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19화 (1,219/1,303)

1219화 복수요? (4)

장강명은 내시경 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화를 못 받을 상황은 아니었다.

대학 병원의 의료진은, 그중에서도 자기 환자가 입원해 있는 의료진은 언제 어디서건 전화를 받아야 하기에 그랬다.

“교수님, 전화 왔습니다.”

수술방, 심지어 개흉술 도중에도 걸려 오는 전화는 받도록 보조 인력이 상주하고 있었다.

당연히 전화만 받는 건 아니고, 이런저런 기구나 환자 연락 등을 담당한다고 보면 되었다.

“어……. 어디지? 나 병동 환자는 다 괜찮은데?”

“이수혁 교수님이라고…….”

“아.”

장강명은 마침 내시경을 회장 입구 근처까지 밀어 넣었다가 빼고 있는 중이었다.

들어가는 게 힘들지, 나오는 건 주의 깊게 병변이 있나 없나 정도만 보면 되는 일 아니겠나.

뭐 이런 식으로 말했다가 자칫 덜 여문 소화기내과 의사가 심한 착각이라도 하게 된다면 큰일이겠지만…….

적어도 장강명에게는 이렇게 생각할 만한 경험과 지식이 있었다.

‘망할……. 오늘…….’

그런 장강명은 소화기 센터 내에서만큼은 왕으로 통했다.

왕처럼 군림한다거나 갑질을 한다는 건 아니었다.

그냥 존재만으로 숨 막히게 하는 사람 있지 않나.

너무 높아서 별말 않고 서 있는데 불편한 사람.

이게 장강명이 특별히 꼰대라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현종처럼 의학적인 부분 외적인 부분에서는 철없이 늙은 사람도 때에 따라서는 이렇게 느껴지기도 하는 법이었다.

‘교수님……. 식은땀 흘리시는 건가?’

특히 지금 전화기를 건네주려고 준비 중이던 신규 간호사에게는 더더욱 그랬더랬다.

고작해야 24살인 간호사에게 50을 훌쩍 넘긴 장강명이 주는 압박감이 뭐 보통이었겠나.

심지어 이 조직의 장인데?

게다가 오가는 모든 사람들이 장강명에게만큼은 굽신거렸다.

다른 과 의사라 해 봐야 대개 내시경 부탁하러 오는 사람이 태반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현태, 이현종 일당, 그러니까 수혁파로 분류되고 있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말하자면 권력자라 이 말인데……

‘하아…….’

그 권력자는 지금 오전에 그가 직접 죄로 말미암아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야만 마땅한 상황이긴 했다.

왜?

집어넣어 봤잖아.

넣어 봤더니만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 확인했잖아.

사실 응급 내시경 적응증도 아닌데 옆에서 하도 난리법석을 쳐 대는 통에 그냥 넣었다.

“빨리 바꾸라는데요? 슬슬 화가 나는 거 같다고. 이 사람이 이거……. 뭐라고 좀 할까요?”

하여간, 그렇게 자신의 죄를 복기하고 있으려니 간호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뭐라 하기는 또 뭐한 일이었다.

나름대로의 충성심을 보여 주는 방식이지 않나.

장강명 또한 어릴 때 몇 번인가 자기 은사님에게 들이받는 놈들에게 머리통 들이밀었던 적이 있다 보니 그저 손을 내밀 수 있을 뿐이었다.

“아니……. 일단 줘 봐. 다 봤어. 이 환자분은 그냥 1년 뒤에 팔로우업만 하면 되겠어. 아까 제거한 거 말고는 용종도 없네.”

“네, 교수님.”

장강명은 그래도 자신이 해야 할 일, 그러니까 환자에 대한 설명을 전달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어……. 이수혁 교수.”

“아까 아침에 그래서 뭐 보기는 했어요?”

“아니……. 깨끗하던데? 한 3년 뒤에 한 번 더 하면 되겠어. 나이 젊으니까 5년 뒤에 해도 되고.”

“전 치킨 좋아하고 대창 같은 거 좋아해서 3년마다 봐야 합니다.”

“아아. 실례가 많았네……. 내가, 내가 직접 봐 줄게. 근데…….”

장강명은 힐끔 시계를 돌아보았다.

1시가 아직 안 된 시각이었다.

