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화 조태진 너는 이제…… (3)
“네, 네.”
이현종은 내시경실에서 나오자마자, 전화부터 걸었다.
상대야 뭐 당연하게도 병리과였다.
“검체 들고 가는데 좀 봐 줘.”
“그렇지 않아도 전해 들었습니다. 직장암이라고요? 지인인가요?”
“아……. 아니. 지금 의심되는 질환이 직장암인 거지……. 난 아닌 거 같아서.”
“아……. 아아. 그렇구나. 그럼 어떤……?”
“리슈마니아증.”
“리슈…… 마니아증이요?”
용건 또한 뻔하디뻔한 상황이었다.
병리과 교수한테 전화하는 사람치고 안부만 묻고 끊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말이 안 된다고 보면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현종?
이 인간이 안부 전화라는 걸 할까?
모르겠다.
해서 각오를 다지고 받은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슈마니아증이란 이름에는 조금이나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니, 뭐야. 처음 들어 봐?”
“아, 아뇨. 처음 들어 보는 건 아닌데…… 그게 암 비슷한 결절도 일으키는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긴 하지. 잘 없긴 해.”
리슈마니아.
보다 자세히 말하면 리슈마니아라는 편모충이 일으키는 질환을 말하는데, 대개는 피부 표면에서 피부 리슈만편모충증을 일으키는 편이었다.
대개는 남미나 아프리카, 인도 등 더운 지방에서만 발견되는 일종의 풍토병이었지만 교류가 잦아지고 또 동시에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이제는 미국 및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었다.
병변은…… 흉측하기 짝이 없다 보니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을 텐데…….
뭐, 길고양이를 주의하는 차원에서 한 번쯤 보는 건 좋을 수도 있었다.
여하간에 일반인들에게까지 정보가 많이 풀린 병은 아니었지만, 병리과 교수쯤 되는 사람에게는 그리 낯설기만 한 병은 아니었다.
허나 피부 외에 다른 곳에도 병변을 일으키는 줄은 몰랐다.
“공부 안 하면 모르는 거지. 병리적으로 볼 줄은 아나?”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조금.”
“그래서 볼 줄 알아, 몰라.”
“볼 줄 알죠. 압니다.”
“그래. 그럼 지금 들어가니까 바로 봐. 어이! 문 열어 줘!”
그렇게 통화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이현종은 쉬지 않고 걸어서 병리과 사무실 앞에 도달한 참이었다.
사무실 입구를 지키는, 일종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직원은 이현종 얼굴을 확인하고부터 이미 문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과에서 알면 아마 난리가 날 터였다.
보안 및 업무의 편의성을 이유로 어지간한 과에는 이런 식으로 문을 열어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덜컥.
허나 괜한 일로도 충분히 지랄할 수 있다는 걸 벌써 여러 차례 입증해 낸 이현종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곤 방금 전까지 통화하던 병리과 교수에게 검체를 건넸다.
털썩.
푹신한 의자에 앉으면서였다.
‘하…….’
병리과 교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럴 걸 모르고 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좀……. 응? 당당하잖아?
‘아니지. 이건 뻔뻔한 거지…….’
지금까지 지나치게 오냐오냐했기 때문일까?
이제라도 이걸 좀 바로잡아 줘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지만, 이내 이현종의 모난 눈을 마주하고 났을 땐 바로 생각을 고쳐먹을 수 있었다.
싸움이라는 것도 체급이 맞는 사람들끼리 하는 거 아니겠나.
눈앞의 이건…….
재앙이다.
아니, 재해…….
그냥 눈앞에서 얼른얼른 사라질 수 있도록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나았다.
게다가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정말 리슈마니아가 직장 안에 암처럼 보이는 병변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 또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자, 슬라이드 만들자.”
“네.”
해서 교수는 레지던트와 함께 부리나케 슬라이드 제작에 들어갔다.
아주 잠시 동안이었지만, 레지던트가 자신을 조금은 불쌍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는 채로였다.
