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7화 일단 안심이야 (1)
우창윤 교수는 상념에 빠져 있었다.
혼자 있어서는 아니었다.
수혁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었다.
여긴 아선이니 우창윤이 나름 호스트이지 않나.
당연히 이야기를 이어 나가야 할 텐데…….
‘새삼스럽게……. 우리 사위가 고아라는 사실이 떠오르네.’
고아.
어쩜 이렇게 낯선 단어일 수 있을까.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 아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를 지칭하는 뜻이잖아?
아무리 이과라고 해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공부 잘한 사람 중 하나인 우창윤을 너무 무시하는 것도 그리 좋은 처사는 아닐 터였다.
‘내 주변에 있었나?’
혹시 모를 일이긴 하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 일이니까.
동시에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고.
너네 부모님은 뭐 하셔? 라는 질문…….
이거 어떻게 보면 되게 무례한 질문이지 않나?
‘아니, 왠지 없었을 거 같다.’
물론 여태 우창윤 교수가 그런 질문을 하면서 살아오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가 특별히 예의 발라서가 아니라 그냥 관심이 없어서였다.
무엇보다 우창윤이 살아온 생은…… 탄탄대로 그 자체이지 않은가.
보육원 출신의 수혁과는 완벽한 대척점에 있는 삶이라 해도 좋을 터였다.
지역 유지라는 말조차 모자랄 정도로 부유했던 어린 시절, 한 번 아니라 여러 번 고꾸라져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부모의 지원 등등…….
‘아니, 이 단어에 너무 사로잡히지 말자…….’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왠지 모르게 조금 부끄러워졌다.
정말이지 혼자만의 힘으로 우뚝 선 사람 앞에 있자니 뭐라고 할까…….
난 가짜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우창윤은 고개를 좌우로 급히 털었다.
열심히 살아온 게 맞다는 생각을 억지로 떠올리면서였다.
“저, 교수님.”
들켰나 싶었다.
아뿔싸 싶기도 했고.
소문에 의하면 수혁이 묘하게 눈치 빠를 때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것치고는 연애하는 게 진짜 미칠 지경으로 답답하기는 한데…….
“어, 어어?”
“환자 본다고 해 놓고 왜 병원 밖으로 나왔죠?”
“아, 아아아아.”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아.”
그러고 보니 밖이었다.
어쩐지 약간 쌀쌀하다 싶더라니, 밖이었다.
‘잠깐만……. 왜 머리가 쌀쌀하지?’
머리는 항상 더운 곳이었다.
항상이라고 하기엔 얼마 안 되긴 했는데, 하여간, 가발이라는 신문물을 접하고 나서는 늘 더운 곳이었다.
문득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을 가져다 대 보진 않았다.
필사적으로 참았다.
느낌뿐인데 괜히 만졌다가 삐뚤어져서 난감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란 말인가?
-아, 좀! 나는 모르겠다니까? 나도 모르겠는 걸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알아. 그냥 가려우면 긁고 그래! 그리고 뭐 막말로 대머리인 거 밝혀지면 어디가 덧나? 연예인이야?
부인은…….
평생 자기 편인 줄 알았던 부인은 매몰차게 말했더랬다.
솔직히 좀 질척이긴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다.
우창윤은 애써 상처를 극복한 채, 입을 열었다.
결연한 표정이었다.
대머리 탓인지 아니면 딸 탓인지 모를 만큼이나 그랬다.
“이수혁 교수.”
“네.”
“내 딸이랑 사귀지?”
“아…….”
수혁은 우창윤의 머리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탈모 자체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다.
흔히 놀리듯 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왜 이렇게 황폐화되었을까? 원래 10만 가닥은 되었을 텐데.’
[지금은 몇천 가닥 정도 남은 거 같군요.]
‘대머리로군…….’
[의학 용어로는 남성형 탈모증 혹은 안드로겐성 탈모증입니다. 남성 호르몬이 5a-reductase를 만나 생성된 DHT(Dihydrotestosterone)가 주된 원인이죠. 대개 사춘기 전후로 시작되어 30, 40대에 급격하게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루다를 활용한 사유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 딸 드립을 들었으니 얼마나 놀랐겠나.
