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16화 (1,216/1,303)

1216화 복수요? (1)

“뭐요?”

수혁은 어이가 없었다.

소변줄도 어이가 없었고, 복수 운운하는 이현종도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앉아 있었는데, 이현종은 그런 수혁을 보면서도 별 타격 없이 말을 이었다.

그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원래 사람들은 이현종을 저런 눈으로 보곤 하지 않은가.

뭔가 익숙해지면 안 되는 일에 익숙해져 버린 느낌이긴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익숙해져 버린 것을.

“너야 소변줄만 보이겠지만 사실 너 내시경도 했어.”

“내시경……. 어렴풋이 기억은 나요. 동의서 받던 거. 근데 난 사인 안 했는데……?”

“장강명이랑 조태진이 사인했어. 알지? 응급 상황에서는 의사 둘이 동의하면 검사건 수술이건 할 수 있는 거.”

“응급이 아니잖아요…….”

“그게 문제긴 해.”

“아빠는 뭐 했어요?”

수혁의 말에 이현종은 움찔했다.

정당한 항의이지 않나.

세상에 자식이 끌려가서 이런 일 당하는데 가만히 있어?

[이현종 성격에 가만히 있었다는 건 결국 공범이라는 얘기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바루다의 조언까지 더해지다 보니 분노가 점점 스멀스멀 차올랐다.

허나 이현종은 당당했다.

아니, 당당하다고 하기엔 좀 어폐가 있긴 했지만 아무튼, 적어도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수혁아. 애들 진짜 미친놈들이더라.”

“네?”

“내 말은 씨알도 안 먹혀. 내 생각에 지들 부모가 아프다고 해도 그렇게는 안 할 거 같은데.”

“아니, 그럼 뭐라고 했단 말이에요?”

“했지, 그럼! 아무리 봐도 감기몸살인데 이게 뭔 짓이냐. 지들도 중간에 알았는지 막상 약은 소염제밖에 안 들어가.”

“하…….”

수혁은 그제야 팔뚝에 꽂힌 수액 라인을 따라 시선을 움직일 수 있었다.

소변줄이 너무 인상 깊어서 그것만 보고 있느라 놓치고 있었는데, 확실히 이현종 말대로였다.

약은 기껏해야 소염제가 다였다.

하긴, 검사를 해 봐야 나오는 것은 없었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화가 나긴 하는데…….”

“어어. 그거 아빠가 빼 줄까?”

“아, 아뇨……. 제가 하는 게…… 나아요.”

“어, 그래. 생각해 보니까 전에도 네가 뽑았지?”

“하아……. 이거 아픈데.”

[통증에 대해 다시 한번 배울 수 있겠군요?]

수혁은 후우 한숨을 쉬다가 바루다의 말에 바들바들 떨었다.

하지만 화를 낸다고 소변줄이 저절로 빠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니 움직이긴 해야 했다.

“하아.”

평소라면 눈치 더럽게 느렸을 이현종이 건네준 시린지(syringe)를 받아 들고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발룬에 들어가 있는 물을 제거하고 심호흡을 했다.

[별 소용 없습니다, 그런 건.]

바루다의 말을 무시하면서 쑥 당겼다.

어차피 감각 다 공유하는 놈이 어찌 이럴 수 있나 싶겠지만…….

바루다는 원하면 데이터 공유를 끊을 수 있는 놈이었다.

뭐, 통증이라는 것이 일종의 방어 기제다 보니 평소에도 끊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딱히 위험하진 않겠지만 한없이 불쾌할 수 있을 만한 감각은 딱 끊어 버릴 수 있다, 이 말이었다.

“으으.”

“우네, 아들.”

“아빠 놀리지 마요.”

“놀리는 거 아니고 공감하는 건데.”

“왜 고객의 소리에 가끔 아빠 올라오는지 알겠네.”

“그래? 아무튼, 이렇게 만든 놈들한테 복수해야 되지 않겠어?”

정말이지 눈물이 찔끔 나오는 상황이었다.

아프다.

아니, 단순히 아프다는 말로는 좀 부족했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감각에 통증이 더해진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심지어 침대 시트 따라서 뚝뚝 떨어진 액체 때문에 지속적인 정신적 대미지도 있었다.

“흐으으……. 복수를 뭘 해요. 가서 이거 꽂아요?”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진짜 가서 박아 버리고 싶었다.

