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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217화 (1,217/1,303)

1217화 복수요? (2)

또라이라…….

수혁은 마음에 든다는 얼굴로 레지던트를 돌아보았다.

사실 이미 그의 얼굴이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바루다가 있으니까.

하지만 만약 센터에 올 만한 인재가 맞다면…….

한 번 더 봐서 기억해 두는 것이 좋기는 할 터였다.

‘이민정…….’

머리를 질끈 묶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하윤을 비롯해 머리가 긴 레지던트들이 대개 저러고 다니긴 했다.

신기한 것은 비슷한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굉장히 달라 보인다는 건데…….

눈앞의 민정은 유달리 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왜 그럴까?’

[잔머리까지 다 넘겨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 오. 넌 어떻게 그런 거까지 알고 그러냐.’

[뭐……. 그냥 하윤과 왜 다른가 생각을 해 봤더니, 하윤은 양옆으로 잔머리가 꽤 있는 편입니다.]

‘하긴, 그렇군. 아무튼, 가 볼까. 내가 뒤처지면 안 될 거 같은 분위기야.’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 강해 보이는 이민정 선생은 이미 이현종과 더불어 스테이션 한가운데에 있는 컴퓨터를 떡하니 차지한 후였다.

감염내과 레지던트들이나 간호사들의 방해 따위는 없었다.

다른 과라 해도 이현종, 이수혁 부자의 위명은 이미 자자하게 알려져 있을진대 여긴 심지어 같은 내과 아닌가.

그냥 내과도 아니고 수혁교의 최고위급 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신현태가 이끄는 감염내과였다.

“자……. 그럼 환자를 좀 보자고.”

“네! 일단 제가 분류를 해 보았습니다.”

때문에 방해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자리를 비켜 주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다 보니, 수혁도 슥슥 다가가서 뒤에서 볼 수 있었다.

“센터 내의 방법으로……. 이쪽 절반은 사실 건드릴 것이 없는 환자들입니다. 이미 진단부터 치료 계획까지 다 수립이 되어 있습니다. 몇몇은 퇴원 계획까지 잡혀 있고요.”

“하지만 진단과 치료 계획이 틀릴 가능성도 있잖아?”

수혁은 아직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딱히 할 말이 없는 상황이기도 한 데다가, 몸도 안 좋다 보니 더더욱 입 열기가 어려웠다.

해서 지금 얘기를 꺼낸 것은 이현종이었다.

그의 모난 눈이 오늘따라 유달리 반짝이는 느낌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수모 때문일 터였다.

‘미친놈들…….’

아픈 애한테 앞뒤로 내시경 꽂고 소변줄까지 꽂아……?

“네, 그것을 감안해서……. 이쪽으로 분류한 환자들은 입원 당시보다 모두 상태가 호전되는 환자들로 골랐습니다. 물론 감염내과의 특성상 항생제에 얻어걸리면 딱히 진단이 맞지 않더라도 나아지기도 합니다만……. 그것까지 고려해서 분류하기엔 주어진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교수님.”

“그래, 그래. 역시……. 자네야.”

그렇기에 이민정을 꺼냈다.

전가의 보도라고 하기엔 부족한 면이 아직 많은 친구였다.

애초에 통합진료센터라는 곳이 있게 한 사람이 수혁이지 않나?

사람을, 그중에서도 의사를 칼에 비유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해 보자면 수혁은 그야말로 못 자를 것이 없는 전설의 칼이었다.

안대훈은…….

‘뭐……. 뭐라고 하지, 그걸? 아, 그래. 마검. 그래! 마검이지.’

잘 자르기는 하는데 잘못 휘두르면 교주가 된다.

마교의 교주인지는 모르겠는데 사이비 교주는 확실하다.

‘하윤이는……. 그래, 명가의 검이라고나 할까.’

해마다 하나씩 들어오고 있다.

괴물이라고 해도 좋을 넘들이.

제아무리 태화라 해도 계속 이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내과가 최고 인기 과라면야 또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내과는 인기 과의 자리에서 내려온 지 이미 오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인기 과 운운하면 사람들이 웃는다.

태화니까 꽉 채우고 있는 것이지……. 지방 병원으로 가면 미달 나는 병원들이 수두룩 빽빽인 과가 내과라 그랬다.

