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7화 조태진 너는 이제…… (1)
“그래? 잘했네. 후후.”
이현종은 수혁의 이적에 대해 듣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너무 좋은 일이지 않나.
암에 준하는 질환인 줄 알고 입원했던 젊은 환자가 실은 별거 아닌 문제였던 것으로 판명되어 곧 퇴원이라니.
물론 암 치료 또한 최근 들어 어마어마한 진보를 이루고 있는 것은 맞긴 했다.
골수이형성증에 대해서도 예전과는 달리 쓸 수 있는 약도 많아졌고.
무엇보다 최후의 수단으로 쓰이는 골수이식 또한 조혈모세포 이식과 같은 방법이 개발되면서 적어도 이전에 비해서는 훨씬 수월해진 부분이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암 또는 암에 준하는 병이 주는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아빠는요?”
“나? 나도 뭔가…… 좀 이상한 환자가 있는 거 같아.”
“오. 어떤?”
“일단 봐야지.”
“아, 알겠어요.”
“그래.”
이현종은 전화를 끊고는 환자를 돌아보았다.
퍽 씩씩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조기 축구회라든가, 산악회라든가……
아무튼 간에 활동적인 취미를 즐기고 있을 거 같은 관상이었다.
얼굴도 시커멓게 탔고, 근육도 어느 정도 잡혀 있기도 하고……
“환자분.”
“아, 네.”
무엇보다 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죽어 가는 목소리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환자 침대 밑에 쓰여 있는 진단명이 보통이 아니었다.
‘Rectal CA…….’
직장암.
대장암과 굳이 구분해서 부르는 이유는 위치 때문이었다.
항문과 가까이 있거나 숫제 붙어 있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그런 경우엔 괄약근을 보존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배변에 지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원활한 배변이 얼마나 사회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직장암 환자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33살이면…… 수혁이보다 몇 살 위밖에 안 되는데.’
이현종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환자를 바라보았다.
실제로 환자는 많이 아파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물론 표정이나 안색 같은 건 무척 좋지 못했지만…….
전반적인 몸의 상태를 보면 건장하다는 말까지 튀어나올 정도였다.
“언제부터 항문이 불편했어요?”
“아……. 그게.”
하여간, 이현종은 질문부터 던졌다.
환자로서는 이미 숱하게 들어 온 질문이었다.
허나 이현종은 그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보면 오히려 더 위엄이 느껴지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수혁보다 아무래도 원내 직급이나 명성 또한 높기 때문에 옆에 담당 간호사에 더해 자신이 왜 끌려왔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레지던트도 끼고 있었다.
환자로서는 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꽤 오래됐습니다. 한…… 1년?”
“1년……? 너무 오래됐잖아요. 근데 뭐 치료 안 받았어요?”
“그게, 치료받기가 좀 어려운 직업이라서요.”
“뭐 죄수예요? 요새는 죄수들도 다 진료 보긴 보는데……?”
이현종의 말에 환자는 실로 오랜만에 웃었다.
쓴웃음이었지만 하여간, 웃음이 나오긴 했다.
죄수라니…….
“배를 탑니다.”
“아, 배. 원양어선을 타요, 그럼?”
“네.”
“그럼 치료받기 어려울 수도 있긴 하겠네. 근데 선의가 있지 않나……?”
“있긴 한데…… 제가 원래 치질도 있고 치열? 그런 게 있어서요. 원래도 똥 살 때 좀 아프고 그랬습니다.”
“아…….”
원래 그렇긴 하다.
직장암의 증상이 변이 가늘게 나오거나, 출혈이 있거나, 배변 시 통증이 있는 것인데…….
이게 싹 다 치질의 증상이기도 하지 않나.
변이 가늘게 나오는 게 치질인가 싶을 수도 있긴 할 텐데…….
애초에 치질을 일으키는 질환이 변비다 보니, 변비의 증상 또한 치질 증상에 속해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다른 내장 기관 암에 비해 증세를 빨리 일으키는데도 진단은 오히려 늦는 경우가 왕왕 있는 암이었다.
‘뭐…… 치질이 워낙에 흔한 병이긴 하지.’