신현태, 조태진 그리고 안대훈 정도까지는 박아 넣어도 무죄 아닐까?

[유죄죠. 그래도 수혁에 대해서는 의학적인 근거가 있었을걸요?]

‘뭐?’

[그들은 무지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을 겁니다. 하지만 수혁은 제가 있죠. 딱 봐도 소변줄 꽂을 상황인지 아닌지 사이즈 나올 텐데 다짜고짜 꽂으면 그건 범죄죠.]

‘하아…….’

하지만 스스로도 그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니 오히려 이현종이 난리 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 사람은 좀…….

뭐든지 할 수 있는 인간이지 않나.

“응? 그건 너무 함무라비식 아냐? 야만인 같잖아.”

“그럼……. 뭔 복수를 해요?”

허나 이현종도 괜히 원장을 해 본 사람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상식이 있다, 이 말이었다.

어디까지나 이현종만의 상식이긴 했지만.

아무튼, 수혁의 말에 이현종은 껄껄 웃었다.

그 모습이 의외로 대단히 대인배스럽게 보여서 수혁은 잠자코 있게 되었다.

“안대훈이야 뭐……. 급이 안 되니까 일단 둬.”

“그 새끼가 제일 괘씸한데요?”

“어차피 우리 밑에 있는데 뭐. 괴롭히려면 언제든 괴롭힐 수 있지.”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네요.”

거기에 더해 오늘따라 맞는 말만 하고 있었다.

해서 수혁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종이야 수혁과는 별개로 하고 싶은 말만 떠들고 있었다 보니 뭐가 되었건 간에 대화는 쭉쭉 이어졌다.

“그보다는 신현태, 조태진한테 복수하자.”

“그러니까 어떤……?”

들어 보니 물리적인 복수는 안 되는 거 같지 않나?

당한 게 물리적인 일이다 보니 수혁은 자꾸만 그쪽으로만 머리가 돌았다.

바루다 또한 비슷했다.

이현종이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예상이 어려웠다.

물론 원래 그런 인간이긴 하기 때문에 딱히 초조해하진 않았다.

막말로 의학적인 내용에 대한 추론도 아니고, 이거 좀 틀린다고 뭐라 할 사람이 있겠나?

오히려 이현종을 너무 잘 예측하게 되면 그게 더 걱정할 만한 일일 수도 있었다.

“어려울 것도 없지. 당연한 거 아니냐?”

봐라.

지금도 눈이 번뜩이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

요새 맑은 눈의 광인이 유행이던데, 저건 숫제 그냥 광인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가서 그 새끼들 환자 다 봐 버리자.”

“으응……? 뭐라고요?”

“감염내과랑 혈액종양내과 환자 씨를 말려 버리자고.”

“으응……?”

이게 복수인가?

그 사람들 할 일을 다 없애는 게 복수인가?

보통은 그런 걸 호구 짓이라고 하지 않나?

몇 가지 합리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생각해 봐라. 얘네도 내과 의사야. 다른 과 의사면 내가 이런 말도 안 하지.”

“네. 일단 듣고 있어요.”

수혁은 환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뭘 할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옷은 갈아입어야 하지 않겠나?

하도 호들갑들을 떨어 대는 바람에 완전 뻗긴 했는데, 오히려 그렇게 쉬었더니 몸은 한결 나은 느낌도 있긴 했다.

“근데 내과 의사면 어찌 되었건 환자를 보고 싶은 열망이 있단 말이야. 게다가 신현태. 얘 요새 원장일 하느라 환자 많이 못 봤잖아?”

“네네, 그렇죠. 삼촌이 요새 거의 뭐……. 사무직이죠.”

“그래서 위기감이 드나 외래를 한 타임 만들었더라고? 어차피 새로운 프로젝트 거의 다 자리 잡았네 어쩌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면서.”

“어……. 그래요? 외래 늘렸어요?”

“그래, 그만큼 환자를 많이 보고 싶어 한다는 거야. 근데 그렇게 입원시킨 환자를 우리가 다 해결해 버리면 어떻게 되겠어?”

“속상하겠죠. 어……?”

진짜……. 이게 복수?

[뭐가 되었건 간에 괴로워지면 그게 복수죠.]

조금 헷갈려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더니 바루다가 이렇게 말을 해 주었다.

수혁이야 원래도 모범생이다 보니,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지 않나.

