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23화 (1,223/1,303)

1223화 모든 걸 의심해야지 (3)

“수혁아, 뭐 같냐.”

이현종은 짐짓 심각한 얼굴을 한 채 묻고 있었다.

나이가 들다 보면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살던 것도 느는 걸까?

왜인지 몰라도 이현종의 연기력은 상당한 편이었다.

아마 수혁도 바루다가 없었다면 홀랑 속아 넘어갔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에게는 바루다가 있지 않나.

[알고 있습니다, 이현종은.]

‘근데 이걸 왜 물어보지……?’

[이유라면 뭐……. 뻔하지 않겠습니까?]

‘잘난 척…… 하고 싶으시구나? 그럴 만한 케이스인가?’

[일단 들여다보죠.]

이미 이현종의 속내 따위는 한눈에 알아본 후였다.

허나 뭐 어쩌겠나.

아버지가 이러는데 장단 맞춰 줘야지.

뭐 부모 자식 간이라고 해서 다 끈끈한 건 아니겠지만, 수혁과 이현종 사이의 관계는 상당한 편이라 보면 되었다.

피는 섞이지 않았으되, 그보다 더한 끈끈함으로 묶인 사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평생 혼자 살면서, 심지어 원장까지 해 먹을 만큼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 오면서, 취미라고 해 봐야 먹을 거 조금, 골프 조금 말고는 즐기지 않아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돈을 모은 이현종이 벌써 유언장에 기부할 재산 말고는 전부 수혁에게 돌려놨다는 것만 봐도 대강 알 수 있을 터였다.

“어……. 일단 시간이 좀 필요할 거 같은데요.”

“그래, 그래. 찬찬히 봐. 사실 이미 내가 주치의한테는 알려 놔서 어떻게든 조치가 있긴 할 거야.”

“네. 으음.”

그리고 이현종이 그만큼이나 자신에 대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는 걸, 수혁은 모르지 않았다.

때문에 장단 맞춰 주는 것을 넘어 타고난 연기력과 바루다의 조절 능력까지 동원해서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환자를 살피면서였다.

‘간 이식 후 발열이라……. 좋지 않네.’

[김승규가 수술했습니까? 그렇네요. 그렇다면 수술 자체의 오류는 없었을 거라고 판단해도 좋겠습니다.]

‘그렇겠지.’

환자는 김승규에게 3개월 전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바루다의 말마따나 간 이식 수술 자체에 문제가 있진 않을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냐고 하면…… 그것은 또 아니었다.

별거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실제로 간 이식은 보통 일이 아니라서 그랬다.

혈류가 제대로 연결이 되었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은 대단히 많았다.

간 이식을 받은 사람의 상태가 문제였다.

오죽하면 간 이식을 받았겠나.

멀쩡하다가 약물로 인해 갑자기 망가진 경우라면 예후가 상당히 좋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이 환자처럼 간경화가 오래도록 지속이 되었다거나 혹은 심지어 간암에 시달리던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환자 근육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그러게요. 나름 건강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쇠약한 상태는 아니었을 거 같습니다.]

‘하긴 김승규 그 양반이 어떤 사람인데…….’

[아, 요새 케이스 깐깐하게 고른다고 하죠?]

‘응, 최악의 케이스 아니면 무조건 될 만한 케이스만 고른대. 어중간한 건 싹 다 제자들 몫.’

둘 중에 이 환자는 무조건 될 만한 케이스에 속했을 터였다.

나이도 많은 양반이 너무하는 거 아니냐 싶겠지만, 김승규 정도면 양심이 있다 못해 넘치는 인간이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최악의 케이스, 즉 사망이 예상되는 환자는 자기가 다 하니까.

-야, 난 괜찮아. 내가 하면 살 확률이 제일 높기도 하고……. 내 명성은 이미 대법관들도 다 알아. 세계적인 학자가 잘못했을 거라 판단하겠냐? 다 그럴 만하니까 잘못됐을 거라고 판단하지. 실제로도 그렇고. 나처럼 사는 놈도 별로 없다.