수혁이 제아무리 대학 병원에서 침착함을 수련받았다 해도 당황하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우창윤은 흔치 않은 꼴일 것이 분명해 보이는 수혁의 당황한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하는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지금 자신은 어떤 얼굴일까도 궁금해졌다.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그저 하고 싶었던 말을 할 뿐이었다.
“우리 딸……. 장난스럽게 만나는 건 아니지?”
“네? 그건 무슨 뜻인지…….”
아니, 하고 싶었던 말이 이게 맞았나?
‘그냥 진도 어디까지 나갔냐고 묻고 싶었던 건데……?’
이런 게 처음인 것도 아니었다.
20대 시절엔 남자 놈들 만나서 맨날 하던 얘기가 바로 이런 거 아니었던가.
야, 그래서 사귀냐?
손은 잡았냐?
뽀뽀도 했냐?
근데 이쁘냐?
친구도 이쁘냐?
그럼 나도…….
“말 그대로 진지한 교제 중인 게 맞냐고 묻는 거야.”
머릿속에는 경박하기 그지없는 말만 왔다 갔다 하는데, 신기하게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진중하기 이를 데 없는 말뿐이었다.
심지어 표정과 말투도 그랬다.
거기에 더해 머리까지 없다 보니 수혁으로서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이나 거대한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 진지한 교제?’
빨리 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입술만 달싹일 뿐, 의미 있는 언어가 나가진 못하고 있었다.
[뭐 해?]
‘말이 안 나와.’
[아니……. 이 멍청한. 인턴입니까? 아니, 태화 의료원 실습생도 이렇게 쉬운…… 질문에는 바로 답할 수 있을 텐데요?]
‘그래? 그런가? 진지한 교제 중인 거야?’
[이건…… 무슨 병신인 거지?]
바루다는 수혁을 보면서 한숨을 푹 쉬다 말고, 돌연 수혁의 현재 상황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
[하긴……. 모쏠이죠.]
‘모쏠 아니거든…….’
[이젠 아니지. 아무튼, 진지한 거 맞습니다.]
‘맞아?’
[수혁……. 매일 꿈꾸고 있지 않습니까? 하윤이랑 결혼해서 애 낳고 손주까지 보는 꿈. 조금씩 달라진다 뿐이지 하여간 꾸잖아. 그게 수혁의 무의식이고 또 의식입니다. 아니라고 해 보십쇼? 결혼 상상하면 누가 옆에 있습니까?]
‘하윤이지.’
[죽을 때를 생각하면?]
‘음……. 하윤이지.’
[근데 진지한 교제가 아니라고요?]
결혼식을 떠올릴 때 지금 사귀고 있는 상대의 얼굴이 붙어 있는 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긴 한데……. 그럼 그냥 빨리 헤어지는 게 정답일 수도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런저런 미래를 꿈꾸게 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나.
허나……. 아무리 그런 상황이라 해도 죽을 때까지 연인의 얼굴이 떠오르는 경우는 적었다.
바루다는 그게 중증이라고 생각했고, 수혁은 방금 든 생각이긴 하지만, 진정한 사랑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진지하게 교제 중입니다.”
바루다와의 대화는 늘 그러하듯 가속된 상태로 이루어졌다.
꽤 많은 정보가 오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지나간 시간은 찰나일 뿐이었다.
우창윤이 보기엔 즉답으로 보일 지경이다, 이 말이었다.
‘좋네. 고민도 안 하고 말할 정도면…….’
우창윤은 흡족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내가 애지중지 키운 딸이랑 손 잡고 노니까 좋냐?’
속으론 자꾸만 이런 생각이 떠돌았지만, 막상 튀어나오는 말은 전혀 다른 종류의 그것이었다.
“내 딸……. 상처 주면 안 돼. 하윤이 그렇게 안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상처받기 쉬운 아이야.”