아무튼, 교수도 그렇고 레지던트도 그렇고 워낙에 숙달된 사람들이다 보니 제작은 금세 완료되었다.
덕분에 이현종은 큼지막한 화면을 통해 슬라이드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뭐……. 봐도 모르겠네.’
이현종은 뭔가 아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수혁이라면 뭐 영상이나 병리 슬라이드도 잘 보긴 할 터였다.
하지만 이현종은 수혁처럼 만능은 아니었다.
자기 장기가 아닌데 괜히 노력을 기울이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지 않나.
게다가 눈앞의 있는 놈들을 쓰면 될 일이다 보니, 이현종은 그거까지 다 공부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케이스를 한 자라도 더 보자는 마인드로 있었다.
‘미친……. 아는 건가?’
허나 이현종은 명성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굳이 떠드는 것조차 시간 낭비로 여겨질 만큼이나 대단한 사람이었다.
맨날 하는 짓이 이상하고 또 일상에서 어리숙하거나 허술한 모습이 있어서 그렇지 딱 ‘의학’ 이 두 글자만 놓고 보면 김승규와 더불어 태화의 아니, 대한민국의 투탑이었다.
그렇다 보니 병리과 교수로서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무의미한 고갯짓을 하고 있는 이현종을 보면서 오해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예상대로인 모양인데……. 확실히 악성으로 보이는 세포는 없어. 그리고 뭔가 이게…… 세포가 뒤섞여 있는 것이 염증 조직처럼 보이는데……. 하씨, 리슈마니아야, 정말?’
병리과 교수는 자기는 모르는데 상대는 아는, 정말이지 극히 드문 상황 속에서 긴장했다.
사실 레지던트 또한 비슷한 오해를 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긴 했지만 긴장은 안 하고 있었다.
왜?
상대가 이현종이니까.
통합진료센터의 센터장이니까.
그에 비해 자신은 레지던트지 않나.
못하는 게 당연했다.
‘으음…….’
그래서 오히려 침착할 수 있었다.
해서 레지던트는 덜덜 떠는 교수를 대신해서 적당한 곳의 배율을 훅 높여 주었다.
그러자 마침내 현미경에서도, 화면에서도 고배율의 화면이 떴다.
그 화면 또한 저배율에서 봤던 것과 같이 여러 세포들이 뒤섞인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고배율에서는 그 각각의 세포가 어떤 세포인지 알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여전히 모르겠네.’
이현종이야 뭐…….
처음부터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냥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자카야 같은 데 가면 놓여 있는 인형을 떠올리면서였다.
한번 흔들면 건전지가 있는 건지 뭔지 계속 흔들리는데 굉장히 신기했다.
언제 사 봐야지 하면서도 절대 안 사게 되는 것도 신기했고.
‘하씨.’
이현종이 이따위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는 병리과 교수는 더더욱 긴장했다.
딱 보자마자 알았다는 거 아닌가!
통합진료센터에는 괴물들만 모여 있다고 하더니 역시 그 수괴의 위력이란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병리과 교수라는 지위도 야바위해서 따먹은 것은 아니지 않나.
태화 의료원에서 한자리 해 먹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피똥 싸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아……. 그래. 대식 세포가…… 그 안에 기생충이 있어. 이러한 소견은 기생충 질환의 특징적인 소견이야. 그러고 보니…… 간혹 기생충이나 이물로 인한 염증에서 종괴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긴 하지. 뭐……. 이물보다는 아무래도 기생충에 대한 염증반응이 훨씬 강력하긴 할 테니까……. 항문 주변으로 종창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지. 흐음…….’
그 노력과 경험 그리고 지식을 모두 총동원해서 봤을 때 이건 기생충이다.
기생충 중에 종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뭔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겠지만…….
그거야 뭐 이현종이 알아서 해 주지 않겠나?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게 암이 아니고, 기생충 질환이라는 걸 알려 주는 것이었다.
“교수님.”
“음.”
표정으로 보아하니 사실 이미 아는 듯했지만…….
