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28화 (1,228/1,303)

1228화 조태진 너는 이제…… (2)

“너무 그러지 말아요. 나라고 좋겠어요?”

“그렇긴 하죠……. 죄송합니다.”

“미안할 건 없고. 내가 필요해서 꽂는 거니까.”

이현종은 답 대신 한숨만 쉬고 있는 환자를 일별하고, 자세를 취하게 했다.

직장 수지 검사라고 하면 그저 우습게만 여기는 사람들도 꽤 있을 텐데, 기실 지금까지 쓰이는 술기라면 한 번쯤 골똘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게 왜 아직도 쓰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알 수 있는 게 엄청 많았다.

“아 소리 내요.”

“어, 어떻게 해요.”

“움찔거리지 말고. 아. 항문으로 내려고 한 건가, 지금?”

“아니에요?”

“아니지……. 이걸로 아 소리 낼 수 있으면 서커스 나가야죠. 별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거 같긴 한데. 입으로 내요. 그래야 항문에 힘이 풀려서 덜 아프니까.”

“아, 아아. 아아아아!”

이현종은 수치심에 얼굴이 벌게진 채 아 소리를 내는 것인지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환자의 항문에 손가락을 젠틀하게 집어넣었다.

“으아!”

통증 때문인지 이젠 확실히 비명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환자는 흐아아 하면서 거의 울다시피 하다가, 곧 간절한 얼굴이 되어 이현종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현종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

정말 이런지는 모른다.

환자가 말을 하지 못하고 입만 끔뻑이고 있었으니까.

소리를 안 내고 있다는 건 아니었다.

별 의미 없는, 그러니까 언어는 아닌 무언가를 내뱉고 있었다.

그저 이현종이 볼 때 ‘?’을 띄운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현종은 일부러라도 냉막한 얼굴을 한 채 가만히 있었다.

“그…….”

“쉿.”

“으.”

그러니 뭐 어쩌겠나.

불만이 있어도 가만히 있어야지.

신기한 것이 그렇게 있으니 통증이 좀 가라앉는 것 같기도 했다.

환자뿐만이 아니라 이현종도 환자의 통증이 경감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개의 경우에서 눈치 없는 사람이지만 진료할 때만큼은 눈치가 빨라지는 사나이, 그것이 이현종이기에 그랬다.

‘음.’

이현종은 역시나 젠틀하게 검지 끝을 살짝 움직였다.

그러자 곧 CT에서 확인할 수 있던 직장 내 종괴가 느껴졌다.

촉감은…… 경계가 상당히 명확한 느낌이었다.

“아파요?”

“네?”

그리고 종괴 자체에서는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상한 건…… 항문이라는 건데…….’

이현종은 그 상태 그대로 환자에게 물었다.

“환자분.”

“아, 네.”

“혹시 항문 쪽에 다친 적이 있어요?”

“네? 아니…… 딱히. 뭐 배에서 일하니까 부딪친 적은 있어도 상처가 난 적은.”

“그렇군요. 그럼 혹시 뭔가에 물린 적은요?”

꼴을 보아하니 대화가 상당히 오래 지속될 거 같았다.

그러면 이걸 좀 빼 주면 좋겠는데…….

뺄 때 또 아플 것 같아서 말도 못 하고 그냥 있었다.

해서 둘은 조금 이상한 모양새를 하고서 대화를 잠시 더 이어 나갔다.

“물린 적…… 아! 아사브 쪽에 기항했을 때.”

“아사브?”

“에티오피아 항구인데…… 거기서 제가 변비가 있어서요. 좀 오래 싸고 있는데 따끔한 적이 있었습니다.”

“엉덩이 쪽에요?”

“아, 네. 그러고 엄청 부었다가 다시 좋아졌어요.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됐는데요?”

“한…… 1년 좀 넘었는데. 잉, 그럼 이거 혹시?”

“뭐 더 봐야겠지만.”

“아악!”

이현종은 종괴의 질감과 감각 그리고 병력까지 확인한 후에야 손가락을 뺐다.

암만 조심한다 해도 항문 쪽이 너무 많이 부어올라 있다 보니 통증은 피하기 어려웠다.

