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231화 (1,231/1,303)

1231화 이번 주 놀아라 (1)

“우선…….”

수혁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다가 이내 마우스를 클릭했다.

그걸 보고 나서야 이현종은 한 가지 더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이 녀석……. 하나가 아니다…….’

해결할 케이스가 하나였다면 그냥 담백하게 시작했을 터였다.

헌데 수혁은 방금 마우스로 환자 목록 쪽을 슥 훑었다.

일부러 몇 번인가 멈칫하기도 했고.

모르는 놈이야 그냥 으레 저렇게 하는가 보다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원래 일반인들은 좀 시간 낭비도 하고 괜히 쓸데없는 짓도 하는 편이니까.

하지만 수혁이 일반인인가?

‘예전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저 녀석 요새는 행동에 낭비가 잘 없단 말이지…….’

아들이지만 숫제 괴물이라는 말을 괜히 하고 다니는 게 아니란 말이었다.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도 좋았다.

그러다 이제 좀 과해지면…….

‘으읏, 눈부셔.’

저 새끼처럼 되는 거다.

사이비 종교쟁이…….

그건 그렇고 대체 언제 온 걸까?

통합진료센터의 명성을 더더욱 드높이고, 이현종, 이수혁 부자가 아닌 나머지 놈들도 쓸모 있다는 걸 증명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관우 빙의해서 떠나 놓고는…….

이현종은 지은 죄가 있다 보니 남몰래 숨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안대훈을 확인했다.

사실 숨는 게 별 의미가 없는 놈이었다.

이렇게 눈에 마구 띄잖아.

수혁도 살짝 눈을 감았다 떴는데, 아마 안대훈이 왔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렸을 터였다.

“이 환자 입원한 지 이제 이틀째인데…… 이비인후과 외래에 갔다 온 건 열흘 전이에요.”

평소였다면 그래도 아는 척을 해 주었을 터였다.

뭐가 되었건 간에 안대훈은 수혁의 오른팔이었으니까.

오른팔도 보통 오른팔이 아니다 보니 거의 왼팔 없는 외팔이 수준으로 보일 만큼의 압도적인 오른팔이니까.

허나 소변줄 꽂히고 위, 대장 내시경까지 당한 데다가 그 여파인지 뭔지 열까지 오르고 있는 지금의 수혁은 자비심이 많이 부족해져 있었다.

‘아. 아아.’

분명 머리가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안대훈은 알 수 있었다.

둘 사이에만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으니.

‘죄송합니다…….’

안대훈을 고개를 살짝 숙임으로써 빛을 일부 더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혁은 고개를 내저을 뿐,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안대훈도 자신이 지은 죄가 보통 죄가 아님을 깨달았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보통 사람 많이 모인 상황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으면 눈총을 좀 받게 마련인데, 지금은 예외였다.

수혁이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비인후과 외래에 내원하게 된 것도 로컬 의원 의뢰가 있어서입니다. 당시 의원에 내원했던 이유는 잦은 코피 및 악취, 코막힘 등…… 코 증상 때문이었죠.”

우리는 흔히 이비인후과 하면 감기 보는 과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실제로 주로 감기만 보고 있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라 할지라도 수련 받을 땐 대학 병원에서 온갖 험한 질환 다 본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는 감기인 줄 알고 왔어도 딱 보고 이상하면 이렇게 딱딱 상급 병원으로 진료 의뢰를 던질 수 있는 것이다.

수혁은 그쪽 의원이 꽤나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확실히…… 초진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비인두 주변까지 관찰하는 건 제아무리 기본적으로 내시경이 구비되어 있는 이비인후과라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게 당시 병원에서 찍은 비인두 사진인데…….”

“아.”

기록에 뜬 사진을 보면서 누군가 탄식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부위로 딱 봐도 나빠 보이는 종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얌전히 종괴가 있어도 안 될 것 같은 부위인데, 이건 피딱지와 고름도 잔뜩 묻어 있었다.

암이다.

100% 암.

