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18화 (1,218/1,303)

1218화 복수요? (3)

[일단 애가 있네요.]

‘왜 소아과에서 안 보……. 아하. 협진이군.’

소아과는 내과처럼 복합적인 과다.

소아과 내의 분과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어마어마하게 복잡할뿐더러 방대한 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내과와는 분명하게 구별이 되기도 했다.

같은 질환도 전혀 다른 양상을 띨 수 있다는 얘기였다.

예후나 치료 또한 달라지는데, 이 때문에 소아는 작은 성인이 아니라는 말도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감염병에서는 아무래도 얘기가 좀 다르죠.]

‘가와사키라는 거면 또 몰라도…….’

[그렇습니다. 감염만 보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감염에 있어서는 짱일 수밖에 없죠.]

‘문제는 열이 나는 원인 중에 감염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야.’

[맞습니다.]

‘이 아이는 어떠려나…….’

수혁은 다 큰 성인들 사이에 있는 아이를 향해 걸어갔다.

만 2세 아이였는데, 또래보다는 확실히 작아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만성질환일 거라 지레짐작하진 않았다.

사실 ‘성장’만큼 유전자가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도 드물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수혁은 아이에게 걸어가면서 덩치와 키, 생김새 그 외에 여러 가지를 살펴보았다.

“아, 이 아이는 진단명이……. 노로바이러스 의증입니다. 우리 병원에서 붙인 건 아니고, 동네 병원에서 붙여 온 진단명입니다.”

“노로라.”

그 모습을 확인한 이민정 선생이 부리나케 달려와 말을 해 주었다.

진단명을 들은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노로에 대해 생각하면서였다.

‘주로 겨울철에 유행하니까…… 지금은 시기가 아주 맞진 않아.’

[하지만 기록을 보면 아이가 증상을 일으킨 것이 대략 한 달 전입니다.]

‘그렇다 해도 이상한 일이지. 노로바이러스가 정상 면역 아이에서 한 달도 넘게 증상을 일으키는 건……. 극히 드문 일이잖아?’

[그렇죠. 아마 그래서 신현태 교수도 노로 대신 불명열이란 진단명을 붙여 놨을 겁니다.]

‘그래……. 이상했을 거야. 그것도 몰라서는 삼촌이 아니지.’

수혁은 아마도 노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 마침내 아이 앞에 섰다.

소아 환자가 다 그러하듯 옆에는 보호자가 있었다.

와서 제법 시달렸는지 퍽 지쳐 보였다.

허나 수혁의 얼굴을 확인하자, 눈에 띌 만큼이나 표정이 밝아졌다.

아무래도 수혁이 누군지 대강 알아본 모양이었다.

“어…….”

“안녕하세요.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 교수입니다.”

“네네. 안녕하세요. 아……. 협진 얘기는 없었는데…….”

“네, 간혹 선제적으로 환자를 보기도 합니다.”

“그,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대강이 아니라 정확히 알아본 건가 싶기도 했다.

협진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의료인일 가능성도 있어 보였고.

뭐가 되었건 간에 수혁이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었다.

알아봐서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으니 잘된 일 아닌가?

게다가 가까이 서 본 아이의 모습은 더더욱 쇠약했다.

한 달 전에 노로바이러스라 진단이 되었을 정도니, 사실 이렇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긴 했다.

‘성인도 설사 계속 하면 힘들지…….’

[그렇죠. 아무래도 체중 손실이 있었을 거 같습니다.]

만 2세에 체중이 빠진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뭐……. 요새는 소아 비만 때문에 소아 다이어트도 시도하긴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체중 감량이 아니라 키가 크면서 체중 유지를 하는 쪽으로 많이 풀리기 마련이었다.

허나 이 아이는 어떻게 봐도 체중이 빠진 것으로 보였다.

“아이를 좀 봐도 될까요?”

“아, 네네.”

“으음…….”

수혁은 아이를 보면서 동시에 보호자의 행색도 다시 한번 살폈다.

머리를 감지 못해 얼핏 보면 초라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내가 아는 브랜드다, 이거.’

