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8화 일단 안심이야 (2)
‘그나저나…….’
[거울 그만 보십시오. 수혁은 괜찮습니다.]
‘정말 그렇지?’
[네. 제가 매일 계산하고 있지 않습니까? 수혁의 평균적인 모발 탈락은 일일 40가닥 미만입니다. 물론 집계 오류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까지 고려한 계산이니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다.
암만 들어 봐야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 이건데…….
가발 쓴다는 거야 다 알고 있었지만, 뚜껑이 몽땅 날아가 버린 현장을 한 시간도 넘게 마주하고 있었다 보니 아무래도 걱정이 슬그머니 찾아왔더랬다.
[근데 안대훈 보면서는 왜…….]
‘대훈이는 모르겠네. 처음부터 머리 있는 게 더 이상했어.’
[그게…… 그런 말을 안대훈에게 할 건 아니죠?]
‘아니지. 미쳤냐?’
수혁은 여전히 거울 속에 이마를 비춰 보고 있었다.
이제 시간은 새벽 3시를 넘어 3시 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암만 대학 병원 사람들이 험악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매일 이렇게 살았다는 죽기 십상이었다.
무엇보다 20대도 아닌 30대에게는 그랬다.
레지던트 뽑을 때 괜히 나이 많은 사람을 꺼려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업무 난이도가 말도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오류가 발생하는데…… 이놈의 병원이라는 곳은 그런 오류를 바로잡아 줄 인력을 뽑을 만큼 여유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여유로울 정도로 인력을 돌리기엔 수가가 낮아서 그랬다.
아니, 레지던트, 펠로우로 대변되는 노예가 없으면 도저히 수가를 맞출 수가 없다.
“교수님.”
“어……. 어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그냥 잘 잤다 싶은 수준이 아니라 안대훈이 흔들어 깨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왜……. 왜 안 깨웠어?’
[어제 힘들었나 봅니다. 신체 징후로 미루어 판단하건대……. 수혁은 지금 ‘감염’ 상태입니다.]
‘뭐……? 감염?’
[네, 감염.]
바루다를 탑재한 이래 단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 않나?
항시 수혁의 데이터를 파악해서 제일 싫어하는 소리로 알람을 울리는데 어떻게 더 잘 수 있겠나.
헌데 오늘은…….
[그래서 그냥 안 깨웠어요.]
‘아…….’
바루다가 안 깨웠다.
그러고 보니 몸이 뜨끈했다.
“어우.”
“괜찮으세요?”
“아니……. 몸이 좀.”
“옥체 보중하셔야 하는데…….”
안대훈도 이상 소견을 바로 알아차렸다.
집에 가려다 암만 생각해도 그냥 병원 당직실에서 자는 게 조금이라도 더 자는 길이겠다 싶어서 병원으로 향했던 것이 신의 한 수가 된 셈이라 할 수 있었다.
아니었으면…….
그러니까 혼자서 텅 빈 오피스텔에 누워 있었으면 어쩌면 ‘발견’되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나이도 젊은데 설마 그러겠냐는 말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해야 한다.
아픔 앞에 나이는 무의미할 때도 많으니까.
생각보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퍽 흔한 편이다.
“뭘까?”
“글쎄요……. 아무래도 너무 무리해서 이러시는 거 같은데.”
바루다가 추정하고 있는 체온은 무려 40도였다.
‘낮춰!’
[내가 어떻게 낮춥니까? 세트 포인트 같은 걸 건드릴 수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무서운 거 아닙니까?]
‘아니……. 그렇지.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지금 뭐 하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진단을 내리려고 하는 거 같은데요?]
‘감기 몸살이잖아!’
[VIP 신드롬일까요?]
40도.
이 정도까지 열이 한 번이라도 올라 본 사람은 바로 깨닫게 되는 바가 하나쯤 있다.
사람이라는 동물이 생각보다 진짜 별것도 아니라는 거다.
수혁쯤 되는 사람조차도 그랬다.
연산이고 나발이고 다 정상 작동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너무 힘들었다.
바루다?