‘내가 설명하는 게 뭔 소용인지 모르겠구만.’
체면 차리라고 기회를 주는 걸까.
아니면 시험일까.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옆에 있는 레지던트를 힐끔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 보시면 대식 세포들이 엄청 모여 있지 않습니까?”
“어, 그렇지.”
“그 안에 보면 기생충 조각들이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모이는데…… 이건 기생충 질환에서 꽤 전형적인 소견 중 하나입니다.”
“그래, 그렇지. 확실히.”
그런 병리과 교수를 마주한 채, 이현종은 뻔뻔스레 그렇지를 남발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이런다는 게 좀 양심의 가책으로도 느껴지긴 했지만, 바로 자기 합리화를 시전하고 있었다.
뭐가 되었건 엄청 어려운 케이스를 바로 맞히지 않았나?
뭐…….
어차피 조직 검사를 했으면 바로 암이 아니라는 것 정도야 알게 되었을 테지만, PET CT, MRI 등과 같이 비싸고 힘든 검사를 굳이 할 필요 없게 되었다는 건 커다란 의미였다.
그에 더해 며칠이나마 걱정을 덜 했다는 것도 좋은 일이었고.
“후후. 잘됐군, 아무튼.”
해서 이현종은 득의양양한 미소와 함께 병리과를 빠져나왔다.
“혹시 모르니까 염색까지 싹 해서 더 자세히 봐.”
“네, 네.”
이런 말을 남기고서였다.
그렇게 이현종은 다시 병동으로 향했다.
도착하고 보니 환자의 담당 교수가 도착해 있었다.
아니, 도착해 있었다기보다는 딱 이현종과 같은 타이밍에 도착했다.
“어, 어. 교수님! 아니……. 내시경을 왜 갑자기 당겨서 하셨습니까? 관장 제대로 안 되어 있어 가지고…… 조직검사 할 때 위험할 수도 있었는데요.”
당연하게도 사전 조율 따위는 없지 않았나.
미리 말하고 환자 본다는 생각은 수혁뿐만 아니라 이현종도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통합진료센터에서는 상식화되어 있었다.
“위험은 무슨. 장강명이 하는데.”
“센터장님이 직접 했어요?”
“했지.”
“아……. 아니, 그래도 이게 왜……? 게다가 환자분이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데요. 암이 아닐 수도 있다고…….”
때문에 이현종은 곤란해하는 혈종 교수를 보면서도 별생각이 없었다.
미안해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건데, 그러기는커녕 뿌듯해하고만 있었다.
“아니니까 했던 말이지. 자네는 진료를 뭐 그렇게 하나. 암 본다는 사람이.”
“아니…….”
“응? 환자 경과를 생각해 봐. 이상하잖아. 나이를 고려하면 직장암…… 저거 1년 방치했을 때 이미 죽었어.”
“그거야…… 그렇긴 하죠. 그래도 이걸……. 으음. 근데 암이 아니라니요? 뭐가 나오긴 한 겁니까?”
사실 혈종 교수는 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뭔 말이라도 할 생각은 있었더랬다.
허나…….
상대가 지나치게 당당하게 나오다 보니 말문이 턱턱 막히고 있었다.
애초에 대학 병원 교수들이란 사람들이 연공서열에 약한 사람들이다 보니 나이 지긋한 이현종을 보며 뭐라 할 생각이 들 수가 없기도 했다.
“뭐가 나오긴, 하하. 환자가 에티오피아에 갔다 온 건 아냐? 거기서 궁둥짝에 벌레 물린 건 알고?”
“어……. 몰랐습니다.”
“이거야 원! 이래서야 되겠나!”
“그……. 말씀 듣다 보니 안 될 거 같긴 합니다. 그러니까 알려 주시죠, 이제.”
“아니, 안 되겠어. 지금 회진 도는 놈들 다 스테이션으로 오라고 해. 자초지종을 말해 주지.”
이현종은 상대가 그러거나 말거나 잘난 척이나 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