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11화 (1,211/1,303)

1211화 우리가 활약해야 해! (2)

“애기 수술이……. 오늘 오후 7시예요?”

“아……. 사실 그것도 확실치는 않다고 하셨어요. 저희가 어제 응급실 통해서 온 거라.”

“으음.”

말이 애기지, 요새 만 10살이면 거의 성인만큼이나 큰 아이들도 많지 않던가.

안대훈이 눈앞에 두고 있는 아이도 꽤 큰 편이었다.

150cm가 좀 넘어가는 정도?

키보다는 몸무게가 50kg 정도로 보이다 보니 정말 작은 성인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픈데…….”

그래 봐야 애는 애였다.

아파서 죽겠는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의심 가는 질환 자체가 맹장염이지 않나.

애초에 아픈 질환이었다, 이건.

‘근데 오후 7시로 잡혔다는 건……. 터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는 거겠지?’

아픈 것과 질환의 응급함은 또 완전히 다른 얘기지 않던가?

맹장염은…….

한때 사망률이 30~40%를 웃돌던 이 무서운 병은 이제 별거 아닌 질환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터지면 복막염으로 번져 버리니 큰일이지만.

그 전이라면 복강경, 그중에서도 원 포트 복강경으로도 끝내 버릴 수 있는 수술이었다.

‘그런데……. 약이 들어가는데도 이렇게 아파하는 게 좀 이상한데.’

안대훈도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쉬지 않고 공부하는 일인 중 하나이지 않나.

아니, 안대훈을 제외하고선 열심히 공부하는 의사를 설명할 수 없을 거란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상해, 확실히.’

그렇기에 당연한 일에 대해서도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안대훈은 진지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환자 앞에 서 있었다.

“저 선생님이 뭐 하시는 거야? 남의 과 와서?”

“뭐……. 나쁠 건 없지 않겠어? 어차피 보호자가 불만이 많을 수 있는 환자잖아.”

“그건 그렇지……. 와서 시간 끌어 주면 뭐…….”

“애가 거의 12시간도 넘게 금식해야 해서 안 그래도 보기 좀 그랬어.”

“못 당긴대?”

“당기려면 당길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응급 수술이 언제 터질지 모르잖아.”

“하긴……. 요새 왜 이렇게 환자가 많지?”

“그거야말로 저 사람들 때문이지.”

간호사들도 그런 안대훈을 보고 있었다.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면서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와서 말리거나 하진 않았다.

의외로 안대훈에 대한 소문이 이현종이나 이수혁에 대한 소문보다는 더 유해서 그랬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상대가 환자일 경우에 한해서이긴 한데……

‘최대한 정상적으로, 친절하게.’

이유까지 알면 좀 이상하긴 할 터였다.

수혁교의 이미지를 생각해서였으니까.

하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겉으로 보기엔 대단히 친절한, 그러면서도 경력깨나 있는 의사 같아 보일 뿐이었다.

“어머님. 질문을 좀 드리고 싶은데요.”

“네네. 얼마든지요.”

애송이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물어도 절박해질 수밖에 없는 곳이 대학 병원이지 않나.

그 상대가 안대훈이다 보니 더더욱 절박해질 따름이었다.

“아이가 언제부터 배를 아파했죠?”

“아……. 어제요.”

“어제?”

“네.”

“어디를 아파했어요?”

“여기요. 처음에는 그래서 그냥 배탈인가 했는데……. 너무 아파해서요. 애 아빠가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응급실로 바로 왔어요.”

어제부터 아파했는데……. 이렇게 증상이 심해졌다고?

안대훈은 인상을 쓴 채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약은 들어가고 있었다.

진단이 안 되었다고 해도 현대 의학에서는 사실 진통제를 아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 아이는 진단에 수술 계획까지 잡힌 만큼 진통제를 두둑이 맞고 있었다.

아이이기에 약 종류에는 제한이 있긴 하겠지만…….

‘확실히……. 이상하다. 교주님이라면 분명히 살펴봤을 케이스야.’

안대훈은 자신이 틀리지 않았단 확신을 갖기 위해 일부러 수혁을 떠올렸다.

그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목소리 톤까지 따라 하면서, 말을 이었다.

