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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209화 (1,209/1,303)

1209화 일단 안심이야 (3)

“일단 너무 고통스러워하시니…… 약을 쓰죠.”

“그래. 그렇지 않아도 보기 끔찍하더라.”

“처방을…….”

신현태가 막 보고를 올린 다른 교수와 함께 원장실을 부리나케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센터는 시끌벅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영웅이자 뮤즈이자 모든 것이라 해도 좋을 수혁이 아프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 좀 그랬다.

이현종은 방금 손가락을 두들겨 댄 김성진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요즘 같은 분위기상 암만 이현종같이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 때리고 그랬다가는 잘리기 십상이다.

“야야! 뭔 단순 열나는 환자한테 펜타닐이야! 그냥 소염제나 줘! 미친놈들인가, 이거? 고만해, 이 새끼들아.”

“네! 미쳤습니다! 수혁이한테 미쳤어요!”

“수혁 교수님 사랑하는 거 그만두라고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어휴.”

허나 펜타닐을 처방하지 않았나.

다행히 실행 버튼을 누르기 전에 컷 했지만…….

‘암만 병원에서 쓰는 건 그냥 그대로 써도 중독이 거의 안 된다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지 않나.

그렇게까지 통증이 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저렇게 강한 마약성 진통제를 쓰는 건 좀 위험한 일이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다, 이 말이었다.

다행히 김성진의 만행은 저들끼리 보기에도 지나쳤는지 얼마간 타박이 더 이어졌더랬다.

대신 처방된 것은 파라세타몰이었다.

아세트아미노펜의 주사용제였는데, 열 내리고 하는 데에는 기가 막힌 성능을 보여 주는 녀석이었다.

“으음……. 음.”

이번에도 그랬다.

하긴 수혁의 열이라면 그냥 감기 몸살로 인한 것일 테니 약 한번 쓰면 훅 내려가는 게 당연하기도 했다.

그럼 이제 안심을 해야 할 텐데…….

그저 심각하기만 했다.

“자네.”

조태진이 말했다.

“주무시네요.”

안대훈이 받았고.

나머지도 반응이 대동소이했다.

“이게 무슨 소란이야?”

수혁이 약 맞고 딱 뻗을 때쯤 신현태가 도착했다.

말이 그래서 그렇지, 약 때문에 뻗은 건 아니었다.

애초에 열이 오르고 있어 정신도 없었고, 또 간밤에 너무 무리한 탓에 힘들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수혁이가 많이 아픕니다, 원장님.”

“네, 원장님. 교수님이…….”

“아니…….”

허나 신현태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가 없었다.

평소 수혁이 막 건강체로 보이는 녀석은 아니었지만 하여간, 컨디션 조절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던 녀석이지 않나?

사실 다른 과 같았으면 아직 레지던트거나 진도 빠른 놈이라도 군의관이나 가야 할 나이였다 보니 다른 교수들에 비하면 쌩쌩 보이기도 했더랬다.

‘우리 수혁이가…… 아파?’

신현태는 들고 있던 회의 자료를 자기도 모르게 툭 떨어뜨리곤 수혁에게 다가갔다.

그 꼴을 보면서 이현종은 다시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새끼는…… 지가 제일 먼저 나서서 말려야 할 놈이 저러고 있네…….’

마침 잘 왔다고 생각했던 것이 너무 후회가 되었다.

그렇게 고래를 휘휘 젓고 있는 동안에도 신현태는 부리나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열이 뜨끈해……. 어디…… 40도? 40도까지 올랐어? 언제…… 아, 아침에 발견했구나. 하긴 이제 막 처치실로 나온 거 같아. 혈압…… 혈압이 왜 이렇게 들쑥날쑥…… 아……. 그래프가 이상한 거구나.”

대체 왜 이렇게 그려 놓은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수축기 혈압의 변화는 기껏해야 115에서 125 사이에서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것도 너무 자주 재서 그렇게 보이는 듯했다.

동맥혈을 눌러서 밑에 맥박이 전달되지 않는 압력을 저항압력 즉 혈압이라고 정의하지 않나?

다시 말해서 혈압을 재려면 혈관을 꾹 눌렀다가 펴야 한다는 건데, 이런 방식으로 혈압을 재는 것이다 보니 너무 자주 재면 이것만으로도 변동이 있을 수 있었다.