이현종은 쯧 하고 혀를 차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치질은 얼마나 있었는데요?”
“그건 고질병이라…… 배 타면서부터는 늘 있었습니다.”
“배를 얼마나 타셨어요?”
“거의 뭐…… 7년인가?”
“어유, 어마어마하네. 무슨 꿈이 있으신가 보다.”
원양어선…….
꿈과 낭만이 없이는 절대 탈 수 없는 배 아닌가.
그나마 이현종이 젊을 때는 원양어선만큼 돈 모으기 좋은 직업도 없다는 말 때문에 나름 인기가 있었지만 그것도 다 옛말이라고 들었다.
이제 대부분의 선원은 외국인들이 채우고 있다지 않던가.
“네, 꿈이 있죠.”
“어떤 꿈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현종은 의외로 눈을 빛내는 환자를 보며 조금 놀랐다.
그래서 아까보다 좀 더 정중해진 말투로 되물었다.
이현종은…….
아무래도 아날로그 세대라 그런가. 꿈, 낭만 이런 걸 얘기하는 사람에게 약하기 때문이었다.
요즘 사람들 같으면 진지충이라느니 손발 오글거린다느니 하면서 뭐라 하겠지만, 어쩌겠나.
마음이 저절로 가는 것을.
“한남동에 가게 여는 게 꿈이에요.”
“아……. 한남동…… 거기 권리금이 2억이 넘을 텐데.”
“충분히 모았죠. 근데 몸이 이래서…….”
“대단하네. 어디 좀 볼까요? 혹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 그렇습니까?”
“아직 조직 검사까지는 한 게 아니던데요.”
“하긴 했는데…….”
“결과가 애매하게 나왔죠.”
그래서일까?
이현종은 오랜만에 기도하는 심정으로 환자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원래 복부 증상이 있으면 복부부터 보는 게 원칙이라지만, 통합진료센터에서는 그냥 전신을 살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사실 이게 맞긴 했다.
대개는 시간 낭비에 그치겠지만…….
간혹 얻어걸리는 것들이 있어서 그랬다.
돈 버는 일이라면 시간 대비 효율만 따지겠지만, 여기서 얻어걸리는 것은 환자의 예후 또는 삶 그 자체다 보니 타협은 불가하다고 봐야 했다.
‘검사 결과도 그렇지만……. 전혀 빈혈 소견은 없어.’
증상이 생긴 지 1년이라면…….
이렇게 젊은 환자에서는 순식간에 말기까지도 자라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말은 곧 이것보다는 훨씬 아파 보여야 한다는 얘기가 되었다.
물론 워낙에 젊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도 있긴 했다.
심지어 배 타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이나 건강했던 사람이니까.
허나…….
‘이상하구만……. 이상해.’
빈혈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이현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안, 경부, 흉부를 거쳐 아래로 내려왔다.
그렇게 복부와 흉부를 옷을 죄 제쳐 놓고 들여다보기 시작했을 때 눈에 들어오는 소견이 있었다.
“잠깐 좀 눌러 볼게요.”
“아, 네.”
적당한 살집과 함께 단단하게 들어차 있는 근육 때문에 보는 것만으로는 확실치 않았다.
해서 눌러 보니 간과 비장 모두 커져 있었다.
‘으음…….’
이현종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환자의 진짜 환부 즉 항문 근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뒤따르던 이들이 커튼을 쳐 줬기 때문에 환자는 딱히 부끄러워하지 않고 바로 환부를 보여 줄 수 있었다.
“여기 누르면 아파요?”
“으……. 네.”
항문 주변으로 대략 5cm 정도 되어 보이는 홍반이 있었다.
말이 홍반이지, 그냥 부어올랐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인지 되게 살짝 눌렀는데도 환자는 흠칫 놀랄 정도로 아파하고 있었다.
“이건 얼마나 됐어요?”
“한…… 한 달?”
“한 달? 근데 왜 이제…… 아, 배 탄다고 했지.”
“네. 긴급 호송 요청하면 헬기가 뜨긴 하는데 또 그럴 정돈 아닌 거 같아서요.”