“어제부터 아팠는데 그렇게까지 아팠다라……. 잠시 기록을 보겠습니다.”

“네네.”

안대훈은 그렇게 수혁의 얼굴을 한 채로 환자의 기록을 까 보았다.

구토까지 했다고 쓰여 있었다.

병원 내원 당시엔 배꼽 주변으로 통증을 호소했지만, 압통 때문에 내려온 외과 레지던트가 볼 때는 우측 하복부로 통증이 옮겨 가 있었다.

열은 37.5도로 낮았지만 백혈구 수치가 14000을 넘었고 CRP, 즉 급성 염증 수치는 16으로 크게 증가해 있었다.

이 기록들만 보면 그냥 단순 맹장염이었다.

원래 맹장염일 때 통증이 옮겨 다니곤 하니까.

하지만…….

그 통증의 정도가 이상했다.

‘뭔가 있다.’

해서 기록을 좀 더 까 봤다.

아무래도 아이 나이가 나이다 보니 CT보다는 초음파만 시행한 모양이었다.

영상은 응급실에서 시행한 초음파가 다였다.

딱 보니 충수돌기가 확 부어 있었다.

실눈 뜨고 봐도 충수돌기염인데…….

환자의 통증이 발생한 시간을 고려할 때, 진행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이나 빨랐다.

뭐……. 충수돌기염, 곧 맹장염의 경과야 사람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조금 이상했다.

“초음파 볼 수 있을까요?”

“네? 초음파요?”

“네. 여기 없으면 다른 병동에서라도 빌려 오면 좋겠는데요.”

“어…….”

이상하면 확인해 보면 될 일이었다.

물론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간호사가 저어하는 게 괜히 저러는게 아니지 않나.

초음파와 같은 고가의 장비는 아무리 태화 의료원이라 해도 모든 병동에 다 보급되어 있을 수가 없는 법이라서 그랬다.

어디 있는지 확인해서 빌려다 와야 했다.

“빨리. 좀 이상합니다.”

“아…….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해서 망설이고 있으려니 안대훈이 재촉했다.

그에 따라 옆에 있던 보호자도 가세했다.

이쯤 되면 간호사 아니라 수간호사 아니, 간호부장이라고 해도 별수가 없었다.

‘아이……. 그냥 애나 보고 가지……. 초음파 다시 봐 봐야 뭐가 달라진다고…….’

속으로 투덜댈 수는 있을지언정, 이미 스테이션에 있던 전화기를 집어 든 참이었다.

그러곤 최선을 다해 초음파를 찾아다 불렀다.

곧 인생 다 산 것 같은 얼굴의 인턴이 드륵드륵 소리를 내면서 초음파를 끌고 왔다.

4월이니까 그럴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기만 한 게 아니라, 그래도 나름 6년을 배웠는데 막상 병원 와서 하는 일이라고는 잡일밖에 없으니 우울하긴 할 터였다.

이른바 초턴 우울증인데, 안대훈 아니라 다른 의사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겪었던 일이었다.

해서 표정 풀라고 뭐라 하는 대신 그냥 전해 받아서는 아이의 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으음…….”

어찌나 충수돌기가 심하게 부었는지 대충 우하복부에 갖다 대자마자 충수돌기부터 보일 지경이었다.

어제와도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붓기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벽이 두꺼워져 있고……. 체액의 저류가 굉장히 심해. 이상한데?’

혹시 몰라 기록을 살피니 초음파가 시행된 것은 지난밤이었다.

11시니까……. 기껏해야 11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단 얘기였다.

헌데 진행되는 속도를 보면 거의 혼자서 몇 배는 빠른 느낌이었다.

‘이거 설마.’

평범한 의사였다면…….

아니, 꽤 열심히 하는 편에 속하는 의사라고 해도 여기서 대번에 지금 안대훈이 의심하는 질환을 떠올리진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안대훈은 모발과 실력을 등가교환하고 있는 사내이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 한 줄기, 두 줄기 주름 또한 더해 가고 있는 처지였다.

“조금 불편할 수 있어. 참을 수 있니?”

“네? 아……. 네. 근데 너무 아프진…….”

“그건 아니고, 그냥 불편할 거야.”

“네, 그럼…….”

안대훈은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초음파 프로브를 여기저기 돌리기 시작했다.

