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05화 (1,205/1,303)

1205화 와 이건 모르겠다 (4)

‘음.’

우창윤은 문자를 보고 잠시 생각했다.

‘예약 문자일까?’

지금 시각은 이제 거의 2시다.

2시…….

당직 서는 의사면 뭐 한참 깨서 움직일 만한 시간이긴 했다.

2시면 이제 슬슬 아픈데 병원 가긴 귀찮고 해서 억지로 잠자려고 했던 환자들이 점점 더 심해지는 통증이나 다른 증상 때문에 응급실로 오기 시작하는 시간이라서 그렇다.

혹은 술자리가 자연스럽게 파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요즘에야 이렇게까지 술 먹는 사람들이 많이 줄긴 했지만…….

‘MZ스럽지 못한 꼰대 교수들은 아직도 레지던트 붙잡고 2차, 3차 떠든다고 하더만.’

에휴.

촌스러운 놈들.

대체 언제까지 그 구시대적인 생각에 잠겨 있을 작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이 말야, 어?

시대가 바뀌면 바뀔 줄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네 생각에는 어떤 거 같냐?”

“으음…….”

레지던트?

레지던트는 딴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피곤하고…….

또 내일에 대한 걱정이 밀려와서 그랬다.

이러다가 밤새우고 나면 이거…….

어떻게 하냐고.

내일 어떻게 해!

“어떤 거 같어.”

“아, 네네. 그…….”

하여간, 물어보는데 어쩌나.

그나마 직급이 낮은 교수도 아니고, 너무 높은 사람이다 보니 반드시 답은 해야만 했다.

그래서 열심히 봤는데…….

역시나 모르겠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사실 우창윤도 몰라서 괜히 심술부리면서 물은 거니까.

“모르겠어?”

“아, 네.”

“그래. 그렇군. 이런 제기랄…….”

우창윤은 한숨을 쉬다가 이내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떡하니 수혁의 문자가 와 있었다.

아, 방금 하나 더 왔다.

-깨 있으신 거 같은데, 답변 부탁드립니다.

예약 문자는 아닌 듯했다.

‘미친놈……. 하지만 반갑다.’

우창윤은 다시 온 문자를 보다가 피식 미소를 띄웠다.

모르겠다는 건 당연히 슬픈 일이긴 했다.

아니…….

우창윤도 사실 뛰어난 의사지 않나.

그냥 뛰어난 정도가 아니라 뛰어난 사람 다 모아 둔 상태에서도 뛰어난 의사다.

당연하게도 자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말인데…….

‘다음 내 카드는 조커다. 론!’

슬픔은 잠시였다.

뭐가 되었건 이 환자는 빨리 진단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전혀 모르겠잖아?

그렇다 보니 수혁이 이렇게 또라이처럼…….

새벽 2시임에도 빠릿빠릿하게 나오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빠릿빠릿하다기보다는 약간 채근하는 느낌이 드는 건 이상했지만.

자기 사위가 이상한 놈이라는 걸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지 않나?

‘구라쟁이가 아니게 됐다, 이 말이지.’

후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좋은 일이다.

애초에 여기 온 게 환자 보러 온 게 아니었지 않나?

보다 보니 본의 아니게 본인이 너무 천재여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일 뿐이다.

“어, 이수혁 교수.”

“네, 교수님.”

해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마자 수혁은 전화를 딱 받았다.

목소리도 맑고 청아한 것이 절대 자다 깬 김에 문자 보낸 것도 아닌 듯했다.

‘미친놈이긴 해…….’

그냥 이 시간에 깨 있었다 이 말인데…….

하여간, 이상한 놈이다.

물론 따지고 보면 우창윤도 정확히 이 시간에 깨어 있으니 이상한 놈이긴 피차 마찬가지였지만, 원래 교수로 오래 살다 보면 내로남불이 자동으로 탑재되기 마련이다 보니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래, 아까 말했던 어려운 환자 말야.”

“네.”

“지금 여기 있는데……. 일단 환자는 우측 다리 통증을 주소로 내원했어.”

“네, 계속 말씀하시죠.”

수혁은 우창윤의 말에 바로 몰입했다.

[우측 다리……. 느낌 좋네요.]