보통 자주라 해 봐야 30분 이상의 텀을 주기 때문에 상관이 없겠지만 여긴 5분마다 재고 있었다.

‘이럴 거면 A-line을 달지…….’

신현태는 미친놈들…….

아무리 수혁이라 해도 그렇지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들어가고 있는 수액을 바라보았다.

천 밀리짜리가 벌써 300은 들어간 상황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엄청 들어간 것 같겠지만 300밀리라고 해 봐야 적당한 컵으로 한 컵 정도 되는 양이었다.

“인앤아웃은 재고 있나?”

신현태는 그걸 보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원장의 출현으로 인해 더 약을 쓰지 못하게 된 녀석들이 움찔했다.

인앤아웃.

유명한 햄버거 프랜차이즈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물이 얼마나 들어가고 나오는지를 계산하는 것을 말했다.

사실상 환자 보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소견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균형을 맞추지 않게 되면, 아픈 상태의 우리 몸은 아주 쉽게 탈수가 되거나 부종이 발생할 수 있기에 그랬다.

“아, 아뇨.”

“이런 멍청한……. 뭐 하는 거야! 수혁이가 쓰러졌는데. 설마 VIP 신드롬 소리 듣고 싶어서 이러나?”

“아, 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신현태는 이 자리에서, 일찌감치 뒤로 빠져 있던 이현종을 제외하면, 제일 높은 사람인 조태진에게 근엄한 얼굴로 외쳤다.

그렇게 꾸짖고는 재차 명했다.

“폴리 가져와!”

“네!”

소변줄을 들고 오라고 했다.

보다 못한 이현종은 이마를 탁 치고 다가왔다.

“현태야.”

“왜, 형. 형은 여기 있었으면서 이런 기본적인 것도 놓쳐?”

“아니, 현태야. 수혁이는 감기야…….”

“감기? 감기가 뭔데.”

“으응?”

“감기가 뭔지 정의해 봐.”

왜 다가왔는고 하면 당연히 이런 미친 짓을 하지 못하게 말리기 위해서였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신현태의 눈알이 돌아가 있었다.

다들 알겠지만 원래 좀 이상하던 놈이 이상한 짓 하는 건 말리기 그리 어렵지 않은 법이었다.

일단 말리는 사람부터가 찝찝하지 않을뿐더러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쉽지 않겠나.

허나 상대가 신현태……. 적어도 이수혁계로 분류되는 이들 중에서는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좀 달랐다.

우선 이현종이 좀 놀랐다.

“뭐, 뭐라고?”

“감기가 뭐냐고. 단순 감기면 뭐 무시해도 되는 거야?”

“아니……. 감기…… 감기랑 상기도 감염을 의미하지 보통은. 이유는…… 글쎄. 바이러스?”

“정의야 사람마다 다르게 내릴 수 있지. 내가 묻는 건 지금 형이 생각하고 있는 질환이야.”

“아, 아아.”

놀라다 보니 평소만큼 머리가 제대로 돌지 못했다.

스턴 걸린 사람처럼 어버버하다가 간신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바이러스로 인한 상기도 감염. 이게 내 진단이야. 얘 그냥 무리해서 그런 거라니까?”

“바이러스로 인한 상기도 감염이라…….”

“그래. 그거 외에 달리 뭐가 있겠어?”

“열이 40도야. 40도!”

“그래, 40도. 근데 약 맞고 바로 떨어지고 있는데?”

“38도. 의학적으로 여전히 열이 있는 것이지. 하아……. 형 감 엄청 떨어졌구나.”

“감이……. 떨어져……?”

그에 더해 신현태는 여세를 몰아 공격 중이었다.

그 주변으로 수혁의 부하들, 다시 말하면 이현종의 부하들까지 쭉 가세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세가 자못 당당했다.

“세균으로 인한 감염일 수도 있어. 그리고 수혁이 입안은 봤어?”

“아까 대충.”

“대충? 대애애애추추추충? 수혁이 목을 그딴 식으로 봤다고?”

“아니……. 부은 거 봤으면 됐지…….”

“붓기만 했다고? 아니, 아냐. 약간 노란 기미가 있어!”

