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1화 모든 걸 의심해야지 (1)
복수.
그런 섬뜩한 단어를 염두에 두고 있던 적도 있긴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이현종은 뭔가 다른 것을 생각하면서 진료 보기엔 지나치게 순수한 인간이었다.
그렇다 보니 지금도 그저 환자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니까……. 간 이식을 받으셨다, 이 말씀이죠?”
“네, 네에. 무균실 갈 정도는 아니라는데…….”
이현종은 아까 그 병실이 아니라, 옆 병실에 와 있었다.
병동마다 적어도 1, 2개씩은 있는 1인실이었다.
1인실이나 특실이라고 하면 뭔가……. 사치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병원에서는 딱히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6인실보다는 1인실이나 2인실이 지내기에 편한 것은 맞지만…….
지금 이 환자 같은 경우엔 편하려고 온 게 아니라 위험을 피하기 위해, 그러니까 의학적인 이유로 1인실에 와 있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이현종 또한 수술모에 마스크 그리고 장갑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그래도 조심하는 게 맞죠.”
“그렇죠……. 아휴, 이놈의 간…….”
이현종은 환자의 넋두리를 들으며, 그의 모난 눈을 이용해 기록을 슥 훑었다.
이민정 선생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김승규한테 받았네. 하긴……. 우리 병원에서 하는 간 이식 절반 이상을 그 양반이 하지.’
김승규…….
괴물이다.
생긴 것만 괴물이 아니라 실력도 그렇다.
실제로 저 백강혁이 탐내던 인재이지 않던가.
보통 그렇게 되면 외상 센터로 끌려가든 외국으로 끌려가든 했을 텐데, 심지어 김승규는 간 이식의 미래가 될 거란 예언과 함께 풀려났더랬다.
그런 사람이 수술을 잘못했을까?
뭐 그럴 수도 있긴 할 터였다.
사람이 하는 일에 실수가 아예 없을 수는 없을 테니.
비록 김승규가 마치 도 닦는 사람처럼 매일매일 컨디션 조절을 해 가며, 수술방에 늘 최상의 상태로 등장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걸 의심해 보는 것이 옳겠지…….’
수술 후 벌써 3개월이나 지났다는 걸 감안하면, 김승규 아니라 다른 놈이 했더라도 일단 다른 질환을 의심해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응급실로 오게 된 증상 또한 이현종의 의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환자를 이현종보다 먼저 본 장덕수의 의심이 그랬을 터였다.
“목이 아프셨다고요?”
“아……. 네. 저 진짜 조심했거든요. 특히 3개월 전이면 사실 아직 코비드 그거 안 끝났을 때 아닙니까.”
실은 지금도 진행 중이긴 했다.
팬데믹에서 엔데믹이 되어 가고 있을 뿐, 여전히 상당히 많은 수의 신규 감염자가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허나 정치·사회적인 고려에서 벗어난 의학적인 고려에서도 이제 더 이상 코비드는 그렇게까지 염려할 만한 질환은 아니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제약이 풀리고, 그에 대한 보도도 줄게 된 것인데…….
‘그래도 면역 저하자에게는 무서울 수 있지.’
이현종은 환자가 지금 복용하고 있는 약을 확인했다.
면역 억제제.
장기 이식 후 장기 생존을 방해하는 가장 주요한 요소 중 하나인 급성 동종 이식 거부반응을 예방하는, 정말 중요한 약이었다.
필수 약이다 이 말인데…….
부작용으로는 당연하게도 면역 저하가 있었다.
그에 따른 각종 간염이나, 상처 치유 지연, 구강 궤양이 있을 수 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아느냐고 하냐면, 조태진 때문이었다.
녀석과 같이 다니다 보니 싫어도 면역 저하에 대해서는 빠삭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솔직히 수혁이 때문이지.’
사실 알 게 뭐란 말인가.
무시하고 퉁 칠 수 있겠지만, 공부해 두면 다 센터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이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공과목과 전혀 무관한 분야에 대해서도 공부를 쉬지 않았다.
시벌……. 정말이지 욕 나올 만큼이나 빡센 시간들이었다.
아니, 아니지.
