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14화 (1,214/1,303)

1214화 우하윤도 달린다 (2)

‘흐으음…….’

아무래도 하윤의 고민은 수혁의 고민보다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바루다 없이 혼자 하는 고민이다 보니 그랬다.

게다가 아직 수혁 본체에 비해도 실력이 너무 부족하기도 했고.

허나…….

‘아.’

하윤은 수혁의 제자이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 안대훈, 김성진, 김인수와 같은 또라이들과 부대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애초에 1등 졸업자이기도 했고.

수혁과 비교하면 한참 밀리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으로 부족한 의사는 아니란 얘기였다.

물론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얼마 전에 수혁과 함께 본 케이스가 이거랑 굉장히 흡사하다는 점이었다.

‘이거……?’

자가면역질환은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은가?

이게 대체 왜 생기는 건지…….

기전은 이해가 가지만 그 기전도 억지로 만든 거라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기전조차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아무튼, 중요한 건 자가면역질환이 있는 환자들의 경우엔 이런저런 불가사의한 병이 많이 생긴단 점이었다.

‘Lambert-Eaton 근무력증 증후군…… 같은데……?’

더 정확한 건 검사를 해 봐야 하긴 할 터였다.

하지만 증상만 보면 확실히 비슷했다.

아니,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정황상 거의 들어맞는 편이었다.

일단 자가면역질환이 있는 환자에게 발생하는 질환이지 않나?

거기에 더해 사지의 근위부, 특히 하지의 쇠약이 특징적이었다.

신경전도검사 결과 또한 Lambert-Eaton 근무력증 증후군, 즉 LEMS를 가리키고 있었다.

쉬고 있을 때의 활동전위 진폭은 무척 떨어진 것에 비해 운동 후 복합근 활동 전위의 진폭이 현저하게 개선이 되는 것이 그랬다.

“환자분, 검사를 좀 해 볼까요?”

“네? 갑자기?”

“의심 가는 질환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어…….”

환자는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하윤에 비해 간호사는 경력이 좀 되는 사람이었다.

거기에 더해 환자와의 라포도 어느 정도 쌓여 있었고.

‘아……. 해명을 원한다…….’

검사를 그냥 이렇게 막 해도 되는 거냐?

이 사람 뭐냐?

나 왜 이 사람이랑 같이 있냐.

뭐 이런 식의 질문이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검사 필요합니다.”

해서 옆을 돌아보니, 우하윤의 얼굴 또한 꽤나 단호해서 속마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에이씨…….’

안 하면 안 될것거 같은 느낌이 딱 들고야 말았다.

사실 의료라는 게 좀 그렇긴 했다.

다 그렇다고 할 때 한 놈이 아니라고 하면 다들 무시하긴 하지만 동시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수밖에 없다, 이 말이었다.

통계에 기반한 학문이 갖는 한계라 할 수 있었다.

같은 약을 써도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지 않나?

100%가 없는 학문이라 이건데…….

‘게다가 이 사람……. 통합진료센터 사람이잖아.’

신입…… 이긴 하다.

펠로우 1년 차야.

뭐…….

말이 1년 차이지 이미 대학 병원 수련을 내과의 경우 인턴, 레지던트까지 해서 4년을 받고 전문의까지 딴 사람이기에 무시할 수는 없는 게 맞다.

하지만 각 분과의 펠로우라고 하면 아직 갈 길이 먼 존재라고 봐야 했다.

‘망할 놈들…….’

근데 이 자식들은 얘기가 좀 다르긴 했다.

일단 뽑을 때부터 남다른 방법을 사용하지 않던가?

작년엔 좀 덜했는데, 재작년에 뽑을 땐 데리고 병동 투어 다니면서 이상한 면접을 봤다.

이번에?

이번에는 바깥 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서 뽑았다.

1등으로.

그것도 전국 1등.

“검사…… 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요? 아니…….”

간호사만의 의견은 아니었다.

어느새 따라온 주치의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네, 통합진료센터라고 하면…… 의견을 듣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근데 어떤 검사를 말씀하시는 건지……?”

“아, 네.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윤이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수혁을 따라다니면서 배우는 게 설마하니 진료밖에 없겠나?

말 그대로 그의 모든 것을 배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사람이 모여야 환자 설득도 쉽지.’

의료진들이 놀라는 모습을 보면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는데 환자도 납득하는 걸 너무 많이 보지 않았나.

사실 의료진들도 알아듣기 어려운 얘기를 하는 것이다 보니 환자가 이해하는 건 아닐 텐데도 그랬다.

아무래도 복잡한 인과 관계가 있는 일일 텐데…….

어찌 되었건 보이는 현상이 워낙에 명확하다 보니 통합진료센터 사람들은 이 방법을 아주 애용하는 편이었다.

‘이 환자 같은 경우엔 확실히 좀 까칠하기도 하고…….’

하윤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시선은 어느새 환자가 아닌 간호사와 레지던트를 향하고 있었다.

“환자분의 과거 병력을 보면 페르테스병과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에 쇼그렌도 있죠?”

“아……. 네.”

주치의야 환자 과거 병력 정도는 다 꿰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아는 건 아니었지만.

태화 의료원에서 일하려면 기본은 하긴 해야 했다.

“자가면역질환이 있다는 건데, 그 정도가 꽤 심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죠?”

“그렇죠.”

“다른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할 위험도도 높은 겁니다. 원래 새로운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할 위험도를 가장 많이 높이는 소인이 이전 자가면역질환의 여부니까요.”

“맞습니다. 근데 환자의 주된 호소 증상은…….”

“일단 들어 볼래요?”

“아, 네. 죄송합니다.”

주치의는 자기가 파악한 상황을 조금 더 정확하고 자세하게 짚어 주는 설명이 좋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다.