“왜. 치질인 줄 알았으니까?”
“네. 그렇죠. 조금 빨리 왔으면 더 나았을까요?”
“으음.”
증상이 시작된 것은 1년 전.
그리고 이렇게 심해진 것은 한 달 전.
헌데…….
‘아까 영상을 보면…… 직장에 덩이는 대략 3cm가량 되지. 주변으로 mesorectal fascia도 두꺼워져 있었고. 그것만 보면 확실히 암이긴 해. 뭐…… 임파선 비대도 보이고…… 하지만.’
영상만 보면, 또 지금 환부만 보면 확실히 직장암이 맞다.
하지만 경과가 이상하게 완만했다.
뭐 환자의 나이가 아주 많다거나 하면 이럴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이 환자는 기껏해야 30대이지 않나.
이상했다.
그리고 이현종은 알고 있었다.
자기쯤 되는 의사의 직감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건 절대 시건방진 생각이 아냐.’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경험적인 지식이라고 봐야 했다.
실제로 이현종은 이러한 직감으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한 환자를 잡아내거나 또는 큰일인 줄 알았던 환자를 잡아내곤 했다.
“잠시. 흐음.”
“아, 네.”
이현종은 환자에게 양해를 구한 후, 혈액검사부터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다시 봐도 확실히 만성 질환 즉 쇠약을 뜻하는 검사 결과는 아니었다.
빈혈도 없고, 알부민 수치도 괜찮고 간이나 신기능 또한 다 좋다.
전해질을 비롯한 여러 수치도 다 정상…….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다면 백혈구 수치의 이상이었다.
약간 상승이 되어 있었는데 그보다는 분포가 좀 이상했다.
‘에오시노필이 증가되어 있어. 알러지나 기생충에서…… 으음…….’
이현종은 한 번 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환자를 돌아보았다.
그때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저 어설픈 생각일 뿐이었다.
추론의 근거 또는 과정에 낑겨 넣기에도 한참 모자란…….
생각이라기보다는 생각의 파편이라는 게 더 옳을 터였다.
허나 직감이 그걸 밀어주고 있었다.
합리적이진 않은 행동이겠지만……
밑져야 본전이고, 잘되면 사람 하나를 살릴 수 있다면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
“환자분.”
“아, 네.”
환자 또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웬 나이 많은 교수가 와서 이것저것 묻더니 고개 갸웃거리고 질문하고 또 갸웃거리고 있으니 뭐…….
혹시, 어쩌면 나 살 수도 있겠단 생각이 없었다면 대화를 중단했을지도 몰랐다.
“배 탄다고 했죠. 주로 어디어디를 갑니까?”
“아……. 대중없긴 한데…… 돈 많이 주는 곳을 주로 가서요. 아덴만 쪽도 가고 그럽니다.”
“아덴만……? 아프리카요?”
“아……. 네. 거기도 가죠.”
“위험하지 않아요?”
“그래도 돈을 많이 주는 거죠. 그리고 요새는 해적도 많이 소탕당해서 그렇게 많진 않아요.”
“그렇군요.”
지금의 이현종은 어떻게 보면 그냥 여상한 대화 중인 것으로만 여겨질 터였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아프리카라…… 아덴만이면 에티오피아 근처야. 그쪽에서 호발하는 질환 중에 이렇게 보일 수 있는 게…… 있지. 있어.’
이현종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장갑을 요청했다.
담당 간호사는 금세 장갑을 가져다주었다.
애초에 혈종 병동이다 보니 이런저런 처치를 할 때 워낙에 주의를 요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복도 여기저기에 장갑이 비치되어 있었다.
이현종은 그렇게 장갑을 끼고는 윤활액을 바르고 환자에게 다가갔다.
이게 처음이 아닌지, 환자는 그리 달가운 기색이 아니었다.
“이, 이거 아프던데…….”
“정확히 어디가 아팠어요?”
“네?”
“기억 안 나죠? 그러니 한 번만 더 해 보십다.”
“아니, 아이…… 망할.”
사실 딱히 병이 없다 해도 직장 수지 검사는 그리 달가울 만한 검사는 아니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