[옷도 만듭니까? 가방만 만드는 거 아니에요?]

‘나도 지금 알았는데……. 그럴싸해 보이는 것으로 볼 때 짭은 아닌 거 같아.’

[으음…….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찬찬히 보니까 보호자가 꽤 있어 보이는 얼굴이기도 하네요.]

‘어떤 기준에서 그렇지?’

[지금까지 환자 데이터를 쌓아 놨으니까요.]

‘관상……?’

[아뇨. 아뇨. 피부 상태나 근육의 양 등 많은 것을 종합해서 판단하는 겁니다. 관상이라니……. 어떻게 저한테 유사 과학을 들이밀 수 있습니까?]

바루다가 기분 나빠하는 사이, 수혁은 녀석이 쌓은 데이터를 통해 환자의 SES(Social economic status)를 유추했다.

사회 경제 상태를 알아보았다, 이 말인데…….

이게 쓸데없어 보여도 의외로 추론에 있어서 핵심일 때가 많았다.

아무래도 먹고살 만할수록 의료 접근성도 좋아지기에 그랬다.

영양이나 운동과 같이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자도 그렇고.

이 환자 같은 경우엔 잘살아 보이는 만큼, 아무래도 꽤 의료 접근성이 좋았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흐음…….”

그런 것을 감안한 상태로, 수혁은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직 만 2세다 보니 변화가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보호자의 얼굴과 일반적인 만 2세 아이들의 얼굴과 대조했을 때 인중이 살짝 길었다.

그 외에도 아데노이드 얼굴로 보일 만한 증거들이 심하지는 않아도 있었는데, 이를 통해 수혁은 아이가 입으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편도도……. 부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 통증이 있을 정도는 아닌데……. 만성 편도염으로 보입니다. 아이의 나이를 고려하면 신기할 정도네요.]

‘그러니까. 결석도 있어 보이지?’

[네. 상당히 오랜 기간, 상당히 자주 편도염이 반복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 목에도 임파선 비대가 있어. 이건…….’

[성인이 되면 관찰이 잘 안 될 크기이긴 하지만, 비대해져 있습니다. 여러 차례 심한 감염이 있었을 거란 얘기가 됩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수혁은 얼굴과 경부 관찰만으로 아이에게 재발성 감염이 있었을 거란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중 일부 상기도 감염은 아마도 축농증과 같은 형태의 만성 질환으로 진행한 듯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괜히 구호흡을 할 리가 없었으니.

실제로 편도를 볼 때 목 뒤로 넘어가는 누런 코도 확인했고.

“어머님.”

“네.”

“혹시 아이가 자주 아픈 편인가요?”

“아……. 네. 항생제 치료를 굉장히 자주 받았어요. 특히 어린이집 다니면서부터는…….”

“빈도가 얼마나 됐죠?”

“거의 두세 달에 한 번씩? 소아과에서 조언해 주신 대로 집 안 환경도 다 바꿨거든요. 사실 아이 방…… 정말 깨끗해요. 공기 청정기도 따로 돌아가고. 근데 어린이집만 가면…….”

“어린이집 가기 전에는 어땠나요?”

수혁의 말에 어머님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쌓여 있던 말을 토해 내듯 쏟아 내면서였다.

그러다 보다 이전 얘기가 나오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사실 어린이집 다닌 지 이제 6개월이긴 한데……. 그전에도…… 첫째보다는 자주 아팠어요.”

“그게 얼마나 됐죠?”

“첫째는 응급실도 가 본 적이 없거든요. 근데 얘는 6개월째였나? 숨을 쌕쌕거려 가지고 여기 응급실도 왔었어요.”

“여기?”

여기란 곧 태화를 의미하지 않겠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민정이 바로 다가와 자료를 들이밀었다.

과연 태화 의료원 응급실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입원까지는 안 했던 듯했다.

피 검사와 엑스레이 검사만 하고 집으로 갔다.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상태였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원래 태화 의료원쯤 되는 소아과에서는 아무나 입원을 안 시키기에 집에 보낸 것일 뿐이었다.