‘그래. 확실히…… 사지의 증상이 오히려 드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우창윤과 있었던 일들을 보면 좀 그렇긴 하지만…….

사실 우창윤이 꽤 훌륭한 의사이지 않나?

논문이나 케이스 리포트 등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더해 수혁은 바루다 때문에라도 편견이 덜 쌓이는 사람이다 보니 우창윤은 뛰어난 의사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그가 모르겠다고 하는 케이스에 대한 기대 또한 자연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우창윤이 던졌던 케이스들……. 거의 다 좋았죠.]

‘그랬지. 괜히 하윤이의 아버지가 아니라니까?’

[그러고 보니 그런데 왜 말투가 이렇게 딱딱합니까?]

‘원래 이렇게 말했었는데……. 갑자기 사근사근해지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니냐?’

[그것도 그렇긴 한데…….]

둘은 이런 식으로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동시에 우창윤의 노티 아닌 노티를 듣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환자는 50세 여자 환자고, 보고된 기저질환은 없으나 내원 당시 심박동수와 혈압이 아주 높았다.

주된 호소 증상은 우측 허벅다리 통증이었는데, 외래에서 봤을 때 좌측에 비해 둘레가 더 늘어나 있었고 동시에 압통과 열감까지 있었기 때문에 응급실로 가서 혈액검사 등을 한 후, 입원했다.

혈액검사 결과 CRP와 같은 급성 염증 지표가 크게 증가해 있었고 백혈구도 늘어나 있어 감염으로 인한 우측 허벅지 급성구획증후군이 강력하게 의심이 되었으나 외상의 소견 또는 선행된 감염의 징후가 전혀 없어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때 우창윤 교수가 가서 보고 CT도 찍었는데 이 역시 긴가민가한 소견만 보이더라 하는 게 이 케이스의 대략적인 상황이었다.

“가 보죠.”

“그래. 응? 가? 온다고?”

“네. 아선 병원 뭐 처음 가는 것도 아니고.”

“그…….”

남의 병원에 진료 보러 오는 걸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그래, 그러려고 전화한 거긴 해.’

애초에 수혁과 직접 만나려고 꾸민 일 아니던가.

그러니 뭐 온다고 하면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 와. 그럼.”

“알겠습니다. 지금 갑니다.”

“그래……. 오면 전화 줘요.”

“네.”

반존대를 해 가면서였다.

수혁도 우창윤이 어색했지만, 우창윤도 수혁을 대하는 것이 어색해서 그랬다.

사실 반존대도 예의는 아니었다.

나이야 한참 위지만 다른 병원이지 않나.

뭐……. 예전 같았으면 다른 병원이고 나발이고 의사로 선배니까 보자마자 말 놓는 사람도 많기는 했겠지만…….

‘그런 건 MZ 하지 못한 일이잖아.’

우창윤은 나름 세련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인간이었다.

진짜 세련된 사람은 딱히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지 못하는 이상 대개 비극적인 결말만 맞이하게 되겠지만…….

교수다 보니 딱히 그렇지만도 않았다.

적어도 눈앞에서만큼은 다들 교수님, 교수님 하면서 웃어 주기 마련이기에 그랬다.

부우우우우웅.

하여간, 전화를 끊은 수혁은 바로 차를 타고 아선으로 향했다.

이렇게 말하면 진짜 밟을 것 같겠지만 수혁은 늘 정속 주행이었다.

바루다 때문이기도 하고, 수혁 본인이 오래 살기를 간절히 바라서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너무 힘든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보육원에서의 삶은 빈말로도 살기 좋았다고 하긴 어려웠다.

심지어 수혁은 꽤 좋은 원장과 사모를 만났음에도 그랬다.

아무리 좋은 원장도 부모가 될 수는 없기에 그랬다.

애초에 아이들 수가 너무 많기도 하고.

“저 로비예요.”

“어어. 들어와. 근데 로비에 주차가 되나……?”

“전 장애인 주차 공간에 주차할 수 있거든요.”

“아, 아아.”

우창윤은 혹시 자기가 말실수한 건가 싶어서 잠시 눈치를 보았다.

정작 수혁은 별생각이 없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거기 주차할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 교수님.”

“어어어어어.”

게다가 어려운 환자를 보러 온 참이지 않나.