‘민정이는……. 그래. 망나니 칼이라고 하면 좋겠군.’

그럼에도…….

이렇게 훌륭한 애들이 들어온다.

타고난 재능은 좀 부족한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냐고 하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학부 성적이 기껏해야 절반 정도밖에 안 되니까.

하지만 수혁과 이현종을 보고 사람이 변해 버렸다.

주변의 말을 빌려오면 숫제 돌아 버린 수준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긴……. 어제 입원한 환자들입니다. 사실 이미 외래나 다른 병원에서 진단이 되어서 온 환자들도 있어서 하나로 다 묶기는 어렵습니다.”

“이 사람은 왜 색이 다르지?”

“아……. 이분은 균 배양 검사에서 MRSA(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 감염)가 나와서 그냥 주사 맞으러 입원한 겁니다.”

“아아. 반코 맞으러 오셨구나?”

“네네. 맞습니다.”

“그럼 우리까지 살펴볼 이유는 없겠구만.”

“네, 그렇습니다.”

지금도 봐라.

이현종이 이민정에게 감염내과를 박살 내야 한다고 말한 것이 기껏해야 오전이다.

근데 벌써 이만큼이나 파악을 해 두었다.

아무래도……. 혼자 한 일은 아닐 게 분명했다.

수혁이나 안대훈……. 하다못해 우하윤 정도까지만 해도 가능한 일이긴 할 터였다.

하지만 이민정을 비롯한 일반인들에게는 안 될 일이다.

‘뭐……. 원래 감염내과 주치의들 협박해서 가져왔겠지.’

그랬을 거다.

하지만 굳이 그런 얘기를 지금 꺼낼 필요가 있을까?

뭐가 되었건 서울로 가면 될 일이었다.

범죄 저지른 것만 아니면 뭐…….

“이 환자분들은 진단은 되었는데 치료가 잘 안 되고 있는 환자들입니다. 여기는 의증만 붙은 환자들이고……. 여기 이분은 우리 센터 의뢰가 예정되어 있는 분입니다.”

이현종이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민정 선생은 쉬지 않고 떠들었다.

그 결과 이현종과 수혁은 감염내과 병동을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한 절반은 볼 것도 없는 환자로군요. 나머지 절반의 반 정도도……. 사실 신현태, 장덕수 등의 역량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별거 없을 겁니다.]

‘응……. 사실 삼촌이 꽤 잘해.’

[그렇죠.]

수혁의 생각을 신현태가 들었다면 자괴감에 머리털을 뽑았을 터였다.

꽤 잘한다니…….

사실상 지금 감염내과의 수장이지 않나.

태화 의료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염내과 전체를 말하는 것이었다.

뭐……. 천재라고 불리는 초신성이 하나 있긴 한데, 그 사람은 너무 천재라 그런가, 학회조차 자기 오고 싶을 때만 오고 있어서 여전히 감염내과를 선도하고 있는 건 신현태였다.

“좋아. 그럼 일단 여기……. 이렇게 4분지 1을 보자고. 나머지는 회진 돌면서 대강 보고 처방을 내는 거야. 내일 거까지 싹 다 우리가! 흐흐흐흐.”

“후후. 괴롭겠군요……. 삼촌은.”

“그렇지. 그럴 수밖에 없지. 환자 보고 싶어서 헐레벌떡 회의 끝내고 왔는데 환자가 없어? 아휴…….”

“고통이죠, 고통……!”

아무튼, 그렇게 파악해 낸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다른 레지던트들이 그 불길해 보이는 웃음소리에 흠칫 놀라서 둘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내일 처방까지 다 내 버리겠다는 말에 ‘?’을 띄웠다.

‘뭐야……?’

‘몰라……. 근데 저 사람들은 진짜 그러고도 남을걸.’

‘그럴 거 같지……? 아무래도……?’

‘응. 그럼 우리 쉴 수 있는 건가?’

‘그럴 거 같은데……?’

‘오……. 오늘 그럼 앞에 나가서 밥 먹을까?’

레지던트들은 서로를 보다가 이내 밖으로 우르르 빠져나갔다.

합리적인 추론이 불가한 수혁과 이현종은 그들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두려워서 도망가는군…….”

“조금 불쌍한데요? 교수님들에게 혼날 게 분명하니까요.”

