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2화 모든 걸 의심해야지 (2)
“환자분.”
“어, 네.”
안 그래도 환자는 이현종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던 참이지 않나.
근데 분위기까지 더 진중해지자 이제는 뭐…….
아예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할 기세였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현종이 죽으라고 할 건 아니지 않은가.
정작 그가 요청한 것은 팔과 배를 걷어 보이라는 것 정도였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이렇게요?”
“네. 음.”
그렇게 드러난 맨살을 찬찬히 훑어본 이현종은 슥 하고 이민정을 돌아보았다.
이민정은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열과 성을 다한 것과는 달리, 뭔가 아는 듯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 뭐…….’
모를 수 있긴 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 맥락에서 알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얘는 수혁이나 안대훈은 아니니까.
아마 하윤이라고 해도 뭔가 더 힌트가 들어가야 알아차리지 않을까 싶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이현종은 일단 입부터 열었다.
“발진이 있네요.”
“네?”
“여기 울긋불긋하게요.”
“아……. 열꽃 아닌가요?”
“뭐……. 애들은 열만 나도 이렇게 될 수 있죠. 어른은 잘 안 그렇습니다. 그리고 발진 생김새도 많이 다르고요.”
“아…….”
말은 환자랑 하고 있지만 실은 이민정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이민정이라고 해서 그걸 모르진 않았다.
해서 열심히 경청했지만…….
‘열꽃은 아니다.’
딱 여기까지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직은 그랬다.
‘하아……. 집회 더 열심히 나가야겠다…….’
그나마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는 점이 있다면 반성하고 또 개선할 점을 찾는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해 봐야 이현종에게 점수 따긴 글렀지만.
‘뒤지게 굴려야겠네.’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현종은 그래도 한번 제자로 생각한 사람을 실수 몇 번 하거나 실망 몇 번 시킨다고 내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대신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게 만든다.
어떻게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얼마나 괴로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알 바 아니라고 여겼다.
“심전도 한번 들고 와 볼래?”
“아, 네!”
이현종은 일단 나중에 굴리기로 하고, 지금은 눈앞의 환자에게 집중하기로 작정했다.
이민정은 그의 명에 따라 부리나케 달려서 심전도 기기를 들고 왔다.
심전도 기기는 그렇게까지 고가 장비가 아닌 데다가 감염내과는 패혈증과 같이 바이털이 심하게 흔들리는 경우가 많아서 병동에 구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금세 가지고 올 수 있었다.
‘뭐지?’
이민정은 심전도를 가지고 오면서도 이걸 대체 왜 시키나 하고 있었다.
당최 알 수가 없지 않나.
맥락이 이리 튀고 저리 튀고 하고 있었다.
이현종은 이럴 때 딱히 정리해서 말해 주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점점 더 고민만 짙어지고 있었다.
뭐 나중 되면 다 알려 주긴 하겠지만…….
그때 듣는 건 일방적인 교육일 뿐, 티키타카는 아니지 않나.
‘하아…….’
이수혁 교수님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 사람이야 괴물이니까.
언감생심 아니겠나.
다만 바라는 것은 안대훈이었다.
-그러려면 대머리 돼야 할걸…….
머리카락을 희생할 생각은 없었다.
-그 선배 학생 때부터 위태로웠어요.
왜냐면 소문과는 달리 그의 탈모가 이미 유전자로부터 예견되어 있었다는 걸 이민정은 알아서 그랬다.
이게 뭐 안대훈을 업신여겨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오히려 흠모해서 나오는 말이었다.
타고난 천재는…… 어떻게 봐도 아니었다.
적어도 학생 때는 그저 그랬다.
헌데 지금은 어떻게 봐도 천재 그 자체의 면모를 보이고 있지 않나?
“확실히…… 서맥이 있어. 이 정도로 열이 나고 하면 이미 90은 넘어야 할 텐데. 아직도 60대…….”
그렇게 고뇌에 찬 이민정 옆에서 이현종은 심전도 기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출력조차 하지 않은 채였다.
