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화 다음은 조태진 너다 (2)
아쉽게도 먼저 본 두 명은 그냥 암이었다.
내시경에서 진단이 되었거나 이미 외부 병원에서 골수 검사까지 하고 온 상황이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사실 이게 당연한 일이긴 했다.
태화 의료원쯤 되면 아니, 대한민국 의료 인프라를 고려하면 암이라는 중대 질환에 있어 오진이 흔할 수가 없는 법이었으니까.
‘흐으음…….’
[이거야 원.]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괜찮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왜?
암 환자한테 가서 당신 암이군요 하는 게 기분 좋은 일일 수가 있겠나?
나쁜 소식 중에서도 나쁜 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소식인 만큼 사실 그걸 전달하는 사람의 마음 또한 마모되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의과 대학 과목 중에 나쁜 소식 전하기라는 챕터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겠나.
뭐…….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딱히 쓸모 있는 챕터라 생각지는 않는 듯하긴 했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상황인 경우가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그랬다.
다만 상대가 무례하다거나 공격받는단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의 말, 즉 예의를 배운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긴 했다.
“환자분.”
수혁은 지금껏 나쁜 소식을 확인시켜 주는…….
예컨대 진짜 마음이 안 좋아지기만 하는 일을 해 온 만큼, 애써 미소 지으며 다음 환자를 바라보았다.
“아……. 네.”
상대는 젊었다.
기껏해야 한 40이나 되었을까?
사회에서,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40이라고 하면 틀딱이니 뭐니 별소리 다 듣는 나이지만 병원에서 40이라고 하면 젊다 못해 어리단 말까지 들을 만한 나이었다.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환자의 진단명을 떠올렸다.
[골수이형성 증후군이었죠.]
‘으음.’
암은 아니다.
하지만 암에 준하는 질환이다.
심지어 종종 급성 백혈병으로 이환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는데 발견이 늦는 경우 급사의 위험도 있었다.
급성 백혈병도 종류가 몇 있지만 대개 뇌출혈 등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어서 그랬다.
응급 항암이라느니 하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면, 그게 바로 이런 경우에 쓰인다고 생각하면 된다.
“환자분. 어떤 증상으로 병원에 가신 거예요?”
기록상 바로 태화 의료원으로 온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태화 의료원은 원래 다니고 있던 사람이거나 혹 집이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처음부터 오기 적절한 병원이 아니다 보니 대개 이런 경과를 걸치는 편이었다.
거기에 더해 태화 의료원의 통합진료센터의 명성이 점점 더 높아지면서, 각 병원에서 이쪽으로 환자 보내는 데 있어 딱히 망설임이 없어진 것 또한 한몫하고 있었다.
아무튼, 수혁의 질문에 환자는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어 있다가, 이내 수혁의 명찰에 교수라는 직함이 적혀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금세 입을 열었다.
“그……. 그냥 피곤해서요.”
“피곤하다라……. 그런 지는 얼마나 되셨죠?”
“꽤 오래됐어요. 한 반년?”
“반년이면 정말 오래된 건데…… 혹시 그것 때문에 치료는 안 받으셨어요?”
확실히 이미 여러 차례 의료진과 면담을 해 봐서인지 묻는 말에 답하는 것이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이쯤 되면 지겨울 만도 할 텐데, 환자는 그저 진중한 얼굴이었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아마 나이 탓도 있긴 할 터였다.
너무 젊다.
적어도 현대인에게 있어 죽음이라는 단어와 관념을 떠올리기엔 너무 젊지 않나.
“치료는…… 일단 동네 약국 가서 비타민 사서 먹었습니다.”
“얼마나요?”
“한 달……? 꽤 좋다는 거 먹었는데도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비타민.
아마 종합비타민을 먹었을 텐데, 이제 국내 제약 회사에서 만드는 종합 비타민의 질에 있어서는 소비자로서 안심해도 좋을 터였다.
적어도 바이럴 마케팅에 치중하는, 날로 범람하는 건기능 제품 회사에서 만드는 것들보다는 그냥 약국에서 파는 종합 비타민이 훨씬 안전하고 효과적이다.