해서 환자는 끙끙거리고 있었고, 이현종은 그사이 장갑을 벗어 의료 폐기물 통에 집어넣었다.

그러곤 알코올 소독제로 슥슥 손을 닦으며 말했다.

“혹시 금식이 됐나?”

환자가 아니라 의료진을 향해서였다.

멀뚱히 있던 레지던트는 아쉽게도 별로 아는 게 없었다.

예의 차리기 위해 온 것일 뿐, 딱히 환자 파악은 안 해 놔서 그랬다.

반면 담당 간호사는 몰라서는 안 되는 사람이니만큼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네. 오늘 CT 다시 찍고, 저녁에 PET CT도 예약되어 있습니다. 내일 내시경도 예정되어 있어서 지금.”

간호사는 환자의 팔에 꽂힌 라인을 통해 들어가고 있는 비경구 영양제를 가리켰다.

일반적으로 불리는 영양제, 즉 별 효과 없는 것들과 달리 이건 실제로 식사를 대체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약제였다.

새하얀색부터가 영롱했다.

사실 이현종도 그걸 보면서 금식 되었냐고 물은 참이었다 보니 딱히 간호사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간호사가 금식이라고 하자마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 교수님.”

상대야 뭐 당연하게도 장강명이었다.

“내시경 하나 해야겠는데?”

사실 장강명은 검진센터장이니만큼 직접 이따위 전화를 받을 일도 없다고 봐야 했다.

청탁 전화를 받는다고 해도 공손하기 짝이 없어야 맞았다.

근데 뭐?

내시경 하나 해야겠는데?

이건 숫제 윗사람이 한참 아랫사람한테 일 던지는 모양새이지 않나.

여기서 온당한 반응이라고 하면 화를 내야 마땅했다.

“아, 네네.”

하지만…….

상대가 너무 나쁘다.

일단 이현종이라는 것부터가 그런데 오늘은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지은 죄가 뭔지는 아나 보네.”

“네네. 제가…….”

“내 아들 항문의 몫이다. 알았어?”

“그…… 그렇게 크게 말하셔도 되는 상황이세요?”

“뭐 사실이잖아. 네놈이 허락도 없이 마구 쑤셔서 애가 지금 아파.”

“아니……. 교수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많이 곤란하죠. 말이 이상…….”

“그래서 해 줄 거야 말 거야.”

“해얍죠. 해얍죠.”

통화할 때 어지간히 가까이 있지 않고서야 상대방 말을 들을 수가 있던가.

그저 여기서 떠드는 사람 말밖에 안 들릴 뿐이었다.

그 상황에서 환자나 간호사 그리고 덩달아 와 있던 레지던트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아니……. 이수혁 교수님 무슨 범죄에 연루된 거야?’

‘그럴 리가……. 장강명 교수님인데, 지금.’

간호사와 레지던트는 그나마 상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이현종 교수님이지, 참.’

‘그래요. 뭔가 오해가…… 있긴 할 거 같아요.’

이현종이 누군지도 알았고.

그래서 어떻게든 정상적인 방향으로 납득이 되었는데, 환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뭐야. 나 누구한테 가는 거야.’

그렇다고 뭐 여기서 이제 와서 내시경 안 할래요 할 수도 없었다.

“환자분. 암이 아닐 수도 있어요.”

“어어, 그래요?”

“검사 하나만 해 봅시다.”

“네네, 뭐든지요!”

방금 이렇게 말을 했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안 한다고 하나.

게다가 지금까지 환자를 보던 이현종을 떠올려보면…….

아무리 봐도 나쁜 걸 시킬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찜찜한 것은 사실이었다.

해서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온 장강명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오, 오셨어요?”

“왔지. 빨리 해.”

“아, 네네. 근데 프렙은…….”

“아, 관장은 안 했는데. 금식은 했어.”

“그럼 제가 좀 이게…….”

“뭐. 우리 아들은 관장하고 했어? 그냥 했잖아. 똥에는 똥이지.”

“아니……. 그건 원장님이랑 다들 와서 부탁을 하시니까……. 게다가 저도 이수혁 교수한테는 빚이 좀 있지 않습니까.”

“그래, 은혜를 원수로 갚았지. 걔 약빨로 환자 보고 있는 거야. 아마 이따 뻗을걸.”