김승규가 언젠가 했던 말인데…….

진짜 그렇긴 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마약도 하고 다 할 거 같긴 한데…….

실제로 김승규는 회식 자리에 와도 술은 딱 첫 잔만 마시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정해진 시간이 되면, 그러니까 김승규가 다음 날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취침 시간이 11시인데 씻고 뭐 하고 허비할 시간 30분을 차감해 10시 반까지 집에 갈 수 있는 시간이 되면 딱 일어섰다.

수술에 있어서만큼은 일종의 구도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단 뜻이었다.

이게 뭐 언론이나 홍보팀에 의해 조작된 사실이 아니라 그냥 그의 삶 그 자체였기 때문에 가까운 사이면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히려 더 잘 아는 법이었다.

‘수술 전 검사는……. 역시 완벽해. 수술 후에 감염이 있었나?’

[환자는 엄청 조심하는 편이라고 쓰여 있긴 하네요.]

‘면역 억제제를 먹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조심해도 감염이 생길 수 있지.’

[그렇긴 합니다만……. 일단 더 보죠.]

수혁은 그러한 생각과 기록을 교차해서 보면서 추론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 수혁을 보면서 이현종은 다소 안심했다.

‘그렇지…… 아무리 내 아들이라고 해도 이런 지엽적인 지식을 알 수 있을 리는 없지.’

모르는 게 확실해 보여서 그랬다.

사실 알기만 하면, 그러니까 에베롤리무스가 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 수 있는 케이스이지 않나?

생각보다 의학 진단에 있어 배경 지식은 추론 능력보다 훨씬 강력할 때도 많았다.

뭐…….

그것도 일정 수준 이상의 머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긴 한데, 최근엔 의대 쏠림 현상 때문에 다들 머리가 좋다 보니 별 의미 없는 전제가 되었다.

‘아무리 봐도 공대 가야 할 놈들이 의대 오는 건 문제긴 한데…….’

이현종은 의학에 있어 두각을 나타내려면 천재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대학 병원 교수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천재라는 것…… 그러니까 재능이라는 것도 방향이 여러 갈래이지 않겠나?

의학에서 요하는 재능은 암기와 그렇게 암기한 지식을 기반으로 추론하는 논리적 사고의 영역에 있었다.

반면 공학은…….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현종은 자신이 천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물리학을 들이파려다가 전기에서 쓸려 나왔다.

이해를 하려면 할 수 있었을 것 같긴 한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걸 깨닫고 좌절했다 이 말이었다.

‘뭐……. 와서 앱이라도 만들고 하면 도움은 되겠지. 아무튼, 우리 아들……. 얘도 아직 모르는 게 있구나.’

이현종은 얼마 전에 지도 학생 상담 가서 만났던 똘똘한 녀석을 떠올리다가, 다시 수혁을 돌아보았다.

상념의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수혁이라는 놈은 찰나의 순간에서조차 갑자기 답을 떠올리곤 하는 놈이 아니었던가.

허나 표정이 아까와 비교해서 정확히 같았다.

아직도 추론 중이라는 얘기였다.

보통 이렇게 되면 모른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감기 기운이 있다가 열이 40도까지 올랐구나. 근데…… CRP가 50이 넘었어?’

[이상하군요. 다른 지표나 시간 경과와 맞지 않는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재검도 나갔는데……. 또 그렇게 나왔어. 보통 이런 경우라면…….’

[이식 거부죠. 하지만 간 기능도 정상이고 초음파에서도 전혀 이상 소견은 보이지 않습니다.]

초음파는 누가 했나 봤더니 김진실이었다.

이하언 교수가 김진실 교수 덕에 마음 놓고 퇴임식 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김 교수의 역량은 이전의 그 훌륭했던 수준에서조차 더 오른 상황이었다.

이 케이스가 보통의 케이스도 아닌 만큼 실수는 없었을 거라고 봐야 했다.

‘이렇게까지 갑작스러운 CRP 상승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조건을 떠올려 보면…….’