과거형을 쓰는 것도 기분이 나빠진다.
이현종의 고생은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었으니까.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은 좋았다.
‘거기에 스테로이드……. 마이코페놀레이트 모페틸까지 복용 중이야. 아직 수술 후 3개월이니 그럴 만하지.’
공부 안 했으면 이 환자를 어떻게 보겠나.
아니, 감염 병동에 어찌 오겠나.
간혹 신현태처럼 이현종을 마치 도라에몽 주머니처럼 여기는 놈들도 있긴 했다지만, 말 그대로 간혹이었다.
지금처럼 정기적으로 와서 깽판 아니, 진료를 볼 수는 없었다.
“그 다음에는 기침을 하셨어요?”
“네, 기침도 나고……. 아주 죽겠더라고요. 사람 만나는 것도 자제하고, 꼭 만나야 되는 사람이라고 해도 마스크 끼고 만났거든요. 저 아직 밖에서 밥도 먹은 적이 없습니다. 근데……. 아휴, 이게 대체…….”
환자는 어이가 없는지 넋두리를 또 다시 늘어놓았다.
그러면서도 목이 아파서 그런가 연신 인상을 찌푸렸다.
중간중간 물도 마셨다.
얼핏 봐도 엄청 아프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어제 응급실에 오신 거죠? 증상 발생한 지 얼마나 된 다음이죠?”
“아……. 이틀 만에요. 첫날에 오려다가 그건 좀 오버하는 거 같아서요. 그날은 그렇게 아프지 않기도 했고…….”
“그래도 이틀 만에 오셨으면 빨리 오셨네요. 흐음. 잠시만요.”
“네네.”
따지고 보면 이현종은 환자에게 있어 완연한 불청객이었다.
감염 위험 때문에 1인실에 입원한 환자라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그랬다.
허나 이현종은 어디로 봐도 어마어마하게 연륜이 있어 보이는 의사이지 않나.
장덕수는 물론이거니와 가끔 같이 회진 돌던 신현태보다도 더 위로 보였다.
그렇다 보니 환자는 그저 잠자코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적당히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이 이득이 될 때가 있는데 대학 병원에서는 거의 항상 그렇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아무튼, 이현종은 그렇게 양해를 구한 후 3일 전 응급실 내원 당시 나갔던 검사를 살폈다.
당연하게도 코비드 검사도 나가 있었다.
바깥세상에서야 코비드가 다 끝난 것처럼 여겨지겠지만 병원에서는 여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pcr은 음성……. 들어가고 있는 면역 억제제 농도가……. 응? 아, 타크롤리무스 용량 감량하고 에베로리무스를 추가했구나. 아무래도…… 타크롤리무스를 계속 쓰는 건 무리지.’
검사는 아무래도 환자의 상태가 상태이니만큼 상당히 많이 나가 있었다.
그중 일반적인 환자와 가장 커다란 차이를 뽑아 보자면 당연하게도 면역 억제제 혈중 농도일 터였다.
이 약이 필요해서 쓰는 것이긴 하지만, 과용해서는 안 되는 약이지 않은가.
반대로 부족해도 문제였다.
어렵게 간 이식을 받았는데 그 간이 망가져 버리면 큰일 아니겠나.
그렇다 보니 수술 후에도 어마어마한 신경을 쓰게 마련이었다.
‘간 기능 수치도 정상이고. 신장이나……. 얼씨구 CBC도 정상이네? 응……?’
해서 이현종도 신경 써서 봤는데 적어도 간 이식에 관해 나간 것으로 보이는 검사들은 싹 다 정상이었다.
그 외에 감염이 있다면 올라야 하는 백혈구 수치도 정상이었다.
뭐…….
반드시 올라야 하는 건 아니긴 했다.
세균 감염이 아닌 바이러스 감염이라면 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긴 하니까.
그보다 이현종의 눈길을 끈 것은 CRP, 즉 C reactive protein이었다.
급성 염증 수치라고도 불리는 이 물질의 정상 수치는 3 정도인데…….
그게 50을 넘어가 있었다.
‘뭐지……. 이게 가능한 수치인가?’
가능하긴 할 터였다.