일반 직장인들이라면 점심시간부터 떠올리겠지만, 대학 병원에서는 그저 한창 일할 시간이란 생각만 들 뿐이었다.

특히 미래를 위해 현실을 희생하는 데 익숙하다 못해 프로가 되어 버린 장강명 같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이 시간에 그냥 전화했을 거 같진 않은데…….”

화를 낼 것 같진 않았다.

생각해 보니까 수혁이 그렇게 비합리적인 인간이 아니라서 그랬다.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감정 소모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걸 이용해서 무언가를 받아 내는 것이 훨씬 수혁다운 일 아니겠나?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바루다 덕에 가능하게 된 일이긴 하지만…….

외부인에게는 알 게 뭐란 말인가.

수혁의 이미지는 그렇게 잡힌 지 오래였다.

“아, 지시할 사항이 있어서요.”

“지시……?”

“원래 같으면 부탁일 텐데. 오늘은 지시라고 하죠.”

“그, 그래. 뭔데?”

“환자 하나 내시경 좀 해 주세요.”

“아……. 아……. 하하.”

지시?

대체 뭔 일을 시키려고 지시 운운하는 걸까?

오전에 지은 죄에 대한 보답이라면 보통 일은 아닐 거 같았다.

헌데 고작해야 환자 내시경이라니…….

이거야 원.

‘별거 아니지.’

원래도 맨날 부탁하지 않던가.

말이 부탁이지, 듣는 사람이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지시라고 봐도 좋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도 가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그 정도라면 바로 해 줄 수 있는 일이었다.

“바로 보내지.”

“근데 환자가 만 2세예요.”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하하……. 응? 만 2세?”

“네. 만 2세.”

“아니……. 애가 무슨 내시경을 해야 해.”

“필요하면 해야죠. 안 할 거예요?”

그래서 하겠다고 했더니만 나이가 이상했다.

만 2세…….

한국 나이를 최대로 먹었다고 쳐도 4세.

4세 아이가……. 보통 몇 킬로더라……?

장강명의 애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미 장성했으니까.

그렇다고 손자를 안겨 준 건 또 아니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물론 아이들 내시경 할 일이 있으면 소화기내과에서 하긴 하는데…….

그야말로 극히 드문 경우인 데다가 이렇게 까다로운 케이스 같은 경우엔 센터장인 장강명이 직접 한다기보다는 밑에 애들이 알아서 하다 보니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해, 해야지.”

안 한다고 하고 싶지만…….

자꾸만 오전에 미다졸람 맞고 힘없이 누워 있던 수혁과 그의 손을 잡고 자신을 노려보던 이현종, 우하윤의 얼굴이 떠올랐다.

누가 보면 일부러 죽이기라도 한 줄 알 터였다.

실제로는 다 같은 식구들끼리 호들갑을 떨어서 그렇게 된 것이지 않나.

‘나도 피해자야!’

어떻게 보면 어? 피해자이지 않나?

물론 장강명은 그런 말을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는 갑에게 할 만큼 지각없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하겠다고만 했다.

“오케이. 갑니다.”

“어어……. 직접 오나? 몸이 안 좋을 텐데.”

“그 안 좋은 사람 몸에 내시경 꽂은 게 누군데요.”

“그……. 그렇긴 하지. 그래, 와…….”

수혁은 전화를 끊고 환자와 함께 내시경실로 향했다.

이민정은 병실에 남겨 둔 채였다.

“혼자 갈 수 있나?”

“아빠도 계속 진료 볼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그럼 저 혼자 다녀올게요. 어차피…… 장강명 교수님이 최선을 다해서 봐 줄걸요?”

“그것도 그렇지.”

이현종이 지금 크나큰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감염내과 환자 씨를 말려야 하지 않겠나.

수혁도 그의 대의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호자, 환자와 함께 내시경실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장강명이 서 있었다.

‘요새 애들은 크니까……. 아, 작네.’

그는 환자를 보자마자 남몰래 탄식했다.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어지간히 아픈 것 같지 않고서야 애들한테 내시경을 시킬 리가 없다는 걸 왜 모르겠나.

완전하지는 않아도, 소화기관 내부를 관찰할 수 있는 대체 방안이 속속들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라도 그랬다.