“나중에 말해 주면 되지. 지은 죄가 있으니까 잠자코 있을 거야.”

“그렇겠죠. 후후후후.”

“좋아, 가자. 환자 다 봐 버리자!”

“으하하하. 병이 낫는 거 같아요!”

“그래, 이게 치료지. 아까 그놈들이 한 게 치료냐? 그건 고문이야!”

“맞아요. 너무 아팠어요. 아까 소변줄……. 흐아.”

그러곤 곧장 회진을 돌기 시작했다.

환자들이 다 자리에 있진 않았다.

왜?

오전에 이미 돌았으니까.

진짜 감염내과 교수 둘이서.

“뭐,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

“네, 없는 상황에서 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무조건 그렇게 볼 수는 없겠지만, 상세가 가벼운 사람들일수록 돌아다니는 편이어서 그랬다.

진짜 아픈 사람들은…….

사실 누워서 끙끙대는 것만 해도 지쳐 버린다.

안 아픈 사람들은 모를 텐데, 생각보다 신체적인 질환은 무섭다.

“좋아……. 흐음……. 환자분?”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입니다.”

“센터장 이현종입니다. 몇 가지 질문 좀 하겠습니다.”

“아아……. 한 달? 한 달이군요? 그럼 이건…….”

“지금 치료 잘 받고 계시는군요. 아, 점검차 온 겁니다. 점검차. 하하. 태화 의료원이 괜히 다른 병원보다 잘 나가겠어요?”

“약을 좀 바꾸는 게 좋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다른 질환일 가능성이 높아요.”

처음엔 그냥 분류한 환자만 보려고 했다.

하지만 하다 보니 넘어가는 환자들이 굉장히 섭섭해하는 것이 보였다.

해서 일행은 그냥 싹 다 돌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일단 이현종, 이수혁 둘이 괴물이라서 그랬다.

거기에 더해 이민정이 여기저기 자료를 싹 모아 와서, 미처 스테이션에서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 있더라도 딱딱 알아낼 수 있었다.

“음……. 초조하다.”

“그러니까요.”

그렇게 약 20분 정도 지났을까?

이미 병동의 절반 이상이 끝나 버렸다.

너무 희망에 차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사실 절반도 아니었다.

이제 남은 건 병실 두 개뿐이었다.

“이 새끼들……. 빠져 가지고 너무 쉬운 환자들만 보는 거 같은데?”

“그러니까 말입니다. 아휴……. 이게…….”

근데 어려운 환자가 없었다.

잘못 보던 환자가 아예 없었다는 건 아니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너무 빠른 교정이 가능했다는 점이었다.

뭐, 더 중요한 문제라면 신현태나 장덕수라 해도 오후 회진 돌 때면 교정이 가능했을 거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는…… 깜짝 놀래킬 수가 없다.

진짜 할 일이 없어진 것만 가지고는 큰 실의에 빠뜨릴 수가 없지 않겠나?

볼 환자를 없애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 내가 이렇게 부족한 인간이었구나’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목표였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민정아. 여기가 어려운 환자 많을 거 같다고 했지?”

“그렇게 말씀드린 적은 없는데……. 그래도 가능성은 높을 거 같습니다. 제가 파악했을 때 여기 나머지 두 병실이 의증 붙은 환자들이 많았습니다. 불명열 환자들도 있고요.”

“불명열……. 좋은 진단명이지.”

“네, 있을 수 없는 진단명이라는 점이 특히 그렇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려운 환자가 있어야만 했다.

다행히 이민정 선생의 말을 들어 보니 여기 두 병실이 그나마 나아 보였다.

“후우.”

대화에 끼어드는 대신 저 위에 있을 누군가에게 기도를 올린 수혁은 한숨을 쉬고서 문을 열었다.

6인실 특유의 어둑한 분위기가 수혁을 반겨 주었다.

그렇다 해도 혈종 같이 장기 환자가 많은 곳하고는 좀 달랐다.

그쪽은 안쪽 환자들은 숫제 살림을 차린 수준인데, 감염내과는 보통 길어야 한 달이면 끝나는 과다 보니 생활감보다는 딱 병원이다 싶은 느낌이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수혁. 저기.]

‘오케이. 불명열 연달아 세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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