[알러지 반응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다 제외하면 안 되지. 약물이 있잖아.’

[아……. 약이라. 그러고 보니 최근에 타크로리무스를 에베롤리무스로……. 아하, 이거.]

이현종도 대강 알고 있긴 할 터였다.

그의 아들 이수혁이 자신을 존경한다는 사실쯤은.

허나 얼마나 존경하는지는 아마 모르고 있을 터였다.

수혁은 이현종을 그저 좋은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위대한 의학자로서 존경하고 있었다.

바루다가 없었다면 평생 노력해도 절대 따라갈 수 없었을 거란 생각도 하고 있었다.

바루다 또한 딱히 이견이 없었다.

수혁을 무시하고자 함은 아니었다.

배경 지식이 좀 부족하긴 했어도 그걸 꾀어서 의미 있는 결과로 도출해 내는 것은 수혁의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인정하게 된 지 오래다 이 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종은 규격 외의 존재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현종이 낸 논문은 다 읽었죠.]

‘2저자, 3저자……. 심지어 밭갈이만 한 것도 다 읽었지.’

그래서 수혁은 이현종이 낸 논문을…… 바루다의 말마따나 다 읽었다.

문자 그대로 전부 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십수 년도 전에 나온 이 에베롤리부스에 대한 논문도 읽어 버렸더랬다.

‘아는 척하면 좀……. 상처받으려나.’

[그럴 거 같습니다. 제조사에서도 동일 케이스가 하나 더 나오지 않는 이상 일단 뭉개려고 했던 케이스 아닙니까?]

‘실제로 그랬었지. 한국에서 나온 거라고 무시하기도 했고 말야.’

당시 한국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오르긴 했지만, 지금처럼 위상이 높지 못하지 않았나.

특히 학술적으로는 개무시하는 것들이 많았는데, 그 결과 이현종이 썼던 케이스 리포트는 어디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이상한 곳에 실렸더랬다.

허나, 이후 이현종은 심혈관 중재 시술의 대가가 되었고 뒤끝이 상당한 편에 속하는 이현종은 명성을 얻자마자 즉시 제약 회사에 압박을 넣었다.

그래서 그나마 약전에 작게나마 한 줄이 추가되었던 것이다.

[절대 모른다고 생각하겠죠?]

‘그렇지……. 으음.’

[그래도 질러요?]

‘아니,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아빠 오랜만인데. 게다가 이거 진짜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케이스잖아. 아마 아빠 아니었으면 감염내과에서는 진짜 몇 개월 더 걸렸을걸. 그랬으면 환자 죽었고.’

[그건 그렇죠. 알겠습니다. 수혁 뜻대로 하시죠.]

수혁은 여전히 표정 변화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다 의도한 대로였지만, 이현종을 비롯한 외부인으로서는 그런 거 알 게 뭐란 말인가.

그냥 이번 케이스가 진짜 유독 어렵긴 한가 보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현종뿐 아니라 따라와 있던 인원들 모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현종을 돌아보는 눈빛 또한 실시간으로 달라지고 있었다.

예전에 잘나가던 의사에서 지금도 미친 수준으로 뛰어난 의사로 평가가 바뀌어서 그랬다.

“모르겠어요. 뭔가…… 거부 반응이나 감염은 아닌 듯한데…….”

“그래? 그래도 거기까지 알아내다니, 역시 내 아들이다.”

마침내 수혁이 모른다고 하자 여기저기서 숨을 헉하고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관중들을 이현종은 뿌듯한 얼굴로 돌아보면서 수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어찌나 뽐내는 얼굴을 하고 있는지 수혁도 잠깐 이런 생각이 들었을 지경이었다.

‘그냥 안다고 할까…….’

[노선을 정했으면 지키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수혁이 간신히 참았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이현종은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에베롤리무스에는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이 있어. 내가 아직 젊었을 적의 일인데……. 하하. 이게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잘난 척을 숨기기는커녕 너무 드러내 놓고 하니까 오히려 호감이었다.

덕분에 수혁도 흐뭇하게 웃으며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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