[아……. 열 오른다……. 저 좀 쉽니다.]
전자 기기만큼 열에 약한 것들이 또 있던가?
심지어 바루다는, 정체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는지 모르겠지만, 컴퓨터 칩에 한없이 가까운 존재일 터였다.
40도를 넘나드는 열 때문에 이 녀석도 활동을 중단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완전히 뻗어 버린 수혁을 두고서, 이현종이 입을 열었다.
“심박동수는 아직 88회. 안정적이야. 열은 40도…… 분당 호흡수는 정상이고.”
거기다 대고 안대훈이 이렇게 대꾸했다.
“으음. 근데 이수혁 교수님은 원래 안정 심박동수가 60회입니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냐 너는?”
“몸과 마음을 다해 따르다 보면 알게 됩니다.”
“그…….”
이현종은 역시 좀 미친놈이긴 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가로젓고 있으려니 비명이 들려왔다.
“수혁이 설마 혈액암입니까!”
조태진이었다.
어디서 뭘 들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 그냥 열이 좀 나.”
“원래 그렇게 시작합니다! 아니, 어제 나랑 얘기할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그러니까 감기…… 아니겠나?”
이현종의 말에 조태진과 안대훈은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는 얼굴로 울부짖었다.
“감기라뇨! 무슨 근거로 그렇게 진단하십니까?”
“애가 멀쩡하다가 열나고 뻗었잖아……. 코도 뻘겋고…… 휴지도 있고. 코 풀었나 본데.”
“그 휴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명색이 의사가 되어 가지고 열나면 무조건 감기입니까!”
“나이를 고려하면 감기…….”
“혈액 검사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지. 여기요!”
당연하게도 이현종은 꾸준히 대꾸를 했다.
아니, 자신의 진단명에 대한 부연 설명을 지속했다.
‘미친놈들이 애 나이가 32인데 당연히 감기부터 생각해야지……. 얘 어제 아선 병원까지 가서 새벽에 들어왔잖아……. 날씨도 아직 밤에는 쌀쌀하고…….’
하면서도 불만은 있었다.
세상에 대체 이걸 왜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대학 병원 의사들에게 감기가 감기라는 것을 왜…….
“네! 부르셨어요?”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안대훈과 조태진은 벌써 수혁의 팔에서 피를 뽑고 있었다.
하필이면 간호사도 신유희였다.
과발모에서 일등 했던 녀석…….
그 후로 특별 관리 중이지 않았나?
이 세상 희귀한 질환이란 질환은 머릿속에 다 때려 넣고 있다, 이 말이었다.
“수혁이가 열이 40도야.”
“아, 아니이이이이!”
저 봐라.
지금도 딱 열만 듣고 눈알 돌아가잖아.
아마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질환이 수십 개는 족히 넘을 거다.
그러고도 남는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누굴 탓하리…….’
이현종 그리고 쓰러진 수혁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럼 이 정도면 될까요?”
“어어. 그래. 검사 나갈 수 있는 거 다 나가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좀만 더…….”
“그, 그래!”
누가 보면 헌혈하는 줄 알겠다.
뭐…….
혈액 용기라는 게 원래 양보다 훨씬 과장되게 보이는 모양새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저 정도면 몇십 밀리는 될 거 같다.
간당간당한 상태의 환자라면 저것만으로도 관뚜껑에 못 박을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이랄까?
“교수님! 교수님!”
그렇게 피를 뽑아서 그럴까?
수혁은 어쩐지 아까보다 훨씬 기운이 없어 보였다.
최근 들어서 안대훈보다 더한 충신을 자처하고 나서고 있는 김성진이 가슴팍을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어어.”
“괜찮으신 겁니까?”
“아니, 아픈데…….”
“아아……. 안 돼에에에에에!”
수혁은 성격이 아주 담백한 사람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할 사람이다, 이 말이다.
다른 교수들처럼 그래도 아닌 척, 아니면서 그런 척 안 한다는 얘기.
아마 지금도 그냥 때린 게 아파서건 몸이 진짜 아파서건 아파서 아프다고 한 것일 텐데…….