‘당시…… 기관지염. 흐음……. 이건 애매한데?’

[보다 자세한 문진을 요합니다. 만약 모유 수유를 진행했음에도 기관지염이 발생했다면 확실히 기질적인 면역 저하를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바루다의 말을 수혁은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모유 수유라는 게 원한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긴 한데…….

해서 나쁠 것이 없는 것이라 그랬다.

특히 면역력 증진에 있어서는 아직도 분유가 따라가지 못하는 지점이 있었다.

“혹시 아이 모유 수유를 했었나요?”

“네? 아……. 네. 거의 반년 넘게.”

“그렇군요. 흐음……. 근데 그때 입원은 안 했던 거 같은데…….”

“아……. 여기서는 안 했어요. 괜찮다고 하길래 안심하고 집에 갔는데 그날 새벽부터 열이 더 나 가지고……. 아이 아빠랑 같이 아는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더니 폐렴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입원했었어요. 그때 거의 2주간 항생제 치료받고……. 애가 엄청 고생했어요.”

“그 병원이 혹시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아, 광림 병원이요.”

“광림…….”

아는 이름이었다.

태화 의료원 소아과 출신 선생님이 차린 병원인데, 이렇게 말하면 작게 느껴지겠지만 실은 2차 병원이었다.

거기서 입원 치료를 했다면 허투루 하진 않았을 터였다.

다시 말하자면 진단부터 치료까지 제대로 했을 거란 얘기였다.

제아무리 수혁이 바루다 덕에 천재를 넘어 괴물이란 평을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화 의료원 출신 전문의들을 무시하진 못했다.

그만큼 힘든 과정을 거쳐서 되는 사람들이니까.

[생후 6개월에 폐렴이라면 드문 일이긴 하죠.]

‘그러니까…….’

신뢰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수혁은 아이의 폐렴 병력을 추가했다.

“그 후로는 괜찮았어요?”

“아뇨……. 반년마다 입원했다고 봐도 돼요. 정말……. 에휴…….”

“그렇습니까? 흐음……. 다 폐렴?”

“네, 폐렴. 감기만 걸렸다 하면 폐렴이었어요. 저희가 얘 데리고는 어디 멀리 가지도 않고, 수영장도 안 가거든요. 근데 어디서 어떻게 걸리는 건지 모르게 걸리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조심했다고 할 때 눈빛이 빛나는 것으로 볼 때 진짜 조심하긴 한 모양이었다.

의료인 수준이 아니라면야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섣부른 판단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아이를 기르는 엄마들은 철저하다는 걸, 수혁은 여러 차례 소아과 진료를 하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군요. 일단 아이를 좀 더 보겠습니다.”

“네…….”

수혁은 확실히 기질적인 면역 저하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이의 흉부 그리고 복부를 관찰했다.

다행히 아직 청진기를 통해 듣는 호흡음은 괜찮았다.

문제가 있던 것은 복부였다.

‘비장 비대가 있어.’

[만성적인 질환이 있단 얘기죠.]

‘장음이 굉장히 안 좋은데……. 여전히 설사를 한다는 거야. 내시경을 해 봤으면 좋겠는데.’

[아까 처방을 보니 내일 예약이 되어 있었습니다.]

‘금식은……. 이미 하고 있군. 그럼 지금 해도 되는 거잖아?’

[수혁은 내시경 못 하잖아요?]

그래, 맞다.

수혁은 못 한다.

뭐 어떻게 흉내는 내 볼 수 있을 수 있겠지만…….

건강한 성인도 아니고 아이를 대상으로 한 내시경을 하기엔 경험이 일천하다.

“장강명 교수님한테 연락 좀.”

“네, 뭐라고 할까요?”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이민정은 놀라지도 않았다.

그냥 답할 뿐이었다.

수혁은 그런 이민정을 향해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전에 나한테 내시경 했을 정도로 여유 있는 거 다 아니까, 응급 내시경 하나만 부탁한다고 말씀드려 줘.”

“아……. 네. 거절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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