“노랗다고?”

그게 뭐.

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신현태가 말을 이었다.

“편도염 가능성이 있다, 이 말이지!”

그래서 뭐…….

편도염도 사실 따로 진단명이 있을 뿐이지, 단순 감기의 일종 아닌가.

물론 거기서 더 진행을 하게 되면 편도농양이 되고 또 더 진행을 하게 되면 깊은 경부감염까지도 이어질 수 있겠지만…….

그런 건 매일 목 들여다보는 이상 다 예방할 수 있었다.

심지어 수혁은 기저 질환이 없는 성인이었다.

환자 보다 보면 기저 질환 없다고 해 놓고선 실은 꽤 심각한 것들이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수혁은 아니었다.

‘쟤……. 검진받은 기록을 나랑 같이 봤단 말이야…….’

다른 데서 한 것도 아니고 태화에서 한 거다.

그러니까 결과가 잘못될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판독을 수혁과 이현종 그리고 각 과 전문의들이 했다.

그럼 거의 자를 빼고 절대 없다고 해도 될 지경 아니겠나?

즉 수혁은 건강하다.

건장하지는 않아도…….

“이거 하나뿐일까? 우리는 검사를 다 해 봐야 해……. 안 그래도 수혁이 너무 무리하잖아! 이번에 대장 내시경도 안 했잖아.”

“작년에 했어…….”

“그건 작년이지!”

“넌 매년 하냐?”

“나랑 수혁이랑 같아? 난 안 아프잖아, 지금.”

“그……. 아니, 이게.”

이현종은 해야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놓고 그대로 말을 하려 했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신현태에게 나름 논리가 있어서 그랬다.

말도 안 되는 개논리였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이현종보다 신현태가 훨씬 더 강력한 동의를 받고 있었다.

사람 일이 그러하듯 더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는 사람이 대개 이겼다.

‘아……. 혁명 일으키고 싶다…….’

망할 놈의 민주주의…….

“저기 아무리 그래도…… 소변줄은 좀.”

“응? 왜.”

“아닙니다.”

하윤이가 가세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신현태가 폴리 카테터를 건네받자마자 수혁의 바지부터 내려서 그랬다.

어차피 하윤이도 의사도 수혁은 지금 환자 포지션이라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지만, 상황이 이상하지 않으면 뭐 하나?

본인이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안 돼……!’

해서 하윤이는 밖으로 나갔다.

이현종은 이 자리에 있던 유일한 정상인이 내쫓기는 것을 보며 절규했다.

동시에 신현태가 소변줄 꽂는 것을 보면서도 절규했다.

“인마. 그걸 꼭…….”

“왜. 나 이거 잘해.”

“아니……. 대상이 수혁인데, 인마.”

“그러니까 직접 해야지. 다른 놈들이 하다가 다치면 어떻게 해.”

“그런 문제가 아닌…….”

“위대장 내시경 잡았어?”

“네. 장강명 교수님이 바로 해 주신다고 합니다.”

“관장 완전하지 않을 텐데, 그래도 괜찮대?”

“이수혁 교수님이라고 하시니까 어떻게든 하겠다고 하십니다.”

“좋아.”

별 소용은 없었다.

이미 미친놈들에 의해 수혁이는 검사당하고 있었으니까.

힘없는 아버지는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듣다 보니 이런 걸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좀 걱정이 되기 시작하기도 했다.

“다행히 위랑 대장은 깨끗하네요.”

그래서 내시경을 받았다.

“영상도 뭐……. 괜찮은 거 같은데요?”

영상 검사도 받았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내린 진단명은…….

“편도염이네.”

“휴.”

“다행입니다.”

“개새끼들아!”

이현종이 욕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안 듣고 있었으니까.

지들끼리 심각했다, 여전히.

“편도염인데 쓰러졌다…….”

중간에 약을 써서 쓰러진 것도 있지만 이미 그런 사소한 것은 아무도 신경 안 쓰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는 거야. 마침 잘됐어. 수혁이 아픈 동안 니들이 각기 하나씩 어려운 케이스 해결해 와라. 그럼 수혁이도 안심하고 더 쉴 거야.”

“아……. 네!”

“네!”

대신 신현태의 과제에 열정적으로 손만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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