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0화 조태진 너는 이제…… (4)
“이것 보게나.”
이현종은 원래도 달변가다.
아, 의학적인 부분에서만 그렇긴 한데…….
어찌 되었건 간에 여긴 병원이고 다들 가운을 입고 있으니, 그냥 퉁 쳐서 달변가라 해도 과언은 아니게 될 터였다.
“리슈마니아가 우리나라에서는 뭐 그렇게까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대부분의 더운 나라에서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잖아? 게다가 요새는 뭐……. 슬금슬금 우리나라에서도 생기도 있지.”
“그건…… 그렇긴 합니다. 그래도 이게…….”
“환자 히스토리는 했을 거 아냐.”
“아, 네. 배 타신다고. 사실 들어 보고 좀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남동에 가게 여는 게 목표라는데…… 알고 보니까 전과자더라고요?”
“이잉? 그래? 전과자라고……?”
이현종은 이제 막 떠들어 제끼려는 참이었다.
헌데 전과자라는 말이 나오자 잠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달변가라 해도 뭐 어쩌겠나.
전과자…….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는 보기 힘든 존재 아닌가.
의사들 사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보면 되었다.
“네. 근데 잘못해서 그랬다기보다는…… 이건 뭐 환자 말만 들었을 때 얘기긴 한데, 아버지가 좀 억울하게 돌아가신 거 같더라고요? 진범을 팼는데, 그 진범이 묘하게 빠져나갔다고…….”
“무슨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이 있어?”
“그러니까요. 근데 사람 보셨죠? 거짓말하고 그럴 만한 사람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것도 그렇긴 해.”
“그래서 저도 내심 부디 암이 아니었으면 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아니라고 하셔서 좀 놀랐습니다. 빨리 나가서 가게 하고 그걸로 뭐 복수를 하겠다고 하던데……. 면회 오는 친구들 보니까 본인 형편이 진짜 어려운 와중에도 엄청 뭐 잘 산 모양이더라고요.”
“으음.”
이현종은 다시금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잘 살려고 노력했던 청춘에게 암이라는 진단명이 대체 얼마나 무서웠겠나.
좌절스럽기도 했을 것이고.
그걸…… 자신이 깨부순 거다.
“후후.”
뿌듯함이 넘쳐 흘러 웃음의 형태로 비어져 나왔다.
어려운 환자 얘기하다가 웃는다는 게 좀 이상한 일일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이현종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현종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자, 그래. 그럼 들어 보라고. 리슈마니아증, 그중에서도 피부 쪽으로 나타나는 리슈마니아증은 전 세계적으로 무려 150만 건이나 발생하는데…… 그중에서도 에티오피아에서 많이 발생해.”
“아……. 그렇군요. 근데 환자가 에티오피아에…….”
“그래. 그리고 이 리슈마니아는 세균이나 이런 것이 아니고 기생충이지. 다들 알겠지만, 기생충은 정말 다양한 임상 경과를 거칠 수 있어. 감염된 부위에 따라 천차만별이야.”
“그렇겠죠, 아무래도.”
“매개체는 다양한데……. 모래파리 같은 놈들이 잘 일으켜. 그리고 이놈들이 사방천지에 죄 깔려 있다 보니 생각보다 공중 화장실에서 많이 물린다고. 그래서 별다른 병력 없이도 항문 근처에 병변이 생겨.”
“아…….”
혈종 교수는 이 사람은 대체 어디서 이런 걸 들어서 알고 있는 걸까 싶었다.
따지고 보면 이 양반, 심장내과지 않나.
얼레벌레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심장내과에서 완전 대가다.
다른 분야에 있어서 이만한 지식을 쌓기는 어렵다, 이 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인데…….
생각보다 원할 때만큼은 눈치가 무척 빠른 이현종은 그런 교수의 속내를 바로 읽어 내고야 말았다.
“이게 심장에도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어. 직접적으로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뭐. 그래서 공부한 건데 아무튼, 하다 보면 내가 또 완벽주의자라 싹 다 해야 된다고, 이거.”
