 이상해. 그러니까 감염내과에서도 의증을 붙여 놨겠지?’

확실했으면 확진을 내렸을 텐데 그건 아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우창윤은 간호사를 향한 질문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뭐가 되었건 환자에 대한 정보는 하나라도 더 갖고 있어야 하기에 그랬다.

“음, 근데 환자 검사 결과……. 피 검사 결과는 어떻지?”

“아, 네. 아직 다 나온 건 아닌데……. 여기 있습니다.”

“좋아.”

우창윤은 그렇게 간호사의 패드를 건네받았다.

환자 결과가 떠 있었는데 이게 심상치가 않았다.

“백혈구 수치가 12000에…… ESR이 75, CRP는 14.1. 어마어마하구만…….”

“확실히 구획 증후군이지 않을까요? 환자 증상도…… 아파서 오셨다고 하고요.”

“그래, 의심이 되지. 외과에 컨택은 해 놨나?”

“네, 해 두긴 한 거 같은데 아직 보러 오진 않았습니다.”

“흐으음……. 이게 맞으면 바로 수술을 하긴 해야 될 거 같은데…….”

“그러니까 말입니다.”

구획증후군은 말 그대로 초응급이다.

혈액 공급이 안 되는 상황이니만큼 늦으면 장기가 죄 죽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렇기에 빠른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었다.

상처가 없는 것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 외에 징후는 거의 다 구획증후군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엇보다…….

“환자분 발 좀 볼까요?”

“아, 네. 으음…….”

환자는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발을 만져 보니 상당히 차가웠다.

맥박도 약하고.

이는 실제로 뭔가 누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쩐다?’

어려운 케이스다.

뭐가 어렵냐.

진단보다는 속도감이 어렵다.

최대한 빨리 뭔가 알아내야 할 텐데…….

그래야 외과를 불러다 째거나 하지 않겠나?

“CT실 연락해 보자.”

“아……. 네. 당직의한테도 알릴까요?”

“어, 그래. 감염내과 당직의한테도 알려. 뭐라고 하면 바로 내 이름 팔아, 그냥.”

“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단 우창윤뿐 아니라 레지던트 또한 마음이 급해졌다.

실제로 발이 지금 뭔가 변해 가고 있지 않나?

위에서 누르는 게 분명했다.

“지금 발 만지는 거 감각이 어때요?”

“뭐……. 좀 이상한데.”

“간지럽히는 거 알겠어요?”

“아뇨,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우창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각이상이 있다.

그 말은 감각 신경에 손상이 있다는 뜻이지 않겠나?

‘벌써 괴사가 천천히 진행 중이야. 아침까지 기다려서 CT 찍고 하다가는 환자 예후가 좋지 못할 거야.’

-서울 아선 병원 환자, 진단 지연으로 절단.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뉴스 헤드라인은 이러했다.

아니, 거기서 그치지도 않았다.

-서울 아선 병원 기조실장 우창윤, 새벽에 환자 봤음에도 지연시켜.

병원 기사만 나가는 것도 치명적이다.

우창윤이 원장단이지 않던가.

병원 경영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란 얘기다.

근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개인 이름까지 나오게 된다면……?

뭐 아선 병원이니만큼 그런 불상사야 어지간하면 막아 주기는 하겠지만…….

“교수님. 한 20분 이따가 찍을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응급실 환자 찍고 있고, 그 뒤에 바로 오시면……. 찍을 수도 있다고…….”

“그래, 20분? 어딘데.”

“응급실 CT실입니다. 20분이면…… 지금 바로 가야 될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럼 가자. 이송 요원 부르고 하면 새벽이라 늦어. 우리가 끌자.”

“어……. 네, 알겠습니다.”

마음이 살짝 급해진 우창윤은 레지던트와 함께 침대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환자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나이 많은 교수가 직접 끌고 나가고 있는데.

어련히 필요하니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겠거니 하고 있었다.

“저, 저도 돕겠습니다!”

간호사도 덩달아 밀고 있었다.

병동에서의 일도 있긴 한데…….

어쩌겠나.

다른 간호사들도 이미 우창윤의 얼굴에 놀란 상황이었다.

어디서 보긴 봤는데 기억은 정확히 안 난다는 게 제일 컸다.

이름을 모르는데 봤다는 건 높은 사람이라는 뜻일 테니까.

머리가 없는 것을 봐도 높은 사람이라는 건 확실했다.

드르륵.

그렇게 일행은 환자를 끌고 CT실로 향했다.

다행히 부리나케 움직인 덕에 침대 끌고 움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CT실에서 예고했던 20분 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 그럼 환자분. 조영제 들어갈 때 여기가 좀 뜨끈할 수 있어요. 이건 정상입니다. 근데 심장이 막 두근거리거나 통증이 있거나 하면 바로 손 드셔서 알려 주셔야 합니다.”

“아, 네.”

“그럼 이제 찍겠습니다.”

안내를 받고 곧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우창윤과 레지던트는 촬영실 옆에서 대기했다.

넘어오는 영상을 초조하게 기다리면서였다.

드륵드륵.

곧 영상이 넘어오고 있었다.

확실히 우측 허벅지는 엄청나게 부어 있었고, 조영되는 정도도 주변부하고 확연한 차이가 났다.

그중에서도 주로 내전근이 이상했는데…….

“농양이 없어.”

“네. 조영 증강된 영상에서도 균일합니다. 어……. 이거…….”

“MRI를 찍어야 더 정확할 거 같긴 한데…….”

“MRI요? 그건…….”

CT를 찍으면 뭔가 명확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전히 애매했다.

우창윤의 말대로 MRI를 찍으면 좀 낫긴 할 터였다.

하지만 MRI는 CT처럼 밀고 들어가기가 어려운 검사였다.

한번 찍는 데 워낙 오래 걸리니까.

‘모르겠는데? 이것만으론?’

우창윤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순간, 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군고 하고 보니, 수혁이었다.

-그래서 아까 말했던 어려운 환자는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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