다만 한계가 있다면…….
이미 대한민국은 그만큼 선진국이 되었다 보니 일반인구의 영양 결핍은 거의 없는 일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너무 바쁜 직장인이나 학생 같은 경우엔 간혹 비타민이나 미세 영양소의 결핍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 또한 흔한 일은 아니었다.
‘별 효과는 없었겠지. 애초에 병 자체가…….’
[그렇죠.]
수혁은 배경 지식을 환기함과 동시에 환자의 개인 상태를 종합해서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질문이 끊기는 일은 없었다.
수혁의 우수한 두뇌는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그럼 그때 병원에 가셨나요?”
“아……. 네.”
“어떤 병원이죠?”
“동네 병원이요.”
“거기선 어떤 치료를 받았죠?”
“사실……. 피곤하다고 하니까 수액 치료를 권유받았습니다.”
“아, 수액. 다른 검사는 안 하고요?”
“처음부터 검사할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뭐……. 그렇긴 한데…… 아무튼, 수액 치료는 그럼 효과가 있었습니까?”
수혁의 말에 환자는 잠시 인상을 썼다.
기분이 나쁘다는 표현이라기보다는 그저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요.”
“효과가 있었어요?”
이번에는 수혁이 놀랐다.
환자의 혈액 수치만 놓고 보면 수액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효과가 있으면 안 될 만큼 이상해서 그랬다.
허나 환자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대수롭지도 않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네. 효과는 있었어요. 수액 맞고 한 하루 이틀 안에 사라지긴 했지만……. 확실히 수액 맞으면 효과가 있어서 그때부터 거의 매주 석 달인가 맞았습니다.”
“으음…….”
석 달이라.
그제야 수혁은 환자의 승모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 눈에는 잘 보이지 않겠지만 바루다를 탑재한 수혁은 어느 정도 판별해 낼 수 있었다.
[약간의 버팔로 험프가 있군요.]
‘쿠싱…… 까지는 아니겠지만, 하여간 3개월간 스테로이드를 과하게 맞았군.’
[그러한 사실을 아는 거 같진 않습니다. 스테로이드를 맞은 걸 인지했다면, 병원 기록에 없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뭐……. 전에 들었잖아.’
[그게 사실이었군요. 말이 안 되는 일인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더라고.’
수액은 그냥 물이다, 물.
이걸 맞는다고 해서 몸 상태가 좋아지는 일은, 입으로 아무것도 못 먹었던 환자를 제외하면 없다고 단언해도 좋았다.
차라리 같은 양의 물을 그냥 마시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또 효과도 좋다.
병원에서 수액을 달아 놓는 건, 말 그대로 수액을 주기 위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혈관 주사 라인을 확보해 두기 위함이라고 보면 되었다.
피는 움직이지 않으면 굳기에 라인에 생리 식염수라도 낮은 속도로 흘려 두는 것이다, 이 말이었다.
그럼 실제 수액을 맞고 힘이 난다고 하는 사람들은 뭘까?
그 안에 든 다른 성분 때문인데…….
대개 스테로이드가 범인이다.
학회나 협회 차원에서 캠페인도 하고 단속도 하면서 이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일부 의원에서는 환자에게 말도 하지 않고 수액에 스테로이드를 섞어 주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럼 잠시 힘이 나는 건 당연했다.
스테로이드는 그런 약이니.
“왜……. 뭔가 잘못되었습니까?”
“아, 아닙니다.”
물론 그건 다 근거 없는 의심일 뿐이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러했다.
증거가 없지 않나.
해서 수혁은 일단 고개를 가로저은 후, 다시 질문을 던졌다.
“석 달이라고 하셨는데, 그때 이후로는 안 맞으신 거예요?”
“아, 네. 이게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처음 힘이 들었을 땐……. 제가 회사 업무가 좀 많아져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몇 달이나 수액을 안 맞으면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피곤하다는 게…….”
“그렇죠. 그건 확실히 이상하죠.”