“물론입니다. 상처…… 줄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래…….”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우창윤은 나름 자신이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 자부하고 있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말 못 하는 사람이 어찌 기조실장이 되겠나?
거대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조직의 장이 되려면 실력만 있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헌데…….
‘시벌 뭔 말을 해야 해?’
되게 오랜만이었다.
언제였더라, 이렇게…… 말문이 턱 막힌 게.
우창윤은 어쩐지 예비 사위 앞에서 아내와 데이트 하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식은 언제 올릴 작정인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이 말은 하면 안 됐던 말 아닌가 싶었다.
수혁이나 하윤은 모르고 있겠지만, 우창윤은 신현태가 꾸린 이수혁 연애 TF팀에 들어가 있는 몸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대강이라도 언제부터 사귀기 시작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얼마 안 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이 말이었다.
“네? 식이요?”
“그래……. 그…….”
사귄 지 몇 달 만에 결혼식 얘기를 꺼내는 여자친구의 아버지.
어떻게 보일까?
‘어떻게 보이긴! 미친놈이지!’
밤이 깊어서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시원하게 환자 보면서 즐겨서일까.
약간 취해 있었다.
그런 얘기를 하면 이해해 줄까?
그럴 리가…… 없었다.
“그, 요새는 요새 MZ는 말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우창윤은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괜찮았다.
수혁도 스턴에 걸렸으니까.
사실 결혼식…… 하윤이와의 결혼식을 늘 떠올려 보지 않았겠나?
그럼 항상 주홍글씨처럼 따라붙는 생각이 있었다.
-자네 부모가 없는데…… 제대로 된 가정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겠나?
-다리는 어쩌다…… 그렇게 됐지?
안다, 수혁도.
평상시 우창윤 교수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이런 질문까진 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또 아는 내용이 있다.
-수혁아, 경철이…… 죽었다.
보육원 생활을 할 때는 거기가 지옥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와 보니 사회가 지옥이었다.
오히려…… 보육원은 그저 부족한 것들이 있었을 뿐, 사랑과 애정이 있던 곳이었다.
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또는 그러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기꺼이 돕기 위해 인생을 바치는 이들이 모인 곳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곳이었다.
밖?
이곳은 편견이 가득한 곳이다.
“그그! 요새는 사귀면서도 뭔 식을 한다던데?”
“그, 그런가요? 제가 잘 몰라서.”
“응응. 그래. 그, 그래. 결혼식은…… 해야지. 하는데 이거야 당사자들이 할 일이고! 내가 지금 물어본 건 말야. 그런 게 아냐.”
“아…….”
근데 우창윤은 지가 먼저 결혼식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순진무구한 척, 모른 척 되묻고 있지만 왜 모르겠나.
그래도 수혁이 우창윤보다는 MZ에 훨씬 가까운 나이인데.
직급이 높아서 그렇지, 사실 나이는 어렸다.
그럼에도 그냥 이렇게 넘어가 주는 건…….
[그것 보십쇼. 우창윤, 이 사람 좋은 사람이긴 하다니까요?]
‘그렇네. 확실히…… 편견이 별로 없네.’
[뭐, 객관적으로 수혁이 보여 준 모습이 대단해서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제 분석 결과, 신기하게 수혁 곁에 있는 사람들 중엔 악인이 없습니다. 뉴스를 보면 악인은 분명히 존재하고 또 그 수가 적지 않을 텐데, 수혁 주변엔 없어요.]
왜 그럴까.
어쩌면 신이란 존재가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부모란 존재를 앗아 간 것이 미안해서 지금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주변에 두는 건가 싶기도 했다.
‘좋아.’
[뭐가 좋아요?]
‘대머리……. 말하지 말자.’
[아, 그럽시다.]
해서 수혁은 그렇게 횡설수설하는 우창윤과 대강 장단을 맞춰 주다가 집으로 왔다.
마찬가지로 우창윤도 집에 도착했는데, 딱 그 시간쯤 서울 동남쪽에서 괴이한 고성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