물론 그 방법들이 별 소용없는 케이스도 있기 마련이었고, 그런 경우엔 대개 상태가 별로다.

성인의 경우에도 그렇겠지만 아이는 그 정도가 더 심해서 눈앞의 환자처럼 마르고 작기 마련이었다.

“그래, 이 친구인가?”

허나 장강명은 센터장의 자리에 오를 만큼이나 노회한 의사다.

정치적인 노련미가 미쳐 돌아간다는 뜻이다.

거기에 더해 실제 실력도 훌륭하다 보니 금세 덤덤한 얼굴로 돌아와 환자를 맞이할 수 있었다.

“안, 안녕하세요.”

보호자는 덕분에 조금 더 안심한 얼굴이 되어 인사까지 건넬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수혁이 오고 나서부터는 그저 막막하기만 하던 병원 생활에 한 줄기 서광이 비치는 느낌이 일고 있었다.

이 병원에 입원한 거야 바로 어제이지만……. 아이의 투병 생활은 적어도 몇 달이지 않던가.

이번 설사만 따지고 봐도 한 달이다, 한 달.

그전에 했던 병치레까지 하면 훨씬 길었고.

대체 왜 우리 아이만 이럴까 하는 질문이, 혹시 내가 뭔가 잘못해서 이렇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이 왜 없었겠나.

“네, 걱정 마세요. 제가 잘 봐 드리겠습니다.”

장강명도 수혁도 딱히 거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진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갈 뿐이었다.

허나 그 앞에 제대로 된 진단 또는 치료가 있어서일까?

보호자는 어쩐지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어떤 걸 의심하는 거야?”

그렇게 들떠 보이기까지 한 보호자를 뒤로하고서 장강명은 몰래 물었다.

시술장에서 이렇게 하는 게 언뜻 보면 부적절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내시경실이라는 곳은 정신없는 곳이었다.

일단 간호사들이 환자를 옮기고, 라인 점검하고 하다 보면, 제대로 된 보호자라면 도저히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몇 가지 의심 가는 질환이 있어요. 내시경 소견에 따라 확 갈릴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어떤 건데.”

“뭐……. 자세한 건 보고 말씀드려야겠는데, 제가 기대하고 있는 내시경 병변은 아프타성 병변이에요. 분산된 궤양과 출혈 병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크, 크론이라고?”

아프타성 병변은 입가에 간혹 발생하는 아프타성 궤양을 말한다고 보면 되었다.

그게 입에 생기면 그저 피곤함의 결과물로 치부될 뿐이겠지만 여러 개가 대장에 발생하면 뭔가 심각한 질환이 된다.

주로는 크론이고.

“애가 만 2세인데요?”

“아……. 그렇지. 근데 꼭 나이가 들어서 진단이 되란 법은 없지 않나? 아닌가?”

“아뇨. 거의 없어요. 너무 희박하죠. 그보다는…….”

“아이 준비됐습니다!”

“아, 아아.”

장강명은 뭔가 중요한 말을 하려다 멈춰 버린 수혁과 그를 멈추게 한 간호사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탄식을 터뜨렸다.

그뿐이었다.

거기서 뭔가 더 하진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 인간…….

‘잘난 척하려고, 이 새끼.’

다 모인 자리에서 떠들 게 뻔했다.

장강명이 괜히 수혁파로 분류되고 있겠나.

다 그럴 만해서 그렇게 분류되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그 말은 상당히 자주, 그리고 많이 수혁과 엮였다는 뜻이었다.

척 하면 척이라 이 말이었다.

아무튼, 장강명은 그러한 속내를 뒤로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아이의 항문을 통해 내시경을 진입시켰다.

“후우…….”

성인 중에서도 마르고 작은 사람, 특히 노화 또는 만성 질환으로 그렇게 된 사람에게 내시경을 진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장이 찢길 수 있어서 그랬다.

그게 성인이 아니라 아이라면 어떨까?

두말할 것도 없었다.

경험 많은 간호사는 벌써 속으로 오늘 외과 당직 번호를 헤아리고 있었다.

재수 없다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병원 일이라는 건 늘 최악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니까.

“후우.”

수혁도 채근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장강명은 조용한 가운데 천천히 내시경을 직장 넘어 대장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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