‘뭐지?’
보통 이쯤 되면 뭔가…… 뭔가 보여야 했다.
하지만 이민정의 눈에 비치는 것은 고작해야 방금 이현종이 말한 것뿐이었다.
심박동, 즉 맥박수만 보인다는 뜻이었다.
‘발진……. 서맥…… 고열. 아, 모르겠는데…….’
문제 목록은 하나 가득이었다.
일단 환자의 상세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CRP는 50을 넘지 않던가.
비록 내과 의사로 살아온 세월이라고 해 봐야 꼴랑 만 1년 좀 넘은 수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태화 의료원에서 일하다 보니 꽤나 많은 케이스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가 있는 것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이건 이민정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이었다.
그에 반해 이현종은 아예 다른 차원의 추론을 하고 있었다.
“이거 약을 언제 바꿨죠?”
그 결과 튀어나오는 질문은 이민정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가 있었다.
당연히 환자도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집중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바로 답이 나오진 못했다.
“아…….”
“천천히 답하셔도 됩니다. 사실 기록으로도 파악은 되니까요.”
“아. 아아. 한…… 일주일?”
“일주일이라. 그래요, 맞군요.”
일반적으로 타크롤리무스보다 에베로리무스가 부작용이 더 적은 약이긴 했다.
그만큼 효과가 살짝 떨어지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급성 장기 거부 반응을 예방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고 나면 타크롤리무스를 대신해서 쓸 수 있는 약이다, 이 말이었다.
따라서 부작용도 그 정도는 덜할지언정 종류는 비슷했다.
‘간질성 폐렴, 각종 감염……. 상처 치유 지연에 구강 궤양까지 있을 수 있지.’
면역 억제를 하는 약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허나 기전이 아예 같은 건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부작용도 있을 수 있었다.
이건 조태진 때문이 아니라 아들놈 때문에 따로 공부하면서 알아낸 사실이었다.
‘대개는 고지혈증, 고혈압, 신기능 장애를 일으킬 수 있지. 그래서 지질 검사랑 신기능 검사를 한 거야.’
이현종은 응급실에서 나간 혈액 검사 종류를 다시 한번 상기했다.
누가 초진 본 건지는 모르겠는데 꽤 사려 깊은 놈이다 싶었다.
확실히 이번에 바꾼 약의 부작용이 있진 않은지 다 확인을 했으니까.
그 덕에 그 검사에서 이상이 없음도 다음 날이 되기 전에 다 알아낼 수 있었고.
허나…….
‘에베로리무스 부작용이 그것만 있는 게 아냐.’
약전에 명기된 것은 위의 것들이 다다.
그 말은 곧 숱한 임상 시험에서 입증된 부작용에 대해서는 다 검사를 했다는 거다.
‘이건 수혁이가 왔어도 모를 거다.’
그렇다고 해서 이 약의 모든 부작용에 대해 검사를 한 걸까?
그건 아니었다.
이현종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현종을 비롯한 몇몇 심장내과 의사 그리고 흉부외과 의사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보면 되었다.
왜?
케이스 리포트를 작성한 게 다른 누구도 아닌 이현종이니까.
최근 일도 아니다.
‘04년에…… 심장 이식 후 발열이 있던 환자가 있었지.’
그때 얼마나 식겁했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왜냐면 04년이면 사실 대한민국에서 그렇게까지 장기 이식을 많이 하던 시절도 아니라 그랬다.
그나마 김승규 같은 놈들이 간 이식 정도를 시도하고 있을 때였다.
뭐 신장 이식이야 워낙 오래된 수술이다 보니 그보다 한참 전에도 하긴 했지만…….
심장 이식이나 폐 이식과 같은 수술은 드문 정도가 아니라 각 병원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수준이었다, 그때는.
지금이야 심장 이식해 봐야 보도도 한 줄 안 나가지만…….
‘격세지감이다, 격세지감이야.’
그때는 정말 관련된 모든 의료진들이 다 달라붙어서 봤더랬다.