하지만 고작해야 이틀 전에 발생한 감염으로 이렇게까지 되는 건…….
“약은 항생제 들어가고 있는데, 열이나 오한은 좀 어떠세요?”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다는 건……?”
“차도가 없는 거 같아요. 오히려 더 힘든 느낌도 있습니다.”
이현종은 노회한 의사답게 고민을 하면서도 환자와의 대화에 마가 끼지 않도록 적절한 타이밍에 질문을 던졌다.
환자야 묻는 말에 열심히 답하고 있었다.
이 내용 또한 중요한 소견이었기 때문에, 이현종은 숙지해 두었다.
‘항생제는 쓴 지 이틀이 지나면 효과를 판단할 수 있어. 이 환자는……. 3일 전 내원한 시간이 오전이란 말이지?’
그럼 이제 약 들어간 지 48시간은 물론이거니와 72시간도 훌쩍 넘었다는 얘기였다.
그것도 약한 항생제가 아니라 세프트리악손을 때렸는데 호전은커녕 더 심해지고 있다…….
‘흐음……. 열이 하루 두 번 이상 올라. 간격을 보면 파라세타몰이 들어갔을 때만 내리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거, 이렇게 되면?’
파라세타몰이란 아세트아미노펜, 즉 타이레놀로 흔히 알고 있는 약물의 주사 형태다.
진통소염제에 비해 소염 작용에 있어서는 약하지만, 해열 작용은 일반적으로 오히려 더 강하다.
그러니 지금 이 환자의 증상을 어느 정도 조절하고 있는 건 파라세타몰이라고 봐야 했다.
항생제가 아니라.
‘괜히 에타페넴을 고려할 것이라고 적어 둔 게 아냐.’
장덕수도 비슷한 생각을 하긴 한 모양이었다.
감염내과답게 성급하게 항생제를 바꾸진 않았지만, 효과가 없다는 판단을 하자마자 일단 다음 항생제를 고려는 하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직 환자 혈액에서 배양되는 균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예전에야 보통 7일에서 10일 정도가 지나야 제대로 된 배양 결과를 볼 수 있었다지만, 이젠 아니지 않은가?
물론 3일은 좀 급하긴 하지만…….
종류 파악이나 항생제 감수성 평가가 아닌 그저 뭔가 자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만 알고자 한다면, 3일도 충분했다.
“어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현종은 즉시 전화기를 집어 들고는 진단검사의학과에 전화를 걸었다.
“아, 네. 교수님.”
상대는 이현종의 번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뭔 일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또 지 할 말만, 그러니까 어떤 검사 결과만 묻고 끊을 거라는 걸 알아서 그랬다.
“임진화 환자 배양 어떻게 돼 가고 있어?”
“네? 아……. 그 환자. 안 그래도 장덕수 교수한테 말할까 말까 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이걸 물을 줄은 몰라서 좀 당황했다.
해서 말이 길어지려는 찰나, 이현종이 바로 잘랐다.
“응, 그런 것까지는 말할 거 없고. 그냥 배양이 어찌 되는지나 말해 주지 그런가?”
“아……. 네. 아직 아무것도 자라는 게 없습니다.”
“아무것도?”
“네. 환자 혹시 병원 오기 전에 항……. 아, 끊었네.”
그리고 끊었다.
‘자라는 게 없다?’
이현종도 이렇게 하면 상대가 싫어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인 데다가 최근엔 이기자 교수와 살면서 나름 매너 교육도 받고 있어서 그랬다.
하지만…….
‘가만있자…….’
원래 있던 감염 질환이 열을 일으킬 수도 있는 노릇이긴 했다.
대한민국은 결핵이 많으니 결핵이 범인인 경우도 있었고.
허나 담당자가 김승규였지 않나.
그 인간이 얼마나 열심히 이식 전 검사를 하던가.
‘보아하니 이 환자도 엄청 조심을 했어. 거기에 피에서 자라는 것도 없지. 그럼 혹시 감염이 아닌 거 아닌가?’
감염이 아닌데 열이 난다?
그럼 이식 거부 반응인가?
‘아니, 그것도 아냐…….’
이현종은 고개를 가로젓다가 이내 환자를 돌아보았다.
조금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