너무 바빠서 그랬다.

해서 잠깐 대들어 봤는데, 별 소용은 없었다.

일단 직급도 위인 데다가…….

‘아……. 얼굴 마주 보니까 말이 안 나오네.’

하윤을 정면에서 보고 감히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는 인간은 별로 없었다.

딱히 이성적인 감정을 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생긴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외모만으로 관계에 있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일단 새로운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환자의 하지 쇠약을 봅시다. 반년 전에 딱히 이렇다 할 계기가 없이 발생했어요. 그 전후로 감염성 질환을 앓았던 것도 아닙니다. 맞죠?”

“어……. 맞습니다.”

“환자분, 맞죠? 혹시 생각나는 다른 사건이 있었다면 지금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점점 더 정확한 추론이 가능해지거든요.”

“아……. 없습니다.”

하윤은 일단 레지던트를 제압하고 나서 환자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환자는 아까보다 눈에 띄게 고분고분해져 있었다.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다른 사람만 설득해도 이게 된다는 걸 오늘도 확인하게 된 셈이었다.

‘후후.’

하윤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그리고 환자에 대해 검사를 해 보면……. 감각은 정상입니다. 확인하셨죠? 기록에는 없지만요.”

“아……. 네. 감각은 정상입니다.”

“아까 제가 대강 해 보니 따뜻함을 느끼는 것도 정상이더라고요?”

“아……. 온도도 그렇습니까?”

“네. 아주 중요한 소견이죠? 적어도 이 하지 위약의 원인이 머리 쪽은 아닐 거라는 걸 내포하고 있는 거니까요.”

“아……. 네. 그렇죠.”

아주 당당한 태도였는데 그럴 만했다.

와서 깨작거린 것만으로 벌써 주치의보다 더 많은 정보를 확보했으니까.

뭐 너무 바빠서 그렇긴 했겠지만 하여간, 레지던트는 점점 더 밀리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우위를 한 번 더 강하게 점한 하윤은 지속해서 말을 이었다.

“걷게 해 보니 GOWER`S 징후가 있더군요.”

“아……. 네.”

“양쪽 다리가 대칭으로 약화되어 있고요. 그럼 척추 쪽 원인도 배제할 수 있죠. 무조건 그렇진 않겠지만……. 사실 환자 병력에 다친 것도 없고요.”

“그, 그렇죠.”

논리적이었다.

뭐…….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찌 보면 의사에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 당연한 것을 딱딱 맞춰서 말할 수 있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툭툭 내던지듯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타고나지 않았다면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하지만 통합진료센터에서 일하면 좋건 싫건 이런식으로 사고하고 말하는 것이 늘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머리도, 척추도 아닙니다. 신경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거라는 걸 의심해 볼 수 있는데……. GOWER`S 소견은 하지 위약만 있다고 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죠. 자, 환자분?”

“어……. 네.”

“검지를 제 검지에 대 보시죠.”

“엇, 네.”

“그리고 그 손가락을 코에 가져가 보세요.”

“네.”

“다시 제 손가락으로. 이제 코로. 다시 제 손가락으로.”

하윤이 지금 시행한 검사는 ‘Nose to finger’라는 검사로 소뇌 기능을 볼 수 있는 아주 대표적인 검사 중 하나였다.

당연히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

환자야 이런 것을 해 보는 것이 처음이니 원래 어려운가? 하고 있었다.

놀란 것은 주치의였다.

“이게 왜 안 되시지?”

“소뇌 운동실조가 심하지는 않은데, 있군요. 그리고……. 눈 보이세요?”

“네?”

“안구 움직임을 잘 보세요.”

“어……. 어?”

거기에 더해 안구 움직임 또한 약간 어색했다.

뭔가 느리다고 해야 하나?

“다시 정리하면 환자의 하지 위약은 머리나 척추가 아닌 신경 자체의 문제 또는 근육 레벨에서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환자는 안구 증상과 소뇌 운동실조까지 있죠. 거기에……. 자가면역질환 병력까지 더하면 자, 어떤 질환이 떠오르시죠?”

하윤은 뭔가 깨달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레지던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표정만 보면 다 알 것 같겠지만, 하윤은 알고 있었다.

이 새끼 뭣도 모른다는 걸.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거 진짜 어려운 질환이거든.

엄청나게 드문 질환이기도 하고.

하윤이 떠올릴 수 있는 건 순전히 운이었다.

뭐……. 통합진료센터에서는 운도 실력이니 뭔가 알 때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고 가르치긴 하지만.

대개는 반대로 뭔가 모를 때 운이 없었다고 치부하지 말라는 투로 말하긴 하는데, 아무튼.

“Lambert-Eaton 근무력증 증후군. 설마 모르시나요?”

설마를 당연히라고 바꿔야 옳았다.

근데 그냥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환자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어차피 교수가 아닌 주치의라 몰라도 되는 상황이기도 하니 거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이대로 두었다가는 환자 진단이 확 밀릴 것이 분명했다.

‘그럼 안 되는 병이야…….’

어떤 병은 진단이 늦어져도 단지 불편감만 좀 지연되는 병도 있긴 했다.

하지만 진단이 늦어지는 것이 환자의 예후에 너무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는 병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병은 후자에 속했다.

“그……. 처음 들어 봅니다.”

“그렇군요. 줄여서 LEMS라고 하는데, 이 병은 시냅스 전 신경 말단의 전압 개폐 칼 채널에 대한 항체가 생성되어 아세틸콜린을 방출할 수 없게 되는 질환입니다. 중증근무력증의 약 1/100의 빈도로 발생하는 극도로 드문 병이죠.”

“아……. 그걸 어떻게…….”

“아무튼,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 몇 가지 검사가 필요합니다. 주치의로서 동의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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