심지어……. 사실상 퇴원해도 될 만큼 호전이 되었을 때도 집에 안 보냈다.
불안해서.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환자를 병원에 붙들어 매어 둔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그런 일이긴 한데…….
-자, 잘 부탁드립니다!
그땐 환자도 불안하기는 매한가지였더랬다.
아니, 옆에 있는 의사들이 다들 호들갑을 떨어 대고 있었으니 환자가 제일 불안했을 터였다.
집에 가라고 해도 안 갈 상황이었다는 말이었다.
여튼, 그렇게 무려 2달을 있다가 집에 갔다.
이 환자와 마찬가지로 타크롤리무스를 에베로리무스로 바꾸고.
그리고 며칠 뒤에 고열과 함께 응급실에 왔고, 당시 원장님이었던, 지금은 지방 병원에 내려가 있는 은사님이 헐레벌떡 뛰어와 소리쳤다.
-이 새끼들아! 며칠만 더 보고 보냈어야지!
사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이현종도 그 생각을 하고 있긴 했다.
헌데 참 이상도 하지.
남의 입에서 저 말을 막상 듣고 나니까 되게 억울해졌다.
그래서 이현종은 자신의 잘못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역추론에 들어갔다.
-뭔 소리야, 이놈이? 에베로리무스가 열을 왜 일으켜? 그런 얘기가 어디에도 없는데?
그때도 이미 에베로리무스는 신약 딱지는 뗀 지 오래였다.
쓸 만큼 써서 부작용이나 효과나 알 만큼 알았다, 이 말이었다.
그랬다고 하기엔 얼마 후에 항암 효과도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긴 했지만, 아무튼.
이현종의 말을 믿어 주기는커녕 지지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이현종이 누군가.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했던, 무조건 열어야 한다고 했던 케이스조차 기어코 심혈관 중재 시술로 해낼 수 있다는 걸 똘끼에 가까운 뚝심으로 밀어붙여서 해낸 인간이지 않나.
고작해야 약 하나 끊어 보는 것 정도로 이현종을 좌절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친놈이 약을 끊었어?
아, 다 지나고 나서 하는 말이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지. 당시 분위기는 폭풍 그 자체였다.
태화 의료원 최초의 심장 이식술인데 약을 다시 바꾸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에 그랬다.
심지어 다른 사람 아무도 모르게 이현종 혼자 했다.
자기 생각이 무조건 맞다고 하면서.
-어……?
죽이려고 했다, 당연히.
내가 너 안 자르면 사람이 아니고, 성도 갈고, 장도 지진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은사님 성도 안 갈고 장도 안 지졌네. 이따 전화 드려야지.’
이현종은 당시 살아난 환자를 떠올리면서 동시에 빙그레 웃었다.
“담당 간호사 누구지?”
“아, 접니다.”
그러곤 담당 간호사를 불러 인계 사항을 전달했다.
“이 환자 열나는 거 에베로리무스 때문이니까 그거 끊고 다시 약 바꾸라고 전달해요.”
“어……. 네. 근데 누구에게……?”
“누구긴 누구야, 장덕수랑 이 관련된 모두지.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 왜 아직도 몰라? 이거 등록이 안 되어 있나?”
이현종은 중얼거리다 말고 약전부터 찾았다.
그러자 맨 밑에 작은 글씨로 04년 심장 이식 후 환자에게서 한번 발열을 일으킨 적이 있다는 문구가 있긴 했다.
허나 알고 찾는 게 아니면 찾기 어려울 만큼이나 꼭꼭 숨겨져 있었다.
“에휴……. 이 새끼들. 하여간.”
제약 회사 놈들.
이현종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또 한 번 웃었다.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린 후였기 때문에 멋이 철철 흘러넘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환자도 이민정도, 얼떨결에 왔던 담당 간호사도 그런 이현종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드르륵.
그때였다.
수혁이 온 것은.
마침 잘됐단 생각에 이현종은 이제 껄껄 웃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