사실 아이나 보호자 그리고 간호사가 보기엔 어제 봤던 영상과 크게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왜 이러나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마디 말도 못 붙인 것은 안대훈의 표정 때문이었다.

아니, 인상이라고 해야 옳았다.

관록을 넘어 박력까지 느껴지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감히 뭐라 할 수 있는 인간은 몇 있지 않을 터였다.

“옳지.”

그렇게 한참 꾸물거리던 안대훈의 얼굴에 한 줄기 빛이 떠올랐다.

뭔가 많이 달라졌나 해서 화면을 보니, 솔직히 모르겠단 생각만 들 뿐이었다.

허나 안대훈은 그 뭔지 모를 화면을 보면서 여기저기 표시까지 남기고 있었다.

어디서 배웠는지 초음파 다루는 것이 무척이나 능숙해 보여서, 그것 하나만큼은 간호사도 놀랄 만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열심히 하는 센터긴 하구나…….’

그래 봐야 이 이상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간호사님.”

“네? 아, 네.”

해서 안대훈이 갑자기 불렀을 때 놀랐다.

뭐, 대학 병원 의료진에게는 패시브로 따라붙는 ‘침착함’ 특성 덕에 겉으로 볼 때야 조금 놀란 수준으로만 보였겠지만.

실은 화들짝 놀랐다.

“주치의한테 연락 좀 주시죠. 이 환자 충수돌기염이 아닙니다.”

“네에……? 아니라고요……?”

이어지는 말을 듣고는 더더욱 놀랐다.

사실 외과 병동 간호사를 하다 보면 좋든 싫든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질환이 있지 않겠나.

배움의 방향성이 다르다 보니 각 잡고 배우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수돌기염의 초음파 소견 정도는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환자의 초음파 소견은 굉장히 흡사했다.

“네. 아닙니다.”

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려니 안대훈이 다시 한번 이렇게 말했다.

그래 봐야 생각이 바뀌진 않았다.

‘하지만……. 이 사람……. 그 사람의 제자잖아. 그것도 수제자.’

다행이라고 한다면 외부 요인이 하나 있다는 점이었다.

바로 이수혁.

그의 활약을 직접 본 건 아니었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수혁의 대단함은 다들 알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가 인정한 안대훈의 대단함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내키진 않더라도, 연락을 해 봐야 했다.

찝찝하지 않나.

오가는 인턴이 한 소리라 해도 그럴 텐데 하물며 그 상대가 안대훈임에야.

“네? 아니라고요?”

“네……. 그, 통합진료센터 안대훈 선생님이 오셔서 말씀 주신 겁니다.”

“안대훈……. 그분이 하신 말이면 이게 또 무시할 수는 없는데.”

“그, 그렇긴 하죠.”

“제가 교수님께. 아니, 아니지. 혹시 옆에 계세요? 뭔지 물어나 봐야지.”

“아……. 네. 제가 바꿔 드리겠습니다.”

주치의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렇다고 교수님께 안대훈이 아니라는데요? 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설령 아닌 게 맞다고 해도 이따위 근거를 가지고 말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뻔했다.

차라리 틀려도 그럴싸한 근거가 있는 편이 좋았다.

해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안대훈과의 통화를 연결받게 되었다.

“아, 선생님.”

“아……. 네. 안대훈입니다.”

“네네. 충수돌기염이 아니라고요?”

“네, 제 생각은 아닙니다.”

“그럼 혹시…….”

“제가 진료 기록에 따로 영상 올렸거든요? 그거 보면서 들으시죠.”

“아……. 네네.”

주치의는 내가 혹시 협진을 냈던가 하면서 진료 기록을 띄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지만, 통합진료센터 놈들의 명성은 이미 대단했기 때문에 묵묵히 기록에 뜬 그림을 봤다.

‘모르겠는데…….’

나름 외과를 전공하기 시작한 지도 1년이 훌쩍 넘은 시점임에도 그랬다.

“보시면 알겠지만.”

“네네.”

그래도 안다고 했다.

쪽팔리니까.

“Torsion(비틀림)입니다, 이거. 염증은 그 결과로 생긴 거고요.”

그 말에 안대훈은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진단명을 냅다 질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