얼굴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우창윤도 히죽대는 얼굴을 보고 나서야 안심하고는 자연스럽게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환자 얘기나 좀 더 해 주세요.”

가면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

어색하잖아.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씹고 있을 수도 없고…….

헌데 쓰잘데기없는 걱정이었다.

‘그래……. 일단 환자 얘기나 해야지.’

우창윤은 역시나 이수혁이라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원하는 얘기를 해 주기 위함이었는데, 막상 떠들어 대고 보니 반응이 아주 좋지만은 않았다.

“이건 전화로도 대강 예상이 가능했던 얘기잖아요.”

“그…… 그렇긴 하지. 그게 바로 왔으니까.”

“그럼 그사이에는 환자를 안 보신 거예요?”

“봐, 봤죠……. 근데 이게.”

“뭐, 그럴 수 있죠.”

약간 체념하는 듯한 수혁을 보면서 우창윤은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눈을 잘 안 마주치는 것 같기도 했다.

‘설마 이 자식……. 하윤이랑 헤어지려고……. 나한테 미안해서 이러는 건가?’

이런 생각마저 들 정도로 좀…….

선을 긋는 느낌이었다.

이럴 거면 왜 환자 본답시고 왔나 싶었다.

물론 수혁은 그렇게까지 꿍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아씨……. 원래 대머리야?’

[가발인 건 알았잖아요.]

‘이렇게 시원하게 벗은 줄은 몰랐지.’

[사실 저도 몰랐습니다. 아휴……. 이게 무슨 일이래?]

‘그러니까 말이야. 아이구…….’

그저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머리만 보면 자꾸 그 생각이 나서 아예 고개를 돌려 버린 참이기도 했고.

둘에게는 다행이게도 곧 환자에게 닿을 수 있었다.

암만 병원이 크다고 해도 공간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나.

“영상부터 볼까요? 아까 수치는 다 들었으니까.”

“네. 여깄습니다.”

이쯤 되었을 때의 레지던트는 오히려 표정이 밝았다.

원래 포기하면 편해지지 않나.

오늘은 그른 날이구나.

그래, 이런 날도 있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마음이 푸근해졌다.

해서 눈을 빛내며 영상을 띄울 수 있었다.

수혁은 드르륵 스크롤을 굴렸다.

“으음.”

[균일하군요. 내전근 그리고 바로 주변 근육까지는 조영증강 정도가 변했습니다. 동시에 균일해요.]

‘감염은 아냐.’

[네, 감염은 아닙니다. 물론 MRI를 찍어 보면 훨씬 더 정확하긴 할 텐데……. 대강 알겠습니까?]

‘의심 가는 질환들이 있어. 근데 검사를 해 봐야 해. 복잡한 검사는 아니지만.’

[대충 말해 봐요. 입 털어도 되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너…… 나랑 똑같은 거 생각하고 있는지 불안해서 그러지?’

[사실 그렇습니다.]

‘오케이. 난 당뇨랑 연관이 있을 거라고 봐.’

[굿. 이륙해도 좋다.]

일부러 소리를 내면서였는데, 그와 동시에 이미 바루다와 토론을 마칠 수 있었다.

확실히 지금까지 쌓인 소견이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결정적인 것도 아니었다.

어려운 케이스였다.

이걸 우창윤이 모른다는 건 좀 의외였지만…….

정수리까지 벌게진 것을 보니 피곤한 모양이었다.

하긴, 나이도 있는데 이 시간까지 깨어 있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수혁도 괜히 깨어 있던 게 아니라 그냥 오늘따라 흥취가 올라 혼자 환자보다 이렇게 된 것일 뿐이지 않나.

그보다 큰 이유는 디카페인 커피인 줄 알고 마셨던 것이 샷 추가까지 한 아메리카노였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지만.

“자……. 대강 알겠군요.”

아무튼, 수혁은 턱을 조금 치켜들고 눈은 살짝 감은 채로 입을 열었다.

최대한 지적으로 보이는 표정이었는데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바루다의 조언을 따라 짓는 표정이었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에도 퍽 그럴싸했다.

그래서 놀라웠다.

“버, 벌써?”

“그걸 기대하고 부른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아니, 대체 어떻게.”

우창윤에게 특히 더 그랬다.

천재라는 건 알지만 이건 좀 너무 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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