“아……. 그렇군요. 그래서 이렇게…….”
“물론 나는 심장이랑 딱히 상관이 없어도 잘하긴 해.”
“그, 그렇습죠.”
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물론 잘난 척도 덧붙여 주었고.
더불어 아주 자연스럽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아무튼, 환자가 암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의심하게 된 것은 환자의 상태, 나이, 이환 기간, 병변의 상태가 다 따로 놀아서야. 암도 뭐 얼마든지 다양한 임상 경과를 밟을 수 있다 보니 지멋대로 튀어나가긴 하는데……. 그래도 이상하잖아. 자네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렇지?”
“네, 그렇긴 합니다. 확실히…… 젊은 환자에서 1년 이상 방치된 암이, 그것도 직장암 같은 놈이 고작해야 저 정도라는 건 이상하긴 하죠.”
이상하다는 생각이야 경험 있는 의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영상에서 떡하니 암이 보이고, 또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이 이건 암이라고 진단을 해 주었는데 다른 병일 수도 있을 거란 의심을 한다?
이건 반대로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이현종처럼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의사들끼리의 얘기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진짜……. 괴물이긴 해.’
혈종 교수 또한 자신의 머리가 슬슬 그런 식으로 굳어 버리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던 참이다 보니 마음속으로 이현종에 대해 다시 한번 탄복했다.
그리고 이현종의 모난 눈은 그러한 교수의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후후.’
또다시 비어져 나오는 웃음과 함께, 이현종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검사 결과를 보니까, 역시나…… 혈액검사 결과도 중구난방으로 튀더구만.”
“아……. 맞습니다. 확실히 장기 부전 소견이 전혀 없죠.”
“그래. 뭐……. 리슈마니아증이 되게 심하면 장기 부전으로 가기도 해. 물론 심해지려면 면역 결핍이 대개 선행되기에 그렇긴 한데, 아무튼, 환자의 경우에는 그게 없었으니 더더욱 암이 아니라는 게 의심이 되지.”
“아…….”
“그리고 백혈구 수치, 확인했나?”
“네, 확인했습니다. 약간 상승해 있는데, 그건 딱히…….”
“아니, 아니지. 딱히라는 소리가 나오면 안 되지. 그 안에 세부 수치 중에 에오시노필이 올라가 있잖아.”
“그건 그런데……. 이제는 리슈마니아증이란 소리를 들었으니까 이상하단 생각이 드는데, 이전까지는…….”
“하긴 뭐. 아는 게 없으면 그럴 수 있지.”
혈종내과 교수는 조금 기분이 나빴다.
아는 게 없다니…….
어?
내가 그래도 어?
조태진 다음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공부를 좀 더 하는 게 좋겠어. 이제 국제화 시대잖아. 우리나라에는 드물다는 이유로 공부를 소홀히 하는 분야가 있어서야 되겠나?”
“그……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이현종의 눈치가 발현되지 않았다.
굳이 상대방의 나쁜 기분까지 눈치채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해서 오히려 더 나무라고 나서야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나는 이거랑 환자 배 탄다는 거…… 그거 듣고 딱 감이 왔지. 그래서 직장 수지 검사를 해 봤더니만 더 느낌이 왔지. 단단하지만 확실히…… 경계가 확실하더라고. 그리고 그 종양 자체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해. 주변으로는 통증이 있고. 이미 섬유화된 조직이라는 얘기가 되지.”
“아……. 정말……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내시경을 하셔서 조직검사까지 한 거군요?”
“그래. 벌써 병리과 들러서 왔어.”
“겨, 결과는……?”
혈종내과 교수를 포함해서 둘러싸고 있던 모두가 사실 이제 암은 아니겠구나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데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으면 미친놈 아니겠나.
뭐 이현종이 또라이가 맞기는 한데…….
그래도 환자를 두고 얘기할 때만큼은 또라이가 아니라고 봐도 무방했다.
“대식 세포들이 기생충 포식하고 있는 게 보여. 악성으로 보이는 세포는 없고.”
“아, 다행이다…….”