“비인두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서를 첨부해서 우리 병원 이비인후과로 의뢰했습니다. 이게 우리 병원에서 찍은 건데, 뭐 거의 비슷하죠? 그래서 혈종과 방사선종양학과에 진료 의뢰를 함과 동시에 바로 다음 날 전신마취하에 조직검사에 들어갔습니다.”

비인두암.

엄청 드문 암인 만큼, 정확히 어디에 생기는 건지조차 잘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리라.

대강이라도 설명하자면 코 뒤쪽의 공간인데 목의 가장 뒤쪽과 연결이 되는 부위이기도 했다.

코를 암만 많이 파 본 사람이라 해 봐야 콧구멍 1/3도 못 들어가는데, 그 끝을 넘어 뒤에 위치한 벽이니 얼마나 깊겠나.

거의 얼굴 절반은 치고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조직검사 자체가 어려웠다.

배나 목이나 하는 부위는 깊이 있어도 칼로 열고 들어가면 될 텐데, 이건 얼굴이지 않나.

해서 기존에 있는 콧구멍을 통해 들어가는데,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시야도 비좁고 해서 반드시 암 조직을 떼어 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건 수술장에서 찍은 영상 토막인데…… 잘 보면 조직이 뭉개지죠?”

“아……. 네.”

방금 고개를 끄덕인 것은 해당 환자의 주치의였다.

사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수혁이 이 환자를 꼭 짚어 내기 전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왜?

비인두암이 심각한 암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CCRT, 즉 항암 방사선 치료에 잘 듣기도 하고 아직 저 환자는 전신 상태 평가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기 앞으로 입원한 환자 전부가 암 환자이니만큼 아직 저 환자는 그리 심각한 환자는 아니라고 인식된 상황이기도 했다.

“암이라고 해도 그 종괴 전체가 암인 것은 아니죠. 주변으로는 아무래도 암 때문에 파괴된 조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염증 반응으로 인한 조직이 있거나. 아무튼, 5번이나 펀치 바이옵시를 했고, 그래서 피가 꽤 나는 바람에 수술방에서 후비공 패킹까지 하고 나왔어요. 여기서 뭘 더 해 주었길 바라는 건 무리입니다.”

후비공 패킹이라는 건 코 뒷구멍을 다 막는 술기인데, 당연하게도 앞에만 막는 거보다 환자도 의사도 훨씬 힘들 수밖에 없는 술기였다.

그것보다 더한 술기를 하려면 이제 혈관 찾아서 묶는 것밖에 없는데, 그건 술기라기보다는 수술이었다.

조직검사가 아무리 중요한 절차라지만 치료는 아니지 않나.

비인두암이 뭐 수술로 절제한다고 낫는 병도 아닌 만큼 굳이 그렇게까지 요구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았다.

해서 혈종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조직검사에서는 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육안으로 볼 때 확실히 암 소견이었고……. 무엇보다 CT에서도 주변부로 침윤하는 암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PET-CT를 찍었는데 아직 다른 곳으로 전이가 관찰되진 않는 상태죠.”

“네.”

“그래서 해당 부위에 대한 항암 방사선 치료를 계획하고 있는 상황인데…… 맞습니까?”

“아, 네. MRI까지 시행하고 정확한 치료 계획 수립 예정입니다. 다학제는 이미 시행했습니다.”

“그렇군.”

더 이상의 검사를 요하진 않았다.

조직검사에서 꽝이 나왔지만…….

실제로 비인두암은 그런 경우가 왕왕 있는 암이다 보니 그랬을 터였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었다.

‘일부러 남긴 건데, 저 영상 토막은…….’

사실 수술 기록에 영상까지 첨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이건 수혁이 내과 의사이지만 의외로 수술 과랑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더더욱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인데, 수술방은 들어가 보면 들어가 볼수록 참 정신없이 돌아가는 곳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사람 장기 열어 놓고 여유 부리는 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란 말인가.

게다가 태화 의료원은 수술이 밀리는 병원 중 하나였고, 그 말은 곧 수술 스케줄 자체가 빡빡하다는 뜻이 되었다.

그 와중에 글로 써도 될 걸 영상을 넣는다고?

‘그래서 물어봤지.’