김성진은 마치 그것이 최후통첩이라도 되는 양 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예요?”
이현종은 한 편의 사이코 드라마를 보면서 외롭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체 왜 이 센터 놈들은 다 또라이들이란 말인가라는 생각도.
그때 구원이 있었다.
하윤이었다.
아마 수혁을 생각하는 마음의 정도만 따져 보면 이 중에서 1, 2등 안에 들지 않을까?
허나 그녀 또한 어이없음을 온 얼굴로 표현하면서, 이현종의 옆에 서 있었다.
“그러게나 말이다…….”
“아니, 저는 비명 소리 듣고 오빠 어떻게 된 줄 알고 왔는데 보니까 그냥…….”
“감기야. 네 오빠 감기다.”
“네, 제 생각도 그렇긴 한데…….”
감기다.
어떻게 봐도 감기다.
조금 독하긴 한데…….
원래 5월쯤 독감이 한 번 더 돌지 않던가?
수혁이야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보니 백신을 맞긴 맞았지만, 원래 백신이라는 게 맞는다고 해서 면역력이 다 제대로 형성되는 건 아니다.
잠도 잘 자야 하고 먹는 것도 잘 먹어야 한다.
수혁은 먹는 거야 잘 먹는 편이었지만 잠은…….
“혈압, 혈압이!”
“왜, 왜!”
“방금 전까지 120에 80이었는데 지금 121에 85가 됐습니다!”
“으읏. 무슨 소견이지? 우리 수혁이 몸 안에서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저 새끼들 때문에라도 못 자고 있지 않을까?
이현종은 팔짱을 낀 채 둘이 하는 짓을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심한 말 몇 번 했어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아까 확인하지 않았나?
전임 원장에 현직 센터장에 석좌 교수라는 어마어마한 직함조차 이 새끼들의 수혁을 향한 마음 앞에서는 부질없는 것이었다.
“수액! 수액량 늘려야 해.”
“그럼…….”
“40가트를 42가트로!”
“그렇게 세밀한 조정을 하려면 마취과나 소아과 장비가 필요합니다!”
“가져와!”
“순순히 주, 줄까요?”
“뺏어!”
“아!”
조태진의 말에 안대훈이 뭔가 깨달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실제로 달린 것은 김성진과 김인수 등등이었다.
다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수혁에 미쳐 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무슨 북한처럼 충성 안 하면 총질하는 센터도 아닌데 이 난리라니…….
이현종은 어이가 없어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 무슨 일이래……?”
“몰라. 이수혁 교수님이 되게 아프다는 것 같기도 하고?”
“응? 아니, 그럼 안 되지……. 우리 교수님이 나 진단해 줘서 살았는데.”
“거참…….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그런 말이 나오냐? 너는? 걱정도 안 돼?”
“걱정이야 되지. 근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 아, 기도.”
“그래! 기도라도 드려야 될 거 아냐!”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어서였는데 그럴 수도 없었다.
통합진료센터는 아픈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곳인 데 반해 조용한 편이지 않나?
갑자기 나빠지는 일이 없어서 그랬다.
희대의 천재가 둘이나 있고 또 제자들도 죄 수재들인데 머리 빠지도록 노력하는 놈들뿐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해서 여기 입원한 이들에게 있어 지금처럼 소란스러운 일은 참으로 드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일련의 사태는 즉시 원장에게도 보고되었다.
원장……. 그러니까 신현태는 갑자기 종교 시설이 꽉 들어찼다는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병원 내에 비치된 기도실만큼 성스러운 곳도 드물긴 했다.
다들 절박하게 기도하니까.
하지만 한날한시에 모든 종교…… 심지어 무슬림 기도실까지 꽉 차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다.
“모르겠는데…… 거기서 이수혁 이름이 나온다고 합니다.”
“수혁이……?”
설마 수혁교가 본격적으로 포교를 시작한 건가?
신현태의 머릿속에 그것이 알고 싶다, PD수첩 등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 이름이 주르륵 지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안 된다.
막아야 한다.
“세, 센터로 가지.”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