이현종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얼마 안 남았다.

미친놈들이 스테로이드에 뭐에 다 넣어서 번쩍 정신이 든 것이지…….

사실 편도염에 의한 감기몸살이라는 게 지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실제로 편도염 그거 우습게 보다가 농양이라도 차면 난리 난다.

“아…….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그리고 직장 쪽만 잘 보고 생검하면 돼.”

“아……. 그럼 뭐…… 사실 그렇게 어렵진 않겠네요, 네네.”

“빨리 해. 내가 아까 생각만 하면 울화통이 터져.”

“네, 죄송합니다.”

“그래, 빨리 해.”

울컥한 이현종을 본 장강명은 억울함을 토로하기는커녕 그저 서둘러 환자를 모시고 안으로 향할 뿐이었다.

괜히 더 떠들었다가 무슨 수모를 당하게 될지 몰라서 그랬다.

‘억울하다…….’

억울하지만…….

어쩌겠어.

저런 건 재해다, 재해.

“저, 선생님.”

“아, 네.”

표정이 안 좋았나.

뜨끔한 장강명은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는 환자를 돌아보았다.

급히 영업용 미소를 지어 가면서였다.

지금도 낮은 직급은 아니지만 더 높은 곳을 꿈꾸고 있는 그가 아닌가.

고객의 소리니 뭐니 하는 것들에 좌초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저 뭐…… 이상한 검사를 하는 건 아니죠?”

“아……. 그냥 내시경이에요.”

“아까 저 교수님이 선생님이 뭐 어딜 쑤셨다고…….”

“원래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다. 저…… 여기 센터장입니다.”

“그, 그래요.”

그래서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환자는 일단 참았다.

뭐가 되었건 간에 이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단 느낌을 받아서 그랬다.

뜻하지 않게 검사를 갑자기 받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서 귀찮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지만…….

멀뚱히 앉아서 암 진단을 기다리고 있을 때보단 훨씬 좋았다.

암이 아닐 수도 있단 희망을 품게 되었으니까.

“라인 따라서 약 들어갑니다. 수면이라 깨고 보시면 됩니다.”

“아, 네에…….”

상념에 빠져 있으려니 간호사가 라인에 뭔가를 주입해 주었다.

그러자 머리가 퉁퉁 뛰는 듯한 느낌과 함께, 의식이 꺼져 버렸다.

“됐네.”

장강명은 일순간에 조용해진 환자에게 대장내시경을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장강명은 매너리즘에 빠진 채 그냥저냥 사는 의사는 아니어서, 항문 근처로 생긴 종창(부기)을 보고 사진도 찍었다.

“뭐야, 이거? 암 환자인가……?”

진단도 해 가면서였다.

“어……,”

그리고 대장 안으로 내시경을 넣자마자 딱 알았다.

‘암이구나?’

직장에 직경 3cm가량의 종양이 자라 나와 있었다.

덩이가 크다.

“저거 뜯어서 검사 보내 봐.”

“네? 아니, 언제 들어오셨어요?”

“처음부터 있었는데, 뭔 소리야. 빨리 해 봐.”

“어……. 네. 근데 암이면 피가 좀 날 텐데.”

“피 안 날걸. 빨리 해 봐.”

“아……. 뭐 다른 거 의심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근처에서 알짱거리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끼어들었다.

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생검을 요구했다.

보아하니 암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으로서는 감도 안 왔다.

그렇다고 해서 좌절스럽다거나 하진 않았다.

이 인간들 하는 거 모르는 게 하루이틀 된 일인가.

별 이상한 짓 하네 하다가 보니까 뭔가 되어 있고 뭐 그랬다.

“이렇게요? 어……. 진짜 피가 거의 안 나네. 이거 섬유질이잖아?”

“그래, 또 떼 봐. 한 세 군데.”

“아, 네.”

해서 시키는 대로 했더니 역시나 일반적인 암하고는 좀 달랐다.

그래서 세 번 떼서 검체를 모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현종은 그 검체 통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환자 알아서 깨워서 위로 보내라. 난 이거 보고 올라간다고 전하고.”

“네, 넵.”

“그래. 아직 다 갚으려면 멀었어. 알았어?”

“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