과연 당시 조직검사를 담당했던 펠로우는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통을 매일 새로 갈아 끼워야 할 정도로 바쁜 와중에서도 인상적인 케이스는 잊을 수 없는 게 의사 아닌가.

예상은 적중했더랬다.

-아무래도 좀 이상했어요. 제가 이거…… 뭐 조직검사 할 일이 많은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여러 번 해 봤거든요. 근데 뭐 전혀…… 달랐습니다.

달랐다고 한다.

손의 느낌이 되었건, 눈으로 보기에 그랬건…….

정확한 것은 그 장본인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중요한 건 당사자가 다르다고 느꼈다는 거다.

이런 건 절대로 그냥 넘어가면 안 될 일이었다.

[수혁이 많이 늘긴 했어요.]

바루다 또한 그러한 수혁에게 십분 동의한 채, 모든 검사 자료를 다시 리뷰했다.

환자도 면밀히 살폈다.

문진도 하고, 관찰도 하고, 여기저기 만져도 봤다.

“일단 저 영상 토막에서 보면 몇 번의 펀치는 아주 깊숙이 들어가는데…… 들어가는 모습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너무 쉽게 들어가지 않습니까. 펀치 바이옵시라고 해 봐야 이비인후과에서 쓰는 내시경 기기는 요만한데요.”

“아…… 그렇구나.”

이런 거 다 보고 과 정하라고 실습도 1년 넘게 돌게 시키는 것이고, 또 인턴도 1년 돌라고 하는 건데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놀라고 있다.

무리는 아니긴 했다.

학생 때나 인턴 때는 수혁도 그랬으니까.

그냥 꼭 해야 하는 일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더랬다.

‘우리 의과 대학 교육도 좀 건들긴 해야겠는데…….’

다음엔 아빠보고 의학과 학장을 하라고 할까.

[하겠습니까? 말이 좋아 학장이지…….]

‘그렇지?’

다른 과라면 학장이 되게 좋은 자린데, 의과 대학은 병원이 중요하다 보니 학장은 약간 중요하지만 잡일하는 쪽으로 인식되는 편이었다.

이현종 아니라 그만큼 짬 찬 사람은 아마 거절할 터였다.

‘그럼 조태진?’

[아……. 죄인이지.]

‘어때?’

[하라면 할 거 같기도……?]

‘좋아.’

수혁은 조태진도 학생들도 모두 기함할 만한 생각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당연하게도 방금 전까지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환자에 대한 얘기였다.

“그걸 감안하고……. 환자 CT를 보죠. 흉부 CT도 찍었지 않습니까?”

“아, 네. 환자가 숨이 차다고 해서요. 근데 아마 코 때문이었던 거 같습니다. 뚜렷한 병변은…….”

“뚜렷한 병변은 없죠. 하지만 잘 보세요.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으음……?”

의심하고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병변들이었다.

하지만 영상의학과에서도 판독에서는 분명 작은 폐렴 흔적을 배제하라고 써 놨더랬다.

폐렴 흔적 따위야 임상적으로 중요한 게 아닌 데다가 산소 조금 주고 코 정리하자마자 호흡곤란도 많이 좋아져서 무시하고 있었지만…….

“아마 지금 찍어 보면 좀 더 커져 있을 겁니다. 이거 이비인후과에서 의뢰한 날 외래에서 찍은 거죠?”

“어……. 네.”

“그리고 이건 아까 제가 시행한 심장 초음파인데…… 환자 나이가 31살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확실히 좌심실의 운동이 저하되어 있어요.”

“어…… 이건……?”

“그리고 여기 잘은 안 보이지만, 흉부 CT랑 비교해서 보죠. 그럼 상행 대동맥 뿌리 쪽에 뭐가 있죠? CT에서는 심장 박동 때문에 흐릿하게 넘어갈 만큼 작은 종괴인데, 여기서는 어때요.”

“어…….”

심장 초음파에는 종괴가 있었다.

주치의는 자기도 모르게 전이라고 중얼거렸고, 그걸 본 수혁은 한숨을 쉬었다.

하마터면 뒤통수 때리면서 전이겠냐! 라고 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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