“게다가 그때 애들 뭐더라. 그래, 텃밭? 그런 거 같이 갔는데……. 거기서 흙 같은 걸 못 나르겠더라고요. 너무 무겁게 느껴져서.”
“실제 무게는 알고 계세요?”
“아, 아뇨. 그건 아닙니다만……. 제 아내는 잘 들었습니다. 체구가 저보다 훨씬 작은데…….”
의학에 있어 나이가 깡패라면 근력에 있어서는 체구가 깡패지 않나.
제아무리 운동 열심히 한 사람이라도 본인 무게가 60kg이라면 운동 안 한 90kg의 사람보다 적어도 근력에 있어서는 이기기 어려운 법이었다.
“아무튼, 그때 좀 이상하다 싶어서 다른 병원에 갔습니다. 내과인데…….”
“그전에는 다른 과로 가셨어요?”
“아, 네. 감기 걸릴 때 가던 곳인데……. 정확히 병원 이름도 잘 몰라요. 그냥 와이프랑 애들 데려가던 곳으로 습관적으로 간 거라.”
“아하……. 내과에 갔더니 어떻게 했습니까?”
“처음에 청진하다가……. 입안을 보더니, 눈을 까뒤집어 보더군요.”
환자는 지금 생각해도 좀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물론 수혁은 그러지 않았다.
[빈혈을 확인했나 보군요.]
‘그래, 확실히 내과가 다르긴 하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음 말을 기다렸다.
환자는 그런 수혁을 보면서 역시나 말을 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검사를 빨리 해 봐야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영문도 모르고 피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 나온다고 했던 날 하루 전날인가……? 전화가 왔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전화 거는 일은 드물다고 보면 되었다.
동시에 좋은 일도 아니었다.
사실 호들갑이지 않나?
그리고 의사는 어지간한 일로는 호들갑을 떠들지 않도록 훈련을 받게 되는 존재였다.
최악의 상황 앞에서조차 담담해 보이는 의사를 보고 놀란 적이 있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게 다 훈련의 결과라고 보면 된다.
의사는 환자 앞에서 호들갑을 떨면 안 되니까.
그랬다간 나을 병도 안 낫는다.
“그러더니 지금 바로 오면 자기가 진료 의뢰서 써 놨으니까 응급실로 가라고 막……. 그래서 왔습니다. 어제.”
“어제…….”
“네.”
소견서라.
수혁은 패드로 환자 기록을 봤고, 스캔본으로 떠 있는 소견서를 확인했다.
안에는 환자의 검사 결과들이 주르륵 적혀 있었고 의심 가는 질환으로 백혈병, 골수이형성증 등 혈액종양내과에서 보는 질환들이 적혀 있었다.
‘좋은 의사네.’
[네. 이런 종류의 병은 최대한 빨리 치료하는 게 좋죠.]
응급실에 도착해서는 내과 당직의에 의해 이런저런 검사를 했는데 이제 결과가 착착 뜨는 중이었다.
일단 기본적인 혈액 검사에서 동네 내과에서 나간 검사와 비슷한 소견을 보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추가로 나간 말초 혈액 도말 검사에서 비정형 미성숙 백혈구와 함께 기타 미성숙 혈구 세포들이 눈에 띄었다.
좋지 않았다.
“혹시 골수 검사도 했나요?”
“아……. 네. 어제. 병원에서 아침에 연락 와서 응급실에 낮에 왔거든요. 그래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던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골반뼈 근처로 소독된 흔적이 있었다.
베타딘 자국이 있다, 이 말이었다.
해서 보니 아직 판독은 뜨지 않았지만 사진은 올려 둔 참이었다.
수혁이야 병리과, 진단검사의학과 뺨치는 판독 실력의 소유자 아니던가.
‘이형성……. 음. 확실히 골수 이형성증에 해당하는 소견인데.’
[이번에도 그냥 나쁜 소식이 나쁜 소식으로 남는 걸까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생검에서 이렇게 나오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래도. 좀만 더 보자.’
[뭐…….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