게다가 바루다의 말이라면 사족을 못 쓰게 된 지 오래였다.

“조태진도 비슷해. 그놈 그거 생긴 것과는 다르게 나름 싹싹한 편이잖아? 나나 현태한테나 건방지게 굴지 ,지네 위 교수님들한테는 깜빡 죽어. 그래서 그런가, 학회 일을 엄청 하나 봐.”

“아……. 알아요, 그건. 형이 진짜 바쁘죠. 학회 잡일 죄 던지던데. 그거 그렇게 하면 나중에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없지. 있겠냐? 어차피 교수는 자기 실력이 있어야 되는 거야. 아무튼, 조태진도 바보는 아니니까 다 알지. 그래서……. 병동에서 아! 제발 환자만 보고 싶다! 하고 소리도 지르고 한다네? 근데 그 환자들을 우리가 싹 봐 버리면……?”

“속상하겠죠……. 어?”

정말로 이게 복수?

[복수네요. 복수 맞네. 역시 이현종이 진짜 어른이네.]

‘역시……. 아빠로군……’

수혁은 아까보다 훨씬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이현종은 마침 옷 다 갈아입은 수혁의 손을 잡고는 병실 밖으로 나섰다.

“어디부터 갈까?”

“아무래도 감염이 가깝죠. 태진이 형 오늘 외래 두 타임이라 어차피 오전 오후 없어요.”

“좋아. 그럼 감염부터 조지러 가자. 일단 장덕수 교수부터 꾀어내야겠다.”

“어떻게요?”

“다 방법이 있지.”

이현종은 의뭉스러운 미소를 보여 주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어. 그래. 연구실에 붙들어 매라고. 정신을 못 차리게 해.”

“네, 교수님. 염려 마십쇼.”

“누구예요?”

“누구긴. 레지던트 애들이지. 3년 차 애들 슬슬 논문 내야 되잖아. 장덕수가 착한 편이라 원래도 같이 많이 하는데……. 하루 정도 잡아 놓는 건 뭐, 일도 아니지.”

“아하……. 그렇군요.”

수혁은 전화를 끊은 이현종과 마주 보고 악당처럼 낄낄 웃었다.

신현태는 회의에 갔고, 장덕수는 연구실에 잡혀 있게 되었다면…….

병동은 지금 아예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다고 보면 되었다.

뭐 평소처럼 어려운 환자 한두 명 보고 빠질 거라면 이럴 필요도 없겠지만…….

지금은 그냥 환자 일보 뽑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볼 작정이다 보니 나름의 준비를 했다고 보면 되었다.

“그렇다고 레지던트까지 불렀어요?”

“우리 센터 레지던트인데 뭐. 이것도 회진이잖아.”

“하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근데 몸은 괜찮아? 힘들면 말해. 약 들어갔다고 해도 힘들긴 할 테니까.”

“뭐……. 아주 멀쩡한 상태는 아니긴 한데……. 적당한 환자들 볼 정도는 돼요.”

“좋아. 뭐 어려운 환자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 어차피 요새 좀만 어려우면 우리 센터로 보내는데. 이것도 고민 좀 해 봐야 할 문제야. 오히려 애들 역량이 좀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거 아닌가 싶어.”

이현종은 수혁의 말에 고개를 내젓고는 앞으로 나섰다.

그가 불러 둔 레지던트가 이미 더 앞에 있었기 때문에, 수혁도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가뜩이나 다리가 불편한데 몸도 좀 아프다 보니 속도가 나진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야야. 걸어, 걸어. 시간 많아. 오늘 덕수 대기만 열 명 넘어. 내가 일부러 좀 답답한 애들로 보내 놨으니까 한 명당 적어도 1시간이야. 덕수 쓸데없이 착해 가지고……. 하하.”

“아, 그럴까요?”

“일단 여기 환자 일보입니다. 이수혁 교수님, 몸은 좀 어떠세요?”

이현종뿐만 아니라, 레지던트 또한 수혁 바라기여서 그랬다.

그는 이미 환자 일보를 두 부 뽑아서 대강 파악까지 해 둔 참이었다.

어디지 모르게 사명감까지 느껴졌는데…….

감이 왔다.

‘얘는 나중에 센터 오겠구나…….’

[왜요? 영민해 보입니까?]

‘아니, 좀 또라이 같아서.’

[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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