“하하. 설명은 내가 하도록 하지.”
“그…… 네, 그러시죠. 근데 그럼 치료는 어떻게 하죠?”
“자네는 스스로 하는 게 없구만. 진단도, 설명도, 치료도.”
“아니…….”
지가 알아서 진단하고, 설명까지 하겠다고 했으면 치료 계획도 있을 거 아닙니까?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합니까?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가 휘리릭 내려앉았다.
상대가 자신보다 적어도 20년은 더 위고, 업적과 직위로 따지면 그보다 더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빠르게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뭐라 하기는 해야 했을 텐데, 이현종은 나이에 비해 날랜 사람이었다.
잠시 고민에 빠진 동안 벌써 환자에게 나는 듯이 날아가서 설명을 해 둔 참이었다.
상당히 자기 위주로 했는데, 요약하면 그냥 내가 잘나서 당신 병이 제대로 진단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긴 해서 다들 그냥 있었다.
이제 와서 뭐라고 해 봐야 모양만 빠지지 뭐, 어쩌겠나.
“좋아. 복수 하나 했고…….”
이현종은 병실을 나서면서, 교수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벌써 한 시간가량 지나 있었다.
‘우리 아들은 복수 얼마나 했으려나.’
자신이 하나 할 시간이면 수혁은 보다 날랜 편이니 몇 개도 가능했을 터였다.
‘흐흐흐……. 니들 일 이제 하나도 없다!’
어려운 환자들의 진단을 해 둔다는 건…….
단순히 오늘 할 일만 사라진다는 게 아니다.
거의 일주일 내내 손가락만 빨다가 집에 갈 수도 있다.
사실 어려운 환자라는 게 그렇게 많이 쌓일 수 없는 존재라서 그렇다.
‘이것이 우리들의 복수다.’
하하.
이현종은 다시금 웃으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아, 아빠.”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수혁의 목소리가 무척 밝았다.
딱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 녀석도 뭔가 했구나!
조태진을 비롯한 혈종 놈들의 환자들을 싹 없애 버렸구나!
“그래. 복수 좀 했어?”
“그럼요. 하하하하.”
“어떤 복수야?”
“오시면 얘기 드릴게요.”
“어디야?”
“10층이요.”
“오케이.”
두근거리는 마음과 함께 10층 병동에 도착한 이현종은 약간 지친 기색의 수혁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말이 약간이지, 지금 당장 다시 누워야 될 것 같았다.
이마에 손등을 대 보니 뜨끈하기까지 했다.
“너…… 쉬어야 되지 않아?”
“설명만 하고요. 그럼 더 빨리 나을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무리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 아들. 넌 나랑 정말 닮았지.’
이럴 때 보면 실은 피가 섞인 적은 없다는 사실이 무색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쩜 이렇게 닮았단 말인가.
혹 자신의 바람처럼 같은 조상을 공유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근데…… 그래도 이렇게 많이 불렀어?”
“네. 그래야 더 힘이 나죠.”
“그건…… 그렇지.”
이현종은 모여든 사람 중에 자신이 꼴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일단 통합진료센터 사람들 중 오전에 만행을 저지른 놈들을 제외한 모두가 모여 있었다.
그에 더해 다른 내과 분과 레지던트들도 와 있었고, 학생들도 와 있었다.
이걸 다 수혁이 했을 리는 없었다.
원하긴 했겠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수혁이 이럴 만한 깜냥은 없거든.
‘아……. 하윤이…… 그래, 우리 며느리.’
해서 보다 자세히 보니 역시나 하윤이 있었다.
똑 부러지는 저 녀석이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누구보다 수혁의 잘난 척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잘 이해해 줄 수 있기도 할 터였고.
‘그래, 뻗기 전에 마지막 잘난 척이다, 이거지.’
이현종은 마음가짐을 새로이 한 채 정갈한 자세로 앉았다.
그가 준비되었다는 걸 눈치챈 수혁이 본격적으로 입을 털기 시작했다.
아파서 목이 쉬었음에도 불구하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